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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비뢰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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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우아
작품등록일 :
2017.12.02 16:28
최근연재일 :
2018.0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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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13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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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6쪽

군웅#3

DUMMY

“사람이 정말 많군요.”


“저도 정주에는 몇 번 와 본적이 있습니다만, 이 정도로 북적이는 것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마차의 창 바깥에 펼쳐진 거리 풍경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사내가 있었다.


바로 오 일간의 여정 끝에, 하남 정주로 들어선 소운과 영호관이 그들이었다.


거리로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이곳의 분위기.

아직 정도맹 분타에 도착하지 않았음에도 길을 가득 메우고 있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에게서, 곧 펼쳐질 군웅대회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허리에 칼을 찬 무림인만 절반, 이렇게 많은 숫자의 무림인들을 처음 본 소운으로서는 제법 색다른 광경일 수 밖에 없었다.


“정도맹(正道盟)이라는 이름이 강호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 대목이지요.”


영호관의 말에, 소운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주가 하남의 성도라지만,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일이라면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정도맹의 분타 창설과, 동시에 열리는 하남 군웅대회.

명성을 얻고 싶은 이라면 누구나 도전하려하고, 꿈꾸는 출세의 기회가 이곳에 있었던 것이다.



스슥.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소운.

다양한 생김새의 사람들과 스쳐지나가는 기운들을 훑어보면서, 이곳으로 모여든 이들의 열망을 읽을 수 있었다.


“바로 정도맹 분타로 가는 것입니까?”


소운이 묻자 영호관이 대답했다.


“예. 저희는 군웅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도 없으니, 우선 총군사님을 뵙고 둘러보며 일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혹 대협께서는 다른 의견이...?”


“아닙니다. 계획대로 하십시오.”


“그래야 마음도 편하게 준비할 수 있고, 또 여기저기 둘러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요.”



따그닥.따그닥.

그렇게 두 사람이 탄 마차는 거리를 벗어나, 이윽고 큰 대로로 들어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높게 두른 담 사이로 우뚝 솟은 건물들의 전경이 아우르는 곳.

거대한 규모의 정도맹 하남 분타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수많은 무림인들이 입구부터 줄지어 늘어서있으며 경계하는 무사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정도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과연 시작부터 남다른 규모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타다닷.

그리고 눈앞에 둔 하오문 행렬이 다가가자, 안에서 뛰어나온 무사 네 명이 정중하게 예를 취한다.

그러면서도 마차 앞을 빈틈없이 가로막으며, 살피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잠시 본맹에게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그러자 마부가 미리 영호관에게 받았던 서신을 품안에서 꺼내며, 정도맹 무사들에게 건넨다.

가타부타 말없이 서신을 건네받자 무사들은 뒤쪽을 바라보았고, 뒤에서 제법 나이가 있어 보이는 경계조장이 나섰다.


화악.

한번 마부를 힐끗 쳐다본 경계조장이 서신을 활짝 펴고 확인한다.

신중하게 읽어가던 그의 눈이 한곳에서 멈췄다.


‘총군사님의 직인...!’


이십년 동안 정도맹에 몸담아온 그로서도 거의 보지 못했던 정도맹 총군사 서문공의 이름을 발견하자, 바로 외치는 그였다.


“바로 들여보내라!”


“예!”


초대장이나 신분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안으로 들여보내는 경우는 처음이었지만, 무사들은 즉시 움직였다.

상관의 명령은 절대적, 그리고 그것이 경계 전반을 책임지는 이들 중 하나가 내린 지시였다면 더 이상의 생각은 불필요했던 것이다.



“정도맹에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예를 취하는 무사들에게 답례하는 영호관의 모습이 창 사이로 비친다.


그리고 안에 있던 소운은 제법이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흑사맹 정예들과는 차이가 있지만, 격식과 예를 갖출 줄 아는 무사들이다. 이것이 정파라는 것인가.’


소운이 그동안 상대했던 흑사맹의 정예들과는 다른 기질이 느껴졌다.

협과 의를 숭상한다는 정파무림의 한 일면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소운이었다.




그렇게 하오문 일행의 마차는 얼마 가지 않아 멈췄다.

안에서 달려 나온 정도맹 무사들이 그들의 거처를 안내했기 때문이었다.

제법 넓은 규모와 주변에 있는 다른 무인들의 모습을 볼 때, 정도맹의 초대를 받은 각 문파의 인물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하오문도들이 분주하게 짐을 풀던 사이, 가만히 서 있던 소운의 눈에 영호관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일행에게 할 일을 지시하고 정도맹 대주급 무인에게 설명을 들은 그의 얼굴이 달라져 있자, 소운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소운의 말에 영호관이 숨김없이 대답했다.


“그게, 총군사인 서문노사의 일정이 너무나도 바빠 아직 만날 수 없다고 합니다. 최소 이틀은 기다려야 한다는군요.”


“이틀이라.. 무작정 기다리기에는 조금 애매한 시간이군요.”


“저희 쪽 출입증과 일정 전반에 대해서는 충분한 안내를 받았습니다만, 먼저 만나려고 했던 계획은 일단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소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도맹 총군사라는 위치, 결코 한가로울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새로운 분타의 창설과 군웅대회가 열리는 지금, 하남을 비롯해 중원 각지에서 초대한 문파의 인물들을 만나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서 라고는 하나, 일개 분타주가 방문한 하오문을 우선순위로 둘 수는 없었던 것이다.


천하오패 정도맹의 수뇌부의 심중에서 영호관 일행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조금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저야 여기서는 영 분타주가 내리는 결정에 따라 움직일 사람입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휴우, 알겠습니다.”


편안한 소운의 말에, 영호관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것을 느끼며 하오문도들을 돌아본다.

모두가 무공을 익힌 무림인이라고는 하지만, 오 일간의 거리에서 누적된 피로가 제법 쌓여있는 모습.

그러자 영호관이 소운에게 말했다.


“우선 이틀의 여유가 생겼으니, 문도들은 조금 쉬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앞으로 발빠르게 움직일 일들이 많을 테니까요. 그리고 대협만 괜찮으시다면, 조금은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호관의 말, 지나오면서 본 수많은 인파들의 광경을 말하고 있었다.

바로 어제부터 시작된 군웅대회를 비롯해, 정파의 무림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거대한 규모의 행사.

정보를 취급하는 하오문임을 제외하고서라도,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관심 가질만한 것들이 지천에 널려있었던 것이다.


“저는 좋습니다. 마침 하오문의 일의 진행 상황에 따라 몇 가지 구입할 물건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흔쾌히 답한 소운의 모습에 영호관이 안심하며 말을 잇는다.


“그렇다면 당연히 저희 하오문에서 나서야지요. 또한 군웅대회를 가까이서 보는 기회도 흔치 않으니, 흥미가 있으시다면 같이 관람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상관없습니다.”


일행의 명령권자인 영호관이 눈짓하자, 주변에 있던 문도들이 예를 취하고 흩어진다.

파바밧!파밧!

굳이 명령하지 않아도 두 사람의 대화를 지척에서 들었기에, 빠르게 각자의 할 일을 찾아나서는 모습.


흩어지는 문도들의 광경을 끝까지 확인하고, 영호관과 소운이 마침내 걸음을 옮겼다.











“이 장검은 화산의 도사들도 탐낼 만큼의 보검이지요!”


“재질이 평범한 철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비싼 값을 하는 녀석입니다.”


“원래 이 정도의 상(上)품은 보기 드물다는 것은 아셔야 합니다?”



군웅대회가 열리는 시합장으로 향하기 전, 소운과 영호관이 향한 곳은 바로 갖가지 물건을 파는 거리였다.

최근 들어 무기를 지닌 무림인들이 몰려들자, 덩달아 병장기와 무복을 파는 장사치들의 수가 급격하게 늘었고 그에 따른 수요도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


여기저기서 흥정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며, 영호관이 소운에게 말했다.


“별의 별 것들이 다 있군요. 하남의 장사치란 장사치는 모두 모여든 모양입니다.”


“무공을 익힌 이의 대다수는 무기를 사용하니, 이만큼의 기회도 그들에겐 드물지 않겠습니까.”


소운이 대답하자, 영호관이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대협께서는 무기에 구애받지 않으니, 번거로움이 덜 하실 듯합니다.”


아무리 단단한 무기라도 오래 사용하거나 거센 충격을 받으면 수명이 단축되기 마련이었다.

이것은 검이나 도, 여타 그 어떤 무기의 사용자 모두가 지닌 숙명과도 같은 것.

때문에 무인이라면 자신의 무기를 관리하는 것은 물론, 항시 몸에서 떼어놓지 않아야 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오직 두 손과 발만을 무기로 사용하는 소운과 같은 권법가들의 경우는 그들과 조금 달랐다.

무기가 없으면 자신의 무공을 십분 발휘하기 힘든 단점에 구애받지 않지만, 반대로 그런 날카로운 검과 맞서 견뎌내야만 하는 수련이 동반되어야 했던 것이다.

때문에 강호의 무인들 중 검과 더불어 권법을 익힌 이들의 수가 상당했지만, 그들 중 경지에 오른 자들은 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었다.


소운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확실히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허나 일정 수준의 외공 단련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조금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군요.”


영호관이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자신보다 어린 상대였지만, 그가 지닌 무공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아는 젊은 무인 중 최고라고 생각하던 단리현마저 인정한 사내.

뇌제의 행보에 쓸려나간 사파 고수들의 이름이 절대 가볍지 않았기에, 소운이 하는 말에 대해서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헌데 아까, 무언가 찾고 계시는 것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출발하기 전 소운의 말을 떠올린 영호관이 묻자, 소운은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그저 무복을 대신할만한 것이 있는가 해서,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영호관이 궁금하다는 듯 재차 묻는다.


“무복을 말입니까? 혹 지금 입고 계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셔서..?”


소운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문제는 아닙니다. 단지 무복이 견뎌내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나와서, 뭔가 대체할만한 것이 필요하겠더군요. 이를테면 호신갑(護身甲)같은 것 말입니다.”


소운이 조금 씁쓸한 듯 웃었다.


이미 금강불괴에 이르러 옷에 구애받지 않는 지경에 도달한 소운이었지만, 그가 지닌 무공의 특성은 벌써 여러 번이나 그를 난처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뇌기, 그것도 뇌금강의 영역으로 장시간 전투를 벌이다보면 자연스레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무복들은 찢겨져 있거나 타버리기 일쑤였다.

상대가 약한 적이라면 모를까, 그의 힘을 더욱 끌어내야만 하는 적일수록 그 정도는 점점 심해졌고 삼절검마의 싸움에 이르러서는 상반신이 훤하게 드러날 정도였다.


때문에 소운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벌의 옷을 가지고 다닐까도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군요. 호신갑이라.... 대협께서 사용하신다면 흔해빠진 것으로는 안 될 것입니다. 더군다나 좋은 재질일수록 구하기 힘들테니, 저희 하오문에서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영호관의 뜻밖의 말을 꺼내자, 소운은 진심으로 고마운 얼굴로 대답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그래도 어떻게..”


“대협께서는 본문의 은인이십니다. 호 장로께서 충분한 대가를 치르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니, 도울 수 있게 해주십시오.”


“허,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섞인 소운의 표정.

당금 강호를 울리는 명성의 주인공임에도, 감사함의 의미를 잊지 않는 모습이었다.

소운, 그는 사부에게 그렇게 살라는 가르침을 받았던 것이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와중, 영호관이 갑자기 흠칫했다.

번잡한 거리 정면에서 다가오는 이들 중 하나에 시선이 꽂힌 채, 그를 바라본다.

깔끔한 차림을 한 네 명의 사내.

이내 다가오는 무리와 가까워지고, 영호관을 알아본 짙은 수염의 중년인이 아는 체를 해왔다.


“이게 누구신가? 영 분.. 아니, 자네를 여기서 만나게 되는군 그래.”


강단 있어 보이는 중년인이 나서자, 영호관이 포권을 취하며 대답했다.


“꽤 오랜만입니다. 강 대협.”


“그렇군. 하남 군웅대회를 보러 왔는가?”


“예. 혹시 강 대협께서도?”


“나야 이런 저런 일도 겸해서 왔네만..”


서로를 잘 아는 듯한 두 사람이었지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조금 어색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마치 한가지씩은 숨기고 있는 듯한 얼굴을 애써 감추고 있는 모습.


그러자 강 대협이라 불린 중년인의 뒤에 있던 젊은 사내 두 명이, 새로운 시선으로 영호관을 훑는다.

중간 정도의 키에 준미한 얼굴을 지닌 사내에게서는 상당한 기품이 흘러나왔고, 그 곁에 서 있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 그 자체였다.


휘익.

이쪽을 향하는 두 시선에, 영호관은 긴장감이 드는 자신을 발견했다.

고작 이립조차 되어 보이지 않는 젊은 사내들이건만, 마치 자신을 꿰뚫어보는 듯한 눈빛에 그도 모르게 위축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와 제법 안면이 있는 중년인의 정체.


중원 삼대상단 중 하나인 금룡회의 정보 전반을 책임지는 금영각의 수장이자, 하오문과도 은밀하게 몇 가지 거래를 해왔던 강이면이었다.

그가 분타주로서 올라서기 전부터 이미 안면이 있었던 인물이었고, 서로 무림의 상황과 자금의 흐름에 대해서 깊은 교류를 나누던 사이.

하남 무림의 시선이 집중된 이 곳에서, 그런 인물과 마주친 다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무엇보다 영호관을 긴장시키는 것은 따로 있었다.


강이면의 뒤에 있는 두 명의 사내들.

금영각주의 뒤에서 지금과 같은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자연스레 그들의 신분이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게 했다.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그들의 정체를 추측해보려 하자, 영호관을 바라보던 미공자의 얼굴에 미묘한 웃음이 스쳐지나갔다.



준미한 사내의 진실된 정체.

바로 당대 금룡회의 회주, 진위현이 그였다.

정도맹 하남 분타 창설에 정식으로 초대받아, 금영각주를 비롯해 측근을 대동하고 거리를 둘러보던 인물의 정체가 바로 그였던 것이다.


영호관을 바라보는 진위현의 시선은 약간의 궁금증을 담고 있었다.

금영각주 강이면과 상당한 안면이 있어 보이는 인물이라면, 자연스레 회주인 그로서도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스슥.

그리고 자연스레 옆에 있던 키 큰 청년, 소운에게 시선을 돌린 진위현이다.

그러자 잠시 눈이 마주친 두 사람.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소운이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러자 진위현도 다시 영호관과 금영각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강 대협께서도 바쁘신 듯하니, 이쯤에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뒤에 있는 인물들을 의식한 듯한 영호관의 말에, 강이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자네도 일행이 있으니, 그럼 또 다음에 보세나.”


“예. 살펴가십시오.”


“좋은 구경 하길 바라겠네.”


저벅.저벅.

말을 마친 영호관이 먼저 걸음을 옮기자, 소운이 가볍게 그 뒤를 따른다.

여전히 시끄러운 주변을 돌아보며, 편안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는 소운의 모습.


그렇게 두 사람이 지나쳐가자, 진위현이 강이면에게 물었다.


“강 각주와 잘 아는 사이인가 봅니다?”


진위현의 말에 강이면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아, 예. 본래라면 굳이 아는 척 할 필요는 없었지만, 어차피 이번에 회주께서 공개적인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실 예정이니 숨길 필요도 없다고 여겼습니다. 저 친구는 근래에 하오문의 분타주가 된 인물로, 본회와 하오문을 잇는 몇 안 되는 끈 중 하나입니다.”


“하오문이었군요. 어쩐지 조심스러워 보였습니다. 수뇌부의 얼굴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문파인데, 과연 강 각주답습니다.”


“과찬이십니다.”


비록 금룡회와 하오문을 대표해 정보를 거래한 영호관과 강이면이었지만, 그것은 서로만이 만났기에 그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자신이 모시는 회주에게 하오문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번엔 진위현이 곁에 있던 사내에게 말을 건넸다.


“하오문도가 다 약하다는 생각은 접어야겠어. 기도가 제법이더군. 전룡(戰龍), 자네 눈에도 그렇게 보였지?”


그러자 강이면조차 기대어린 눈으로, 상당한 체격을 지닌 사내를 바라본다.

회주의 최측근이자, 그를 단독으로 호위하는 무인.

전룡 오극영.

출생을 비롯해 그 무엇도 회주를 제외하고 아는 이가 없었지만, 지닌 무공만큼은 금룡회 수뇌부 모두가 인정하는 고수였다.


“오 호위?”


그러자 잠시 멈춰 서 있던 사내가, 움찔거린다.

마치 깊은 상념에 잠겨 있던 듯한 오극영의 모습에, 조금 놀란 진위현이 그를 바라본다.


“무슨 일인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네가 딴생각을 하다니.”


진위현과 강이면, 그들이 아는 한 전룡은 주변의 변화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내였다.

전대 용봉지회에 나가 본신의 힘을 전부 다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오룡에 오를 만큼의 무공을 지님과 동시에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무감각한 그의 성정은 이미 유명했던 것이다.


그런 그가 한순간이지만 보기 드문 모습을 보였기에, 오랫동안 지켜봐왔던 진위현과 강이면은 어색할 수 밖에 없었다.


스스슥.

상념에서 깨어난 오극영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반응했다.

그토록 무겁던 그의 입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지나간 것인가?”


뜬금없는 오극영의 물음에, 강이면이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물었다.


“지나가다니, 뭘 말하는 겐가? 오 호위.”


“그 남자. 각주님과 대화하고 있던 사내 옆에 있던 남자 말입니다.”


“남자? 그 키가 큰 청년을 말하는 것인가?”


동시에 강이면과 진위현의 시선이, 오극영의 얼굴을 향한다.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오극영.


그런 그는 조금 전, 자신을 바라보며 눈을 빛낸 사내를 떠올리고 있었다.


강이면과 영호관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우연치 않게 눈이 마주친 젊은 사내.

일순 그의 눈이 흥미로운 빛을 띠는 순간, 아무리 오극영이라도 조금은 반응할 수 밖에 없었다.

오룡의 명성을 얻고도 수많은 수련을 거쳐 나름 경지에 오른 그로서는, 자신보다 젊은 이에게 이와 같은 눈빛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눈빛에 약간의 힘을 더한 오극영.


그 순간 오극영은, 문득 자신 앞에 서 있는 거대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눈빛의 변화 만으로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일까, 어떠한 기세도 뿜어내지 않은 상대였지만, 오로지 오극영 자신의 기감이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자, 만약 무공을 익혔다면 고수다. 그것도 나보다 훨씬...!’


오직 회주인 진위현과 오극영 자신밖에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동년배 중 누구보다 많은 실전을 경험한 오극영이다.

때문에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상대 안의 그 무언가, 그것이 오극영의 마음을 거세게 흔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 놀라움에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상대가 사라져 버리자 오극영은 그제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지나쳐간 사내의 존재감이 남긴 여운과 함께, 자신을 바라보는 익숙한 두 시선을 느끼는 오극영이 있었다.



*


*


*


*


‘금룡회란 곳, 단순히 상인만 모인 곳은 아닌가 보군.’


방금 전 만난 이들이, 금룡회 사람들이라는 것을 영호관에게 들은 소운의 생각이었다.

하나 하나가 절정을 넘어선 기도를 보유한 데다가, 비교적 젊어 보이는 사내들에게서는 그조차도 보기 드문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오랫동안 바라본 사내에 대한 기억.

뇌기를 기반으로 하는 소운의 무공 특성상, 여타 무림인들처럼 많은 내력이 느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나마 소운을 알아본 듯한 기색이었던 것이다.

벽력신권도 쉽사리 알아보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방금 사내의 경우는 단 하나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본능적인 감각, 상대에 대한 위험을 알린 신호가 그를 일깨웠을 리 틀림없었다.

아마도 상당한 수련을 거쳤거나, 실전에 특화된 무인이라고 여긴 소운이었다.




군웅대회가 열리는 거대한 시합장으로 들어선 소운과 영호관.



출입증을 비롯해 약간의 확인을 거치고 들어서자, 두 눈에 들어오는 방대한 규모가 보인다.

거리에도 물론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지만, 이곳의 분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검탑의 연무장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크기에, 관람하는 이들의 함성소리가 사방을 아우르고 있었다.


“와아아!”


“또 시작한다!”


스스슥.

이미 거리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는 소운과, 절정에 오른 영호관이었기에 적당한 자리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털썩.

자리에 앉은 소운의 눈에, 방금 끝난 듯한 시합장의 광경이 들어왔다.

탈진해 있는 사내가 부축 받아 퇴장하기 무섭게, 대기하고 있던 무인들이 시합장 위로 올라선다.


그러자 중앙의 단상에 있던 중년인, 정도맹 고수의 소개가 끝나기 무섭게, 두 무인이 함성과 함께 달려들었다.


“하압!”


탕.타탕!

검과 검이 부딪히자, 관중들에게서 더욱 거센 함성이 토해져 나온다.

막상 막하로 겨루던 대결의 끝이 마침내 한 쪽으로 기울고, 승부가 결정되자 한쪽에선 탄식이 그리고 나머지 한 쪽에서는 감탄이 흐르는 모습.


이류에서 일류를 오가는 실력임에도 무인들의 겨룸을 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는 이로 하여금 무공에 대한 열의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지켜보던 영호관이 전면을 가리키며 소운에게 말했다.


“시합을 주재하고 있는 중년인의 뒤로, 수십의 인물들이 보이십니까? 저들이 바로 정도맹의 인사들입니다. 그리고 명문정파의 얼굴들도 보이는군요.”


확실히 따로 마련된 자리에 앉아, 여러 가지 표정으로 시합을 관람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대다수가 나이든 중년의 무림인들이었지만, 개중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을 발견한 소운이었다.


‘어디서 보았던 얼굴이군.’


공손하게 앉아 있는 화사한 미모를 지닌 여인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잘 생각이 나지 않자 고개를 돌린 소운.

한 번 만났던 것은 확실하지만, 그의 기억에 남을 만큼 특별한 만남이 아니었던 것일까.

다시 시합에 집중한 소운에게, 영호관의 짤막한 말이 들려왔다.


“이제 좀 제대로 된 무인들이 나오나 봅니다.”


영호관의 말과 동시에 서로를 마주보고 선 두 사내의 모습.

장대한 체구를 지닌 남자와, 긴 장검을 허리에 찬 사내였다.


“다음 시합은 하남 백검파(百劍派)의 이제자 송주원과 산서 육가장의 소장주 육무군! 두 사람은 앞으로 나서시오!”


단상의 중년인의 외침과 함께, 두 사내가 한 걸음씩 서로에게 다가간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눈빛과 자세를 지닌 그들의 모습에서, 드디어 일류를 넘어선 참가자들이 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먼저 장검을 찬 사내가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백검파의 송주원이라고 하오. 잘 부탁드리겠소.”


“육가장의 육무군이오. 한 수 가르침을 받겠소이다.”


정중한 소개가 오고가고,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리자 먼저 움직인 것은 육무군이라는 장한이었다.


타앗!

체구와는 달리 제법 날렵한 움직임으로, 주먹에 기운을 담아 휘둘러오는 모습.

단숨에 바위라도 쪼갤 기세로 가문의 권법을 펼쳐내는 육무군의 출수에, 송주원이 급하게 검을 뽑아 마주해나갔다.


휘릭.휘리릭.

검날에 닿기 전 주먹을 비튼 육무군이, 지척으로 파고들어 상대의 허리를 노린다.

그러자 몇 번 막아내다 밀려난 상대가, 충격으로 인해 몸을 떤다.


“흐읍..!”


잠시의 쉴 시간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몰아쳐오는 육무군의 공세.

힘이나 내력, 그 무엇도 자신이 위가 아님을 느낀 송주원이 보법을 펼쳐 상대의 공격을 흘려낸다.


펑!펑펑!

몇 번이고 지면에 꽂힌 육무군의 주먹이 붉게 변했다.

초반의 이득을 제외하고 이렇다 할 일격을 가하지 못하자, 자연스레 주먹에 손상이 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으음..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는지 보겠다!”


파밧!

자신이 아는 한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온 육무군이,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전력을 담아 단 한번의 권기를 뿜어내기 위한 기가 주먹에 맺힌다.

명중한다면 일격에 상대를 쓰러트릴 수 있는 위력이 담겨져 있다고, 육무군은 자신하고 있었다.


“하아아압!”


“......!”


동작이 꼬여 정면으로는 자신이 받아내지 못할 것임을 안 송주원이, 무인의 체면을 버리고 뇌려타곤을 시전했다.


“저런!”


“잘 피했다! 그렇지!”


상반된 반응이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육무군이 뿜어낸 회심의 공격이 관중석으로 쏘아져갔다.

아직 완전하지 않은 공격을 펼쳐낸 탓인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막 절정에 오른 권법가인 육무군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위력은 결코 경시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휘이잉.

여러 가지 일을 대비해 시합장과 관중석 사이의 거리는 상당히 떨어져 있었지만, 때마침 이전 시합의 부상자가 실려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정도맹 무사 두 명이 부축하고 있는 한가운데로 향하는 육무군의 권기가 의도치 않은 희생자를 낳으려던 순간,


파밧!

치리링.쩌저정!쩡!

바로 뒤 관중석에서 날아든 청년의 검이 힘차게 뽑아지며, 권기를 향해 휘둘러졌다.

단 두 번의 휘두름만으로 공격을 해소시킨 청년이 착지했다.

털썩.


“우오오!”


“육무군이란 놈 실격시켜라!”


안도의 한숨과 분노의 욕지거리가 동시에 들리는 시합장이다.


그곳에서 이쪽으로 향하는 위협을 확인하고 망설임 없이 몸을 날린 청년의 정체.

불과 십여 명 남짓의 일행과 함께 군웅대회를 관람하러 온 호원상단의 소상주, 석일경의 능파검(能波劍)이 권기를 막아낸 것이었다.

뒤쪽에서 조금은 놀란 동행들의 얼굴 중, 주변 사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여인의 모습도 보이는 가운데,





석일경과 그가 펼치는 검법을 확인한 사내.

그 광경을 멀리서 바라본 소운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었다.


작가의말

오설레임님,캡틴비둘기님,진비짱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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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암류#3 +49 18.02.08 8,141 246 17쪽
77 암류#2 +29 18.02.07 8,127 237 28쪽
76 암류#1 +38 18.02.06 8,026 240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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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금강#3 +62 18.02.03 8,645 248 30쪽
73 금강#2 +24 18.02.02 8,202 217 22쪽
72 금강#1 +32 18.02.01 8,282 227 20쪽
71 전운#3 +40 18.01.31 8,679 225 17쪽
70 전운#2 +24 18.01.30 8,875 228 20쪽
69 전운#1 +30 18.01.29 9,143 250 22쪽
68 혈투#7 +49 18.01.27 9,489 269 19쪽
67 혈투#6 +49 18.01.26 8,898 269 21쪽
66 혈투#5 +20 18.01.25 8,841 255 24쪽
65 혈투#4 +26 18.01.24 8,944 228 24쪽
64 혈투#3 +22 18.01.23 9,329 237 22쪽
63 혈투#2 +12 18.01.22 9,494 231 24쪽
62 혈투#1 +36 18.01.20 9,765 235 24쪽
61 검탑#5 +23 18.01.19 9,444 229 24쪽
60 검탑#4 +25 18.01.18 9,412 250 20쪽
59 검탑#3 +16 18.01.17 9,590 237 24쪽
58 검탑#2 +23 18.01.16 9,541 265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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