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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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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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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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세 번째 선수 (2)

DUMMY

감독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한 손으로 턱을 쓸어내렸다.


“스르나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천천히 되물었다. 아서 마틴에게 계속 아낌없는 신뢰를 보내주었던 그였지만 방금의 발언에는 의혹을 품을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그만큼 ‘다리오 스르나’라는 이름은 결코 가볍지 않다.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의 주장이자 샤흐타르의 살아있는 전설, 그런 위상을 얻을 자격도 충분한 실력까지 갖춘 선수.


발칸 반도를 비롯해 유럽 내에서도 무시 못 할 유명세를 지닌 이 라이트백이 과연 정상 무대에서도 좋은 활약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건 골수 축구팬들에게 있어 항상 흥미로운 주제 거리가 된다.


그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세계에서 손꼽는 풀백으로 이름을 떨칠 것이라 평가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 정도는 아니라면 신비주의로 인한 거품이라고 혹평하는 이도 있었다.


중요한 건 고작 변방 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그 정도의 논란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그럴 만도 한 게 그는 디나모 키예프가 리그를 독식하던 시절에 샤흐타르가 그걸 양분해 먹을 수 있도록 도운 주역 중 하나이며, 우크라이나의 어떤 팀도 달성해 본 적이 없는 유로파 우승까지 이끌었다.


2010/11 시즌에는 같은 조에 속한 아스날을 누르고 1위에 등극, AS 로마를 물리치고 8강 진출을 하는 데 큰 공적을 세우며 챔피언스 리그 베스트 11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런 활약을 바탕으로 잉글랜드의 첼시와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 등 쟁쟁한 구단에서 열렬한 구애를 하기도 했으니 논쟁이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어쨌든 곱슬머리 스카우트는 그런 거물에게 지금 이름도 생소한 선수를 갖다 붙이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 인식이 중요하다니까.”


마틴은 투덜거리며 다시 한번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래요, 제가 좀 오버하는 걸 수도 있어요. 약간 극적인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거든요. 근데 아주 틀린 말도 아닌 게 현지에서는 비슷한 평가를 받고 있어요. ‘스르나가 일인자라면, 델샤드는 이인자의 위치에 있다.’ 이런 식이죠.”


“현지 반응이 그렇던가?”


“네, 그쪽 리그에서는 제대로 인정받는 분위기에요. 보르스클라 팬들 중에는 자기 팀의 선수가 정말로 샤흐타르 풀백에 뒤처질 게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제가 감독님에게 동유럽 쪽 스포츠통역사를 지원 요청한 적 있었잖아요?”


“그랬지.”


“그게 현지 반응을 알아보기 위함이었거든요. 스칸디나비아 쪽은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으니까 소통에 큰 어려움이 없는데 여기 말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죠. 어지간하면 비용이 만만찮으니 통역사는 안 쓰려 했는데 왠지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물론 여기서도 센터백을 찾는 게 주요 목적이었으니까 오해하지는 마세요!”


청년의 주절거림을 보며 감독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 선수는 어떻게 알게 된 건가?”


“마침 거기 도착했을 때 샤흐타르와 보르스클라의 경기가 잡혀 있었어요.”


마틴이 대답했다.


“그리고 거기서 보르스클라가 1 : 0으로 샤흐타르를 잡아내고, 견고한 수비를 보여준 그 선수가 MVP를 수상했죠. 우연을 넘어 운명이란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때부터 관심이 갔고,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어요.”


“좋아, 다른 건 각설하고······.”


감독이 팔짱을 끼며 의자 등받이에 편한 자세로 기대었다.


“이 선수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군. 나도 점점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마틴은 기다렸다는 듯 가방에서 다른 파일을 하나 또 꺼내어 감독에게 내보였다. 먼저 꺼내놓은 델샤드의 프로필보다 더 두꺼워 보였다.


첫 장에는 보르스클라 폴타바의 년도 별 순위와 성적이 기록되어 있었다.



=============================

00/01 - 12위(강등 위험)

26경기 5승 6무 15패


01/02 - 11위

26경기 6승 7무 13패


02/03 - 11위

30경기 8승 8무 14패


03/04 - 14위(강등 위험)

30경기 6승 9무 15패


04/05 - 14위(강등 위험)

30경기 8승 6무 16패

=============================



“너무 깊이 파고들 필요는 없고, 2000년대 기록부터 살펴볼게요.”


스카우트가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어가며 말했다.


“본래 보르스클라는 10승은 버겁고, 10패가 넘어가는 게 기본이었던 전형적인 하위권 팀이었어요. 2002년까지는 리그 팀이 14개였고, 이후에 16개로 늘어났거든요. 두 팀이 강등되는 구조니까 이 순위들만 보면 잔류도 간당간당한 수준이었던 거죠.”


“예전의 로스 카운티로군.”


“어쩌면 더 심각하죠. 로스 카운티는 감독님이 오기 전에 5위를 해본 적이라도 있었잖아요. 이 팀은 중위권으로 올라간 이력이 없었어요.”


하나하나 짚어가던 마틴의 손가락이 다음으로 내려갈 때 두어 번 두들기며 해당 년도를 강조했다.


“그런데 웬걸, 2005년부터 이 팀의 순위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해요.”



=============================

05/06 - 10위

30경기 9승 10무 11패


06/07 - 9위

30경기 9승 12무 9패


07/08 - 7위

30경기 10승 11무 9패


08/09 - 5위(유로파 진출)

30경기 14승 7무 9패

=============================



“2006년에는 10패를 벗어나고 2007년에는 10승을 달성하더니 2008년에는 5위까지 올라서며 유로파 예선 진출까지 해내죠.”


“흠, 비약적인 발전인데?”


“그렇죠? 강등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하위권에 지나지 않던 팀이 갑자기 몇 단계는 올라간 성적을 내기 시작했으니까요. 그 원인이 뭐였을까요?”


마틴의 손가락이 다시 선수의 프로필로 옮겨갔다.


“보르스클라가 달라지기 시작한 2005년, 이때가 바로 아메드 델샤드의 입단 년도예요.”


“호오.”


팔짱을 끼고 있던 감독의 한 손이 다시 턱으로 올라갔다.


“흥미롭긴 하다만, 그 선수의 존재가 팀의 성적을 변화시켰다는 근거론 조금 부족한 것 같은데.”


“동의해요. 하지만 아직 더 설명 드릴 게 남았어요.”


마틴은 이어서 다시 다음 시즌들을 가리켰다.



=============================

09/10 - 10위

30경기 6승 13무 11패


10/11 - 6위(유로파 진출)

30경기 11승 10무 9패


11/12 - 8위

30경기 9승 13무 8패


12/13 - 12위

30경기 8승 7무 15패


13/14 - 8위

30경기 10승 12무 8패

=============================



“지금까지 이 기록들을 보면 순위 외에 한 가지 특징이 두드러지는데요. 전체적으로 무승부가 패배보다 많은 시즌이 늘어났다는 거예요.”


“비기는 횟수가 많은 건 실점이 줄었거나 득점이 저조했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하위권에서 올라온 위치로 보았을 때 전자에 가깝겠군.”


“맞아요. 보르스클라는 예전부터 쭉 화력이 강한 팀이 아니었어요. 딱히 수비가 단단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러니 계속 아래에 머물러 있었겠죠.”


“그런데 델샤드가 합류하고 나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확실해요. 2012년을 보세요. 델샤드 입단 이후 유일하게 10위 아래로 내려가서 12위를 기록하고, 15번의 패배까지 기록했죠? 이 부분에 대해 알아봤더니 그 선수가 전반기에 큰 부상을 당해서 거의 5개월을 나오지 못한 시즌이었어요.”


“자네 얘기대로라면 정말 그럴 수도 있겠는걸. 확실히 이 한 명이 빠지자마자 패배가 많아졌고, 다음 시즌에 다시 안정을 되찾은 느낌이야.”


“그뿐만이 아니에요. 더 확실한 게 있어요.”


마틴은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다음은 델샤드 기준으로 분석한 경기 데이터에요. 다른 나라에 갔을 때도 인터넷을 통해 보르스클라의 경기를 빼놓지 않고 찾아봤었거든요. 비중이 있는 경기는 직접 관전했고요.”


뒷장에는 경기의 간략한 분석 내용과 델샤드의 개인 기록이 통계 형태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걸 올해 시즌 경기별로 다 작성해두었으니 프로필보다 훨씬 두꺼웠던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공중볼 경합 성공 횟수, 태클 성공 횟수, 일대일 대결 승리 횟수 등 다양한 형태로 나뉘어 세세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대부분의 기록들이 높은 수치로 돋보였다. 마틴은 그걸 하나씩 짚어가며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이 부분을 보세요.”


설명에 취한 청년은 한껏 신이 난 목소리로 페이지를 빠르게 넘겨 마지막 장을 가리켰다.


보르스클라 진영 기준으로 왼쪽, 중앙, 오른쪽, 그리고 페널티 박스 바깥 정면 지역을 사각형으로 구분하여 나누어놓은 통계 자료였는데 사각형 안에는 각각 숫자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 숫자는 이 팀이 실점했을 때 어떤 영역이 문제의 원인이었는지 혹은 가장 큰 책임이 누구에게 있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일일이 체크해서 적어놓은 거예요.”


마틴은 세트피스 실점의 경우 마크 대상을 놓친 선수의 본래 포지션에서 실책한 것으로 간주하여 계산했으며, 수비수가 아닌 쪽에서 놓친 경우는 따로 제외했다고 덧붙였다.


“페널티 바깥 부분 실점이 제일 많다는 건 이 팀의 수비 보호가 부실하다는 의미죠. 그다음으로 많은 데는 왼쪽이에요. 뭐, 사실 이런 것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여기, 오른쪽이 가장 숫자가 적죠?”


보르스클라의 작년 시즌 총 실점은 46개, 그중 오른쪽은 8개로 유일하게 한 자리 숫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아래에 적어놓은 퍼센트는 전체 실점 횟수를 합산해서 낸 비율이에요. 숫자만으로도 알아볼 수는 있겠지만 좀 더 직관적으로 보려고요. 오른쪽 실점률을 보시면 17%로 혼자 20%를 넘기지 않고 있어요.”


“과연 그렇군.”


“더 재밌는 건 이 선수가 오른쪽에서 뛰지만은 않았다는 거예요. 다른 선수들까지 따로 계산해보진 않았지만 델샤드가 오른쪽으로 출전했을 때의 실점은 총 5개뿐이에요. 확률로는 11%밖에 되지 않는 거죠.”


감독은 눈썹을 치켜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마틴의 말에 깊이 빠져든 모습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른 시즌의 경기도 찾아보고 싶었는데 그건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래도 운 좋게 2011년도 유로파 예선전은 구할 수 있었어요. 프랑스의 생테티엔을 만나서 팀은 결국 탈락하긴 했지만 거기서도 델샤드는 돋보이는 수비를 보여줬어요.”


“한 마디로 안정적인 수비를 구사하는 풀백이라 보면 되겠나?”


“그게 강점이긴 한데, 제가 쭉 지켜본 바로는 수비만 할 줄 아는 선수는 아니에요. 자주 올라가진 않아도 오버래핑 타이밍이 매번 괜찮은 데다가 크로스 궤적도 형편없지는 않더라고요. 작년 시즌에는 2골과 3개의 도움을 기록했어요.”


“그래? 그 정도면 만족스러운 수준이지.”


“발도 느린 편은 아니고요. 우리 선수로 따지면, 음······얀손에 준하는 스피드를 지녔다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적어도 감독님이 패터슨을 오른쪽에 넣고 공격을 포기할지, 샌더스를 넣고 뒷공간 노출을 걱정해야 할지 머리를 앓는 고민을 덜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말에 감독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 부분만 해결되어도 훨씬 나아지긴 해.”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 선수의 최대 장점은 악착같은 대인마크 집중력, 거기서 나오는 탄탄한 수비. 그리고 다재다능한 유용성이에요.”


“다재다능한?”


“아까 말씀드렸죠? 오른쪽에서만 뛰지 않는다고요. 이 선수는 양쪽 발을 다 쓸 줄 알아요. 따라서 레프트백도 가능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중앙 수비까지 소화할 수 있어요.”


“그건 상당히 솔깃한 부분인데?”


“그렇다고 그게 어중간하지도 않아요. 후반기에 다시 샤흐타르와 만났을 때는 레프트백으로 출전했었는데 팀은 지긴 했지만, 그 경기에서 더글라스 코스타는 제대로 꽁꽁 묶였죠.”


더글라스 코스타(Douglas Costa)는 여러 거물급 클럽에서 계속 눈독 들이고 있는 샤흐타르의 핫한 우측 윙으로 빠른 발과 현란한 드리블을 주 무기로 삼고 있는 선수다. 그 이름은 워낙 유명해서 이탈리안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주 포지션이 아닌 왼쪽으로 뛰면서 코스타를 봉쇄했단 말이지?”


“당시 그 윙어의 컨디션이 좋은 편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걸 생각해도 대단한 활약이었죠.”


“자네가 적극 추천하는 이유가 하나둘씩 수긍이 되는 것 같네.”


감독은 그렇게 말하며 책상 옆에 바르게 접어놓은 신문으로 눈을 돌렸다. 바로 보이는 기사에는 큰 제목으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미네이랑의 비극, 독일에게 7 : 1의 처참한 스코어로 무너져버린 브라질’



어제 자 월드컵에서 일어난 대참사. 브라질은 이 경기로 인해 4강전에서 탈락하며 그들의 홈에서 명예를 잃은 건 물론이고, 엄청난 수모까지 겪고 말았다.


“천하의 브라질이 자기네들의 안방에서 독일에게 일곱 번씩이나 골을 내준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주전 수비의 이탈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보고 있더군. 나도 그 점에 공감하고 있어.”


브라질은 이 경기에서 팀의 주장이자 핵심이었던 치아구 시우바(Thiago Silva)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단치(Dante)가 대신 출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 또한 좋은 수비수이긴 했으나 시우바가 가진 리더십과 영향력을 따라가지는 못했고 결국 팀원들과 함께 사기가 흔들리며 대참사에 일조하고 말았다.


“리 월리스가 만일 부상으로 빠졌을 때의 대안이 있는가, 이 문제도 마냥 넘길 수 없는 부분이긴 했어.”


감독이 말했다.


“바실라스를 내보낸 지금, 그가 빠지면 당장 고든 스미스가 대타로 나와야 하거든. 그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썩 달가운 일은 아니지. 수비에 균열이 생기면 우리 또한 어떠한 경기에서 비극을 겪게 되지 않으리란 법도 없고 말이야. 장점은 알겠고 단점은 뭐가 있지?”


“짐작하시겠지만 언어 문제가 가장 크겠죠. 그래도 워낙 프로다운 선수라 금세 적응해낼 거라 생각해요. 그 외에는 나이가 있어서 오랜 기간을 뛸 수 없다는 정도겠네요. 재작년에 겪은 장기간 부상 이후 무릎이 불안정하다는 우려도 있긴 하지만 작년엔 잔부상 몇 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경기를 다 소화했어요.”


“장점을 생각하면 감수할 만한 단점들이군.”


“그래서 제가 이때까지 수집한 라이트백 리스트 중에서는 단연 최고로 꼽고 싶어요.”


마틴이 말했다.


“현지 보르스클라 팬들이 괜히 그를 수비 핵심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물론 최소 실점이라든가 하는 거창한 기록은 없어요. 하지만 그 팀을 위로 끌어올린 건 아메드 델샤드, 이 선수가 제대로 한몫했다고 볼 수 있죠.”


“그러나 골을 넣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으니 결국 팀은 중위권이 한계였고, 이런 활약이 무색하게 유로파 티켓을 따낸 건 고작 두 번, 그마저도 일찍 탈락했으니 주목받을 기회가 없었던 건가?”


“국가대표팀도 알바니아였으니 크게 두드러지지 못했죠.”


마틴이 대답했다.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우크라이나에서는 전혀 다른 위상을 가지고 있어요. 유로파도 힘겨운 중위권 팀의 풀백이 스르나 다음 가는 선수로 평가받는 것만 봐도 그렇잖아요? 그쪽에서는 디나모 키예프나 메탈리스트 같은 곳에서 영입 제의를 한 적도 있다고 들었어요.”


“근데 이적을 거부했나?”


“보르스클라를 적으로 마주 하고 싶지 않다면서 거절했다 하더라고요.”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 리그 진출도 노려볼 수 있는 팀을 마다하다니, 정신적으로도 훌륭한 선수로군.”


“제 생각엔 델샤드의 존재가 다른 스카우트 눈에 안 들어왔을 것 같진 않아요. 하지만 대형 구단에게 매력적인 대상은 아니겠죠. 굳이 이 선수에게 도박을 거느니 조금 더 지출해서 검증된 상위 레벨의 선수를 구입하는 게 나을 테니까요.”


“그 아래 단계 구단에서는?”


“글쎄요, 정말 모르고 있거나 제안을 했는데 이미 실패했거나 둘 중 하나겠죠. 하지만 지금은 다른 데서 노리고 있을지 몰라요. 데려오려면 그 전에 빠르게 결정하셔야 할 거예요.”


마틴은 감독이 하는 것처럼 팔짱을 낀 채 턱을 어루만지며 무언가 생각에 빠진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


“사실 원래는 매물이라기보다 그림의 떡이었죠. 이 선수는 보르스클라의 핵심을 넘어서 터줏대감 같은 존재이니까요. 저도 처음엔 개인적인 관심으로 시작한 조사였거든요. 마치 포켓몬 도감에 정보를 수집하는 정도로 생각했을 뿐이었어요.”


청년이 계속 말했다.


“그런데 그도 이제 은퇴 시기가 다가오니 한 번 더 유럽 대항전 무대를 밟아보고 싶은 모양이에요. 뭐, 그건 부수적인 이유고 지금 서로 간에 사소한 갈등이 살짝 빚어지고 있는 상태에 있나 봐요.”


“사소한 갈등?”


“구단에서는 그가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센터백으로 뛰어주길 바라고, 선수는 여전히 오른쪽에서 뛰고 싶어 하는 거죠. 작년에 델샤드가 8경기를 센터백으로 출전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었어요.”


“무슨 얘기인지 알겠군.”


“이러한 이유로 그가 떠날 가능성이 만들어졌고, 구단에서도 새로운 세대를 육성하는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터라 보내줄 마음이 있는 모양이에요. 내부 이적은 원치 않아서 우크라이나를 아예 떠나겠다고 했으니 우리에게도 기회가 온 거죠.”


“확실한 정보인가?”


“동유럽에서 철수할 때 연락망을 만들어뒀거든요. 현재 이별 단계를 밟고 있다고 했어요. 현지 뉴스에서는 거의 오피셜로 뜨고 있고요. 아무튼 우리가 유로파 예선만 잘 뚫어서 조별 리그까지 진출하면 그를 설득하는 데 많이 유리해질 거예요.”


“좋아, 예상 가격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지?”


“계약 만료가 일 년도 안 남아서 보스만 룰로 이적료 없이 협상할 수는 있겠지만 겨울까지 기다려야 하고 다른 곳에서 가로채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겠죠. 지금은 42만 파운드(약 7억 원), 좀 더 값을 치른다면 60만 파운드(약 10억 원)까지는 고려해야 할 것 같아요.”


“저렴하지는 않군. 하지만 알아볼 가치가 충분하다는 건 알겠어. 그 전에 어느 정도의 선수인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데.”


“당연히 그것도 준비해왔죠.”


마틴은 그렇게 대꾸하더니 가방에서 몇 장의 CD 묶음을 꺼내놓았다.


“작년 우크라이나 상위권 팀과 붙은 경기하고, 제가 몇 가지 엄선한 경기를 녹화한 자료에요. 이것만 보셔도 파악할 수 있으실 거예요.”


“역시 자네는 최고야.”


감독은 미소를 지으며 경기 자료를 받아들었다.


“어쨌든······우크라이나 리그의 두 선수는 꽤 닮은 점이 많아요.”


마틴이 말했다.


“스르나는 2003년, 델샤드는 2005년에 입단해서 지금까지 팀의 대들보로, 주장으로 활약해왔어요. 그들이 입단한 시기와 맞물려서 팀의 수준이 올라간 것도 똑같고, 온갖 제안을 마다하며 팀과의 의리를 지켜온 것도 그렇고. 하지만 한 명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반면, 한 명은 잘 알려지지도 않은 선수가 되었죠.”


“······.”


“물론 스르나는 도움왕까지 기록한 적도 있는 특급 풀백이에요. 델샤드가 그런 것까지 따라 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전 각각의 능력을 따로 놓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 그가 크게 밀리지 않을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해요. 두 선수의 위치를 판가름한 건 단순히 실력뿐 아니라 운이 개입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샤흐타르와 보르스클라······뭐, 그럴 수도 있겠지.”


살짝 눈을 감은 채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얘기를 듣고 있던 감독이 고개를 들어 마틴을 보았다.


“자네는 미리 앞서 확신하지는 못 한다고 했었어. 확률로 따진다면 어느 정도 되겠나?”


마틴은 잠깐 생각하는 표정을 짓다가 눈을 마주 보며 대답했다.


“솔직히 가능성은 반반이에요. 하지만······제 판단을 믿기에 80%는 된다고 말씀드릴게요!”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스카우트가 준 CD를 집어 들고는 천천히 살펴보면서 말했다.


“그러면 나머지 20%는 내가 직접 확인하면 되겠군.”


작가의말

끄읅......늦어서 죄송합니다.

주3회 올리겠다고 했는데 또 이렇게...딴짓하고 그런 건 아닙니다 ㅠ 

당장 제가 확실하게 약속드릴 수 있는건 연중을 안 하겠다는 점밖에 없는 것 같네요..그래도 점차 속도를 붙이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언제나 제 글을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이렇게 또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뉴욕하늘 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_ _)


아아, 그리고 힘나는 추천글을 써주신

격화가 님

정말 감사 드립니다! (_ _)


독자분들덕에 항상 기분좋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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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19 41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874 42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37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883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13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28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974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25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52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36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185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259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36 50 29쪽
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32 39 24쪽
180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45 50 24쪽
179 179. 지상 최고의 팀 +5 23.05.07 1,332 50 27쪽
178 178. 승부욕의 화신 +3 23.04.22 1,260 50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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