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마계 시종 마리뉴
23화.
"중간계와의 통로는 어디에 있지?"
"그건 모릅니다. 수시로 등장하다가 사라지길 반복하니까요. 어디에 나타날지는 누구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마리뉴의 말에 당황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중간계의 통로는 한곳에서만 열린다. 그런데 이곳 마계에서는 여러곳에 수시로 열린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어떻게 그럴수 있는지 짐작조차 할수 없었다.
"그럼 통로가 열린다는 것은 어떻게 알며 어느 정도 열린 상태를 유지하는 거냐?"
"중간계와의 통로가 열리는 징조로 검은 기둥이 하늘로 치솟아 오릅니다. 그런 상태로 일주일에서 한달가량 유지됩니다."
정말 큰일이다. 언제 어디서 열릴지 모르는 통로를 찾기 위해선 정보가 필요했다. 마계에도 중간계처럼 정보 길드가 존재하는지 모르지만 없다면 만들거나 각 성에 정보를 알려줄 누군가를 고용할 필요가 있었다.
"마리뉴! 어디서 중간계와의 통로가 열렸는지 알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음, 그건 연락용 전서구인 블랙 크로우를 잡으면 알수 있습니다만 언제 크로우가 날아 오를지 모르는 상태로...아! 전서구를 관리하는 자를 매수하면 되겠습니다. 공작성의 전서구 관리인만 매수하면 공작령 전체 어디에 통로가 열렸는지 바로 알수 있습니다. 하지만 4개의 공작령 전체를 돌아 다니며 매수해야 하므로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마리뉴의 말로 중간계와의 통로가 열리면 공작성으로 보고가 된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마리뉴! 공작성의 전서구 관리인을 매수할수 있어?"
"뇌물만 먹이면 충분히 할수 있습니다."
"어떤 뇌물이 통하는데?"
"마정석입니다."
몬스터의 몸에서 나오는 마정석이 틀림없었다. 당장 몬스터를 잡으러 갈 생각이다. 어차피 이곳 백작성은 벗어 나야 한다.
뿌우우우우~~!!!
갑자기 긴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침이 되었다는 신호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이곳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다. 마족들은 뭘 먹고 사는지도 모른다.
"마리뉴! 마족들의 주식은 뭐지?"
"내성에 거주하는 중상급 마족들은 주로 고기를 먹습니다만 외성에 거주하는 하급 이하 마족들은 '뿌'라는 풀뿌리를 먹습니다. 이곳에도 아마 뿌가 있을것입니다. 잠시만요."
마리뉴가 이 집의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잠시후 자루 한개를 들고 와 안에서 검은색의 긴나무 뿌리 같은것을 꺼냈다.
"그게 뿌라는 음식이냐?"
"그렇습니다. 이걸 이렇게 벗기고 씹어 먹습니다."
나무 뿌리의 껍질을 벗기자 하얀 속살이 드러 났다. 마리뉴는 그걸 건네 주었다.
아삭.
식감은 과일을 씹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배안으로 들어 오자 원래 보유하고 있는 마나와 충돌을 일으키고 있었다. 즉시 사이킥으로 음마나를 몰아 냈다. 뿌라는 뿌리에도 미량이지만 음마나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걸 먹어라."
마법 주머니에서 빵을 꺼내 마리뉴에게 건네 주었다. 빵을 처음 보는지 마리뉴는 이리저리 만져 보며 냄새도 맡아 보고는 입으로 가져 갔다.
"오오! 중간계의 음식입니까?"
"그렇다."
빵 한개를 뚝딱 해치운 마리뉴는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그런 마리뉴에게 2개를 더 건네 주었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이동을 준비했다. 이 상태 그대로 밖으로 나갈순 없었다. 마리뉴는 캐논의 특이한 복장이 주목을 끌것이라며 옷을 갈아 입어야 한다고 했다.
"잠시만 기다려."
사이킥 아이를 펼쳐 내성안으로 들여 보내 빈집을 찾아 남아 있는 옷이 있는지 찾아 보면서 돌아 다녔다.
"옷을 갈아 입고 올테니까 이곳에서 기다려라."
사이킥 텔레포트로 이동해 찾은 옷으로 갈아 입고 되돌아 왔다. 검은 옷은 몸에 찰싹 달라 붙는게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익숙해질때까지 참을수 밖에 없었다.
"이제 어디로 가면 되지?"
마리뉴를 데리고 외성 밖 인적이 없는 먼곳으로 이동했다.
"에스피로라 공작성은 저쪽입니다. 이곳에서 걸어서 한달 거리입니다."
걸어서 한달이면 그렇게 멀지 않았다. 중간계에서도 마차로 몇달이나 걸리는 거리를 돌아 다녔었다.
"그럼 이계인들이 등장했다는 곳은 어디지?"
"그곳은 저쪽입니다."
공작성과는 정반대 방향이었다. 어디를 먼저 가야 할지 망설여졌다. 공작성으로 이동하면서 마계의 몬스터인 마물을 발견하면 잡아 마정석을 찾아야 한다. 공작성 전서구 관리인에게 뇌물을 먹이면 공작성에서 움직일수 없다. 언제 연락이 들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선 이계인들이 있다는 곳으로 이동하는게 올바른 판단이라고 생각되었다.
"저쪽으로 가자."
"알겠습니다."
마리뉴와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마계에는 어떤 마물들이 살고 있는지 물어 보며 반나절을 이동했을때였다.
두두두두두.
"응? 무언가 접근한다. 일단 피하자."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 몸을 숨기기로 했다. 마침 낮은 언덕들이 많은 곳으로 숨기엔 적당했다. 언덕 뒤로 돌아가 몸을 숨긴채 사이킥 아이로 살펴 보았다. 마계 전마라는 다리가 8개인 바클이라는 놈을 탄 마족 수십명이 달려 오고 있었다. 마족들이 지나치자 언덕을 내려가 다시 이동했다. 이계인들이 등장하는 곳은 걸어서 두달 정도 걸리는 거리라고 했다. 백작성외엔 다른 성은 전혀 없는 곳이다. 계속 걸어서 가는건 무리다. 사이킥 텔레포트로 이동하기로 했다. 사이킥 아이를 먼거리까지 보내 이동할 장소를 확인하고 이동하길 반복했다. 몇번이나 이동해도 사이킥은 전혀 줄어든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마계로 이동해 엄청난 양의 구슬이 녹아 든것 같았지만 구슬은 더 커진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응? 저쪽에 뭔가 있다."
이곳은 검은 숲이다. 큰나무라곤 전혀 없는 백작성에서 멀리까지 이동하자 검은 숲이 나타났다. 그 숲 가장자리에 마물로 짐작되는 놈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기다려라."
"조심하십시요."
저벅저벅.
마계에서 처음 만나는 마물이다. 어떤 놈인지 궁금했다. 마물 종류에 대해 마리뉴에게 들어 어떤 놈들이 있는지 알고는 있지만 말로 들어서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중간계의 몬스터와는 전혀 다른 모습들이다. 숲 가장자리까지 접근하자 숲안에서 갑자기 검은 물체가 뛰쳐 나왔다. 50센티정도의 부리가 뾰족한 네발로 걷는 마물로 긴 꼬리끝에 두갈래로 갈라진 창처럼 뾰족한 것으로 공격하는 카르캉이라는 마물이다. 놈의 부리와 꼬리만 조심하면 큰위험은 없는 놈이라고 마리뉴가 말해 주었었다. 껑충껑충 뛰어 오며 접근하는 놈은 캐논을 자신의 먹이감으로 생각하고 있는듯했다. 송아지 정도 크기의 몸집에 가는 목과 작은 얼굴에 큰부리를 딱딱거리며 뛰어 오는 놈에게 사이킥 핸드를 시전해 목을 덥썩 잡고는 비틀어 버렸다.
투두둑.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뛰어 오던 놈의 머리가 축 처지며 앞으로 나뒹굴었다. 캐논의 앞까지 접근도 못한채 죽어 버린것이다. 놈의 몸속을 사이킥 스캔으로 조사해 보았지만 마정석도 없는 놈이었다. 가죽도 그렇게 튼튼해 보이지도 않았다. 쓸모가 없는 놈이다.
"마스터! 카르캉 고기는 굉장히 맛있습니다."
"그렇냐?"
어차피 마물들은 모두 마기를 품고 있어서 캐논이 먹을려면 마기를 제거해야 한다. 얼마나 맛있는 놈인지는 모르지만 마리뉴에게 해체하라며 단검을 던져 주었다. 역시 가죽은 튼튼하지 않는지 마리뉴는 쉽게 놈을 해체했다. 가죽을 벗기고 배를 갈라 내장을 드러내고 심장을 꺼낸 마리뉴는 캐논에게 건네 줄려고 했다.
"나보고 먹으라고?"
"예. 놈의 심장이 가장 맛있습니다."
"네가 먹어. 중간계에선 동물이나 몬스터의 심장은 먹지 않아."
"아, 알겠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솓아 오르는 검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카르캉의 심장을 그대로 씹어 먹는 마리뉴였다. 역시 인간과 마족의 식성은 전혀 달랐다. 완전히 해체된 카르캉의 넙적 다리 한개를 잘라 마기를 제거하고 소금을 뿌려 사이킥 파이어로 구웠다.
찌익.
노릇하게 구워진 다리를 쭉 찢어 맛을 보았다. 파삭파삭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먹어 볼래?"
"감사합니다."
구운 고기는 처음 먹는지 조심스럽게 받아든 고기를 오물거리는 마리뉴는 눈이 한끗 커졌다. 하지만 그런것도 처음뿐이었다. 파삭한 느낌이 맘에 들지 않는지 몇입 씹어 먹고는 더이상은 먹지 않고 생고기를 그대로 찢어 먹는 마리뉴였다. 배를 빵빵하게 채운후 남은 고기는 마법 주머니안에 보관했다.
"마스터! 야영할 시간입니다."
해가 지지 않아 밤인줄도 몰랐다. 적당한 공터에 마법 주머니에서 꺼낸 모포를 깔고 누웠다. 마리뉴는 불침번을 선다고 했다.
"그럴 필요없어. 근처에 사이킥 알람을 펼쳐 놓은 상태다."
"아! 그럼 저도 눈을 붙이겠습니다."
멀뚱멀뚱.
눈을 감았지만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마리뉴는 이미 잠이 들었는지 낮은 숨소리만이 들려 오고 있었다. 앞으로의 할일을 생각했다. 이계인들이 어떤 자들인지 살펴 보고 공작성으로 이동해 전서구 관리인을 매수한후 중간계로 통하는 통로가 열렸다는 보고를 들으면 바로 중간계로 내려갈 생각이다. 하지만 마리뉴는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중간계로 같이 내려 간다고 해도 마리뉴는 마물산을 벗어 날순 없다. 그럴바에야 마물산보다 이곳 마계에 있는게 더 좋을것이다.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마리뉴는 수백년이나 사이킥 종사인 자신의 주인인 이브라엘을 찾아 다녔다.
종사가 죽은 이상 이제 캐논을 주인으로 모시는 시종이다. 마리뉴를 마계에 내버려 두고 자신 혼자만 중간계로 내려 간다면 주인에게 버려 졌다는 생각에 마리뉴는 삶의 의욕을 잃어 버릴것이다. 늘 함께하던 사람이 사라진 허탈감은 캐논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콘테경과 늘 함께였던 자신이었다. 어떻게든 마리뉴와 함께하고 싶었다. 마리뉴의 몸속에 있는 마기를 모조리 제거하면 마물산을 벗어 날수 있다. 하지만 마족의 몸에서 마기를 제거하면 과연 목숨을 부지할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숨도 자지 못한채 마리뉴가 깨어나길 기다리며 잡생각에 젖어 들었다.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온 마기는 이상하게도 구슬쪽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의식적으로 마기를 빨아 들이지 않아도 숨만 쉬는 것만으로도 마기는 미미하게 몸속으로 들어 오고 있었다. 만약 본격적으로 마나 연공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 마리뉴에게서 조금 멀리 떨어져 마나 연공을 시작했다. 중간계에서와는 달리 엄청난 마나가 몸속으로 들어 오고 있었다. 물론 모두 마기였다. 그런 마기는 가슴쪽의 구슬로 빨려 들어갔다. 너무 많은 마나에 놀란 캐논은 마나 연공을 한번만 행하고 중단한채 구슬을 살펴 보았다.
조금 커진듯한 구슬은 변함없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 구슬을 지금 녹인다면 머리쪽으로 마기가 몰려 올지 아니면 평소대로 사이킥 힘이 몰려 올지 알수 없었다. 그런데 마기를 품고 있는 구슬이 몸속에 들어와 있음에도 자신이 원래 보유하고 있는 마나와 왜 충돌하지 않는지 이상했다. 이브라엘 종사가 무슨 조치를 취해 놓지 않는한 있을수 없는 일이다. 인간에게 사이킥을 전수하겠다며 말버릇처럼 말했었다면 충분히 그런 조치를 취해 놓았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마리뉴가 드디어 깨어났다.
"마스터! 벌써 깨어 나신겁니까?"
"그래. 아직 마계에 익숙치 않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셨군요."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다시 사이킥 텔레포트로 이동하길 반복했다. 저녁 무렵 야영을 할려고 할때였다. 캐논은 아직 마계의 시간대에 적응이 되지 않아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이 되지 않고 있었다. 사이킥 서치를 펼쳐 주변에 마물들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던중 놀랍게도 인간 6명이 감지된것이다. 자신외에 마계에 인간이 있다는 사실에 놀란 캐논은 즉시 인간이 감지된 300미터 우측 전방 언덕으로 사이킥 아이를 펼쳤다.
언덕위 덤불 아래에 납짝 엎드려 검은 둥근 물체를 양손으로 잡고 눈에 댄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자와 검은색의 긴대롱같은것을 바닥에 대고 직사각형 끝을 잡고 대롱위에 달려 있는 둥근 물체에 한쪽눈을 붙인채 바라 보는 자도 눈에 들어왔다. 그들 두명외의 다른 4명도 모두 바닥에 엎드린채 짧막한 검은 대롱을 앞으로 뻗은채였다. 둥근 대롱은 끝부분이 가늘고 손잡이로 생각되는 곳은 직사각형 모양이었다. 그들의 복장 또한 특이했다. 상하 알록달록한 문양의 옷을 입고 쓰고 있는 둥근 모자 또한 알록달록했다. 모자 위에는 검은 유리같은게 양쪽에 두개나 걸쳐져 있었다. 얼굴은 모두 복면으로 가린 상태로 어떤 얼굴인지는 알아 볼수가 없었다.
"마리뉴! 저쪽에 인간들이 숨어 있다. 그런데 이상한 놈들이다."
마리뉴에게 그들의 복장과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마리뉴는 벌떡 일어나 놈들이 있는 언덕을 바라 보며 믿기지 않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놈들은 이, 이계인들입니다."
"뭐? 저런 놈들이 이계인이라고?"
"그렇습니다. 저도 본적은 없지만 이계인들은 모두 알록달록한 복장과 검은 긴 대롱같은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응?"
무언가 급속도로 날아 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굉음이 들려왔다.
텅.
마리뉴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작은 물체는 엄청나게 빨랐다, 사이킥을 펼칠 시간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홱.
"윽!"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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