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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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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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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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1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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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보이드의 선택 (2)

DUMMY

첫 시즌에는 워낙 경황이 없었다.


새로운 감독은 정말로 갑작스럽게 부임했고, 스튜어트는 그를 돕느라 정신이 없었던 통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시즌이 진행되는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제 겨우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바쁘기는 하지만.


여유가 생기게 되면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호기심들이 서서히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는 법이다. 일 년이 흘렀고 그 세월의 많은 부분을 감독 곁에서 지냈다.


그런데도 스튜어트는 아직 그에 대해 아는 정보가 없었다.


이 남자가 얼마나 분석적이고 치밀한지, 이탈리안 출신답게 전술을 얼마나 중요시하게 여기는지 같은 겉으로 보이는 면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그런 건 숱하게 봐왔으므로 충분히 알고 있다.


또한 그가 특정 행동을 취했을 때는 어떤 상태에 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런 것에 관해서는 자신을 따라올 이가 없을 거라 자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혈연관계가 어떠한지, 그 외에 인간관계는 또 어떻게 되는지. 이런 것들을 비롯하여 유년시절은 어땠는지, 어쩌다가 감독의 길을 걷게 된 건지, 그 전에는 무슨 일을 했었는지 등등 개인사에 관련한 부분은 이때까지 들은 바가 없다.


그저 직장 관계일 뿐이니 알 필요 없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으나,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사적인 대화를 단 한 번도 나눈 적이 없다는 건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지 않은가? 다른 것도 아니고 항상 붙어 다니는 감독과 수석코치의 사이인데.


가끔 밤에 서로 술잔을 기울일 때도 마찬가지, 역시나 대화 주제는 철저하게 일에 관련된다. 다음 시즌의 팀 운영 계획이나 선수 평가, 그저 업무의 연장선상에 지나지 않는다. 화제를 좀 더 가볍게 돌려보려는 시도를 해보긴 했으나 소득은 없었다.


나름 친밀해졌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지독한 워커홀릭에게서 그 이상을 접근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간혹 그가 인간이 아닌 로봇, 아니면 다른 행성에서 온 존재가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할 때가 있다. 이탈리안과 지내다 보면 그렇게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이는 모습과 행동들이 일반인의 범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스튜어트는 진심으로 감독을 존경하고 있지만, 아마 죽을 때까지 그와 소소한 대화를 나눌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기회는 전혀 생각지 못한 때 찾아왔다.


“이틀 뒤 알렉스의 결혼식이로군.”


감독은 흰색 바탕에 황금색 리본 그림이 예쁘게 그려진 카드를 한 손에 들고 면밀히 관찰하듯 살펴보며 말했다. 며칠 전에 알렉산더 캐리가 구단 내에 돌렸던 청첩장이다.


“적절한 시기를 잘 골랐어. 안정적인 가정이 생겨나면 더 성숙해지기 마련이고, 선수로서의 재능도 활짝 꽃피우는 경우가 많지. 지금 시기에 인생의 반려자를 맞이하는 건 그 녀석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거야.”


보통은 순수하게 결혼만을 축하해주는 게 정상일 텐데, 그는 언제나 모든 걸 일과 연관 짓기를 좋아한다. 어찌 보면 이게 그 나름대로의 축하 방식일지도 모르겠지만.


“동기부여를 받기에도 그만이지. 당장 저번 경기만 해도 알렉스가 정말 미친 듯이 뛰어다니지 않았나? 달콤한 보상을 받기 위해서 말이야.”


캐리가 베르더 브레멘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품고 있긴 했지만, 그를 날뛰게 만들었던 동기는 하나 더 있었다.


그 독일 팀과 내일 붙을 러시아 팀을 상대로 좋은 활약을 보여준다면 남은 프리시즌 경기 명단에서 제외하고 신혼여행을 위한 열흘간의 휴가를 부여해주기로 한 것이다.


정말 그다운 생각이다.


훈련 참여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결혼한 뒤 바로 팀에 복귀하는 선수들의 사례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거래일 수도 있겠다.


“만약 보상을 못 받았다면 도리어 알렉스의 의욕이 확 꺾여버렸을 수도 있었죠.”


“닐, 나를 너무 매정한 사람으로 보는군. 그런 조건을 내걸기는 했지만 사실 말뿐이었지, 결과가 어떻든 보내줄 생각이었어. 일생에 한 번뿐인 신혼여행이잖나?”


웃으며 대꾸한 이탈리안은 청첩장을 다시 책상 옆쪽에 놓으며 말했다.


“어차피 알렉스가 없을 때의 대비책도 시즌을 들어가기 전에 체크해 둘 필요가 있었거든. 그 한 명만 빠져도 공격 전개가 풀리지 않는 작년의 문제점에 다시 골머리를 앓을 테니.”


이런 식이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대화로 시작되었다가도 어느새 보면 화제는 다시 일 얘기로 돌아와 있다.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니었기에 스튜어트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피식 웃고 말았다.


‘이런 부분에서는 참 일관적인 사람이야.’


본래대로면 이후 두 사람은 논의를 계속 이어가거나 멈추고 하던 일을 하거나 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네는 아직 결혼을 안 했나?”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날아오자 스튜어트는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직 안 했습니다. 약혼자는 있습니다만.”


“그렇다면 머지않아 식을 올리겠군. 그때가 되거든 알려주게.”


“예······. 감독님은 안 하십니까?”


예상치 못한 일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여 대화를 더 이어나가고자 넌지시 던져본 말이었다.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일에만 치중된 생활 패턴, 손가락에 없는 반지 등으로 유추해 볼 때 배우자가 없을 거라는 추측은 쉽게 할 수 있었다.


평소 같으면 말을 다른 쪽으로 돌려버렸을 감독이었지만, 이번에는 스튜어트를 한 번 짧게 쳐다보더니 확실한 답변을 해주었다.


“글쎄, 두 사람이 함께 인생을 설계해나가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군.”


“감독님처럼 일에 열정적인 분일수록 안식처가 더욱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 부분이라면 걱정할 것 없네. 축구가 곧 내 안식처이니.”


농담조로 하는 말 같지만 일밖에 모르는 저 인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스튜어트는 사랑의 힘이 위대하다고 믿는 쪽이었다.


“그래도 그건 일과 겹치니 한계가 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곁에서 힘을 실어줄 사람이 존재한다면 더욱 든든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독신인 걸까? 스튜어트가 감독에게 궁금한 부분 중 하나였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겉모습은 딱히 모난 데가 없다. 훤칠한 체격과 말끔한 신사의 풍모 덕에 인상만으로도 호감을 안겨줄 수 있는 조건을 갖췄으며, 말투와 손짓 등 모든 면에서 차분함이 배어있어 중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람이다.


또한 이탈리아 남자가 로맨틱하다는 말도 제법 유명하지 않던가?


“틀린 말은 아니지. 허나 내 생각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법 아니겠나?”


감독이 말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내 일과는 대부분 훈련장과 여기 사무실에서 이루어지지. 사실상 이곳이 내 숙소나 다름없어. 그리고 관심사는 오로지 로스 카운티, 여기서 설계해놓은 뼈대를 완성해나가는 작업뿐이야. 다른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네. 연애 또한 포함해서 말이지.”


“······.”


“그래서 나와 함께하는 숙녀들은 결국 불행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을 거야. 난 결혼에 썩 어울리는 사람이 못 되네.”


“······예.”


누군가에게는 심각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 것을 짧게 웃는 얼굴로 대답하는 감독을 보며 스튜어트는 간신히 대답을 받아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지금도 머릿속에서는 전술 보드의 자석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을 것만 같은 남자에게 가정적인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테니 말이다. 그는 감독으로서는 멋진 사람이어도, 연인으로는 결격 사유가 많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그가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이 쉽게 상상되지도 않지만.


“뭐, 인간관계라는 게 대부분 그렇지. 까다롭고 피곤한 일이야.”


감독이 말했다.


“전술은 분석과 연구에 투자하는 시간만큼 결과물을 확실하게 얻을 수 있고, 오차 범위 또한 좁혀들게 마련이거든. 하지만 인간관계는 그렇지 않아. 오랜 시간이 흘러도 예측 못 한 변수가 나타나기도 하지.”


“그렇다고 할 수도···있기는 하지만······.”


“그로 인한 감정 소모도 적지 않고 말이야.”


감독의 표정은 왜인지 한층 더 어두워져 있었다.


“만일 내가 팀을 이끌어야 하는 이 직업을 택하지 않았다면 아마 집구석에 파묻혀서 서적과 함께 지내는 삶을 살았겠지.”


“······.”


“다만 감독의 위치에 있을 때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야. 이곳에서 인간관계란 곧 선수 관리를 뜻하는 거니까. 자네에게도 저번에 말한 적 있었지? 선수들은 제각기 다른 인격을 가지고 있기에 대하는 방식이 같아서는 안 된다고.”


······또다시 일 얘기로 돌아와 있다.


하지만 스튜어트는 나름 기분이 괜찮았다.


그렇게 길지도 않고 깊지도 않았지만, 안토니오 델 레오네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또 그와 이런 대화를 나눌 날이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스튜어트는 다시 작성하고 있던 보고서로 눈을 돌렸다.


*******


“후우······.”


모두가 떠난 라커룸에 덩그러니 혼자 남은 스콧 보이드가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통보를 받은 뒤 하루가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훈련 내내 여러 생각이 복잡하여 집중도 되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이해는 가······.”


다만 제대로 된 사고조차 할 수 없었던 어제와 달리 조금은 냉철하게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을 비롯하여 현 로스 카운티의 수비진을.


대니 패터슨.

처음엔 미숙하고 실수가 제법 잦았지만 경험을 쌓아나갈수록 점차 안정적인 모습으로 변해갔다. 후반기에는 자신보다 더 단단한 수비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 서투르던 시기에도 유독 돋보였던 체격 조건과 공간 커버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이제는 완벽하게 레귤러 멤버로 자리 잡고 있다.


감독이 그에게 수비 라인 컨트롤을 맡긴 이유도 그의 지능을 믿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최후방에서 중심이 되어야 빠른 발의 장점을 살릴 수도 있다.


폰투스 얀손.

솔직히 놀랐다. 이적해 온 지 며칠 안 되었음에도 엄청 빠른 적응력을 보여주는 데다가, 분데스리가 공격수를 꽁꽁 묶어내는 맹활약까지 펼쳤다. 그 패터슨보다도 더 큰 신장을 지니고 있어 위압감이 보통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는 저돌적인 성향이 강하다. 달려들기보다 공간을 채워서 안정적으로 플레이하길 좋아하는 패터슨과는 완벽히 반대되는 타입. 그렇기에 오히려 이 둘의 호흡만 잘 맞는다면 정말 최고의 콤비가 될 가능성이 있다.


“젠장, 둘 다 체격이 괴물이구만.”


생각에 잠겼던 보이드가 쓴웃음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183cm가 작은 신장은 아니긴 하지만 189cm와 196cm하고 비빌 깜냥이 되나.


그런 장신임에도 발까지 빠른 그 둘에 비교하면 자신은 확실히 많이 뒤처진다. 감독이 했던 말들은 전부 옳다. 그렇기에 그 선택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팀이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한 거니까. 발전하려면 누군가는 희생할 수밖에 없는 거니까.


그러면서도 두어 달 전에 스코티시 컵을 들어 올리며 기뻐하던 자신의 모습이 계속 아른거린다.


“하아······.”


다시금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와 같은 시기에 입단했던 2007년 동기 숀 맥킬롭은 작년 프리시즌 방출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불명예스럽게 팀을 떠나야 했다.


올해 프리시즌에는 자신이 그 뒤를 따를 차례인가?


“스콧, 아직 안 가고 거기서 뭐 해?”


누군가의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리차드 브리튼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이제 가려고. 주장은 왜 다시 돌아왔어?”


“놓고 간 게 있어서.”


브리튼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캐비닛으로 걸어가 핸드폰을 주머니에 챙겼다.


“이걸 두고 갔거든.”


“칠칠찮기는.”


보이드는 웃는 얼굴로 핀잔을 던졌다. 하지만 복잡한 심경 때문인지 그의 웃음은 힘이 없어 보였다. 브리튼은 그걸 보더니 조용히 옆에 앉았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일은 무슨······. 그런 거 없어.”


“없는 표정이 전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알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랑 에이든이 조용하게 있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


“오늘 훈련 때도 네 모습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어. 대체 무슨 일인데?”


보이드는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부인하려다가 이내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브리튼을 마주 보았다.


“나 방출 통보받았어.”


그리고 그 얘기를 듣고 멍한 얼굴이 된 주장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진짜야.”


사실을 고백하니 나머지 얘기들을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보이드는 어제 있었던 일들을 전부 브리튼에게 털어놓았다.


“글쎄다. 난 방출 통보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장난해? 출전 기회를 더 이상 줄 수 없다는 게 그 말이지, 뭐겠어? 강제로 내보내지 않을 뿐, 이건 권고사직이나 다름없잖아.”


“감독님은 남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며? 너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있는 거 아닐까?”


“그거야 보험 같은 용도로 생각해서겠지. 주전이 부상당하면 당장 내보낼 믿음직한 수비수가 없게 될 테니까.”


“벌써 네가 주전에서 밀렸다고 생각하는 거야?”


“감독이 그렇게 얘기했는걸. 내가 경쟁력이 딸린다고 말이야. 그래도 날 존중하고 싶으니까 제 발로 떠날지, 벤치에 썩어있을지 선택권을 주겠다잖아? 정말 기뻐서 눈물이 날 정도로 과분한 대우라니까, 그치?”


푸념을 늘어놓다 보니 말투가 점점 감정적으로 변해갔다. 보이드는 이렇게라도 말을 해야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몰라, 이제 하루 지났는데 어떻게 바로 정해?”


“제안이 온 구단 중 가고 싶은 데가 있어?”


“아니, 형은 내가 떠나기를 원하는 거야?”


“그런 건 아니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볼 필요는 있지. 우리는 프로잖아?”


“······.”


“어떤 부분이 너에게 제일 이득인지, 그걸 전부 따져보고 어디에 가장 마음이 가는지 명확하게 파악해야 선택을 할 수 있지 않겠어?”


“아, 예······. 거 냉철한 모범 답안 감사히 새겨듣겠습니다?”


보이드는 빈정거리는 투로 대꾸했다. 자신이 믿고 따르던 형이 이렇게 차갑게 얘기할 줄이야. 마치 어제의 감독을 보는 것 같아 더욱 서운할 지경이었다.


“······없어. 잉글랜드에 갈 생각도 없었고, 스코티시의 다른 팀으로 가서 로스 카운티와 적으로 마주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애초에 여기를 떠난다는 생각을 꿈에서라도 해본 적이 없다고.”


설령 작년에 전문가들의 전망대로 강등되었더라도 팀을 위해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승격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뛰었을 것이다.


그토록 애정 넘치는 팀이 2위로 시즌을 마감했고, 올해는 더 큰 목표를 향해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쉽게 떠날 수 있단 말인가.


보이드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양 손바닥을 보았다.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다. 여기에 남으면 그 짜릿한 느낌을 다시 받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만일 올해 스코티시 컵이 아니라 프리미어십 리그 트로피를 손에 쥘 기회가 찾아온다면······.


“네 생각이 그렇다면 남는 쪽으로 해.”


“······이때까지 얘기를 뭐로 들었어?”


“스콧, 너야말로 안일한 거 아니야?”


브리튼이 말했다.


“네가 당연히 주전이라 생각하고 있던 거잖아? 그리고 새로운 이적생 하나 왔다고 벌써부터 밀려났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고.”


그 말을 듣자 보이드는 순간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팀이 강해지려면 경쟁은 필수야. 사실 네가 그동안 편한 쪽에 속했을 뿐이지. 다른 데를 둘러봐봐. 감독님이 부임한 뒤로 경쟁은 꾸준히 이루어져 왔어. 그로 인해 팀이 강해질 수 있었고.”


후반기까지 벤치에 앉는 것도 힘들었던 알렉산더 캐리와 그가 주전이 되고 나서 선발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한 대런 케틀웰.


팬들의 숱한 비난 속에서도 계속 중용되던 앤드류 톰슨을 각고의 노력 끝에 밀어내면서 주전을 차지한 에드빈 데 루어.


팀 내 최다 득점자임에도 불구하고 요앙 아르킨, 에이든 딩월과 끊임없는 경쟁을 해야 했던 잭 마틴 등.


경쟁은 이곳저곳에서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물론 어떤 마음인지는 이해해. 넌 여기에 가장 오래 머물러 있는 선수고, 그동안 쭉 주전으로 뛰어왔으니까.”


브리튼이 말했다.


“하지만 나도 계속 이 팀의 주전으로 뛰어왔어. 그리고 멈칫하는 순간 그 자리를 다른 녀석에게 뺏길 거라 생각하고 있지. 더 이상 여기에 부동의 주전이라는 건 없는 거야.”


“······.”


“뭐, 얘기만 들어보면 감독님은 네가 결국 경쟁에서 밀려난다 생각하는 거 같지만.”


브리튼은 그렇게 말하더니 보이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예상을 네가 깨버려. 아직 새파랗게 젊은 녀석들에게 아무것도 안 하고 백기를 들 셈이야? 7년 차 베테랑의 힘을 보여주라고.”


그 말 때문인지 어깨에 느껴지는 손 덕분인지는 몰라도 보이드는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팀의 주장으로서 내가 해줄 말은 이 정도뿐이야. 선택은 네 몫이지.”


브리튼은 그렇게 말하고는 일어서서 가방을 챙기고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형으로서 말하자면.”


그러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한 마디 덧붙였다.


”난 네가 남아줬으면 좋겠어.”


“······”


그렇게 말한 브리튼은 손등을 가볍게 들어 보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쳇, 결국 이렇게 말해줄 거면서.”


혼자 남은 보이드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뒤늦게 중얼거렸다.


작가의말

..이건 늦어도 너무 늦어버렸네요. 죄송합니다.

다시 연재 속도를 되찾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프준 님

메롱이군 님 

pzpzpskfu 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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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17 41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872 42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35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881 35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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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27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973 42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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