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치에라의 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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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베
작품등록일 :
2017.11.07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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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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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28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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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7)

DUMMY

마을을 안내하며 계속 질문을 던지던 테미에게 일일히 마을에 대해 설명을 해주다보니 어느덧 해가 져가는 시간이 되었다.


애시당초 마을의 구조를 파악하겠다는 공작영애의 안내요청을 들었던 그 순간 대강 마을에 대한 설명을 머리속에서 이미 정리를 끝마친 참이었지만, 테미가 그토록 오랫동안 날 떨어트리지 않고 마을을 둘러보고 싶어했던건 그녀 나름의 절실한 이유가 있어서였으리라.

중간에 공작영애가 무언가에 한껏 기대한듯한 상기된 얼굴로 이쯤이면 충분할 듯 하네요,라며 테미를 제지하지 않았다면 오늘 저녁 늦게까지 난 마을을 안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때의 테미의 얼굴은 참 대단했지. 마치 영혼이 그대로 빠져나간 것 마냥.

우리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니르가 눈을 반짝이며 달려와 팔을 잡아끄는 손길에도 반항조차 없이 그저 실이 끊긴 인형마냥 팔락이며 사라지는 그 모습을 눈가를 촉촉히 적시며 배웅했더랬다.


침 바르고.


"협조에 동의해주신건 참 고마운 일이오만...왜 그렇게 기분나쁘게 웃는것이오?"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광장에서 빵을 팔고있던 매대가 아닌 데릭 아저씨네 집으로 간다니 큰일은 일어나지 않을거다 아마도.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데릭 아저씨나 루디 아주머니가 중간에 끼어들어서 막아줄테니까.

강렬한 추억이 하나 생길테지만.


왠지 테미가 니르의 빵을 눈 앞에 두고 바들바들 떠는 모습을 상상하니 미안하게도 입가에 미소가 떠올라버렸다.

왠지, 그 모습이 익살스레 느껴졌거든.


"크흠..그나저나, 숲에서 무엇을 하시려고 이런 어두운 시간에 숲 속에 들어가려고 하시는거죠?"


헛기침을 뱉으며 의문스러운 첸드릭의 눈길을 흘려넘기곤 자연스레 대화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

아까는 그렇게도 말해주기 꺼려하던 이유였지만, 여기까지 왔으면 얘기해줄 때도 된거잖아.


그 순간, 들고있던 횃불 아래서 일렁이는 첸드릭의 얼굴이 순간 굳어지며 나를 내려다보는 것에 무심코 고개를 기울였다.

응? 뭐지?


"아직 아무것도 듣지 못했소?"


"네? 네..전혀요? 그저 첸드릭 경이 저에게 숲 속 안내를 부탁하신다는 것만.."


"..오긱스 평기사"


"네! 부단장님!"


낮게 깔린 첸드릭의 부름에 뒤를 따라오던 세명의 기사 중 한명이 힘차게 대답하며 횃불을 든 채 앞으로 나와 경례 자세를 취한다.

왼쪽 가슴께를 오른손으로 두번 두드리는 독특한 경례에 화답한 첸드릭은 부동자세로 차렷하고 선 오긱스 평기사를 아무말 없이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내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날 찾아오게. 완전무장하고"


"네?...네"


"공터 외곽을 따라 삼백바퀴 돌거니까 준비하고 오게"


"네...네?!"


그 말만을 남기고 시선을 거둬낸다.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얼굴 한가득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하는 그의 시선이 날 향하기 전에 나도 고개를 돌려 그를 내 시야에서 지워냈다.


"미안하오"


"..방금의 일련의 일로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알 수 있겠네요"


하여간 저 인간은...


짧은시간이지만 지금껏 저 오긱스 평기사란 사람이 제대로 일하는 걸 본적이 없다.

항상 농땡이 피우며 일하는 척만 하거나 어딘가에 짱박혀 동기라는 기사가 열심히 땀흘리는 걸 여유롭게 보고있을 뿐이었으니까.

혼 좀 나야돼 하여간.


"별건 아니라오. 밤 중의 숲을 조사해보기 위함이니.

더불어 며칠 전 공터에서 일어났던 일도 있지 않소? 아침 일찍 일어난 일이라니 저녁에 무언가 그 흔적이라도 있지 않을까 해서말이오"


"..별일아니네요?"


"그렇소"


"근데 왜 오긱스 평기사는 그렇다치고 공작영애는 그 별거아닌 이유를 얘기하기 꺼려하신거죠?"


"흠, 글쎄? 미안하고 걱정되서 그러신게 아니시겠소?

본인의 일을 그대에게 떠맡기는게 되어버렸으니 말이오.

게다가 아무리 현지인이라곤 하지만 어두운 숲 속에 그대를 보내는 것에 대해 편치못한 마음을 품고계실지도 모를테지"


"...."


"의심하는것 같구려.

오긱스 평기사!"


"부단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죄송함다 루시안 님!"


"그렇다지않소.

공작영애가 하시지 못하신 말씀을 오긱스 평기사가 대신 전해주었어야 했을텐데..

거듭 미안하외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도 숨길 수 없는 첸드릭의 능청스런 얼굴에 의문은 더욱 강해지지만, 정말 그런거라면 더이상 할 말은 없다.

무슨 이유인지 내 눈으로 직접 보는수밖에 없네.


"그런 별거 아닌 일을 제대로 전달하지도 못하다니...

요즘 젊은 친구들은 기강이 해이해져서 문제라오"


"흠...저는 그쪽 사정을 잘 몰라서 뭐라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전부가 '저렇진'않지 않나요?"


"!!"


뒤따라오는 무리 가운데에서 숨죽이며 키득이는 웃음소리와 우는소리가 좀 들린것 같은데.


"그렇긴하오만, 나 때는 저렇지 않았는데..."


"..뭐랄까, 나이 드신 분들이 항상 그런 말씀들을 많이 하시더군요"


오긱스 평기사를 두둔하는 건 아니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이란 말에 왠지 반발심이 들어버렸다.

그 왜 그런거 있잖아. 나는 그렇지 않지만 왠지 싸잡아서 취급받는 느낌? 물론 '나'는 그렇지 않지만.

다들 똑같은 생각하려나.


"허허...나이가 드니 생겨나는 묘한 아집이라오. 정작 그런 말을 하는 나도 과거에 부끄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네만...왜 그렇잖소.

다들 내 과거는 모르니 내 자신이 나를 포장하는 것 뿐이라오.

나 자신을 내가 인정하지 않으면 조금씩 나약해져가니 말이오"


굳건한 그의 근육으로 뒤덮인 커다란 몸을 본다면 과연 첸드릭이라는 이 사람이 나약해질까라는 의구심이 들긴하지만.


사박사박, 어두워진 숲 속 동물들이 지나다닐 법한 좁고 거친 길을 수명의 발자국 소리가 일렁이는 횃불 빛에 얽혀 울려퍼진다.


과거라, 과거...

문득 궁금해졌다.

그가, 첸드릭 아기오스라는 사람이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


허나, 쉽게 입이 떨어질 질문은 아니었다.


그의 과거를 전혀 모르는 바가 아니기에, 첸드릭은 이런 자그마한 마을에 있는 학교에서도 배울만큼 유명한 사람이기에..그 과거의 조각을 아주 살짝 들여다 본 나로선 쉽사리 그에게 과거를 묻기가 꺼려지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조합장님의 문제까지 얽혀있으니...


문득, 어제의 기억이 꺼져가는 불씨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서서히, 은근한 모양새로 머리속에 퍼져나간다.


'..로번 리가튼 영지관리관님과 첸드릭 경의 관계에 대해서 알고 계시지요?...'


테이블에 둘러앉은 테미와 나누었던 이야기.

그녀가 궁금해했던 첸드릭 아기오스라는 사람과 조합장님과의 관계, 그 둘의 과거.

과연 이 사람은...그 질문에 대답을 해줄까?


"...첸드릭 경, 당신은 혹시.."


"음?"


쉽사리 열리지 않던 입이 무심결에 입안에서만 감돌던 질문을 소리로 자아내려던 그 때.

무언가에 경계하듯 날카로워진 기세로 멈춰선 채 한곳을 응시하는 첸드릭의 모습에 다시금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무언가 있군"


"무언가?"


그를 만난 공터와 마을이 이어진 숲 길 한가운데에서 숲을 향해 꽤나 깊숙히 들어온 곳이다.


야생동물 한두마리 쯤이야 살고있어도 이상할게 없는 곳인데...

게다가 테미와 이 주변 숲 속에 들어가려는 마을사람들에게도 꾸준히 주의해왔듯 이 숲은 적잖이 위험한 곳이었다.

참 묘하게도, 내가 사는 공터 주변의 숲 속이 마을 주변의 다른 곳들보다도 더.


흉포한 야생동물들이랄까? 이 주변의 야생동물들은 다른곳들의 같은 종들보다도 더욱 공격성이 강한 느낌이란말야.

어째서 그런건지 의문스럽긴 하지만...그 이유를 알 수가 있어야지.


그동안 마을 사람들, 데릭 아저씨나 조합장님도 그 이유를 몰랐기에 공터 주변의 숲 속은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서 깊이 들어가면 안될곳 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지금도 그런 야생동물들 중 하나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첸드릭이 바라보고 있는 곳을 같이 응시하길 잠깐.


바스락, 바삭.


"?!"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수풀이 무언가에 걸려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한 곳에서가 아니다. 세네곳에서 일제히.

그 소리는 마치...


"포위당한건가"


일행을 둘러싸고 있는 듯 사방에서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 숲 속에 포위하며 사냥하는 야생동물이...있었나?

이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있는 동물은 본적이 없는데..


경계심을 키우며 소리가 울려퍼지는 곳을 차례대로 응시하는 날 감싸듯 첸드릭 경과 오긱스 평기사를 포함한 네명의 기사들이 횃불을 들지 않은 손에 무기를 빼들며 내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한다.


"경계를 늦추지마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우리를 감싼 채 맴돌고 있는 걸로 보아 무작정 달려들만큼 어리석은 녀석들은 아닌것 같으니"


첸드릭의 나지막하지만 모두의 귀에 확실히 전달되는 목소리를 들은 나머지 세명의 기사들의 기세가 일제히 날카롭게 변해간다.


역시 기사는 기사, 왕국 내 국왕폐하 직속 기사단을 제외한 유일한 사병단이자 그들과도 비등, 혹은 앞선다는 글렌로우드 기사단의 평이 결코 헛된것만은 아닌것같다.

오긱스 평기사 때문에 낮아지던 그들의 내 평가가 이 순간 조금은 높아졌달까.

그 원인인 오긱스 평기사 마저도 이 순간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숲을 응시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있었으니까.


"...."


근데 난 왜 보호받고 있는걸까.

아니 뭐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야 나는 보호해야 할 대상일거라는 건 알겠지만...

드물지만 가끔 저녁에 숲 속을 드나들었던 내 입장에선 조금 어색한 기분이다.


그토록 멋쩍게 기사들에게 감싸인 채 어색해 하고 있길 한동안.


숲 속을 바스락거리며 울리던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


쉴새없이 수풀 안에서 들려오던 그 소리에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던 기사들의 얼굴이 약간, 아주 미세할 정도로 풀어지는게 흔들리는 횃불에 비춰 눈에 들어온다.

나도 꽤나 조심스러운 녀석들이었구나하는 생각에 멀어져가는 수풀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하지만, 이 아주 사소한 행동이 불러온 결과는 매우 커다란 것이었다.


"! 경계를 풀지 말라고 했거늘!"


"키샤아아악!!"


천천히 멀어지던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지며 수풀을 헤치고 여섯 군데에서 일제히 그림자가 튀어나온다.


대여섯살 정도의 아이만한 몸집을 한 네 다리를 땅에 디디고 선 동물.

어두운 숲 속인 탓에 그게 어떤 동물인진 순간 알 수 없었지만, 금새 가까워진 그것들이 횃불 아래에 몸을 드러내자 마자 번들거리며 빛나는 무성한 초록색 털에 무심코 단말마의 비명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쿠르가?!"


"캬아악!!"


"우, 우악?!"


두어번의 도약으로 기사들의 앞까지 다가온 쿠르가들의 선두에 서있던 한마리가 지체없이 그 큰 몸을 가까이 있던 당황한 기사에게 '던져낸다'.

몸의 모든 근육들을 그저 몸을 날리는 것에 집중한 듯 쏘아져오는 쿠르가에게 덮쳐진 그 기사는 엄청난 기세에 그대로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쿵! 커다란 소리를 내며 쓰러진 기사의 몸 위에 민첩하게 올라 탄 쿠르가는 그 큰 앞발을 치켜들고는 힘껏 아래로 찍어내렸다.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나 눈으로 따라가기도 벅찬 그 절체절명의 상황.

다른 누구도 제 때 반응하지 못할만큼 순식간에 일어난 그 상황에서, 유일하게 움직인 사람은 단 한명뿐이었다.


"으라아!"


슈악! 칵!


"키각?!"


횃불이 아주 자그맣게 사그라들 정도로, 마치 꺼진듯 느껴질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인 거대한 인영.

그리고 쏘아져나가는 일직선의 거대한 검은 빛이 숲 속의 어둠마저도 집어 삼킨듯 더욱 짙은 검은궤적을 그려내며 기사의 몸 위에 올라탄 쿠르가의 몸을 지나쳐간다.


그 순간, 양단.


파악!


"!!"


후두둑, 힘을 잃으며 쓰러지는 쿠르가의 정확히 몸뚱아리 윗 절반과 그 단면에서 터져나온 피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귀에 무거이 날아와 꽂힌다.

꺼질 듯 쪼그라들었던 횃불이 다시금 그 몸집을 부풀리고, 선두를 따라 덤벼들려던 나머지 다섯마리의 쿠르가들이 주춤한 그 순간.


"이 어리석은 놈들! 눈 앞에서 적이 사라지더라도 바로 경계를 늦추는 건 목숨을 내놓은 짓이거늘!"


거대한 체구에 어울리는 커다란 검을 내리 휘두르며 터트린 일갈에 멍한 표정을 짓고있던 다른 기사들이 흠칫, 그제서야 움직이기 시작한다.


"흐아아!"


그리고 시작된 반격.

갑작스러운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기사가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눈 앞의 쿠르가를 향해 달려든 오긱스 평기사의 손에서 세로로 휘둘러진 검의 궤적이 정확히 쿠르가의 머리위로 떨어져내린다.


뒤로 물러날 시간조차 없었던건지, 아니면 애초에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건지 오히려 한 발을 앞으로 내밀었던 그 쿠르가는 그대로 몸에 검을 박은 채 무너져내리고, 한손으로 휘두른 탓에 검을 쿠르가의 머리에 그대로 박아버린 오긱스 평기사는 허리춤의 검집에서 같은 모양의 검을 하나 더 빼들었다.


두개였어?!


"키샤아아!"


"흡!"


오긱스 평기사보다 늦게 움직인 다른 한명의 기사는 자신에게 달려든 쿠르가를 향해 그대로 자신의 몸을 부딪혀간다.

세명의 기사들 중 가장 덩치가 큰 그 기사와 속도를 살린 채 마주 부딪히게 된 쿠르가는 그대로 입을 벌리며 그의 목덜미를 물어 뜯으려 하지만, 눈높이에서 입을 벌린 채 달려드는 쿠르가에게 그는 자신의 팔을 그대로 그 입에 물려버렸다.


그리곤 곧바로 땅을 디딘 발을 축으로 삼아 상체를 뒤로 반회전.

단단히 물린 쿠르가를 마치 나무가지를 잡고 휘두르는 것마냥 가볍게 뒤로 내두른 그는 그대로 쿠르가를 바닥에 메다 꽂아버렸다.


쿵!


"키악!"


"흐읍!"


빠각!


커다란 소리를 내며 그 충격에대한 반동으로 입을 벌린 채 땅에서 약간 떠오른 쿠르가에겐 그 순간이 이생에서 보는 마지막 순간이었을거다.

물려있던 팔이 빠져나오며 틀었던 몸에 다시금 회전하는 힘을 살린 그의 반대쪽 주먹이 내리꽂힌 쿠르가의 머리는 그대로 다시 바닥에 내쳐지며 형태조차 남기지 않고 으스러져 버렸으니까.


그리고 그 사이.


"차앗!"


슈악!


"키이..! 쿠룩..."


맨 처음 달려든 쿠르가에게 덮쳐져 쓰러진 기사가 땅을 손으로 밀듯 일어나며 손에서 쏘아낸 일직선의 궤적이 눈 깜짝할 사이에 떨어져있던 쿠르가의 머리를 관통.


그리고 그 옆에서 몸을 날려 달려들던 쿠르가의 아래로 허리를 뒤로 젖히며 피해낸 오긱스 평기사의 칼이 쿠르가의 배를 가르고 지나간것은 길어야 일이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순식간에 바닥을 나뒹구는 쿠르가의 시체들.

첸드릭이 그랬던 것 처럼 횃불이 순간 사그라들었다가 다시 살아날만큼의 속도는 아니었지만, 제각기 엄청난 힘과 속도, 그리고 기술로 눈 앞의 쿠르가들을 정리해낸 기사들은 다시금 대형을 유지하기 위해 민첩한 움직임으로 내 주변을 향해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움직이는 그 짧은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틈새의 사이로, 남은 한마리의 쿠르가가 횃불의 아래에서도 그 그림자만이 보일 만큼 빠르게 호위망 안쪽의 나를 향해 달려들어왔다.


어둠속에서 번뜩이는 쿠르가의 노란 눈동자가 번들거리며 치켜떠지는게 시야를 채워온다.

먹잇감의 숨통을 순식간에 끊으려는 듯, 벌어진 입 사이로 커다랗고 날카로운 이빨이 횃불 불빛에 비춰 누렇게 번뜩였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의문조차 천천히 흘러가는듯 느껴지는 그 순간.

지금껏 쓰러진 다른 녀석들보다 몸집은 조금 작지만 그 속도는 비할 바가 못될정도로 빠른 그 움직임에 뒤늦게 눈치 챈 세명의 기사들이 돌아서는 것보다 빨리,

내 옆에 서있던 첸드릭이 내게 덤벼드는 쿠르가를 향해 검을 치켜드는 것보다도 빨리,


"핫!"


슉! 퍽!


"키욱!..."


반사적으로 차올려진 내 발에 아랫턱을 맞은 쿠르가는 그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누운 나를 지나 수풀 안쪽으로 쳐박혀버렸다.

뭔가 부서지는 느낌이 났으니...아마 저 녀석도 저대로 끝일거다.


"하!...아...?"


"으, 으왓"


"흐흡!"


날 향해 덤벼든 쿠르가야 뭐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정작 날 더 놀라게 만든건 내 눈앞을 지나가는 두개의 궤적과 큰 덩치의 기사였다.


눈 앞에서 날아가버린 쿠르가에 순간 제어를 잃어버린 듯 그대로 내 질러버린 검과 창,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날린 몸을 멈추려다 실패한 듯 한껏 찡그린 얼굴로 내 눈 앞을 지나가 저기 쳐박혀버린 쿠르가에게 날아가선 쿵!하고 떨어져버린 큰 덩치의 기사.


..우와아..쿠르가를 피하려고 눕지 않았으면 큰일날뻔했네..


"괘, 괜찮으십니까 루시안 님?!"


그대로 땅에 누운 채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던 내 눈 앞에 불쑥 튀어나온 오긱스 평기사의 당황한듯한 얼굴이 왜 이리도 얄미운걸까.


"덕택에 안괜찮아요.."


"죄, 죄송합니다!"


"...아니 그렇게 고개 숙이고 있지만 말고 나 좀 일으켜줄래요?"


꾸벅꾸벅 허리를 숙이며 눈 앞에서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는 오긱스 평기사에게 손을 들어올리자 다른곳에서 튀어나온 커다란 손이 그 손을 대신 잡아채곤 순식간에 들어올린다.


"오, 오오?"


"평소에 보았을 때 꽤 몸을 쓰지않을까 했소만...생각보다 더 대단하구려"


엄청난 힘으로 한번에 들어올려진 탓에 넘어지지 않도록 제자리에서 통통 발을 구른 나에게 건네진 낮은 목소리에는 여실히 놀란듯한 기색이 어려있었다.


"..제가 봤을 땐 첸드릭 경과 여기 기사님들이 더 대단하던데요"


"한참 멀었소. 기본적인것조차 안되어있으니..."


날카로운 눈초리를 한 몸에 받은 기사들이 허리를 펴며 긴장한 표정을 짓는다.

말하고자 하는건 알겠지만...그거야 나도 그런거니 넘어가고.


그 이외에,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평소엔 그토록 능글맞고 허술한 모습만 보여주던 오긱스 평기사의 유연한 몸놀림이나 빠르고 예리한 검 끝, 그리고 불안정한 자세와 얼굴에 뿌려진 쿠르가의 피 때문에 시야도 제한된 상태에서 정확히 미간을 노려 적절한 힘과 속도로 창을 내지른 기사나 저 커다란 쿠르가를 괴력으로 제압한 큰 몸집의 기사까지...

괜히 그들이 명성이 자자한게 아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오긱스 평기사는 평소에 이만큼만 해주면 참 좋을텐데...


"돌아가면 자네들은 내가 직접 훈련을 진행하도록 하겠네. 일단 그 정신부터 다시 무장해야 할거야"


"""옛! 부단장님!"""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왼쪽 가슴을 두번 두드린 그들을 엄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첸드릭은 다시 그 시선을 내게 향한다.


"다친곳은 없소?"


"단 한군데도요. 저보단 아까 넘어지신 분을..."


"..다친곳은 있나?"


"어, 없습니다!"


여전히 차렷자세로 뒤집어쓴 쿠르가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굳힌 기사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는 첸드릭.


이러면 다친데가 있어도 있다고 말 못하지..

얼굴 기억해뒀다가 저 사람은 공터에 돌아가면 다시 물어봐야겠다. 좀 걱정되네.

피범벅이 되기전엔 어떻게 생겼었더라...


"다친곳이 없다니 다행이오"


"다행..이긴 한데, 애초에 이 일을 다행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싶네요"


주변의 광경을 둘러보다보니 신음이 절로 흘러나온다.

주변에 퍼져있는 쿠르가의 피와 잔해들.

일렁이는 횃불 아래에서 마치 현실이 아닌듯 기묘하게 비추는 그 광경은 의심할 여지 없이 방금 전 일어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에...쿠르가가 사람을 먼저 공격하다니?"


쿠르가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아니, 그 무엇도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쿠르가는 초식동물이 아니었소? 대체 이 이빨은..."


육식을 하지 않는, 풀을 뜯어먹고 사는 동물이니까.

애시당초 이게 정말 쿠르가가 맞는걸까? 내가 알고있는 쿠르가의 외견과 정확히 일치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이 날카롭고 큰 이빨때문에 의문이 남는다.


풀을 뜯어먹기엔 너무나도 비효율적인 이빨.

허나, 그 의심만 갈 뿐이지...울음소리와 눈동자의 색, 그리고 그 이외에 일치하는 모든것이 내 의심을 정면으로 반박하고있었다.

이건 쿠르가가 맞다고.


"이 주변의 쿠르가는 이렇소?"


"아뇨. 전혀요. 온순하기 이를데없는 녀석들이죠.

그래도 자길 공격하는 녀석들에겐 맞대응하긴하지만...저희들이 이 녀석들을 공격한것도 아니잖아요?"


"그렇지...게다가 더 이상한건,"


"쿠르가는 초식동물인 주제에 단독생활을 하는 동물...그런 쿠르가가 무리를 지어서, 게다가 함정을 팔 정도로 지능을 가지고있다?"


처음 우리들을 포위한 채 맴돌던 녀석들이 그 경계가 풀리지 않자 취한 행동.

그것은 명백히 함정을 파는 행동이었다.

우리는 너희들을 포기한다는 의미를 주는 그 멀어지던 소리가 의도된 것이라는 건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있었다.


멀어지는 움직임 뒤에 경계가 느슨해진걸 알아채자마자 기습적으로 달려들었으니까.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건 갑작스레 토끼가 이빨을 내민 채 덤벼드는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그만큼,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요 최근엔 어두워지고 나선 숲에 들어온적이 없었다만..

그래도 한달 전쯤? 저녁에 들어왔었던 숲 속은 여느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때도 멀리서 쿠르가를 보았었지. 그 때의 쿠르가는 이렇지 않았어.

혼자 있었고, 날 보자마자 도망쳤다.


한달사이에 무언가 일어난걸까?

아니면..이 넒은 숲 속에 내가 모르는..


"..그대도 모른다는 눈치군"


"..네, 이런일은 처음이에요"


제아무리 위험한 숲 속, 그것도 야행성의 맹수들이 돌아다니는 어두운 밤이라지만 쿠르가가 사람을 먼저 공격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숲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기에 이 주변의 생태계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 나조차 이해가 가지 않는 일.


"그렇다면...그 의심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건가.."


"..의심?"


읇조리는 듯 나지막히 흘러나오는 첸드릭의 목소리에 그를 올려다본다.

턱에 손을대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그는 이내 시선을 돌려 어느 한 점을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확인해보아야겠소.

조금 더 들어가보도록 하지"


"에? 으, 응?"


그저 손에 들려있던 검을 살짝 들어올려 내민 것 뿐이었다.

잠깐의 그 행동이 첸드릭에게 어떤 확신을 준것인지는 몰라도, 시선을 향했던 곳을 향해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뒤를 멍하니 바라보던 나와 기사들은 부랴부랴 그의 뒤로 따라붙었다.


부스럭, 뚝, 사박. 이젠 길조차 없는 숲 속을 주저없이 파고들어가는 커다란 등을 얼마나 따라갔을까.


첸드릭의 큰 덩치덕택인지 길이 없던곳에 새로이 새겨지는 길을 따라가던 내 눈 안에 '그것'이 들어온 건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윽?!"


"..역시나"


무심결에 입을 막은 나와 기사들에겐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첸드릭은 그 참혹한 곳 한가운데로 거침없이 걸어들어갔다.


작가의말

역sea나

station시나

역시na


이게 뭐나↗?

이 작품은 어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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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에라의 투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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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Chapter [만남] : Epilogue. 밤이 밝은 뒤 찾아온 시간은. 18.02.10 112 0 13쪽
45 Chapter [만남] : @. 밤이 밝아오는 사이에. 18.02.10 74 0 34쪽
44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5) 18.02.10 89 0 27쪽
43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4) 18.02.10 80 0 27쪽
42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3) 17.12.22 87 0 23쪽
41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2) 17.12.18 114 0 27쪽
40 Chapter [만남] : 06. 어둠을 찢어내는 달빛. (1) 17.12.16 100 0 19쪽
39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8) 17.12.15 104 0 22쪽
38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7) 17.12.14 109 0 26쪽
37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6) 17.12.13 86 0 34쪽
36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5) 17.12.12 85 0 34쪽
35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4) 17.12.10 92 0 23쪽
34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3) 17.12.09 85 0 32쪽
33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2) 17.12.08 105 0 22쪽
32 Chapter [만남] : 05. 마을을 집어삼키는 칠흑의 그림자. (1) 17.12.07 134 0 23쪽
31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6) 17.12.06 101 0 27쪽
30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5) 17.12.05 88 0 23쪽
29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4) 17.12.04 101 0 25쪽
28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3) 17.12.03 77 0 22쪽
27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2) 17.12.02 105 0 23쪽
26 Chapter [만남] : 04.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1) 17.12.01 97 0 24쪽
25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9) 17.11.30 122 0 22쪽
24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8) 17.11.29 98 0 24쪽
»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7) 17.11.28 85 0 23쪽
22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6) 17.11.27 90 0 29쪽
21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5) 17.11.26 97 0 32쪽
20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4) 17.11.25 107 0 27쪽
19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3) 17.11.24 150 0 26쪽
18 Chapter [만남] : 03. 아가씨의 비밀. 그리고.. (2) 17.11.23 102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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