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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만난 데스 나이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안개눈물
작품등록일 :
2017.11.01 16:15
최근연재일 :
2017.12.2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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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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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12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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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별호 - 4

DUMMY

- 네 기운. 망자에게는 그 자체만으로도 독이 된다. -


"처음부터 알고 계셨죠?"


- 물론. -



죽음을 앞둔 제갈예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모용세가 사람들의 경지를 반에서 한 단계씩 올려주고. 한혈마 볼트와 여러 생물체들에게 진화의 길을 터 줬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게 있어 축복인 이 힘은, 아이러니하게도 민호와 가장 가까운 태명을 갉아먹고 있었다.



'아저씨의 사기는 나한테 약이 되어 주는데. 내 생기는 아저씨한테 독이 되다니... 따로 떨어져 있을 수도 없는데 어쩌지?'


- 평소처럼 얼굴 펴고 웃어라. 기쁜 일이다. -



태명은 제 가슴팍에 주먹을 갖대 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는 집게로 집어 당긴 것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어지만. 무척이나 환했다.



- 나 역시 존재해서는 안 될 망자. 없어져 마땅한 악의 찌꺼기. 네 숨결은 내가 수천 년 동안 바라고 또 바랐던 안식을 주고 있다. 감사할 따름이지. 이제, 안식을 찾기 전 흑마법 잔재가 남은 마교를 멸절하길 바랄 뿐이다. -


"....."



순간적으로. 태명이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성전을 앞두고 죽음을 각오한 성자, 성녀처럼 더 없이 고결해 보였다.


'뭐라도 말 해야 되는데... 공감? 위로? 내가 위로 할 수 있나?'


좀처럼 감정을 내비치는 법이 없던 태명에게서. 아주 오랫동안 쌓아 두고만 있던 감정들이 흙탕물처럼 한데 뒤섞여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민호가 이해하고 받아 들이기에는 실로 터무니 없는 무게감. 숨이 턱 막혀, 질식해 버릴 것만 같다.


태명도 좀처럼 감정을 추스리기 힘들었는지 10분도 더 지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 이왕 말하게 됐으니 다 말하마. 마교에서 널 노릴 가장 큰 이유 역시 네 생기가 망자에게는 독이 되기 때문이다. -


"왜요? 혹시 강시 부대라도 대규모로 육성 했나요?"


- 천마. -



단 두 글자에 핏기가 썰물처럼 빠져 나간다. 춥고, 몸이 떨린다.



"흑마법사들이 회수한 줄 알았는데... 마교에 남아 있어요?"


- 천마는 그들에게 있어 신이나 다름 없으니 마교 쪽에서 협상을 걸어왔지. 천마를 이대로 자신들이 모실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야. -


"그, 그럼 여태 왜 안 깨웠대요?"


- 멀쩡한 상태로 넘겨 주는 건 흑마법사들도 원치 않았다. 힘을 다 빼놨기 때문에, 그를 다시 깨우려거든 고위 마족의 심장으로도 부족해. -


"후우."


'뭐야. 배터리 방전 된 스마트 폰 신세구만!'



하지만 천마가 활동을 멈춘지도 수백년. 태명은 흑마법을 접했던 마교인 만큼 뭔가 방도를 찾았을 거라며 방심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마교를 지워야 할 이유가 더 있었네요. 뭐, 몇개가 늘어나든 더이상 상관 없지만... 그렇지. 천마는 아저씨랑 비교하면 얼마나 강한가요?"


- 비슷했었다. -



그렇다면 지금은 천마가 더 강하다는 뜻. 민호는 눈 돌아갈 뻔하다, 이어지는 태명의 말에 도로 돌아왔다.



- 하지만 내게는 마법무구가 있지. -


"아 맞다. 장비빨을 깜빡하고 있었네. 후유... 아저씨! 사람 들었다 놨다 하지 마요 좀! 엄청 쫄았잖아요!"


- 음? -



그렇다! 판타지와 무림의 가장 큰 차이점. 무공 따로 술법 따로. 까딱하면 사술 쓴다며 공적으로 몰리는 무림과 달리, 판타지는 기사의 무력과 마법사의 마법무구가 하나로 합쳐진다.


'가만? 이거 정말로 위기 속에 기회가 있잖아?'


민호는 잠시 머릿속을 정리하며 어떻게 하면 태명을 설득할지 할 말을 골랐다.



"간단한 일이네요. 아저씨는 마교 없앤다는 신념을 행동으로 옮길 거예요. 맞죠?"


- 그렇지. -


"전 아저씨랑 붙어 다녀야 하고요. 저번에 저는 반드시 꼭 살아야 한다고 말씀 하셨던 거 기억하세요?"


- 물론이다. -


"그럼... 쓸 수 있는 건 닥치는대로 뭐든 쓰는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죠?"



일전에 태명은 무림에 충격을 줄 지도 모를, 일정 수준을 넘는 마법물품은 쓰지 않겠다 선언한 적이 있다. 그 제약을 깨부순다. 태명도 민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깨닫고는 말을 아꼈다.



"저번에 제가 청 형 기습한 사파인들 죽이지 말라고 했을 때 아저씨가 뭐랬어요? 적에게까지 느슨한 잣대 들이밀지 말라며요? 오늘 적에게 베푼 자비가 내일 내 심장을 앗아가는 비수가 된다는 걸 깨달으라면서요?"


- 그건... -


"물론 경우가 다르긴 하죠. 아저씨는 엄청난 마법물품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쓰면 그걸 보고 여기 사람들도 그와 같은 힘을 탐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죽지 않으려면 총력을 다해야 한다는 점 만큼은 똑같잖아요?"



태명에게는 쉽사리 결단 내릴 수 없는 딜레마. 민호는 조근조근한 말투로 조금씩. 굳게 닫힌 성문을 두드렸다.



"마교는 몽골 활실에도, 송 황실에도 사람을 보냈어요. 은밀하게 사람들을 풀어 무영신투의 뒤를 쫓고 있는 중이기도 하고... 게다가 천마까지 있다고요? 적은 지들이 가진 모든 패를 쓰며 발악질 하는데 우리는 쓸만한 무기를 산더미처럼 쌓아 두고도 '허허! 이런거 쓰면 안되요. 지지!' 이러고 말아요? 에이, 그건 아니죠."


- ..... -


"무엇보다. 아저씨 소신대로 싸우면 오히려 아저씨가 염려하는 일이 벌어질 거예요."


- 그건 또 무슨 말이지? -


"아저씨는 점점 약해지실 테고, 마교는 천마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아저씨가 놈들을 꺾지 못하면 놈들이 득세하겠죠? 그편이 신기한 마법 물건으로 문화충격 주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직접적으로 악이 뿌리내리는 거잖아요!"



전통 깊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라면 모를까. 중소 문파들. 특히나 사파인들은 마교의 힘을 부러워하겠지. 추종하는 이들이 줄을 이을 것이다. 그도 그럴게, 무림은 본디 힘을 추구하는 집단이요 전쟁이라는 극한의 혼란시기에는 힘이 곧 진리니까.


실로 오랜만에 성세를 되찾은 마교는 두 팔 벌려, 마음껏 마(魔)를 뿌려댈 것이다. 놈들이 몽골과 결탁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분열돼 있다 전란에 휘말린 뒤의 무림은 마교를 감당할 수 없으니 거리낄 것도 없겠지.



"천마는 단순히 힘 센 놈이 아닌 건 태명 아저씨가 더 잘 아실 거예요. 천마가 가진 무력보다도 그 상징성이 더 위험하죠."


'비트코인도 실상은 아무것도 아닌데 그렇게들 열광했던 거 봐. 살아 움직이는 상징은... 답도 없지.'



마교니까 정교적으로 빗대 보자. 기독교는 예수, 불교는 고타마 싯다르타, 이슬람은 마호메트. 전 세계적으로 뻗어나간 종교들은 하나같이 '실존'하는 성인이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 확실히. 이런 거 저런 거 따지면서 싸울 만큼 여유롭지는 않군. -



태명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의 철칙이. 또 다른 철칙이랑 부딪치면서 깨져 나간다.



- 절벽, 무영신투도 실체 없는 전설이지만 사람들이 철썩같이 믿는다. 널 단 한번 만나보지 못한 이들도 네 별호만 듣고 찾아온다. 내 고향에서도 성자의 연설 아래 모든 국가가 한데 뭉쳐 흑마법사들을 토벌했었지. -


- 천마도 그랬다. 마교가 놈을 부활시킨다면 또 한번. 수백년 전과 마찬가지로 악의 성자가 되겠지... 좋다. 나도 내 모든 걸 동원하지. 그것이 설령 흑마법사들의 유산이라 하더라도! -


'됐어! 되로 덜고 말로 받았다.'



민호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짖었다. 기어코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아저씨가 약해지는 만큼 내가 강해진다는 거. 아저씨도 알고 계시겠지만... 날 살리려는 분이 나더러 전면에 나서 싸우라고 하지는 못하시겠지.'



태명 본인도 흑마법사들에게 도구로 이용 당했을 뿐이면서, 굳이 희생을 감수하고까지 흑마법 잔재를 없애려 한다. 방금의 설득은, 그런 태명의 올곧고 고지식한 면까지 파고 들었기에 가능했던 것. 그에게 너무 과중한 짐을 지우는 게 아닌가 싶어 내심 미안하지만 민호는 내색하지 않았다.



'죄송해요 아저씨. 아직은 제가 뭘 익히고 뭘 준비하고 있는지 알려드릴 때가 아니라서요. 때가 되면, 저도 아저씨의 힘이 되어드릴게요.'



필사의 결의를 다지는 태명 못지 않게.

민호 또한 각오를 다졌다.



* * *



고려 사람 강쇠, 데스 나이트 태명, 현대인 민호, 무림인이자 비구니인 혜원. 이 세상 조합이 아닌 것 같은 독특한 일행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피로가 쌓이신 거 같은데 마차에 타세요."


"나는... 괜찮. 허억. 헉. 소."


"숨이 턱까지 차오르신 거 같은데요?"


"괜... 허억. 허. 허억..."


"숨이 꼴깍. 넘어가실 거 같은데요!"



칭기즈 칸 손자의 병세가 위중하다는데 시간 끌 일 있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혜원이 민호를 찾아왔던 날 바로 다음날에 출발했다. 그리고 5일. 여태껏 마을에 들린 적은 한번도 없다. 길이 평탄하고 달이 밝은 날에는 밤에도 내달렸다. 심지어 벽곡단 몇 알로 끼니를 때우고 소화 되기도 전에 다시 달린 날도 있다.


벌써 안휘성을 지나 하남을 목전에 두고 있을 정도로 빠른 속도. 처음에는 상승의 경신술로 곧잘 따라오던 혜원이지만, 날이 갈수록 속도가 느려지더니 이제는 거의 죽으려고 한다.



"안되겠네... 정지! 슬슬 밥 때 됐으니까 좀 쉬었다 가요."


"그래 말 잘했다. 이거야 원. 사람 구하러 가다가 사람 잡게 생겼으니. 스님, 이대로는 여정 자체가 무산되겠소. 고집은 그만 부리시오."



일행은 작은 개울 옆에 멈췄다. 혜원은 나무둥치에 기대 끊어질 듯한 옆구리를 부여잡고 숨을 고르기 바빴고, 강쇠는 혀를 끌끌 차며 땔감을 구해왔다. 태명은 마차와 말을 한 곳에 묶어뒀고, 민호는 식사 준비.



"영양 보충에는 고깃국이 딱인데..."



말 꼬리를 흐리며 혜원쪽을 바라보니,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나는 못 먹소이다."


"역시 그렇겠죠?"


- 치이익.



불을 꽤 크게 피워, 삼면에서 요리를 했다. 한쪽은 밥, 한곳은 국, 한곳은 찜. 그러면서도 바닥에 도마와 그릇을 놓고 반찬들을 만든다.



"....."

"고 녀석 참. 어디서 저렇게 음식을 배웠누."



톱니바퀴 맞물리듯 빈틈없는 움직임으로, 불과 30분 만에 5가지 반찬을 만들어냈다.



"혹, 음식 장만도 무공처럼 초식이 있소이까?"


"없는데요."

'레시피라면 있지만.'


"움직임이 너무 정교해 검무처럼 느껴졌소. 신기한 일이오."


"하다보면 늘어요. 자, 식기 전에 어서 먹죠."



처음에는 먹고 치우는 데 한 끼 당 한 시간은 넘게 걸렸다.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워,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으면서도 시간을 줄일까 고민하다 보니 결국 몇 가지 방법을 찾게 됐다.


메뉴를 정하며 뭘 준비해야 할지 미리 생각해두기! 밑준비는 한꺼번에 다! 가장 오래 걸리는 걸 먼저 요리하고, 익히는 중간중간 다른 요리를! 조금이라도 남는 시간에는 뒷정리를 미리미리!


별 것 아니지만, 월등해진 신체능력을 곁들이면 마법 수준으로 시간이 줄어든다.



"이 하얀 건 무엇이오? 두부는 아닌 것 같소만."


"치즈라는 거예요. 소 젖으로 만든 거니까 드셔도 될 거예요."


"치즈라? 어디... 맛있다! 아, 아니. 맛있소이다."


"고기 못 드시니까 그런 거라도 많이 드세요."



우유에다 레몬을 넣어 직접 만든 리코타 치즈에 아삭 거리는 채소와 고소한 견과류를 뿌린 영양식. 소스까지는 못 만들어 간만 겨우겨우 맞췄지만, 본래 담백한 음식만 먹어 온 혜원에게는 그 편이 더 입에 맞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왜 마차에 안 타시려는 거예요? 저랑 강쇠 아저씨가 타고 있어서 그래요?"


"그렇소."


"그럼 큰 마을에 들려서 말 한 마리 살까요?"


"부끄럽지만 말 탈 줄 모르오."



섬. 그리고 산에만 살던 혜원이 말을 탈 줄 안다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이겠지. 혜원은 민망한지 얼굴을 붉혔다.



"애시당초 검각의 신법은 능히 마차 속도를 능가하오. 저 말이 너무 뛰어나서 탈이지 결코 검각의 신법이 뒤처지는 게 아니외다!"


"네."


"익! 정말이오! 무림맹에 세 차례 갔었지만, 그때마다 마차보다 빨랐소이다! 저 말은 사람 셋 태운 마차를 끌면서도 어지간한 준마의 습보보다 빠르니... 억울하오!"



민호의 짧은 대답을 '뉘예~ 뉘예~ 그러시겠죠. 아이구우 그러셨어요? 우쭈쭈.' 정도로 오해했는지, 혜원은 두 주먹을 불끈 쥐어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는 입을 앙 다문다.


'스물 아홉이라고 하셨는데... 검각에만 있어서 그런가? 고지식하면서도 어쩐지 귀여워.'


민호는 퍽 웃으며 답했다.



"저도 우리 우사인이 특출난 거 잘 알죠. 한혈마 치고도 남다른 녀석인걸요? 밤낮없이

달렸는데 누나가 사흘이나 크게 뒤처지지 않고 따라오신 것만 해도 대단하신 거예요."


"아... 으. 음."



누나라는 말에 불에 덴 듯 화들짝 놀란 혜원은, 이윽고 자신이 오해했었다는 것과 칭찬받았다는 걸 동시에 깨닫고는 그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얼굴을 숨겨봤자다. 귀는 물론 목까지 빨개져 있어서야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걸 숨기지 못하니까!



"갈 길이 머니까 많이 먹어 두세요."


"으응..."



거의 웅얼거림에 가까운 대답.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민호의 입가가 씰룩인다.



'큰일났네 이거. 놀리는 게 너무 재밌잖아? 도사가 스님 놀려도 되나 모르겠네? 종교 분쟁 같은 거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가까운 사람은 닮는다 했던가? 사람 들었다 놨다 하는 거. 당할 때는 참 고약하다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맛들릴 것 같다.


작가의말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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