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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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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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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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26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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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두 번째 선수 (3)

DUMMY

“하!”


얀손은 어이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뭔가 대단한 것이라도 있는 양 굴더니만 고작 이걸로 당당하게 나왔다고? 괜히 긴장하고 있던 자신이 우습게까지 느껴졌다.


“그 유럽 대항전은 올해 토리노도 나갑니다.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그들이 유로파 일정을 대비해서 선수층을 두껍게 만들려고 절 영입하는 거라고 말입니다. 설마 잊었다고 말씀하시려는 건 아니겠죠?”


[그럴 리 있겠습니까.]


통화 상대는 여전히 당황한 기색 없이 대답했다.


[물론 그들은 이번에 유로파를 나갑니다만, 파르마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행운이 올해도 따라줄 거란 보장은 없겠지요.]


토리노는 작년에 7위로 시즌을 마감하여 유로파 진출에 실패하는 듯했지만, 6위인 파르마가 하필 UEFA 라이센스가 없다는 황당한 이유로 자격을 박탈당하면서 그 자리를 대신 부여받게 되었다.


[세리에는 유벤투스를 비롯해 로마, 라치오, 나폴리 등 쟁쟁한 구단이 많습니다. 몰락했다고는 하나 두 개의 밀란팀들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죠. 토리노가 달성한 7위는 실로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그들은 재작년까지만 해도 16위, 강등권 언저리에 머물렀으니까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팀들이 강력하긴 해도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 거죠? 이번에 7위를 기록했으니 다음 시즌엔 이변을 일으킬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장담할 수 있는 이유가 있으니까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곧장 받아쳐 낸다. 얀손은 그 능청스러움이 뭔가 얄밉게까지 느껴졌다.


[현재 도르트문트는 핵심이었던 레반도프스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여러 걸출한 선수들을 물색 중에 있다고 합니다.]


그 얄미운 남자가 말했다.


[그중 가장 유력한 후보가 치로 임모빌레라고 하더군요. 토리노의 그 공격수 말이죠.]


치로 임모빌레(Ciro Immobile)는 이번에 22골로 득점왕을 거머쥐었다.


그 뒤를 따른 것이 21골의 루카 토니(Luca Toni), 19골의 카를로스 테베즈(Carlos Tevez)다. 결코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페널티킥 하나 없이 놀라운 기록을 쌓은 것이다.


도박꾼들 중 어느 누구도 제노아에서 막 이적한 공격수에게 돈을 걸지 않았다. 그만큼 예상치도 못한 일이었고, 실제로 벌어지자 세계가 그 이름을 주목하기에 이르렀다. 도르트문트는 이 신선한 매물을 획득하기 위해 가장 빠른 행동을 취하고 있는 구단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임모빌레와 함께 팀의 공격을 담당했던 알레시오 체르치 또한 팀을 떠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아직 어디로 떠난다고 뚜렷이 나오진 않았습니다만.]


알레시오 체르치(Alessio Cerci)는 2선에서 임모빌레를 받쳐주는 세컨 스트라이커의 자리에서 뛰면서 37경기 13골 1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7위란 성과에서 이 두 명의 활약을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겁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런 공격 자원들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7위에 그쳤다는 말이 되겠죠.]


“······.”


[그런데 그 핵심 둘을 이적시키고 나면 토리노가 과연 그 이변이라는 걸 일으킬 수 있을까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할 겁니다.]


얄밉지만 왜곡된 사실은 없다. 터무니없는 소리를 늘어놨다면 당장 통화를 종료했을 것이다. 하지만 얀손은 살짝 언짢음을 느끼면서도 묘하게 설득되는 이 남자의 말에 계속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대체자로 유벤투스에서 입지가 좁아져 있는 파비오 콸리아렐라를 데려온다는 얘기도 있던데······그 선수도 좋은 기량을 갖췄긴 합니다만 토리노를 유로파로 올려놓을 정도의 활약을 해줄까에 대해서는 의문 부호가 붙을 수밖에요.]


‘도대체 어디까지 알아낸 거지?’


무엇보다 계약을 진행 중인 그조차도 잘 알지 못했던 토리노에 대한 정보들. 로스 카운티가 세리에 팀을 조사할 이유는 없다. 결국 이 남자는 자신을 영입을 영입하기 위해 이 정도까지 조사했다는 얘기 아닌가?


[그러한 이유로 토리노의 유로파를 향한 여정은 올해가 마지막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좋아요, 이해했습니다.”


얀손이 힘주어 말했다.


“근데 그건 제가 스코티시로 가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로스 카운티가 올해 유로파를 나간다는 얘기는 에이전트를 통해 들었습니다만 그쪽 역시 내년에 다시 그 티켓을 딸 거란 보장은 없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유로파 티켓은 더 이상 못 따낼 겁니다.]


이번에도 곧장 대답이 들려왔다.


[내년에는 챔피언스 리그에 나가야 하니까요.]


“뭐요?”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던 얀손의 목소리가 순간 몇 옥타브는 높아졌다.


[제가 말씀드린 유럽 대항전은 유로파만을 뜻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챔피언스 리그를 포함해서 말씀드린 거죠. 그게 바로 토리노에 맞서 우리가 내세우는 카드입니다.]


“저기요······. 지금 농담하시는 거겠죠?”


챔피언스 리그(Champions League), 별들의 전쟁이라 불리는 유럽 최고의 무대. 얀손도 그런 거대한 대회에서 뛰어 보고픈 욕망은 있었다. 아니, 축구 선수라면 당연히 꿈꿀 수밖에 없는 이상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는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제가 스웨덴에서만 자라왔어도 스코티시가 대충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다고요. 셀틱이 모든 걸 다 해먹는 리그잖습니까? 이번에도 그들이 우승을 차지한 걸로 알아요. 그런데 챔피언스 리그를 가겠다고요?”


[전혀 농담이 아닙니다.]


얀손의 말을 조용히 듣던 상대가 차분히 대답했다.


[셀틱이 대단한 구단인 건 맞으나 우리는 그들과 맞붙은 네 번의 리그 경기에서 개막전 첫 경기만 패했을 뿐, 나머지 세 경기에서는 따끔한 맛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리그 2위로 시즌을 마감했죠. 로스 카운티가 본래는 전문가들에게서 강등권으로 예상되던 팀이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런 팀이 리그 2위에 유로파 진출까지 해낸 겁니다.]


“하지만······.”


[또한 스코티시 컵 결승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그 셀틱을 꺾고 우승까지 해냈습니다. 최근 소식을 한 번 찾아보십시오. 제 말이 허황된 게 아니라는 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얀손은 더 이상 반론을 제기할 만한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낯선 이 남자의 말은 전부 논리정연하며 타당했다. 물론 셀틱에 관련해서는 여전히 미심쩍은 구석이 있긴 하나 그것도 이때까지 한 얘기가 정말이라면 이의를 제기할 수도, 그럴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아직은 마냥 수긍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쉽게 받아들이기엔 스코티시는 너무 불안한 곳이다. 그런 덜 떨어진 데로 갈 거라면 차라리 스웨덴에 남는 게 낫다는 소리도 여러 번 들어왔었기 때문이었다.


얀손은 상대가 들을 수 없게 핸드폰을 멀찍이 떨어뜨리고 길게 심호흡을 내쉬었다.


“일단 유럽 대항전에 대한 얘기는 접어두고 가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확인하기 위한 질문을 던졌다.


“제가 스웨덴을 떠나서 얻으려는 건 그쪽이 제시했던 것처럼 명성, 이름을 드높이기 위한 게 맞습니다.”


[그렇죠.]


“그 부분에서 유럽 대항전이 좋은 수단이 되는 건 분명합니다. 그렇다 해도 토리노나 로스 카운티나 그 정도 대회에서 그리 선전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진 않군요. 아무리 말씀하셔도 불안정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게 제 우선 목표도 아니었고요. 가장 원하는 건 경기를 많이 뛰는 겁니다. 그래야 이름값을 올릴 수 있을 테니까요.”


[맞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잉글랜드 팀과 계약을 맺어서 프리미어 리그 승격을 노리는 게 최상의 방법인 것 같은데요? 토리노 건은 당신의 말을 인정하겠습니다만 챔피언십에서도 제가 주전을 보장받지 못할 거란 생각은 안 드니까요.”


그렇게 말하고는 눈을 부릅뜬 채 귀에 대고 있는 폰을 노려보았다.


곧잘 받아치던 상대가 침묵하고 있었다.


드디어 그의 말문을 막히게 만든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던 것도 잠시, 얀손은 미세한 웃음소리가 폰 너머에서 들려온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얀손 씨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이내 대답이 날아왔다.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을 할 수 있다면 분명 최고의 선택지라고 할 수 있겠죠. 다만 영영 헤어 나오기 어려운 늪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는 것도 아셔야 합니다.]


“늪이라고요?”


[챔피언십에서 더 높은 무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남들을 웃도는 활약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팀의 성적까지 높아야 하죠. 대단한 플레이를 펼쳐도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게 매 시즌 반복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늪은 아주 깊어서 결국 얀손 씨의 커리어를 송두리째 집어삼켜 버릴 수도 있지요.]


“······협박하는 겁니까?”


[사실을 말하는 것뿐입니다. 승격 팀을 제외한 그쪽 선수들은 대부분 챔피언십에서 세월을 보내다가 기량이 떨어진 후 더 아래로, 혹은 여기 스코티시에 오게 된다고 하더군요. 어쩌다 상위 구단 눈에 띄어서 구출되는 특이한 케이스도 있겠지만 그건 극소수입니다.]


“······.”


[어떤 팀들에게 오퍼가 왔는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최근 떠도는 뉴스를 살펴보니 리즈 유나이티드가 제의했다는 정도는 알겠더군요. 리즈 유나이티드, 좋은 곳이죠. 한때 잘 나가던 명문 구단 중 하나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안타깝게도 2004년에 강등된 이후 십 년째 올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제대로 늪에 빠져버렸죠.]


“······.”


[뭐, 다른 팀들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죠. 잉글리시 챔피언십은 세계를 통틀어 가장 부유한 2부 리그입니다.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돈이 궁하지 않기 때문이죠. 얀손 씨처럼 명예를 더 중시하는 선수에게는 아주 완벽하게 설계된 감옥인 셈입니다.]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다.


[이 이상은 더 말하지 않아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챔피언십에 대한 건은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이렇게 얘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군요.]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는 건가?’


얀손은 그렇게 생각하며 새롭게 할 말을 찾으려 머리를 굴려보았다. 그러나 로스 카운티의 감독은 그 수고마저 덜어주었다.


[스코티시 리그는 그에 비하면 무척 쉽지요. 유럽 대항전을 제외하더라도 셀틱이라는 거함 하나만 격침시키면 유명해지는 건 순식간입니다. 한 팀이 독식하던 판도가 무너져 내리는데 어찌 주목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영국 내는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떠들썩해질 만한 사건이 될 테죠.]


“······그렇긴 하겠죠.”


셀틱을 무너뜨린다는 것에 위화감이 남아 있었지만 어느새 얀손은 자신도 모르게 동조하고 있었다.


[또한 여긴 잉글리시처럼 부유하지 못한 곳입니다. 특히 로스 카운티는 가난한 구단이죠. 그렇기에 당신을 절대 옭아맬 수 없을 겁니다. 저 역시 이 무대가 좁다는 걸 알기에 더 큰 곳에서 뛸 기회가 있다면 기꺼이 보내줄 마음을 가지고 있고요.]


“그렇군요.”


[의구심이 든다면 요앙 아르킨이란 선수의 소식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 친구는 작년에 좋은 활약을 하고 프랑스의 스타드 렌으로 이적 진행 중에 있으니까요. 우리 팀의 핵심 선수임에도 좋은 팀에서 온 제의였기에 기쁜 마음으로 보내주었습니다.]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믿어주시니 감사하군요.]


남자가 계속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얀손 씨가 걱정하는 대로 정말 로스 카운티가 유럽 대항전에서 실패를 겪고, 리그에서도 셀틱에게 꺾여서 새로운 유럽 티켓을 따내지 못한다면 어차피 당신을 팔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될 겁니다.]


“······.”


[성과를 못 내면 우리로서는 팀 내 고액 주급자를 유지하기 버거울 테니까요. 이러나저러나 당신은 그저 자신의 기량을 뽐내면서 유명 구단에서 손 내밀기를 기다리면 되는 겁니다.]


그저 판단을 흐리게 만든 다음 꼬드기기 위한 수작이다. 하지만 이 말들에 꾸밈이나 거짓이 있는가? 전두엽 내에서는 두 가지 생각이 치고받기 시작했다.


“일단······.”


한동안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던 얀손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고민해볼 시간이 필요합니다. 덜컥 결정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오, 물론이죠. 재촉할 생각은 결코 없습니다.]


그런 얀손을 조용히 계속 기다려주던 상대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혼란스러움을 덜어드리기 위해 마지막으로 우리가 얀손 씨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정리해드린 뒤 통화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우선 로스 카운티는 두 가지의 원대한 목표가 있습니다. 첫째는 셀틱을 깨부수고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것.]


“······예.”


[둘째는 유럽 대항전. 올해는 유로파에 진출하며, 내년에 리그 우승을 할 경우 챔피언스 리그에 나가게 되겠죠. 더 나아가 이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그래요.”


[이 두 가지는 얀손 씨에게도 충분한 명성을 가져다줄 수단이 될 것이며, 토리노와 챔피언십의 팀들은 제공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말을 하다가 잠깐 멈춘 감독의 차분한 어조가 좀 더 신중하게 바뀌었다.


[우리 또한 이 목표를 이뤄내려면 당신이 필요합니다.]


“······.”


그렇게 통화가 끝났다.


얀손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의자에 털썩 앉아 한동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오랜 시간 동안 들어왔던 말들이 계속 귓가에서 아른거렸다.


토리노의 제의, 여러 챔피언십 팀들의 제의.


그 감독이 얘기했던 리즈 유나이티드를 포함하여 브렌트포드와 버밍엄 시티에서 제의가 왔었다. 그리고 말한 대로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할 수 있을지 불분명한 팀들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걸 전부 다 거절하고 스코티시로 향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해야만 하는가?


사람들이 비웃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한심하다고 혀를 찰 수도 있다.


“요한손 씨하고도 상의를 해봐야겠어.”


얀손은 한참 뒤에야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이 몸담을 팀을 결정하는 일이니만큼 오랫동안 신중하게 고려해서 선택해야만 한다.


하지만 사실상 마음속에서는 이미 목적지가 정해져 있었다는 걸 얀손은 모르고 있었다. 그저 확실히 깨닫지를 못했을 뿐.


그리고 그 고민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아 해결되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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