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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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오
작품등록일 :
2017.11.12 14:50
최근연재일 :
2018.06.10 05:31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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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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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22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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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메리크리스마스 22회

DUMMY

***


북서울중학교 운동회가 거의 끝나가고 마지막 경기 계주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 청팀 계주 2학년 대표로 선발된 최은수는 학교 운동장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은수가 진기만큼 잘 뛴다며?”


청팀 계주 담당 선생님이 은수에게 말했다. 계주 담당 선생님은 늘 웃고 다니던 40대 중반의 남자 기술 선생님이었다. 기술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과는 다르게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학생들의 이야기에 항상 귀 기울여주는 선생님이라 인기가 많았다.


“아니에요. 진기가 저보다 훨씬 잘 뛰어요. 선생님”

“그래? 선생님이 보기에는 은수가 조금만 훈련받으면 진기보다 더 잘 뛸 것 같은데? 진기는 초등학교 때부터 육상을 했잖아. 은수는 전문적인 훈련은 받은 적 없다고 들었어.”

“네.”


평소 조용하던 은수는 자신에게 이렇게 관심을 두는 선생님이 부담스러웠다. 은수는 늘 조용한 학생이었다. 어디에 나서는 걸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단순하게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조금 잘 달린다는 이유만으로 청팀 대표로 뽑힌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은수는 진기라는 학생 때문에 항상 2등이었다. 진기는 육상 유망주였다. 진기는 육상에 재능이 있었고 강도 높은 체계적인 훈련도 거뜬히 소화하는 학생이었다. 그런 진기 다음으로 잘 뛰는 은수를 눈여겨본 선생님들은 은수에게 육상을 해보라고 권유를 했지만, 은수는 항상 거절했다. 전문적인 육상에 대해서 딱히 좋아한 적도 없지만,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는다고 해도 진기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냥 평소에 운동회 대표로 가끔 나가고 선생님이 대회 나가보라고 시키면 진기를 포함한 육상부 학생들과 함께 학교 대표로 대회 나가서 2등이나 3등을 해서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따왔다. 은수 자신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 은수는 누가 봐도 육상에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은수는 항상 진기에게 지는 자신에게 재능이 없는 거로 생각했다. 은수가 진기를 이길 수 없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매일 전문적인 훈련을 받으며 재능까지 겸비한 진기를 은수가 이길 수 없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오히려 훈련을 받지 않은 은수가 진기만큼 빠르게 달리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곧 계주가 시작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학부모들은 응원석에서 응원했다. 은수는 응원석을 둘러보았지만, 맞벌이로 바쁘게 사시는 은수의 부모님은 운동회에 오지 않았다. 은수는 조금 아쉬웠다.


계주를 담당하는 선생님이 경기 시작하기 전에 청팀 계주 학생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자 다들 청팀 열심히 하자. 운동회의 꽃은 계주라고 하잖아. 너희들이 무조건 이기라는 말은 안 하겠어. 계주에서 우리 팀이 져도 좋아. 질 수도 있는 거지 안 그래?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운동회를 즐기면서 너희들이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서 마음껏 달렸으면 좋겠다.”


육상대회에 나가면 항상 1등과 이기기만을 강조하던 이야기를 들었었던 은수는 선생님이 먼저 나서서 져도 괜찮다는 말을 해서 놀랐다. 옆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듣던 중학교 3학년 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경기는 이기려고 하는 것 아닌가요? 저희는 이기기 위해 달리는 것 아닌가요?”


선생님은 웃으면서 말했다.


“응 그 말도 맞아. 하지만 나는 너희들이 승부에 집착해서 상처받거나 힘들어하는 건 바라지 않아. 무조건 1등만 잘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 올림픽에서 금메달은 최고의 자리지만 은메달도 금메달 못지않게 충분히 잘한 거잖아. 너희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는 일이 많을 거야. 그 과정에서 때로는 실패하고 좌절할 때도 있지만 그때 다시 일어서는 힘은 언제나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는 거로 생각해.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큰 실패를 하더라도 그런 과정이 자신을 단련해주고 또 다른 힘이 돼서 다시 일어서게 해주더라고. 그렇게 늘 최선을 다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1등도 하게 되고 경쟁에서 이길 수 있게 돼. 너희들이 그걸 알았으면 좋겠다.”


중학교 2학년 은수는 아직 어려서 선생님이 말한 모든 걸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지더라도 괜찮으니 최선을 다해서 달리라는 말은 이해했다. 무조건 1등을 하라는 선생님들의 말보다 기술 선생님의 말씀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자 이제 신나게 달리자. 힘 내자!”


선생님은 계주 선수 학생들의 손을 모아서 파이팅을 했다. 각자 나름대로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계주 경기를 준비하러 갔다.


“곧 운동회 마지막 경기 계주가 시작됩니다. 계주 선수들은 자리에 서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나왔다. 1학년이 첫 번째로 뛰고 중학교 2학년인 은수가 두 번째였다. 그리고 나머지 세 번째 네 번째는 3학년 2명이 뛰게 되어있었다. 은수와 진기는 두 번째 뛰는 자리에 나란히 각 팀 대표로 섰다. 짧은 머리에 까무잡잡하고 약간 마른 진기는 은수를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은수야 날 이길 수 있을 거 같아?”

“아···. 아니···.”

“그래. 어차피 질 거 괜히 힘 빼지 말고 천천히 달려.”


은수는 평소에 진기가 말 걸면 단 답으로 대답했다. 진기는 초등학교 때부터 은수를 만년 2등이라고 놀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수는 진기와 말하는 것 자체가 싫었다. 진기와 길게 말할수록 더 많이 놀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 은수는 용기를 내서 자기 생각을 말했다.


“진기야 너한테 질 건 나도 아는데 지더라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야.”


늘 대답을 잘 안 하던 은수가 이렇게 대답하자 당황한 진기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은수에게 말했다.


“그래 마음대로 해. 그래도 넌 나한테 질 거야.”


은수는 진기를 무시하며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탕”


총소리가 나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중학교 1학년 학생이 먼저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비슷하게 달렸다. 그러다가 50m 정도부터 점점 격차가 나기 시작했다. 백군이 조금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백군이 더 빨라지자 진기는 은수를 보며 씩 웃었다. 약 5m 정도 차이를 두고 먼저 들어온 건 백군이었다. 백군 중1 학생이 진기에게 배턴을 넘겼다. 진기는 배턴을 받자마자 웃음기가 사라진 진지한 얼굴로 정말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진기는 전교에서 가장 빠른 학생이었다. 진기보다 빠른 학생은 없었다. 점점 멀어져가는 진기를 바라보던 은수는 다를 때 같았으면 포기했겠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진기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은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놀랍도록 빠르게 달리는 진기를 본 사람들은 모두 백군이 쉽게 이기겠다는 표정이었다.


“은수야! 바통!”


계주 담당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고 뒤를 보니 이제 들어온 중1 학생이 땀을 뻘뻘 흘리며 굉장히 미안한 표정으로 바통을 넘겨주며 말했다.


“형 너무 늦어서 미안해요.”


은수는 후배에게 웃음으로 대답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진기와의 거리는 10m 이상 차이가 난 상태였다. 은수는 평소보다 마음은 훨씬 더 편하게 달렸는데 몸은 평소의 몇 배로 더 빠르게 달리는 것 같았다. 은수의 몸은 너무도 가벼웠다. 점점 더 가속도가 붙으며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달리는 진기를 은수는 점점 따라잡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점점 진기를 따라잡고 있는 은수를 향했다. 운동회에 참석한 학생과 선생님들 그리고 학부모들 모두 다 놀랬다. 진기는 어릴 때부터 육상으로 지역에서 유명한 학생인데 그런 진기를 달리기로 따라잡고 있는 학생이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모두 놀랬다. 게다가 평소 은수는 조용한 학생이어서 같은 학년 친구들도 누군지 잘 모르는 학생이었다.


“은수야 파이팅!”


은수와 같은 반 남학생이 먼저 은수를 응원하며 소리쳤다. 처음 10m 이상 차이 나던 거리를 이제 2m도 안 되는 거리로 거의 따라잡은 은수를 본 친구의 응원이었다. 그 친구의 응원을 듣고 같은 반 학생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은수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은수는 자신을 향한 응원 소리가 들렸다. 자신을 향한 관심은 늘 부담되던 은수였지만 응원 소리는 기분이 좋았다.


“최은수! 최은수!”


같은 반 학생들 모두 최은수를 한마음으로 응원했다. 계주 담당 선생님도 은수를 진기 다음으로 빠른 학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진기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기를 따라잡고 있는 은수를 보며 너무 놀라서 멍하니 달리는 모습만 바라보았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달린 은수는 진기와의 거리를 딱 한 걸음 정도의 차이로 따라잡아서 거의 동시에 들어왔다. 은수는 진기보다 아주 약간 늦게 들어왔을 뿐이었다. 그리고 3학년 선배에게 배턴을 넘겼다.


“형 바통 여기 있어요!”


은수에게 배턴을 넘겨받은 3학년 선배는 은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웃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점점 멀어져가는 3학년 선배를 본 뒤 은수는 운동장에 드러누웠다. 최선을 다해서 달린 은수는 속이 뻥 뚫린 것처럼 후련했다. 은수는 누워서 숨을 고르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 진한 파란색이었다. 마치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계주 담당 선생님은 은수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은수는 선생님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일어나는 은수에게 선생님이 말을 건넸다.


“정말 잘 했어. 은수가 그렇게 빠른지 몰랐어. 진기보다 더 빠르더라.”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칭찬에 쑥스러운 은수는 감사하다는 말만 했다. 그리고 3학년 형들이 달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은수가 진기와의 거리를 줄여준 덕분에 3학년 학생들은 백군과 비슷하게 달렸다. 마지막 3학년 주자가 결승선에 들어왔을 때 한 걸음 정도의 차이로 아깝게 청군이 조금 더 늦게 들어와서 계주는 청군이 졌다. 하지만 백군에게 진 청군 학생들의 표정은 백군 학생들보다 더 밝았다. 특히 은수의 표정은 그 어떤 학생보다 밝았다. 은수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서 계속 칭찬을 받았다. 학생들은 대부분 은수에게 진기보다 훨씬 더 빠르다는 말로 칭찬을 해주었다. 그날의 은수는 학교에서 가장 빠른 학생이었다. 은수는 누구보다도 빨랐다.


***


“오빠 이제 검사받아야 한데. 일어나!”


경지가 잠깐 잠들었던 은수를 흔들면서 깨웠다.


“오빠 무슨 꿈을 꿨길래 막 웃어? 예쁜 여자 꿈이라고 꿨어?”

“아···. 아니···. 중학교 때 달리는 꿈을 꿨어.”

“그게 그렇게 자면서도 웃을 일이야?”

“어···. 나한테는···.”


은수는 웃으며 경지를 바라보았다. 경지는 기분 좋아하는 은수를 보았다. 은수가 자면서 눌린 머리를 경지가 오른손으로 만져주었다. 그리고 둘은 검사를 받으러 임시로 마련된 검사실을 향해 걸어갔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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