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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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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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8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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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짧게 그리고 빠르게

DUMMY

뤼시앵 파브르(Lucien Favre)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감독이지만 어쩌면 조만간 그 이름을 세계에 널리 퍼지게 할지도 모른다. 현대 축구의 트렌드인 압박과 숨 막힐 정도의 탄탄한 수비를 적절히 섞어낸 듯한 독특한 색깔의 전술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나름 이슈가 될 정도니 말이다. 그의 팀은 불과 개막하기 전만 해도 강등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었지만, 이제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역습 퀄리티를 보유한 팀 중 하나로 거듭났다. 아마 글라트바흐의 유서 깊은 골수팬들은 파브르란 이름을 보면 이제 프랑스의 위대한 곤충학자보다는 스위스 국적의 감독을 먼저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 존 프리먼(John Freeman)의 작년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집중 조명 칼럼’ 중 발췌 -


2010년대에 들어서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의 최대 대항마를 거론한다면 이견의 여지 없이 위르겐 클롭의 BVB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꼽히겠지만,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는 과거에 진작 그런 포지션에 위치했던 팀이었다.


1969/70, 1970/71, 1974/75, 1975/76, 1976/77 시즌 총 분데스리가 5회 우승. 그때는 대항마를 넘어서 명실상부 70년대 분데스리가 최강 팀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후 점점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1999/2000 시즌에 강등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은 뒤로는 승격과 재강등을 반복하면서 그저 그런 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2010/11 시즌에는 강등의 흑역사를 하나 더 추가할 뻔했지만, 가까스로 16위로 마감하며 잔류에 성공했다. 후반기에 경질된 감독을 대신해서 그 극적인 소방수 역할을 해낸 인물이 바로 뤼시앵 파브르다.


그다음 2011/12 시즌에는 무려 4위까지 도약하며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이룩해냈고, 2012/13 시즌에는 11위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2013/14 시즌에 다시 6위로 올라가며 유로파 진출 티켓을 따내는 등의 활약을 보이니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했던 글라트바흐의 팬들이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몇 년 전이였다면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겠지만 이제 그들은 새로운 전성기를 가져오고 있는 파브르의 묀헨글라트바흐가 유로파 리그 우승이라는 전설을 기록하길 고대하고 있었다. 로스 카운티라는 듣도 보도 못한 팀은 그 여정의 첫 제물인 셈이다.


“망했어······.”


대런 코너 단장은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연신 이 말만을 중얼거렸다. 추첨식에 다녀온 뒤로 쭉 이런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사실 그뿐만 아니라 로이 베넷 구단주부터 하여 로스 카운티의 관계자 전부가 그러했다.


클럽 하우스 전체가 어두운 공기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베르더 브레멘도 힘겨웠는데 묀헨글라트바흐라니······.”


작년만 해도 로스 카운티는 베르더 브레멘에게 처참할 정도로 짓밟혔었다.


이번에 톡톡히 설욕해냈다고는 하나 다음에 만나서도 다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있는 상대는 결코 아니다. 게다가 프리시즌이 아니라 정식 시합에서 마주쳤다면, 핵심 선수가 이탈해있지 않은 상태였다면 설욕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만큼 양 팀의 전력은 현저하게 벌어지는 수준이었고, 그것이 UEFA 리그 랭킹 3위의 분데스리가와 23위에 머물고 있는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의 격차라고 할 수 있었다.


오만한 태도를 보이긴 했지만, 그들이 로스 카운티를 업신여겼던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베르더 브레멘이 작년 분데스리가에서는 12위라는 형편없는 성적을 거두었다. 묀헨글라트바흐는 6위고 말이다. 도무지 긍정적으로 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앙제 SCO의 소피앙 부팔 임대 작업이 갑작스럽게 더뎌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플레이오프 추첨식 이후 그쪽에서는 계속 대답을 연기하며 늦장을 부리고 있었다.


유로파 무대를 밟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프랑스 무대에 남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서겠지.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다면 없던 일로 하려 할 테고 말이다. 괘씸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밖에 없는 반응이었다.


어쨌거나 암울하기 그지없는 시나리오로 진행되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묀헨글라트바흐라면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제법 재미있는 시합을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모두가 그렇게 좌절하고 있는 속에서 유일하게 한 명만이 태평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는 대강 익숙한 광경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코너는 답답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재미 문제가 아닙니다. 본선 진출이 불투명해져버렸잖습니까······.”


“뭐, 그렇게 단정 지을 정도는 아닙니다.”


여전히 느긋한 말투의 델 레오네가 대꾸했다.


“아무리 강한 팀이라도 약점은 반드시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혹시 뭔가 묘수를 가지고 계신 겁니까?”


코너는 내심 기대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남자의 태연한 모습 뒤에는 항상 놀라운 결과가 뒤따르지 않았는가? 이번에도 그런 게 있는 게 아닐까?


“묘수라······.”


감독은 그 말에 손가락으로 천천히 책상을 다섯 번 두드리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건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마지막으로 기대를 걸어볼 희망마저 사라지자 코너는 다시 젖은 빨래처럼 축 처지고 말았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시간은 아직 충분하니까요.”


그런 그를 보며 감독이 말했다.


“묘수까지는 아니어도 그들에게 맞설 대응책을 준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저는 상당히 기대되는군요. 서로 흥미로운 시합을 치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


그다지 위안이 되는 말은 아니었다.


이때까지 거둬왔던 성과가 경이로운 수준이긴 하지만, 이번엔 정말이지 차원이 다른 난이도이지 않은가. 냉정하게 보면 스코티시 컵 우승도 묀헨글라트바흐에 빗대어보면 그저 소꿉장난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역시 망했어······.’


코너는 차마 밖으로 내뱉진 못했으나 그렇게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


< 14-15 Scottish Premiership 2 Round >

로스 카운티 : 하이버니언

2014년 8월 10일 (일) 15:00

빅토리아 파크 (관중 수 : 6,117명)



[로스 카운티 / 4-4-2]

FW : 에이든 딩월 / 잭 마틴

MF : 제임스 블랜차드 / 알렉산더 캐리 / 리차드 브리튼 / 에드빈 데 루어

DF : 리 월리스 / 폰투스 얀손 / 스콧 보이드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저 녀석, 점점 성장하고 있는 게 눈에 보여.”


피터 블랙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저 빨빨거리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던 놈이었는데 말이야. 이젠 이런 경기에서 주도를 할 줄도 아는구만?”


“자신감이 붙기 시작한 거지.”


토드 홉킨스가 대꾸했다.


“사실 언론의 농간 덕분에 지나친 비난의 희생양이 되었던 선수였다고 생각하네. 골을 못 넣던 때에도 팀에 기여하는 부분이 분명 있었거든.”


두 사람이 주제를 담아 얘기하고 있는 선수는 에이든 딩월이었다. 경기가 끝나가는 지금 이 젊은 선수의 활약이 가장 돋보였기 때문이다.


저번처럼 사이좋게 네 골을 나눠 가지던 정도는 아니었지만 양 팀은 제법 치열한 승부를 펼쳤다.


첫 득점은 로스 카운티로부터 시작되었는데 하이버니언을 몰아넣고 공세를 펼치던 과정에서 딩월이 순간적으로 벌어진 수비 틈새 안으로 스루패스를 찔러 넣어주고, 박스 안으로 들어가며 그 패스를 받아낸 제임스 블랜차드가 곧바로 낮게 깔아준 볼을 잭 마틴이 마무리하는 정석적인 패스 플레이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하이버니언은 호락호락하게 당해주고만 있지 않았다.


팀 내 최고의 선수이자 FWA 선정 스코티시 올해의 선수로도 선정되었던 리암 크레이그가 예측 못 한 중거리 슈팅으로 동점을 만들었고, 이어 수비수 폴 핸론이 프리킥 찬스에서 헤더 슛으로 승부를 바꾸어놓았다.


후반 81분에 정확히 역전을 당해버린 것이다.


블랙과 홉킨스가 딩월에게 찬사를 늘어놓은 건 그가 첫 득점의 기점이 되는 중요한 패스를 하기도 했고, 90분 내내 지치지 않는 모습으로 필드를 누비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뒤집힌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린 장본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후반에 교체 투입된 대런 케틀웰의 로빙 패스를 받아 들어간 리 월리스의 날카로운 크로스가 박스 안에 들어가 있던 블랜차드의 머리에 닿았고, 키퍼가 한 번은 멋진 선방을 해내는 데 성공했다. 이대로 끝났다면 하이버니언은 값진 승리를 장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지친 기색 없이 매섭게 달려드는 집념의 사나이가 발로 세컨드 볼을 밀어 넣는 것까지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역전패를 당할 위기에 놓여 있던 로스 카운티는 딩월의 동점 골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작년에는 로스 카운티가 역전을 이뤄내고 막판에 하이버니언이 동점으로 종지부를 찍어냈었는데 이번에는 순서가 바뀐 셈이었다.


정작 상대하는 감독은 달랐지만.


“클라크 감독이 천적이었던 게 아니고 하이버니언이 문제였던 건가?”


경기 종료를 앞두고 시계를 확인하는 주심을 보며 블랙이 중얼거렸다.


하이버니언은 로스 카운티에게서 또다시 승리를 내주지 않을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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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 카운티 2 : 2 하이버니언 >

잭 마틴(38‘)

에이든 딩월(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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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암 크레이그(73‘)

폴 핸론(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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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5 Scottish Premiership 3 Round >

해밀턴 아카데미컬 : 로스 카운티

2014년 8월 13일 (수) 19:30

뉴 더글라스 파크 (관중 수 : 3,514명)



[로스 카운티 / 4-4-2]

FW : 에이든 딩월 / 잭 마틴

MF : 제임스 블랜차드 / 대런 케틀웰 / 리차드 브리튼 / 에드빈 데 루어

DF : 고든 스미스 / 스콧 보이드 / 대니 패터슨 / 스티브 샌더스

GK : 마크 브라운



딩월시, 하이 스트리트, 맥도넬의 펍.


“나이스 잭 마티-인!”


조지 맥도넬은 뒤늦게 터진 추가 골에 기뻐하며 주먹을 쥐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저 깔끔한 마무리 좀 봐, 해리!”


그가 여전히 들뜬 목소리로 해리 윌슨을 보며 말했다.


“도대체 나는 이때까지 무슨 축구를 보아왔던 걸까? 예전으로 돌아가서 그 답답했던 공격수들을 다시 보라고 한다면 이제는 도저히 못 할 것 같아.”


“예전에는 어땠는데?”


“응? 아, 그래. 자네는 최근에야 봤으니 잘 모르겠군. 예전엔 말이지. 저런 기회들이 시원시원하게 만들어지지도 않았어. 가뭄에 콩 나듯이 아주 적은 찬스만 얻어낼 수 있었지. 그마저도 허무하게 날려 먹어버린 게 부지기수였고 말이야.”


“수비에만 급급 하느라 저렇게 공격하는 장면이 드물었단 얘긴가?”


“그것도 그렇지만 녀석들의 움직임도 형편없었어. 패스를 받기 위한 움직임 말이야. 난 로스 카운티 정도면 그런 수준인 게 당연한 줄 알았어. 잭 마틴, 저 사랑스러운 공격수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일평생 살면서 로스 카운티의 축구를 보는 게 그의 낙이었지만 맥도넬은 요즘 잘 나가는 팀의 모양새가 너무 즐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처럼 승리를 목전에 둔 상황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첫 번째 득점은 해밀턴의 실수로부터 비롯되었다.


엔드라인에서 길게 올린 데 루어의 크로스를 걷어내려는 과정에서 수비수가 머리를 제대로 갖다 대지 못하며 볼을 뒤로 흘려버리고 말았고, 하필 거기에 블랜차드가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선제골을 시작으로 블랜차드는 종횡무진 활약하며 필드를 누볐고 급기야 이번엔 자신이 크로스를 올리며 잭 마틴의 깔끔한 헤더 골을 이끌어냈다.


“해밀턴 정도로는 로스 카운티를 저지할 수 없지. 무려 2위를 한 팀이라고.”


경기가 종료되자 맥도넬은 흐뭇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아래에서 허덕이던 팀의 지난 과거들이 전부 새하얗게 지워진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이제 막 승격으로 올라온 해밀턴은 적수가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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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밀턴 아카데미컬 0 : 2 로스 카운티 >

제임스 블랜차드(31‘)

잭 마틴(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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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5 Scottish Premiership 4 Round >

로스 카운티 : 마더웰

2014년 8월 17일 (일) 14:00

빅토리아 파크 (관중 수 : 6,065명)



[로스 카운티 / 4-4-2]

FW : 에이든 딩월 / 잭 마틴

MF : 제임스 블랜차드 / 알렉산더 캐리 / 리차드 브리튼 / 앤드류 톰슨

DF : 리 월리스 / 폰투스 얀손 / 대니 패터슨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이전 시합의 승리로 자신감이 오를 대로 오른 로스 카운티는 그 기세를 마더웰전에서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전반 4분의 이른 시간, 코너킥 상황에서 캐리의 예리한 볼이 니어 포스트에서 서성이고 있던 블랜차드의 머리에 정확히 적중하며 그물을 흔들어 내었고, 마더웰도 그에 질세라 비슷한 코너킥 상황에서 동점으로 따라갔다.


하지만 그게 그들의 가장 위협적인 장면이자 마지막 발악이었다.


로스 카운티가 다시 한 점 달아난 두 번째 골은 리 월리스의 오버래핑으로부터 시작된 연계 과정이 돋보였다.


레프트백의 전진 패스를 받은 블랜차드가 등 뒤에서 접근하는 수비를 의식하고 캐리에게 백패스를 전달해주었고, 캐리는 한 템포 이후에 딩월을 겨냥한 날카로운 전진 패스를 찔러주었다.


딩월은 그 볼을 원터치로 건드리며 전진해 올라오던 케틀웰에게 건넸고, 케틀웰 역시 마찬가지로 곧장 발을 갖다 대며 박스 안으로 패스를 밀어 넣어 주었는데,


어느새 박스 안까지 오버래핑해 들어간 월리스가 최종적으로 전달받으며 강력한 왼발슛으로 키퍼의 다리 사이를 뚫어버리는 놀라운 득점을 해낸 것이다.


이 장면으로 인해 마더웰은 거의 전의를 상실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막판에 터진 골 역시 마찬가지로 팀플레이였지만 이번엔 조금 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교체되어 들어온 맷슨 클락의 발로 시작된 패스는 케틀웰과 딩월을 지그재그 형태로 거치며 전달되다가 잭 마틴에게까지 도달했고, 마더웰의 키퍼는 결국 로스 카운티 최고의 골잡이를 저지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짧게, 짧게. 그리고 빠르게 들어가는 플레이가 인상적이야.”


그 모든 걸 지켜본 존 프리먼은 그렇게 감상평을 내렸다.


“예전에도 그런 자잘한 역습 플레이를 안 한 건 아니지만 그게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있는 느낌이군.”


작년 로스 카운티의 공격은 지공이든 역습이든 롱 볼을 기반으로 한 플레이가 주요 패턴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짧은 패스로 빠르게 치고 나가는 게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자주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롱 볼의 빈도가 현저하게 줄어있다. 그 색깔을 단기간에 지워내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이 정도까지 바꿔놓은 건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뛰어난 타겟터이자 핵심 공격수였던 요앙 아르킨이 스타드 렌으로 떠난 이후 많은 이들이 화력이 반감될 것을 걱정했지만 프리먼은 그런 불안함보다 로스 카운티의 공격이 어떻게 변화할지 그 과정에 더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 역시 의문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었으나 남들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로스 카운티의 감독을 특별하게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리먼의 생각대로라면 델 레오네란 인물은 전술의 중심을 잃어버렸다고 쉽게 계획을 놓아버릴 작자가 아니다. 또한 융통성 없이 안 될 전술을 억지로 붙잡고 있을 위인도 아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치러온 경기들을 지켜본 결과, 그 실마리를 어느 정도 찾아낼 수 있었다.


첫째는 수비 라인이다.


“지나치게 내려가 있던 라인이 올라간 건 이제 확실하고.”


개막전에서부터 주목하고 있었던 부분. 거의 박스 부근까지 내려가는 게 일상이었던 로스 카운티가 제법 라인을 올려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하프라인을 넘어설 정도로 높이 올리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상대에게 맞불을 놓는 모양새는 제법 갖춰진 모습이었다.


아마 작년엔 좌우 풀백이었던 니코스 바실라스와 에릭 시코스의 수비 능력이 불안정하다는 점이 컸기에 라인을 내릴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감독이 공격보다 수비진 보강에 열을 올렸던 이유가 어느 정도 설명되는 부분이다.


프리먼은 문득 과거에 조제 무리뉴 감독이 추구했던 전술 철학을 떠올렸다.


‘최후방 라인은 너무 높아서도, 낮아서도 안 됩니다. 항상 30m의 높이를 유지하며 중반 지역에서부터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 내가 강조하는 수비 원칙입니다.’


거의 흡사하다.


“비슷해. 높지도 않지만 낮지도 않은 라인을 유지하면서 상대 팀의 숨통을 조여 나가고 있어.”


그리고 둘째는 윗선 라인의 적극적인 수비 가담.


이건 부임 초기부터 싹이 보였던 부분이기도 하다. 블랜차드와 톰슨, 데 루어가 아래까지 내려오는 넓은 활동 반경을 보여주며 압박에 기여하는 것. 그리고 딩월의 그 누구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미친듯한 체력.


달라진 게 있다면 그 움직임이 더 체계적으로 발달했다는 정도겠다.


올라간 수비 라인과 윗선에서 가해오는 압박으로 인해 나타나는 효과는 샌드위치처럼 양쪽에서 짓눌려버린 중앙 지역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밀집되면서 헤어 나오기 힘든 늪지대처럼 변했다는 점이다.


마치 여기서 끝장을 보자는 느낌이다. 아마 상대 팀의 시점에서는 소름이 돋아서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또 하나 재밌는 사실은 그 승부를 피하고자 허리 단계를 생략하는 롱 볼 축구를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거다.


마더웰이 90분 내내 그런 시도를 했는데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 건 뒷공간을 노리는 족족 얀손과 패터슨이 한발 앞서서 가로채버렸기 때문이었다. 측면도 다를 건 없었다. 마더웰의 양 날개는 바실라스 정도의 수비를 뚫어낼 순 있어도 월리스와 델샤드를 뚫어낼 능력은 갖추고 있지 않았다.


“결국 수비수 보강에 집중한 건 단순히 수비를 견고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어. 더 공격적인 진형을 만들기 위해, 라인을 올리기 위해 그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던 거야.”


프리먼은 그 결론에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앞서 두 개의 특징을 기반으로 만들어낸 압박 형태로 볼을 빼앗고 나면 역습을 시작하는 지점이 상대 진영에 가까운 경우가 많아진다. 작년처럼 밑에서부터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길게 차 넣을 필요가 없어지고, 상대 수비 전열이 가다듬어지기 전에 습격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본래 로스 카운티의 역습 형태가 롱 볼로 한 번에 넘어가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짧고 빠른 템포로 들어가는 숏 카운터가 주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박스 안을 촘촘하게 메워놓지 못한 수비진을 상대로 잭 마틴은 충분히 득점을 해낼 수 있는 선수다.


“애초에 의도한 건지 아르킨의 이탈로 급격하게 수정한 계획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오히려 공격이 더 깔끔하고 화려해진 것 같아.”


그리고 신나게 타자를 두들기던 프리먼의 손가락이 순간 멈췄다.


“잠깐만······이것 봐라?”


자신이 쭉 기록해놓은 글을 읽어 내려가던 그는 무언가를 발견한 듯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거 파브르가 구사하는 축구와 제법 유사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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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 카운티 3 : 1 마더웰 >

제임스 블랜차드(4‘)

리 월리스(63‘)

잭 마틴(88‘)

+++++++++++++++++++++++++++++

헨리 아니에르(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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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씨가 진짜 인간적으로 너무 살인적인 더위인것 같습니다.

살면서 이런 더위는 처음 겪어보는 것 같네요.

독자분들도 폭염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pps90 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_ _)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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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8

  • 작성자
    Lv.78 초장
    작성일
    18.07.24 23:52
    No. 1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8 맘속
    작성일
    18.07.25 00:33
    No. 2

    잘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1 화렌화이트
    작성일
    18.07.25 00:46
    No. 3

    룰루랄라~~ 순위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은색의왕
    작성일
    18.07.25 01:48
    No. 4

    잘 봤어요//바르셀로나 세얼간이 시절에 보여주던 티키타카에 가까운 형태의 운영을 추구하는 것인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5 아히야
    작성일
    18.07.25 02:20
    No. 5

    펩의 바르셀로나가 전세계 축구계에 티키타카라는 센세이셔널한 붐을 불러일으킨것처럼 게겐프레싱 역시 클롭의 도르트문트가 주축이 되어 탄생한 일종의 전술 트렌드입니다.
    본문에서 언급된것처럼 하이라인-강한 압박-숏카운터라는 핵심적인 특징들로 대표되며 파브르 감독 역시 묀헨에서 이런 고강도-하이템포의 축구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며 1415시즌 묀헨의 성공을 이끌었죠.
    클롭은 게겐프레싱을 일컬어 가장 뛰어난 플레이메이커, 라고 이야기한바 있는데 이는 전술의 특성상 설령 월드클래스라고 할만한 압도적인 테크니션이 없는 스쿼드라 할지라도 매우 강력한 공격력을 보여주는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언급한대로, 숏카운터는 그 자체로 매우 위협적인 공격전개니까요.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높은 수비라인으로 인한 불안한 뒷공간+초고강도의 압박전술로 인해 체력적인 과부하가 걸리기 쉽다는 단점이 있는데, 작가님이 굳이 무리뉴를 언급한걸 보면 게겐프레싱의 약점을 적절히 보완할 수 있도록 어느정도 수비라인과 압박강도, 템포를 조절한 형태로 팀을 운용할 모양이네요.
    알렉산더 캐리의 존재 덕분에 게겐프레싱의 약점을 상쇄하는것도 충분히 가능하죠.
    묀헨을 잡을 수 있는 힌트도 이곳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건필!

    찬성: 6 | 반대: 0

  • 작성자
    Lv.95 호르트
    작성일
    18.07.25 11:53
    No. 6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6 샨시아
    작성일
    18.07.28 18:43
    No. 7

    잼있네요 취향저격입니다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0 코끼리손
    작성일
    18.08.27 21:36
    No. 8

    적당한 높이의 라인을 유지하면서
    적당한 전방압박을 시도하는 팀은 많습니다.
    성공하기가 극히 어려워서 그렇죠.
    클롭이나 시메오네가 시대의 명장 소리를 듣는 건
    극단적인 형태로 더 효율 높은 전술을 쓰기 때문이겠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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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198. 대면 +5 24.01.14 800 34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775 42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32 37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21 39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28 41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886 42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47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898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23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38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984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37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63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47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193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273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48 50 29쪽
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42 39 24쪽
180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54 50 24쪽
179 179. 지상 최고의 팀 +5 23.05.07 1,341 50 27쪽
178 178. 승부욕의 화신 +3 23.04.22 1,268 50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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