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로리 영주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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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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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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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0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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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 1편

DUMMY

“부, 부르셨습니까.”

잠시 후. 침대에 앉아있는 아델라 앞에 호출된 벨르가 차렷 자세로 섰다.

벨르뿐만 아니라 하녀나 평범한 병사들 역시 아델라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려 할 테지만, 아무래도 일의 경중을 따져보았을 때 기사인 벨르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거기에 앞서 언급된 비교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나 브롤드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다른 기사들보다 입이 무거울 것 같다는 점도 크게 한몫했다.

“이런 시간에 어, 어쩐 일로....”

아무래도 꽤 늦은 시간인 만큼 벨르는 휴식을 취하고 있던 모양인지 갑옷은 입고 있지 않았다.

“벨르한테 중요한 할 말이...있는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려던 아델라는 벨르의 상태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챘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예? 아, 아뇨! 아닙니다!”

벨르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으나 여전히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벨르가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적은 결코 많지 않았기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드러난 감정이 불안감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벨르가 이런 상태인 이유를 아델라는 전혀 알지 못했고, 마찬가지로 그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도 전혀 가지 않았기에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벽난로 앞에 자리를 잡은 고양이에게 슬쩍 눈길을 줘봤으나 몰라서 그러는 건지,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는 건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이어지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벨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영주님. 부디 그 결정을 재고해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

그에 대한 아델라의 반응은 놀라움이었다.

분명 공작에게 서신을 보내는 일은 단 둘, 자신과 버스터만이 알고 있는 일이었다. 아델라 자신은 당연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버스터는 애초에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도 없었을 테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심하게 엎드려 난로 불을 쬐던 버스터 역시 그런 아델라와 같은 감정을 느낀 듯 화들짝 놀라 벨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엇보다 서신에 대해 벨르가 알고 있었다는 것은 최악의 경우, 이미 이 이야기가 브롤드의 귀에 들어갔을 가능성도 있었다.

공작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브롤드가 이 계획을 알게 되면 꼼짝없이 전쟁 확정이었다.

“아, 알고 있었어?”

그 말을 들은 벨르는 역시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역시 그러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벨르는 대화를 몰래 엿들은 것에 대한 사죄의 뜻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제 다 틀렸다며 자포자기하려는 아델라에게, 벨르가 간곡히 소리쳤다.

“제발, 저를 해고하지 말아주십시오!”

“...?”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그 말에 아델라의 머리가 기울어졌다. 그러나 그런 아델라의 반응을 시치미를 떼는 것으로 받아들인 벨르는 전부 다 알고 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조금 전 재상께서 상황이 많이 나쁘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해고하시려고 하시려는 것 아닙니까!”

장원에서 생기는 세입으로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보통 기사와 달리 벨르는 현재 돈을 직접 받는 호위 기사였다.

기사의 봉급은 적지 않았다. 그 돈으로 병사를 모집한다면, 분명 적지 않은 수의 병사들을 추가로 무장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벨르의 걱정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평소라면 영주를 기사가 호위하는 것이 든든하겠지만 만약 황제에게 성을 포위당한 상황이라면?

영주를 호위하는 기사 한 명보단 성벽 위를 지키는 병사 여러 명이 훨씬 크다. 벨르가 자신을 해고하는 것을 걱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어....”

그러나 아델라는 그에 대해 전혀 들은 바가 없었다. 오히려 브롤드가 벨르를 해고하겠다고 하면 말리고 싶었을 것이다.

“영주님, 제게는 해고당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병사 수 명분의 역할을 해내겠으니 부디....”

공작에게 보내는 서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 채, 그저 자신을 해고하려고 한다고 철썩 같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확실해보였다.

버스터 역시 그 사실을 눈치 채고 다시 편안하게 엎드린 채 뒷일을 아델라에게 넘겼다. 그리고 벨르가 공작에게 서신을 전달하도록 해야 하는 아델라는 벨르의 오해를 풀려면 어떻게 말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

역시 해고한다는 말은 전혀 없었다는 것을 먼저 말하는 것이 좋을까 잠시 고민하던 아델라는 작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어느새 무릎을 굽힌 채 애걸복걸하는 벨르의 이름을 불렀고, 벨르는 자신이 기사로서의 소임을 얼마나 열심히 할 것인가를 설명하던 도중이었지만 아델라의 호명에 바로 대답했다.

“...예.”

이어질 자신의 말을 기다리는 벨르에게, 아델라는 원하는 말을 해주었다.

“좋아. 나도 벨르가 계속 내 곁에 있어줬으면 하니까 이 이야기는 없던 걸로 할게.”

그 말을 들은 벨르가 감격에 겨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벨르는 바로 그런 감정을 아델라에게 전하려 했으나 그 전에 아델라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 대신...은 아니지만, 내 ‘부탁’을 들어줬으면 하는데?”

더 말할 것도 없이 벨르는 즉시 일어나 차렷 자세로 섰다.

“분부만 내리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

불과 몇 분 전, 분부만 내려달라며 자신 있게 소리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굉장히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벨르였다.

그 이유는 물론, 공작에게 자신의 서신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덧붙여 그 서신이 공작으로 하여금 황제를 견제하게하기 위함이라는 것도 함께.

목적을 들은 벨르는 굳이 서신의 내용까지 묻지는 않았다. 그저,

“제가 이런 일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역시 재상께 말씀을 드려보는 것이....”

반대 입장을 표명할 뿐이었다.

애초부터 벨르가 반대할 것이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본인이 생각해봐도, 섭정을 받는 어린 영주가 난데없이 공작에게 서신을 보내 도움을 받을 계획을 전해온다면 당혹감과 걱정이 밀려오는 것이 당연했다.

아무리 공작과 면식이 있는 사이더라도 자칫하면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버스터 역시 벨르가 반대할 테니 잘 설득하라는 말을 했었다.

때문에, 벨르가 자신이 해고당할 위기에 처해있다는 오해를 풀지 않고 그대로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었다.

“그럴 생각이었으면 벨르한테 말하지도 않았어.”

감격에 겨워하는 벨르를 볼 때까지만 해도 계획대로 되는 줄 알았던 아델라였지만 벨르는 그 계획을 듣자마자 얼굴 표정이 싹 변했다.

설마 눈앞에 있는 어린 영주의 입에서 그런 ‘부탁’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주교님이나...재무관이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벨르는 곧 고개를 저었다.

“아뇨, 역시 재상께 말씀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재상께서 허락하신다면 기꺼이 그 서신을 제가 맡겠습니다.”

만약 자신이 그 서신을 전달한 것이 브롤드에게 알려지면? 자신이 전달한 서신이 나중에 문제가 되면?

아델라는 최악의 경우에도 작위를 잃는 것 이상은 가지 않을 테지만 기사인 벨르는 달랐다. 해고당하는 것은 물론이요, 자칫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벨르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아델라가 뭐라고 말하든 벨르의 말은 결국엔 브롤드와 먼저 이야기하자는 말로 귀결되었다.

“영주님. 분명 영주님의 말씀이라면 재상께서도 귀 기울여 들어주실 겁니다. 그러니....”

그리고 이런 쳇바퀴 같은 대화가 반복되자, 결국 아델라는 참지 못하고 벨르에게 소리쳤다.

“벨르는 내 기사야? 브롤드의 기사야?! 브롤드가 이 계획을 받아들일 것 같았으면 진작 말했을 거라고 몇 번을 말해?!”

낯선 영주의 모습에 벨르는 숨을 죽였다.

“이제 다른 말은 듣지 않겠어. 딱 결정해. 할거야? 말거야? 안 할 거면 당장 나가! 다른 사람을 찾을 테니까!”

폭풍 같던 아델라의 외침이 끝났지만 벨르는 살짝 고개를 숙인 자세를 유지한 채 묵묵부답이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고민 중인 듯한 그 모습에 아델라는 마지막으로 생각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

“다른 사람? 누구? 생각해둔 사람이라도 있어?”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버스터가 비아냥거리듯 물어오자 아델라가 째려보았다. 더 놀릴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뒷감당, 특히 아델라가 화가 난 지금은 더더욱 뒷감당이 어려웠기에 버스터는 거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아델라가 잠시 버스터와 눈싸움을 벌이던 사이, 벨르가 마음을 정한 듯 고개를 들었다.

“서신은 준비 되셨습니까?”

벨르의 질문에 아델라는 끄덕이며 자신이 앉은 자리 옆에 내용을 써서 봉인까지 마쳐둔 서신을 집어 들었다.

“내용은 누가 쓴 것입니까?”

“내가 썼어.”

내용을 직접 쓰는 것이 그다지 자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이에게 대필을 시키려면 필히 내용이 유출되었기에 하는 수 없이 직접 쓸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적을 내용이 그리 어렵거나 길지 않았고 아델라는 단어집이나 다름없는 성서를 가지고 있었기에 참고하여 적은 것이었다.

“...정말 뭐라고 말씀드려야할지 모르겠군요. 알겠습니다. 서신은 반드시 튜벤 공작님께 전달하겠습니다.”

다행히, 서신을 전해주기로 마음을 정한 모양이었다. 벨르는 다가와 아델라가 내민 서신을 정중히 받아들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벨르는 인사를 한 뒤 방을 나갔다.

벨르가 나가는 것을 잠시 지켜보던 아델라는 문이 닫히자마자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하아. 피곤해....”

한숨을 내쉬는 아델라를 향해 버스터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벨르가 서신을 받았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더 피곤해졌을 걸.”

아델라는 곧 버스터가 벨르에게 하기 싫으면 때려치우라고 말한 자신을 책망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분명 만약 벨르가 기어코 서신을 전달하는 것을 거부했다면 다시 다른 사람을 찾아 설득하는 것을 반복해야했을 테니 훨씬 피곤해졌으리란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었다.

말했던 대로 벨르를 제외한 적임자가 딱히 없었다는 점도 버스터가 아델라를 책망하는 이유 중 상당부분을 차지했다.

“그렇게 강하게 나가지 않으면 또 브롤드랑 이야기하라고 말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었어...짜증나기도 했고.”

그런 아델라의 말에 버스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으흠, 뭐. 네가 그렇게 화낸 덕분에 더 빨리 설득할 수 있었던 것 같긴 해. ‘벨르는 내 기사야?! 브롤드의 기사야?!’ 외형에 걸맞지 않은 훌륭한 박력이었어.”

“...지금 나 놀리는 거지?”

놀리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그 말을 따라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다른 이의 입으로 듣고 보니 살짝 오글거리는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내 기사야?! 브롤드의 기사야?!’가 어때서?”

놀리는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한 아델라는 바로 일어나 소리쳤고 바깥에 있던 하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네, 영주님.”

“얘 좀 데리고 나가!”

마침 미네가 들어오는 것이 보이자 아델라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신경을 살살 긁는 고양이를 데리고 나가라고 명령했다. 내일 하루는 굶기라는 말은 덤이었다.

“저어....”

그런데, 어째서인지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미네는 나가지 않고 아델라의 앞에 서있었다.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갑자기 무슨 부탁을 하겠다는 건지 아델라가 의아해하고 있던 찰나.

“한 번만 더 해주시면 안 되나요? 그...벨르님께 소리치셨던 ‘내 기사야?!’하는 거요. 그게, 정말 멋있으셨거든요.”

아델라는 방음이 전혀 안 되는 자신의 방을 원망하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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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발견 5편 18.10.14 141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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