한 몸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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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정
작품등록일 :
2017.10.16 19:25
최근연재일 :
2017.11.16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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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1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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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휴가 - 4

DUMMY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사람처럼 혜원의 눈이 둥그렇게 커졌다.


“뭐-어?”


“몸을 팔러왔으면 조용히 팔고 들어가라고. 이 썅년아.”


성재는 말을 하면서 혜원의 팔을 잡고 힘을 줬다. 가녀린 팔이 견딜 수 없는 압력으로.


성재의 우악스러운 힘에 그녀는 기가 눌렸지만,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저항했다.


“너 이러는 거 조 사장이 알아? 우리 사장이 가만있을 거 같에?”


성재는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핸드폰을 꺼냈다. 주소록에서 조현민을 찾은 그는 폰을 건네며 말했다.


“해봐. 니네 사장한테 전화 너라고.”


그의 당당함에 기가 눌리긴 했어도 이대로 지고 싶은 모습을 보이긴 싫은 혜원이다. 그녀는 통화 버튼을 눌렀고 응답을 기다렸다.


그때 스튜어디스가 다가와 곧 이륙한다는 말을 건네려 했으나, 성재의 굳은 얼굴과 손짓에 입을 다물었다.


성재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1분이면 됩니다.”


마침 조현민과 혜원의 통화가 연결됐다.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하다가 현민의 한 마디에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혜원 씨, 그분들 내 아래 아니에요.”


이게 뭔 소린가 싶은 혜원이 넋 나간 표정을 지을 때, 성재가 그녀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냈다.


“조 사장님, 실례가 많습니다. 저 이성잽니다. 이 여성분께서 뭔가 착각한 게 있는 거 같아서 전화 드렸습니다.”


현민은 똥 씹은 표정이 되어 답했다.


“아닙니다. 제가 미리 알렸어야 됐는데 차마 전달을 못했네요. 제가 죄송합니다.”


말이야 바른 말로 조 사장은 정말 잘못이 없다. 강두가 예전에 혜원의 경호를 잠시 했었다는 걸 모르니까.


그가 봤던 강두는 근래 몇 년이고, 그때마다 강두는 낮은 위치에서 약자의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룹의 임원급인 그에겐 위협적인 존재에 가깝고.


따라서 현민은 그저 혜원이 지닌 무개념 배우병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마저도 돈은 벌어다 주니 혜원을 달래기는 해야 하고.


조 사장은 성재에게 혜원을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혜원에게 전한 말,


“서로 존중하면서 가세요. 친해질 수 있으면 더 좋고.”


때마침 화장실에서 돌아오는 강두의 모습이 먼 발치에서 보였다.


성재는 혜원의 손에서 부드럽게 폰을 빼내고는 그녀에게 고개 숙이며 말했다.


“편히 가세요.”


이를 본 강두는 웃음을 그렸다. 저것이 성재의 작업 방식인가 하며. 그리곤 사람 좋은 얼굴로 혜원에게 말했다.


“불편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듣는 혜원 기가 차다. 불편한 거 있으면 말하라고?


그녀는 강두의 얼굴을 봤다가 다시 성재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무리다. 아주 갑자기 그녀에게 겸손함이 찾아왔다. 생명연장을 돕는 본능의 일환으로.


비록 어색한 웃음일지라도, 그녀는 애써 지은 웃음으로 강두의 말에 화답했다. 고개를 살짝 숙인 인사와 함께.


그리곤 아주 피곤한 사람처럼 담요를 찾아 덮고 누웠다. 필리핀으로 가는 내내 잠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그녀였다.


대략 네 시간의 비행을 통해 필리핀에 도착하자 누가 깨우지 않았는데도 번쩍 눈을 뜬 그녀는 자신의 짐부터 챙겼다.


강두가 직접 짐을 들어주려 하자 그녀는 손사례를 치며 거부했다.


“아깐 제가 좀 피곤해서 신경이 예민했어요. 이젠 괜찮아요.”


비행기에서 내릴 때 강두와 성재는 서울과 다른 공기를 느꼈다. 10월을 앞 둔 세부(Cebu)의 공기는, 아마도 비가 온 탓인지, 축축해진 땅처럼 눅눅했다.


누구라도 그렇지만 휴양지에 오면 화사한 햇살을 기대하는 법인데, 이놈의 하늘은 구름을 잔뜩 끼고 심술을 부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여기서부터는 신경 쓸 게 없다는 것이다. 세부 공항의 입국 절차가 남아있어도 별로 켕기는 게 없는 탓에.


문득 어제 정 이사에게 들었던 마약이 떠올랐으나, 설마 저 배우를 공급책으로 쓰진 않았을 것이고.


예상대로 강두 일행은 무난히 통관절차를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갔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승합차.


자동차의 크락션 소리가 일행의 이목을 이끌자 운전석에서 사람이 하나 튀어나왔다. 헐렁한 남방에 반바지를 입은 남자는,


“최 부장님 되시죠? 오 이사님께 연락 받았습니다. 저는 변형준이고요, [쉬임 리조트] 세부 지사에서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놈 소개 참 길다고 느낀 강두.


“예에, 수고 많으십니다. 나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세부는 처음이시죠?”


“네. 날씨 좋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아닌 모양이네요.”


“예에, 아직 우기가 덜 끝나서 좀 왔다 갔다 하는데 날 좋으면 제가 근사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강두와 인사를 마친 형준은 곧 혜원에게도 눈길을 주곤 고개를 끄덕였지만, 소리 내어 인사를 나누진 않았다.


비밀스러운 일은 조용히 처리하자는 소속사의 방침을 알기에 그렇다.


형준은 인사성이 좋고 밝았다. 성재와도 이름을 밝히며 통성명을 나눈 그는 유쾌한 웃음과 함께 운전석에 앉았다.


그들은 차안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대화를 나눈 건 성재와 형준. 운전석과 조수석에 나란히 탄 그들은 세부의 놀거리, 먹을거리를 언급하며 떠들썩했다.


이를 보던 강두는 신기했다. 분명 처음이라고 했는데 어찌 현지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성재 너 전에 여기 와본 적 있어?”


성재는 고개를 돌리며,


“오기 전에 미리 좀 알아봤습니다.”


역시 성재는 강두와 다르다. 준비성이 있고, 꼼꼼하다.


시내로 들어가는가 싶던 차는 어느덧 다시 복잡한 지역을 빠져나와 한가로운 길로 접어들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와 오토바이의 숫자는 줄어들었고, 인적 또한 드물어졌다.


“최 부장님, 촬영 시간 때문에 저쪽 먼저 가는데 이해하시죠?”


내심 촬영은 무슨 촬영인가 하면서도,


“예에, 그러세요.”


“어-유 고맙습니다.”


조수석에서 필리핀의 풍경을 구경하던 성재가 놀란 듯이 ‘어’ 했다. 그가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도로 안내 표지판이 보였기 때문에.


“뉴올리언즈 스트리트(New Orleans Street)?”


이 말을 형준이 ‘하하’ 웃으면서 받았다.


“저도 처음에는 뉴올리언스가 미국에만 있는 건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 필리핀이라는 나라가 침략을 하도 당해서 식민 역사가 길어요. 스페인에 미국··· 나중에는 잠깐이지만 일본 애들까지 들어왔으니까요.”


“아아, 그래서 뉴올리언스가···”


“그렇죠. 그리고 저 위로 한참 가면 나오는 동네가 있는데 거기는 산 비센테(San Vicente)라고 부르거든요? 그건 스페인의 흔적이라 볼 수 있죠.”


“변 팀장은 여기 오래 계셨나 봐요?”


“예에, 거의 여기서 살죠. 교민이나 다를 바 없어요.”


그때 강두의 눈에 집들이 들어왔다.


넉넉한 간격을 두고 지어진 집들은 서로 다른 특색을 뽐내며 한가로움을 뽐냈다. 개 중에는 제법 돈을 들인 듯 수영장이 딸린 집도 있었고, 마치 한국의 전원주택을 보는 듯 했다.


물론 집과 집 사이의 간격은 그보다 더 여유가 있었고. 그러한 집들을 지나치며 달리던 차는 장미색 지붕으로 장식된 2층 집 앞에서 정차했다.


자신의 도착지에 온 혜원이 내릴 준비를 했고, 형준은 내리는 그녀에게 캐리어와 함께 봉투를 건넸다.


“즐거운 촬영 되세요. 일 끝나면 거기 적힌 번호로 연락주시고요.”


혜원은 고개를 끄덕하고선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반쯤 열린 바깥문으로 들어가기까지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어서 들어가고 싶은 사람처럼.


안쪽 문에 도달해 도어락의 번호를 누르는 모습은 꽤나 능숙해 보이기도 하고.


이를 보던 성재가 웃으며,


“화보 촬영하기 참 좋은 장소네요. 주변도 좋고.”


“그렇죠. 여행객들이 붐비는 곳은 눈이 많으니까요.”


“맞습니다. 눈이 많으면 귀찮죠. 우린 어디로 가나요?”


“하하하, 이걸 어쩌죠? 두 분이 묶는 곳은 눈이 좀 있는 곳인데.”


형준의 말처럼, 차가 멈춘 곳은 아주 높지 않은 건물의 앞이었다. 그는 이곳을 콘도라 불렀다. 강두가 보기엔 작은 오피스텔 세 동을 모아 놓은 수준에 불과했는데.


안내에 따라 들어가자 건물 세 동의 중심에 놓인 수영장이 보였다. 저녁 조명에 은은히 부서지는 물비늘은 아름다웠고, 이를 본 강두는 정말 휴가를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준은 두 명이 함께 묵을 방을 안내하며,


“여기까지 오시느라 많이 힘드셨죠? 오늘은 첫 날이니 푹 쉬세요. 웬만한 건 콘도 안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내일 뵙겠습니다.”


자동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성재는 문득 아차 싶었다. 자신이나 형님이나 이 동네 말을 못하는데.


그 우려를 짐작했는지 밖으로 나가던 형준이 말했다.


“여기 직원들 대부분이 한국말을 아니까 지내는 동안 불편한 건 없을 거예요.”


이젠 정말 할 일을 모두 마친 사람의 모습으로 형준이 나갔다. 방을 나서는 그에겐 성재의 ‘수고하셨습니다’ 가 더해졌고.


관광객 둘을 객실에 두고 1층 로비로 내려온 그는 차로 걸어가며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네 번쯤 울렸을 때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네에.”


“이사님, 변형준입니다. 최강두, 이성재 모두 콘도로 안내했습니다.”


“우선 한 이틀 재미나게 놀게 해줘. 경계심 품지 않게. 알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요, 수고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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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와 그녀 - 2 17.11.02 1,126 24 10쪽
14 그와 그녀 - 1 17.11.01 1,295 2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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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달라진 모습에 - 3 17.10.30 1,198 23 10쪽
11 달라진 모습에 - 2 17.10.27 1,206 22 10쪽
10 달라진 모습에 - 1 17.10.26 1,485 2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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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동의가 필요해 - 1 17.10.20 1,657 2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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