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예상 밖
< UEFA Europa League Play-off 1차전 >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 로스 카운티
2014년 8월 21일 (목) 19:45
보루시아 파르크 (관중 수 : 46,279명)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 4-4-2]
FW : 막스 크루제 / 하파에우
MF : 파트릭 헤어만 / 그라니트 자카 / 크리스토프 크라머 / 안드레 한
DF : 오스카 벤트 / 알바로 도밍게스 / 마틴 슈트란츨 / 토니 얀치케
GK : 얀 조머
[로스 카운티 / 4-4-2]
FW : 잭 마틴 / 에이든 딩월
MF : 제임스 블랜차드 / 알렉산더 캐리 / 리차드 브리튼 / 앤드류 톰슨
DF : 리 월리스 / 폰투스 얀손 / 대니 패터슨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아무리 스코티시 리그에서 2위를 했다지만, 묀헨글라트바흐는 분데스리가에서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호각세를 벌이며 6위에 올라섰던 팀이다.
상식적으로 따져보면 이번 대결은 일방적인 구도가 예상되는 시합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그들의 수장인 뤼시앵 파브르가 경기 전날 컨퍼런스를 통해 ‘로스 카운티는 만만히 봐서는 안 될 팀’이라 발언했을 때도 그저 립서비스를 해준 것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전반 15분.
절반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보루시아 파르크에 모인 홈팬들은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치열하게 진행되는 경기를 보고 나서야 생각을 어느 정도 바꿔야 했다.
전망대로라면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눌러놓아도 이상할 게 없는 그런 상대인데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결정적인 공격 장면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대부분 볼이 중앙에서 맴도는, 하지만 그럼에도 지루할 틈을 느낄 새가 없는 그런 양상.
양 팀은 어느 것 하나 쉽게 물러서려 하지 않고 있었다.
키퍼의 간단한 골킥으로 시작된 볼조차도 서로 랠리를 이어나가려는 것처럼 머리에서 머리로 맞받아치는 등 양쪽 진영이 대치한 중앙 영역은 치열한 전쟁터의 그것이었다.
둘 다 무게 중심이 수비에 맞춰져 있었지만, 그건 뒤로 물러섰다기보다는 상대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위한 사냥 자세에 가까웠다. 누군가가 볼을 잡는 즉시 그 주변으로 거침없는 압박과 몸싸움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그렇게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공방전의 연속으로 선수들의 이마에는 이른 시간에 벌써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그라니트 자카는 가장 비 오듯이 땀을 흘리고 있는 선수 중 하나였다.
‘도대체 이건 뭐 하는 녀석이야?’
전체적으로 보면 많은 부분이 엉성하다.
위협적으로 들어갈 뻔했던 전진 패스를 받지 못하고 자기 뒤꿈치에 맞히면서 우스꽝스럽게 놓쳐버린 형편없는 터치나, 강력하게 날아가긴 했지만, 너무 강력한 나머지 관중석 위로 터무니없이 쏘아 올린 중거리 슛이나,
기본기부터 해서 판단력도 썩 좋아 보이지 않는 흔한 삼류 수준이다.
그런데 자카는 이 미숙하기 짝이 없는 선수에게 계속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경기 시작부터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는 시종일관 그를 못살게 굴고 있는 것이다.
무슨 놈의 체력은 이렇게 좋은지. 묀헨의 수비진이나 다른 선수를 압박하러 달려나갔다가도 어느새 돌아보면 등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는 모습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의 동료, 작년 시즌 분데스리가 활동량 1위에 빛나는 크라머에 비견해서도 전혀 꿀리지 않는 수준의 폐활량을 지닌 것 같았다.
그런 까닭에 자카는 평소처럼 원하는 플레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앞쪽으로 몇 번의 좋은 패스 길이 보였었지만 그럴 때마다 이 징그러운 17번이 매번 앞을 가로막아 섰기 때문이었다. 볼을 빼앗기거나 하는 치명적인 실수는 없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이미 피로가 쌓여가는 기분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 거머리 하나를 겨우 떨쳐냈다 싶으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선수가 적극적으로 압박해 온다.
상대 팀은 그를 작정하고 침묵시키려는 듯했다.
자카는 다시 한번 약간의 피곤함을 느꼈다.
*******
“아직까지는 잘 먹혀들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닐 스튜어트 코치가 말했다.
“독일 원정이니만큼 이대로 점수를 유지하는 것도 나쁠 건 없겠습니다만······.”
그리고는 필드를 한 번 더 쳐다보더니 살짝 고개를 내저으며 감탄을 자아내는 사람처럼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확실히 저쪽 수비가 엄청나네요. 도무지 틈새가 보이질 않는 것 같습니다.”
상대에게 잘 대응하는 모양새인 것 같지만 그건 묀헨글라트바흐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견고한 수비는 이때까지 위협적인 장면 하나를 선뜻 내주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로스 카운티는 아직도 그들에게서 유효 슈팅 하나를 건져내지 못했고 말이다.
“유럽에서 손꼽히는 수비 조직력을 갖춘 팀이야.”
감독이 대꾸했다.
“하지만 저토록 빈틈이 없는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지. 이건 나름 기쁘게 받아들여도 될 일이라네, 닐. 우리 팀이 서서히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니까.”
이탈리안은 그렇게 말하더니 손가락으로 캐리 쪽을 가리켰다.
“우리가 자카에게 마크를 붙여놓은 것처럼 상대 또한 같은 수를 써 왔다는 게 보이나? 하파에우는 평소대로 내려오고 있지만, 알렉스가 편하게 볼을 잡을 수 없도록 계속 붙어주는 데 열중을 하고 있지.”
이번엔 묀헨글라트바흐의 좌우 측면을 가리켰다.
“그리고 묀헨은 측면에 평소와 다른 흥미로운 라인업을 들고 나왔어. 이번 여름에서 영입해 온 안드레 한을 오른쪽에 두었다는 점이야.”
안드레 한(Andre Hahn)은 작년 시즌 분데스리가의 FC 아우크스부르크(FC Augsburg)에서 8위 돌풍을 이끈 주역으로 활약하며 파브르 감독에 눈도장을 받아 묀헨글라트바흐로 이적해온 선수다.
“물론 이 선발에 딱히 문제 될 건 없지. 그는 쭉 라이트윙에서 뛰어왔으니까. 하지만 재밌는 건 마찬가지로 오른쪽 위치에서 주로 뛰던, 저 팀의 핵심 선수 파트릭 헤어만을 굳이 왼쪽으로 옮겨놓았다는 것이네.”
파트릭 헤어만(Patrick Herrmann)은 2008년에 묀헨으로 입단하여 지금까지 공격을 이끌고 있는 팀의 에이스라 할 수 있었다.
“이 두 선수는 꽤나 비슷하지. 기동성이 무척 뛰어나고 적극적인 성향에 걸맞은 지구력까지 갖췄으니까. 하지만 왼쪽에는 이미 저번 겨울 시장에 호펜하임에서 자유 계약으로 데려온 페이비언 존스가 있지. 첼시에서 임대해 온 토르강 아자르의 존재도 있어. 그런데 굳이 이렇게 나올 필요가 있었을까? 왜 상대는 이렇게 나왔을까? 자네는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나?”
“어······음······.”
갑작스레 날아온 질문에 스튜어트는 작은 신음을 흘리며 답변을 찾아내려 애썼다.
“헤어만이 좌측에서도 적게나마 몇 번 뛰었던 이력이 있어서일까······요? 상대는 최대한 스피드를 장점으로 한 공격으로 우리를 상대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려면 저 두 명을 내세우는 것만큼 위협적인 게 없을 테고요.”
“전문 왼쪽 날개를 따로 두고서 말인가?”
“그러게 말입니다.”
그 말에 스튜어트는 볼을 긁적였다.
“아무래도 그 두 선수의 공격 능력에 아직 확신을 가지지 못해서가 아닐까 합니다만······. 그들은 안드레 한과 달리 아직 그렇게 뚜렷한 활약을 펼친 적은 없으니까요.”
안드레 한이 작년 아우크스부르크에서 32경기를 뛰고 12골 9어시스트를 기록한 반면, 페이비언 존슨(Fabian Johnson)은 27경기에 5어시스트만을 기록했을 뿐이었다. 토르강 아자르(Thorgan Hazard)의 경우는 29경기 9골 14어시스트를 기록하긴 했으나 그건 벨기에 리그의 줄테 바레험에서 만든 수치이고, 대부분이 중앙 2선에서 뛰어왔기에 왼쪽 미드필더로의 가능성은 아직 점검이 필요한 시기다.
이 사항은 회의 시간에 다 공유했던 정보들이고 스튜어트는 그 부분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일리가 있는 얘기야. 어느 정도는 자네의 의견에 동의하네.”
감독의 대답이 긍정적으로 들려오자 속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상대의 의도는 뚜렷해. 그들에게 익숙한 수비 형태를 구축하고 기동력이 뛰어난 선수들을 이용해서 배후를 노리려는 거지. 존슨이나 아자르, 이 둘도 그렇게 느린 선수는 아니지만, 확실히 오늘 나온 두 날개에 비하면 뒤처지는 게 사실이고, 자네 말대로 공격적인 부분에 아직 검증이 덜 되었다는 걸 무시할 수는 없을 거야.”
이탈리안이 팔짱을 낀 채로 필드를 주시하며 말했다.
“양쪽 다 역습에 능숙한 팀. 이런 구도에서는 자칫 어설프게 공격을 나갔다가 한방 얻어맞을 우려가 큰 법이지. 만약 상대가 우릴 얕잡아봤다면 강하게 몰아붙여 왔겠지만 정말 치밀할 정도로 가운데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려는 걸 보면 섣불리 나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야.”
“저는 이 정도로 신중하게 대응해 올 줄은 몰랐습니다.”
“나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군. 묀헨글라트바흐 정도 되는 팀이 스코티시 약체 전력을 앞에 두고 이토록 냉철함을 유지할 수 있다니. 어지간해선 베르더 브레멘 친구들처럼 거만하게 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야. 상대 감독이 괜히 독일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게 아닌 듯하네.”
이번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로스 카운티가 집중한 훈련은 철저한 수비를 바탕으로 상대가 들어오는 즉시 맞받아치는 역습 패턴. 당연히 묀헨글라트바흐가 자신들의 홈에서 공격적인 수를 들고나올 거라는 판단하에서였다.
분명 분데스리가 하위권 팀을 상대로는 과감한 플레이도 할 줄 알던 그들이 오늘 경기에서는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건 경기의 비중이 워낙 중요한 것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로스 카운티를 만만하게 보고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튜어트는 내심 기분이 좋으면서도 갑갑함이 곁들여진 감정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감독이 말을 이어나갔다.
“헤어만을 좌측에 배치한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닐 거야.”
그의 손가락이 다시 필드를 향했고, 이번엔 로스 카운티 진영의 오른쪽 측면을 가리켰다.
“아마 저 녀석 때문 아닐까?”
“앤드류 말씀이십니까?”
스튜어트의 물음에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창 리그를 진행 중인 우리와 달리 분데스리가는 아직 개막도 하지 않았어. 그게 최대의 변수라고 할 수 있지. 묀헨글라트바흐는 프리시즌만으로 감각을 올리는 중이고, 상대 감독은 새로운 이적생을 파악할 시간이 좀 더 필요할 테니까.”
그가 계속 말했다.
“그런 면에서 헤어만은 최고의 믿을맨이겠지. 감독이 부임하기 전부터 저 팀에서 뛰어왔고, 또한 감독의 철학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선수니까. 안드레 한이 왼쪽을 소화할 수 있었다 해도 헤어만이 저쪽에 배치되는 건 변함이 없었을 거야. 그 또한 이제 막 올 시즌에 합류한 선수이니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지.”
“근데 앤드류 때문이라고 하시는 건······.”
“자네가 지금 예상하는 그대로야. 저 녀석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아닐까 하는 게 내 생각이네. 그걸 수행하는 데 있어서 전술 이해도와 스피드가 뛰어난 헤어만보다 더 적격인 인물은 없을 테니까.”
이탈리안은 오른손으로 왼손에 있는 손목시계를 고쳐 잡더니 스튜어트를 보았다.
“알렉스는 작년 후반기에 겨우 자리를 잡았을 뿐이고, 앤드류는 자료를 살펴보았을 때 고작 2어시스트의 기록밖에 없는 형편없는 선수에 지나지 않아. 묀헨은 정보도 빈약하고, 얼핏 보기엔 그렇게 비중이 클 것 같지도 않은 이 두 선수를 가장 크게 경계하고 있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나?”
“······.”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거야. 앤드류가 준족이라는 것도, 알렉스가 우리 팀의 빌드업 리더라는 사실도. 상대가 우리를 철저하게 분석해왔다는 거지. 단순히 겉만 핥은 게 아니라 작년의 영상 자료들을 수없이 파헤쳤을 게 분명해.”
그때 감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탄식이 뒤섞인 함성으로 경기장이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상황을 보니 하파에우와 막스 크루제, 두 명의 공격수가 주고받는 패스 플레이를 하며 박스 안을 파고드는 시도를 한 것처럼 보였는데 묀헨팬들의 탄식이 나온 건 그사이를 얀손이 과감하게 들어가 끊어낸 까닭이었다.
이후 볼은 로스 카운티의 속공으로 이어졌다.
얀손에서 월리스로 전달된 볼은 이어서 중앙의 캐리에게 도달했고, 캐리는 한방을 노리는 로빙 패스로 뒷공간을 뛰어 들어가는 잭 마틴을 겨냥했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철저하게 잭 마틴을 마크하고 있던 알바로 도밍게스(Alvaro Dominguez)의 머리를 지나치지 못했고, 볼은 다시 솟아오르며 자카 쪽으로 향했다.
회심의 역습이 허무하게 저지되는 순간이었지만 경기장의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기 시작했다. 가만히 서서 볼을 기다리던 자카에게로 딩월이 몸을 던지듯 날아오르며 먼저 머리로 가로챘기 때문이었다.
다시 주인이 바뀐 볼은 브리튼의 발에 떨어졌고, 브리튼은 크라머의 키를 넘기는 로빙 패스로 좌측에서 올라가고 있던 블랜차드에게 정확히 전달해주었다.
크라머는 그 볼을 끝까지 따라가며 빼앗으려 했으나, 블랜차드 역시 그의 적극적인 돌진을 예상했는지 곧장 머리로 다시 중앙의 딩월에게 연결했다.
블랜차드의 패스를 받은 딩월은 볼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발을 갖다 대며 측면의 월리스에게 전달했고, 월리스 역시 그 흐름을 유지한 스루패스를 앞쪽으로 넣어주었다.
그 신속한 콤비네이션 플레이로 묀헨은 어느새 수비 틈을 파고들어 간 블랜차드에게 허를 찔리고 말았다.
“9번 놓치지 마!”
수비진들이 다급히 외쳤고, 블랜차드는 좌측을 완벽히 허물며 파고들어 갔으며, 잭 마틴은 도밍게스를 순간적으로 따돌리며 앞으로 달려 들어갔다.
여기까지는 좋은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로스 카운티의 예리한 골잡이보다 한 발 더 빠르게 나오며 낚아챈 얀 조머(Yann Sommer) 골키퍼에 의해 블랜차드의 크로스는 아쉽게 무산되고 말았다.
그리고 득점 찬스를 기대하며 가만히 서 있던 월리스는 뜻밖의 상황을 보고서는 당황하며 외쳤다.
“맞다, 크라머!”
블랜차드가 공격을 나가게 되면 크라머를 마크하는 이가 없게 되고, 이때는 월리스가 일시적으로 붙어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키퍼의 손을 떠난 볼은 곧장 노마크로 서 있는 독일 미드필더에게 연결되었고, 그의 패스는 월리스를 뚫고 지나가 전방의 하파에우를 거친 뒤 빠른 속도로 오른쪽 측면까지 전개되었다.
그러니까 로스 카운티의 왼쪽, 리 월리스가 오버래핑하면서 비워둔 공간에.
거기로 안드레 한이 무섭게 질주하며 하파에우의 스루패스를 받기 위해 달리고 있었다.
촤아악 -
하지만 누군가가 미끄러지듯 태클을 들어가 볼을 바깥으로 내보냈고, 간발의 차로 늦은 한은 그 선수 위를 뛰어넘으며 아쉬운 듯 머리를 감싸 쥐고 말았다.
“휴우, 하마터면 엿 될 뻔했네.”
그리고 그 태클을 날린 알렉산더 캐리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천천히 일어났다.
*******
“저 상대 감독이 작년에 부임했다고 했었나?”
파브르의 물음에 수석코치 만프레드 스테페스(Manfred Stefes)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벌써 저렇게까지 팀을 짜임새 있게 만들었다는 건가.”
분데스리가에서도 점점 명장의 반열에 들고 있는 파브르였지만, 그런 그조차도 감탄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후반 50분, 스코어는 여전히 0 : 0
아직까지도 로스 카운티는 큰 균열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건 묀헨글라트바흐도 마찬가지였지만.
전반에 양 팀은 예리한 역습을 한 차례 주고받았다. 경기 내내 그런 양상으로 진행되었고 후반에도 다를 건 없었다. 중앙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급습하는 방식.
그 과정에서 옆 그물을 흔들거나, 골대 위를 스치는 등의 아쉬운 장면을 서로 만들어내긴 했지만 이런 형태로는 확실한 득점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행운이 따라주는 게 아니라면.
‘저 팀을 호락호락하게 본 적은 없지만, 생각보다 더 놀라운 수준이군.’
파브르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슬슬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었다.
“이보게, 만프레드. 저기 널찍하게 비어있는 우측 공간이 보이나?”
파브르가 말하는 우측이란 묀헨의 우측을 뜻하는 것이었다.
“예, 보입니다.”
“그래, 상대는 쉽사리 중앙을 내줄 생각이 없어. 그래서인지 정말 기막힐 정도로 대담한 작전을 들고 나왔지. 사실 이건 우리 팀에 대한 도발에 가까운 수준이야.”
턱을 어루만지며 필드를 분석하던 스위스 감독은 냉철한 표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살짝 분하긴 하지만 그 도발에 자존심을 굽힐 여유는 없는 것 같군. 시간에 쫓기는 건 홈에서 경기를 치르는 우리 팀이니까.”
그렇게 말한 그는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빌드업의 중심을 우측으로 옮기도록 하지. 그리고 크리스와 토니에게 좀 더 공격적인 주문을 할 필요가 있겠네.”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던 경기는 크리스토프 크라머와 라이트백인 토니 얀치케를 과감하게 전진시킨 파브르의 수로 인해 흔들리고 말았다.
후반 72분에 벌어진 상황은 블랜차드와 캐리의 압박을 이겨낸 크라머의 측면 패스가 오버래핑해 올라온 풀백에게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얀치케와 하파에우, 그리고 하파에우의 절묘한 뒤꿈치 패스가 침투하는 안드레 한에게 정확히 들어가는 삼각 패스로 월리스가 단번에 무너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한의 예리하게 깔려 들어간 땅볼 크로스는 패터슨을 경합에서 이겨내고 파고든 막스 크루제의 왼발에 걸리며 그물을 흔들어 내었다.
1 : 0
다급해진 건 이제 원정팀 쪽이었다.
후반 75분.
브리튼 대신 대런 케틀웰이 교체로 투입되며 로스 카운티는 좀 더 공격적인 수를 꾀했다.
“이제 다시 안정적으로 진형을 갖추고 끝내도록 하지.”
파브르 측에선 굳이 무리해서 공격할 필요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큰물에서 놀아본 팀과 그렇지 못한 팀의 차이가 점점 극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점수에 쫓기는 로스 카운티의 실수가 점점 잦아지고 있었다.
“침착하게 해! 침착하게!”
스튜어트가 두 손 모아 외치며 선수들을 독려했지만, 플레이오프는 두 번의 기회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시합이지 않은가.
기어이는 월리스가 오버래핑하는 과정에서 안드레 한에게 패스를 차단당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역습이다! 신중하게 대처해!”
묀헨글라트바흐 특유의 역습이 전개되는 것을 보며 스튜어트는 선수들보다 더 흥분한 채로 외쳐댔다.
한에서 하파에우, 뒤쪽의 크라머, 그리고 다시 한에게 연결된 패스가 이번엔 위로 떠 오르는 크로스로 로스 카운티 진영을 매섭게 날아왔다.
‘이건 반드시 끊어내야 해.’
패터슨은 크루제에게 점수를 내준 건 결국 자신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했다. 이걸로 모든 걸 만회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걸 떠나서 이것조차 막지 못한다면 팀의 패배는 명백해지고 자신은 밤잠을 설칠 게 분명했다.
집중력을 발휘해 크루제를 이겨내며 머리로 걷어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패터슨은 이내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볼을 내보낸 쪽으로 있어서는 안 될 인물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라니트 자카가 디딤발을 내디디며 로스 카운티의 골문을 강타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볼이 앞으로 나아가는 소리가 아닌, 장딴지에 충돌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고, 자카는 이번에도 끝까지 쫓아와 기어이 몸으로 슈팅을 막아낸 딩월에게 신물이 나고 말았다.
“이익! 이 자식이 진짜 끝까지!”
딩월을 맞고 나간 볼은 블랜차드에게로 굴러갔다.
그는 달려드는 하파에우의 다리 사이로 볼을 빼내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이어서 빠르게 들어오는 크라머의 태클까지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렇게 다시 뒤쪽으로 구르는 볼을 잡은 선수는 알렉산더 캐리.
이어서 측면으로 길게 전개한 볼은 라인 높이 올라가 있던 델샤드와 함께 볼을 따내려고 뛰어오르는 묀헨 수비의 사이로 날아들었고, 그 공중볼 경합에서 승리한 건 로스 카운티 쪽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간 볼을 잡기 위해 두 명의 선수가 질주하기 시작했다.
한 명은 앤드류 톰슨이었고,
다른 한 명은 그걸 귀신같이 눈치채며 바짝 뒤쫓는 파트릭 헤어만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모두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파······파트릭이······못 쫓아간다고?”
파브르는 예상 범주를 훨씬 벗어나는 장면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스피드로는 분데스리가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그 파트릭 헤어만이 14번 선수에게 조금씩 뒤처지고 있었다.
결국 톰슨이 질주하는 오른쪽 공간은 그를 막아서는 선수가 아무도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내 엔드라인까지 도달한 그의 긴 크로스가 묀헨의 진영으로 날아들었다.
이런 결정적인 상황에서 로스 카운티가 믿고 의지할 만한 해결사는 오로지 한 명이고, 묀헨의 수비수들은 당연히 그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좀 더 타점이 높은 볼은 잭 마틴을 따라가던 도밍게스의 머리를 한 끗 차이로 비껴가며 뒤로 빠져나갔고, 그쪽으로 미사일처럼 쇄도하며 몸을 날리는 선수는 에이든 딩월이었다.
그 강력한 다이빙 헤더 슛은 얀 조머 골키퍼를 꿰뚫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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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 : 1 로스 카운티 >
막스 크루제(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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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든 딩월(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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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번 묀헨글라트바흐 경기는
전개와 분량이 뭔가 모호하여 두개로 나눠야 하나 싶었지만
앞으로 전개할 이야기도 아직 한참 많고(2차전도 있고..),
너무 늦어서 기다리시게 한 것도 좀 그래서
한 회 분량으로 끝내었습니다.
계속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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