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시스템
[ 로스 카운티는 갈 길이 한참 멀어요. 유로파 본선으로 가기 위해서는 몇 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죠. 이틀 뒤에 그 첫 경기를 치러야 합니다. 그들이 과연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요? 전 이에 대해 약간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
[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죠? ]
[ 중요한 일전을 눈앞에 두었음에도 이 팀은 준비가 덜 된 상태에 있으니까요. 이번에 스타드 렌으로 이적한 요앙 아르킨은 거의 팀 공격의 8할을 책임지던 선수였습니다. 의존하고 있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죠. 그런 그를 떠나보냈음에도 제대로 된 보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아르킨이 없는 로스 카운티가 제 화력을 낼 수 있을까요? 대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할 겁니다. ]
[ 하지만 잭 마틴이 팀에 남아 있지 않습니까? ]
[ 득점 감각이 좋은 공격수인 건 맞지만 사실 그뿐이에요. 그는 팀의 선두를 이끌 수 있는 타입이 아닙니다. 아르킨의 공백을 완전히 메워주지는 못할 거예요. ]
국내 스포츠 채널을 다루는 Scottish Sports는 올해부터 리그 팀들을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토론하는 프로그램, ‘Scottish Football Day’를 편성하여 방송에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프로그램 진행자는 스티브 맥멀런(Steve McMullen).
모티브는 영국 최대의 공영 방송사 BBC에서 진행하는 EPL 전문 분석 프로그램, Match of the Day. 스코티시의 스포츠 방송 관계자들은 전문 패널들을 초빙하여 잉글랜드 리그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그 방송을 볼 때마다 부러워하곤 했었다.
진작 도입이야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만한 명분이 없었을 뿐이었다. 언제나 셀틱이 다 해먹는 구조에 전술이라는 것도 전무하다싶은 이곳 수준에 그런 방송을 편성하기라도 하면 비웃음만 사게 될 테니.
하지만 이번에 그 결심을 확고히 할 수 있었던 건 스코티시 내부에서 불고 있는 바람을 그들도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로스 카운티와 하이버니언처럼 전망이 어둡기만 하던 팀들이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며 상위권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게다가 이탈리안 감독을 내내 괴롭혔던 하이버니언 감독, 스티브 클라크는 로스 카운티와 앙숙 관계인 인버네스 CT의 사령탑에 앉았다. 이 둘의 관계는 잠깐이나마 챔피언 셀틱보다 더 뜨거운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이 타이밍을 결코 놓치면 안 될 기회라고 말해주고 있다.
스코티시 리그의 판을 더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계기를 만들어준 로스 카운티가 첫 방송에서부터 비판의 타깃이 되어 있었는데 일회성 패널로 출연한 브리티시 축구 평론가, 그레이엄 파커가 유로파 예선 경기를 앞두고 쓴소리를 늘어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로스 카운티의 주전 공격수 세 명은 저마다 뚜렷하게 할 일이 나뉘어 있었죠. 아르킨은 궂은일을 하며 최전방을 장악하려 애썼고, 딩월은 전방위로 폭넓게 움직이며 아래 지역에서부터 공격의 물꼬를 틀어주었습니다. 그 둘이 판을 깔아놓으면 마틴이 후반에 투입되어 마무리를 하고요. ]
[ 그 둘이 없으면 활약하기가 어렵다는 말씀이시군요. ]
[ 마틴은 그저 벤치에 대기하고 있다가 아르킨의 힘, 딩월의 체력을 상대하느라 지친 수비를 요리하기만 하면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딩월만으로는 그를 보조해주기 어려울 겁니다. 공격진에서 가장 큰 균형추를 지니고 있던 건 아르킨이었으니까요. 그의 부재는 공중볼과 포스트플레이 등 예전에 강점이라 할 수 있던 무기를 송두리째 잃어버린 셈입니다. ]
[ 심지어 아르킨은 마틴이 해주던 득점의 몫까지 어느 정도 가능한 선수였죠? ]
[ 그게 왜 팀 내 최다 득점자를 서브로 끌어내리고 주전을 꿰찰 수 있었는지 알려주는 부분이죠. 델 레오네 감독도 분명 이 점을 모르고 있지 않을 텐데 왜 이 부분을 소홀히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레프트백 다음으로 가장 시급한 포지션이라고 볼 수도 있을 텐데요. ]
[ 듣고 보니 의아합니다. 그동안 사용해왔던 공격 패턴을 포기라도 하려는 걸까요? ]
[ 대체자를 못 구하는 건지 안 구하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한 건 이대로 갈 경우 작년의 저력은 보기 힘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결국 전술 수정이 불가피해지겠죠. 하지만 로스 카운티의 전력을 고려해서 가장 최적으로 확립된 시스템을 굳이 건드려야 할까요? 그런 도박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
[ 확실히 그렇겠습니다. 이번에······예선에서 붙게 될 상대는 카르파티인데요. 로스 카운티로서는 그렇게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닌 것 같습니다. ]
[ 우크라이나 리그에서 하위권 전력으로 평가받지만, 로스 카운티는 사실 그보다 더한 팀이었죠. 그들이 급부상한 건 불과 일 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카르파티는 2010/11 시즌에 이미 유로파 진출을 경험한 적 있고요. 결코 만만하게 보면 안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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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 카운티가 작년에 환상적인 활약으로 리그 2위까지 올라서며 유로파 진출권을 따내긴 했으나 사실상 이제 시작일 뿐이다.
예선과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비로소 본선에 진출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당장 이번에 치를 2차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면 진짜 유로파 무대는 밟아보지도 못하고 끝난다.
구단과 딩월시의 사람들은 본선 진출을 절실히 바라고 있었지만, 그 외에는 냉혹한 시선뿐이었다. 스코티시에서야 어느 정도 괜찮았겠지만, 세계무대에 진출할 정도는 못 된다는 평가와 함께.
돈에 민감한 스코티시 도박꾼들도 그들의 나라를 대표하는 팀보다는 우크라이나 팀에 베팅하는 걸 선택했다.
그들이 로스 카운티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Scottish Football Day의 그레이엄 파커가 했던 주장과 대부분 동일했다.
“요앙 아르킨이 떠난 지 벌써 한 달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로스 카운티는 아직도 그를 대신할 공격수를 물색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델 레오네 감독은 정말로 딩월과 마틴만을 믿고 갈 생각인가?” - 칼럼니스트 ‘데이브 히긴스(Dave Higgins)’ -
“그쪽 팬들은 당장 리 월리스의 이름값과 세리에 A에 갈 뻔했던 센터백을 데려왔다는 사실만 보고 기뻐하기 바쁘지만 나라면 걱정부터 들 것이다. 이탈리아인들은 대체적으로 수비에 집착이 심하다. 로스 카운티의 감독도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공격진이 부실하다는 작년의 문제점을 덮어두고 수비수만 수집하고 있지 않은가?” - 전 인버네스 CT 선수 ‘이안 맥도날드(Ian McDonald)' -
“아르킨을 지켜냈다면 모르겠는데 왜 그를 팔아놓고 수비만 보강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누차 얘기하지만 어린 선수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작년은 아르킨이 중심에 있었기에 그만큼 버틸 수 있던 겁니다. 이번 시즌에는 로스 카운티의 패턴을 분석해서 파훼법을 들고나오는 팀들도 적지 않을 거예요. 근데 지금 그들이 이적 시장을 보내는 모습을 지켜보니 굳이 그런 공략을 찾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 축구 전문가 ‘마이클 포드(Michael Ford)’
“방패를 단단하게 드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창이 있어야 전투에 임할 수 있죠.” - 축구 평론가 ‘그렉 코너(Greg Con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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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EFA Europa League 2차 예선, 1차전>
카르파티 리비우 vs 로스 카운티
2014년 7월 17일 (목) 19:45
아레나 리비우 (관중 수 : 5,545명)
“창은 개뿔이. 그냥 방패로 패고 있구만.”
조지 맥도넬은 잔을 닦으며 조소를 담은 목소리로 비아냥거렸다.
그가 보고 있는 중계 화면에는 코너킥 찬스에서 강력한 헤더를 꽂아 넣은 스콧 보이드가 포효를 내지르며 필드를 달리고 있었다. 단순히 골을 넣어서만이 아니라 무언가 속에 쌓여있던 걸 폭발시키기라도 하듯 격한 감정에 젖어 있는 모습이었다.
이로써 두 번째 득점이다.
처음부터 쉬운 게임은 아니었다. 동유럽 변방의 무대, 우크라이나까지 날아가서 피로와 시차 적응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경기를 시작한 로스 카운티 선수들은 제 컨디션을 보이지 못했고, 이렇다 할 공격하나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되레 카르파티에게 위험한 장면을 두어 번 내주기도 하였다. 하나는 등 뒤로 패스를 허용했지만, 끝까지 잘 붙어준 대니 패터슨이 몸으로 슈팅을 막아내었고, 하나는 골대를 아슬아슬하게 빗나가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전반 32분, 이적생 리 월리스가 페널티 박스 왼쪽 외곽 부분에서 찬 날카로운 땅볼 슛이 키퍼의 손을 피해 들어가면서 분위기가 역전되었고, 38분인 지금 보이드가 추가 골을 넣으면서 완전히 로스 카운티의 흐름으로 넘어온 것이다.
월리스와 보이드, 두 명의 수비수가 두 골을 기록했으니 방패로 팼다는 표현이 그야말로 적절하지 않은가?
“전문가랍시고 설쳐대는 놈들이 이번 결과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지 궁금한데, 안 그래?”
이때까지 로스 카운티에 대한 평가에 뭐라고 반박은 못 했지만 기분이 계속 언짢아 왔던 맥도넬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상황이 통쾌할 수밖에 없었고 같이 시청하고 있던 해리 윌슨에게도 동조를 구하고자 했지만,
“흐음······. 하지만 조지, 마틴이 제대로 힘을 못 쓰고 있다는 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어······.”
사실 친구의 말 그대로였다. 전반이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지만 잭 마틴의 모습은 거의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작년에 이 정도로 안 보인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없었다. 두 번씩이나 터진 득점만 보고 기분이 들떴던 맥도넬이었지만 이내 다운되어버리고 말았다. 확실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팀의 전반적인 득점을 책임져줘야 하는 잭 마틴이 이렇게 내내 부진하다면 올 시즌에 로스 카운티는 끔찍한 결과물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선수들이 2년 차 시즌에 부진을 겪는 ‘소포모어 징크스’의 문제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카르파티 수비수들에게 봉쇄당한 것 같은 느낌도 아니다.
“······.”
우습지만 팀이 가동 중인 시스템이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수십 년간 축구를 봐왔던 맥도넬은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다.
“내 생각엔······마틴을 혼자 최전방에 세우는 건 안 맞는 옷을 입히는 것 같아. 그는 파트너가 있어야 힘을 발휘하는 타입이지.”
현재 로스 카운티는 4-3-3의 진형으로 나와 있었다.
그리고 작년 그 시스템의 중심은 아르킨이었다. 4-3-3으로 나올 때 잭 마틴이 기용된 적은 거의 없었다. 교체로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잭 마틴이 필드에 들어갈 땐 다시 4-4-2로 전환하거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투입되거나 했을 뿐이었다.
선발부터 잭 마틴을 최전방에 세운 4-3-3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문가들이 지적한 것도 그 부분이겠지.”
윌슨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로스 카운티는 이번 시즌에 4-4-2가 강제되는 건가?”
“······.”
“마틴이 계속 부진하다면 말이야.”
“글쎄······. 4-4-2만 운용하거나 4-3-3을 쓰기 위해 아르킨을 대신할 선수를······.”
맥도넬은 말을 하다 말고 뒷머리를 쓸어내렸다.
한 가지 포메이션만 들고 시즌을 치르는 건 위험한 일이다. 전술이 하나로 굳어지면 상대 쪽에서도 대응하기 쉽다는 뜻이니까. 로스 카운티는 어떤 상대를 만나도 상관없을 만큼 대단한 전력을 갖춘 팀이 아니다.
작년에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줬다지만 여전히 셀틱보다 약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예전처럼 그저 적당한 순위에 만족할 수 있다면 운용할 전술이 하나밖에 없는 것쯤 아무래도 상관없겠으나 이제는 얘기가 좀 달라졌다.
‘이번엔 우승을 한 번 노려봐야지.’
이탈리안 감독도 그걸 알기에 지금 스쿼드를 이용해서 4-3-3을 유지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 같았지만 지금까지만 봐서는 녹록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결국 비판가들의 말대로 되는 건가?’
그렇지만 말이 쉽지, 아르킨 같은 선수를 또 어디서 구해 온단 말인가? 찾는다 한들 로스 카운티처럼 작은 구단이 감당할 액수로 데려오기나 할 수 있을까?
여전히 침묵 중인 잭 마틴을 보며 맥도넬은 씁쓸한 침을 삼켰다.
후반 68분, 프리킥 찬스에서 알렉산더 캐리가 올린 볼을 헤더로 깔끔하게 마무리한 제임스 블랜차드의 골을 봤음에도 찝찝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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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파티 리비우 1 : 3 로스 카운티 >
리 월리스(32')
스콧 보이드(38')
제임스 블랜차드(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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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바신(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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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많은 분들이 반겨주셔서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열심히 써나가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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