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마계(1)
21화.
'어떻게 된거지?'
분명히 구슬을 녹여 많이 작아진 상태였음에도 지금은 처음 구슬 크기보다 오히려 더 커져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구슬 상태는 나중에 다시 확인하기로 하고 일단은 이곳이 어딘지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살펴 보았다. 사방이 꽉 막힌 듯한 공간이었다.
"욱!"
이제야 느껴지는 텁텁한 공기와 심한 악취에 절로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즉시 공기를 정화하는 사이킥을 시전했다.
- 사이킥 클린!
화악.
다행히 사이킥도 문제없이 발휘되었다. 말끔해진 공기와 악취도 사라졌다. 이제야 살것 같았다.
- 사이킥 라이트!
번쩍.
밝은 빛이 주변을 밝히자 이제야 이곳이 어딘지 알수 있을것 같았다.
'감옥?'
그렇게 밖에 생각할수 없었다. 사방이 꽉 막힌 공간에 한쪽에는 검은 철문이 달려 있었다. 천장은 물론 벽이나 바닥은 모두 바위였다. 바위를 파고 들어가 감옥으로 만든것 같았다. 철문 아래쪽과 위쪽에는 10센티 높이, 20센티 길이의 직사각형 구멍이 뚫려 있었다.
- 사이킥 블라인드!
즉시 갇혀 있는 감옥의 철문쪽을 어둡게 만들었다. 빛이 새어 나가는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게 알아 차린 자는 없는것 같았다. 자신이 왜 이곳에 갇혀 있는지, 그리고 이곳이 어딘지 알아야 했다. 먼저 이 감옥같은곳을 살펴 봤다.
- 사이킥 아이!
누구도 지켜 보는 자가 없어 마음속으로 어떤 사이킥을 펼칠지 상상만으로 시전해 철문밖으로 내 보냈다. 칠흙처럼 어두운 공간에 사이킥 아이가 돌아 다녔지만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알아 볼수가 없었다. 어쩔수없이 작은 사이킥 라이트를 펼쳐 사이킥 아이와 같이 돌아 다니게 했다. 빛 조절을 해 희미한 상태로 펼친 사이킥 라이트로 인해 멀리까지는 알수 없지만 근처의 풍경은 알아 볼수 있었다. 역시 바위를 뚫고 만든 감옥이라고 확신되었다. 복도만 해도 엄청나게 길었다. 족히 100미터는 넘을것 같았다. 자신이 갇혀 있는 복도 근처에는 모두 철문이 달려 있었으며 문 5개를 지난 지점은 바위로 막혀 있었다. 더이상 뚫지 않은 것으로 볼때 감옥 가장 안쪽같았다.
철문이 달린 방에는 한명씩 들어 있는 방도 있었으며 텅 비어 있는 방도 있었다. 독방이다. 독방외의 다른 감옥에는 팔뚝 정도 굵기의 검은 쇠창살로 가로 막아 놓은 감옥이 즐비하게 늘려져 있었으며 모두 텅 비어 있었다. 더이상 앞쪽을 살펴 볼 필요도 없을것 같아 독방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모두 12개의 독방중 5개는 비어 있었다. 자신이 갇혀 있는 방에서 가장 가까운 곳부터 살펴 보았다. 중년인으로 보이는 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입고 있는 검은색 상하의는 허름했으며 상의는 거의 다 찢어져 없는 것이나 마찮가지였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몰골의 창백한 안색으로 볼때 오랫동안 이곳에 갇혀 있었던것으로 생각되었다.
상체 곳곳에는 채찍에 맞은듯한 상처로 도배가 되어 있었으며 검은 피가 덕지덕지 달라 붙어 있었다. 숨소리가 낮은 것으로 볼때 살아 있는게 신기할 정도였다. 독방에 갇혀 있는 모두가 비슷한 몰골로 죽지 못해 살아 있는듯 했지만 가장 안쪽 독방만은 특이한 자가 갇혀 있었다. 이 자도 옷은 너덜너덜했지만 놀랍게도 검은 로브였다. 검은 로브를 입는 자는 흑마법사밖에 없다. 흰수염이 중간에 삭뚝 잘린듯한 모양이지만 그래도 15센티정도는 남아 있는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었다. 찢어진 로브 사이로는 역시 수많은 상처위에 검은 피가 말라 붙어 있었다. 흑마법사는 보는대로 목을 잘라 죽여야 하지만 아직 흑마법사라고는 확신할수 없었다. 저 노인이 만약 흑마법사라면 이곳이 어딘지 물어 보고 죽일 생각이다. 흑마법사라면 마법사인만큼 지식이 풍부할것이다. 일단 저 마법사를 치료하기 위해 포션을 꺼낼려고 품속에 손을 넣어 마법 주머니를 찾았다.
'어?'
아무리 품속을 뒤져봐도 마법 주머니가 없었다. 사라진 것이다. 입고 있는 옷이 모두 그대로인데도 마법 주머니만 사라진것이다.
'빌어먹을!'
누가 가져 갔는지는 모르지만 찾아야 한다. 마법 주머니안에는 소중한 물건들이 많이 들어 있었다. 조상님들의 초상화나 유품, 콘테경의 유품인 롱소드와 포션, 마법 서적, 골드, 식량등 많은 것이 들어 있는 마법 주머니다. 즉시 사이킥 아이를 입구쪽으로 보내 이곳을 관리하는 놈들을 찾아 보았다. 복도 양옆 어느곳에도 불빛이 없어 일일이 양쪽을 번갈아 가며 확인해야 했다. 희미한 사이킥 라이트로 인해 찾는 시간이 더뎠다. 그렇다고 확연하게 라이트를 밝힐수는 없었다. 일일히 감옥안을 살펴 보았지만 역시 텅 빈 상태였다. 혹시나 해서 조심스럽게 많은 시간을 소비해 드디어 찾을수 있었다.
복도 끝부분에 문이 달려 있지 않는 방이 하나 있었다. 그 방에는 온전한 검은 옷을 입고 있는 두명이 양쪽 벽쪽에 한개씩 놓여 있는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 양쪽 침대 중간 안쪽의 테이블위에 자신의 마법 주머니와 검은 몽둥이 두개, 그리고 먹다 남은 음식같은것들과 같이 놓여 있었다. 즉시 사이킥 핸드를 펼쳐 마법 주머니를 가져 왔다. 주머니 안쪽의 물건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주인 인식 마법진이 새겨져 있는 마법 주머니로 자신이 아니라면 누구도 마법 주머니를 열수 없기 때문이다. 흑마법사로 생각되는 노인을 치료하기 전에 이 감옥 밖을 살펴 보기로 했다. 사이킥 아이를 복도 끝에 달려 있는 문을 통과시켰다.
계단은 아래쪽과 위쪽이 있었지만 아래쪽은 다른 감옥이라고 생각되었다. 계단도 모두 돌을 깎아 만든 것으로 이런 감옥을 만들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위쪽으로 올려 보낸 사이킥 아이가 보여 주는 장면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감옥 입구 앞에는 검은 옷을 입은 자가 희끄무리한 날씨임에도 피곤한지 양옆 벽에 기대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으며 감옥 앞쪽에는 검은 돌로 지은 큰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공중으로 사이킥 아이를 보내 이곳 전체를 살펴 본후에는 입이 쩍 벌어질 정도였다.
거대한 성이었다. 중앙에는 까마득한 높이의 뾰족한 첨탑이 우뚝 서 있었으며 그 주변을 둘러 싼 5개의 첨탑으로 구성된 내성과 외성으로 생각되는 8개의 첨탑으로 둘러 쌓인 성의 모습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모두 검은 돌로 지어져 있다는 것이 의문이었다. 크기로 볼땐 어떤 왕국의 왕성처럼 생각되었지만 이런 모습의 왕성이 대륙에 존재했다면 소문이 자자했을것이다. 특히 불길하게 생각하는 검은 돌로 지어진 건물은 있을수 없었다.
'대체 어디야?'
하늘 높이 사이킥 아이를 보내 전체를 둘러 보았다. 첨탑으로 이어진 내외성 성벽위의 병사로 짐작되는 자들은 모두 성벽에 기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한밤중도 아닌데 졸고 있는게 너무 이상했다. 심지어 내외성에 돌아 다니는 사람들도 없었다. 집단적으로 수면 마법에라도 당한듯 잠들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외성밖 성문 근처에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허름한 천막들이 즐비하게 늘려져 있는게 빈민촌을 보는듯했다. 빈민촌 멀리에는 밭으로 짐작되는 곳에 검은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으며 군데군데 얕은 언덕은 있었지만 산은 전혀 보이지도 않았다.
이곳이 만약 흑마법사들의 소굴이라면 대체 얼마나 많은 흑마법사 추종자들이 살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수 없었다. 사이킥 아이를 해제하고 안쪽 독방에 갇혀 있는 흑마법사라고 생각되는 노인을 만날 생각으로 문을 열었다. 간단하게 사이킥 언락으로 열린 문을 열고 노인이 있는 독방으로 이동해 문을 열고 사이킥 사일런스와 사이킥 라이트를 펼쳐 안으로 들어갔다. 희미한 빛으로 인해 확실히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윤곽은 알아 볼수 있었다. 노인은 아직 캐논이 들어 온것을 모르고 있는듯 죽은듯이 꼼짝도 하지 않은채였다. 혹시 몰라 경계를 하며 노인의 다리를 툭툭 찼다.
"...으으...."
정신이 들었지만 고통이 심한지 신음을 흘리는 노인은 눈도 뜨지 않았다.
툭툭.
그런 노인의 다리를 몇번이나 다시 찼다. 그러자 노인에게서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 나왔다.
"주...죽여...라...."
이미 생을 포기했는지 노인은 삶의 의욕이 없어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죽을때 죽더라도 자신의 의문점을 풀어 주고 죽어야 한다.
"눈을 뜨라."
"...죽여...줘..."
"눈을 뜨면 죽여 줄께."
죽여 준다는 말에 노인은 눈꺼풀이 무거운듯 힘겹게 들어 올리고 있었다. 사이킥 라이트를 조금 더 밝게 하자 캐논과 눈이 마주친 노인의 눈은 당황한듯 눈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크으...누...누구...냐?"
"내가 묻는 말에 성실히 답해 준다고 약속하면 널 치료해 주겠다."
"......."
믿지 못하는지 노인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고문을 당한듯한 몰골의 노인 입장에서는 믿을수가 없을 것이다. 고문을 한 자는 노인에게서 어떤 것을 알아 낼려고 했을것이다.
"빨리 약속해라. 너 말고 갇혀 있는 다른 자들에게 물어 봐도 되는 일이다."
"..무얼..."
"이곳이 어디냐?"
"...트, 트레...비스 감...옥이다."
너무 답답했다. 곧 죽을 노인의 말이 너무 느렸기 때문이다.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일단 치료를 해 주기로 했다. 몸에 난 상처는 사이킥 힐링을 펼쳐 치료해 주고 마법 주머니에서 포션을 꺼내 사이킥 핸드로 노인의 입으로 가져가 절반을 먹였다. 그러자 노인의 행동에 너무 놀란 캐논은 당황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커억...끄으....끅...."
노인은 곧장 숨이 넘어 갈듯 엄청나게 괴로워하고 있었다. 포션을 마시고 저렇게 괴로워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즉시 사이킥 스캔을 펼쳐 노인의 몸속을 살펴 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노인의 몸속은 음마나로 가득차 있었으며 음마나와 포션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탓으로 괴로워하고 있던 것이었다. 흑마법사라고 짐작하고 있는 노인의 심장에는 서클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몸 전체에 음마나가 퍼져 있었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는거지?'
예상밖의 상황에 도마위의 생선처럼 퍼득거리는 노인의 몸속에 들어가 있는 포션을 사이킥 터치로 꺼집어 냈다. 그러자 노인의 몸이 서서히 잦아 들고 있었다. 포션은 트롤의 피속에 녹아 있는 음마나를 모두 제거한 최상급 포션이다. 음마나를 제거하지 않은 순수한 트롤 피라면 노인의 몸속으로 들어간 피는 노인의 몸속의 음마나와 융합해 치료했을것이다. 반쯤 남은 포션에 노인의 몸속에 들어 있는 음마나를 사이킥 터치로 꺼집어 내 포션에 집어 넣었다. 그러자 포션이 부글부글 끓으며 검붉게 변해갔다. 그런 포션을 다시 노인의 입속에 흘러 넣자 이번엔 노인은 발작도 없이 잠잠한 상태였다. 사이킥 스캔으로 살펴 본 결과도 몸속의 장기를 치료하고 있었다.
"이제 치료가 되었을꺼다. 몸을 움직여 봐라."
"...으으...누, 누구십니까?"
누워있는 노인은 자신의 몸 상태를 아직 모르는듯했다. 아직도 심한 고통이 남아 있는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중이다.
"그건 알 필요없고 이제 내 질문에 답해라. 트레비스 감옥이라는 이곳은 어느 왕국 어느 영지에 있는 곳이냐?"
"왕국이라니요? 이곳은 에스피로라 공작령의 데르카시 백작성입니다. 왕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왕국이 존재하지 않는데 공작령이라니? 그럼 공국이란 말이냐?"
"....."
누운 자세 그대로 간간히 인상을 찡그리며 눈만 멀뚱거리는 노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이었다. 질문한 캐논도 답답한 상태다. 노인과 마찮가지로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일어나서 앉아라."
"...끄응."
신음 소리를 내며 서서히 상체를 일으킨 노인은 이제야 자신의 몸 상태를 안듯 당황하고 있었다.
"이, 이게..."
자신의 몸을 더듬거리며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자 급히 캐논을 올려다 보았다.
"치료한거다. 에스피로라 공국외에 다른 왕국은 없는거냐?"
"공국이라니요?"
"에스피로라 공작령은 공국이 아니냔 말이다?"
"아닙니다. 이곳은..."
노인의 말에 점점 캐논의 눈이 커질대로 커지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놀랍게도 마계였다. 어떻게 자신이 마계로 이동해 온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계는 마왕을 정점으로 4명의 마계 공작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했다. 마왕이 있는 마왕성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각각 한명씩 마계 공작이 존재하며 다시 마계 공작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마계 후작이나 백작이 한개의 성을 다스리고 있는 곳이었다. 후작이나 백작 휘하에는 자작이나 남작도 존재하고 있었다. 마치 중간계의 귀족 체계와 비슷한 구조였다.
"마계라니...그럼 넌 마족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마계에 살고 있는 모든 자는 마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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