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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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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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8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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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23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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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결집하는 마음

DUMMY

“디나모 모스크바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안심할 정도는 아닙니다. 누가 승리를 가져갔어도 이상할 게 없는 시합이었으니까요. 모스크바는 로스 카운티 홈에서도 쉽게 밀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반대로 원정을 갈 차례예요. 냉정하게 따져보면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요?” - 풋볼 전문가 ‘마이클 포드(Michael Ford)’ -


“분명 모스크바 원정은 힘겨운 싸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최근 로스 카운티 선수들이 보여준 정신력과 팀워크를 그곳에 가서도 제대로 발휘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 스코티시 스포츠 해설자 ‘롭 맥케나(Rob McKenna)’ -



모스크바, 아에로스타르 호텔(Moscow, Aerostar Hotel).


아침의 한산한 러시아 거리를 두 사람이 나와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


“에, 에, 에······ 에취!”


“감기 걸린 거 아냐, 에이든? 몸이 안 좋으면 그냥 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 아니에요, 주장. 서리가 코를 가, 간지럽혀서 그랬을 뿐이에요. 추위는 벼, 별로 느껴지지도 않는다고요. 저 완전 멀쩡합니다.”


이빨을 부딪쳐가며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한 딩월이었지만, 오들오들 떨리는 몸까지 감출 수 없다는 걸 깨닫자 이내 체념한 듯 두 팔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으으······ 여기 와서 한파를 겪어보니까 영국 날씨는 정말 별것도 아니었네요.”


“무리했다가 더 심해질 수도 있어.”


“오늘 경기, 중요하잖아요. 여기서 잘못되면 그대로 끝나버리는데.”


여전히 딩월이 몸을 떨며 말했다.


“팀도 지금 어려운 상황이고, 제가 빠질 수는 없어요. 그렇게 심각하지도 않고요. 아직은 거뜬하니까 버틸만해요.”


스코티시 국경을 넘어서 유럽의 수많은 팀과 자웅을 겨루는 유로파 리그.


처음 출전한 팀이 본선 조별 경기를 전부 치러내고 32강 토너먼트까지 올라섰다. 이건 로스 카운티뿐만 아니라, 이 대회 역사의 한 페이지에도 족적을 남길만한 일이다.


그리고 이들은 더 높은 목표에 올라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예전 같았다면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했을지 모르나, 이탈리안 감독의 끝없는 야망과 원대한 포부 속에서 길들여진 선수들은 달랐다.


이미 대단한 성과를 올렸지만, 이를 넘어서 디나모 모스크바를 꺾어낸 뒤 16강 라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픈 의지가 확고했다.


그것을 결정짓게 될 막중한 전투를 앞두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던 두 선수가 아침 일찍 나와서 함께 바깥 공기를 마시고 있던 참이었다.


“우리 팀원들을 못 믿는 건 아니에요. 제가 빠지더라도 열심히 싸워줄 걸 알고 있어요. 단지······ 안 그래도 어려운 시기에 팀을 더 깊은 곤경에 빠뜨리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브리튼은 이에 짧게 웃으며 딩월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래, 네 마음은 알아. 하지만 경기는 이것만 남은 게 아니니까 여기에 모든 걸 쏟아부을 필요는 없어. 난 주장이니까 팀원들의 컨디션을 책임질 의무가 있고. 내가 보기에 뛸 수 없다고 판단되면 주저 없이 감독님께 보고할 거야.”


딩월은 콧물을 훌쩍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호텔로 다시 들어가자. 계속 밖에 있다가는 어쩔 수 없이 보고할 수밖에 없는 사태가 일어날 것 같으니.”


“그······ 그러죠. 지금도 콧구멍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내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에요.”


“잠시만요. 브리튼 선수하고······ 딩월 선수 맞죠?”


두 사람이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누군가가 불러 세웠고, 뒤를 돌아보자 다섯 명의 무리가 반갑다는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거로 봐서는 러시아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경기 응원하러 왔어요! 혹시 사인 좀 부탁해도 될까요?”


원정팬들인 모양이었다.


“아······. 네, 물론이죠.”


딩월과 브리튼은 멋쩍게 웃으며 펜과 종이를 받아들었다. 가볍게 산책하며 머리를 식히려는 목적으로 나왔던 것이긴 하나 로스 카운티를 따라서 여기까지 응원하러 와준 사람들이다.


“오늘 활약, 많이 기대하고 있어요. 모스크바를 상대로 우리 팀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줘요. 당신들이라면 할 수 있을 거예요!”


“최선을 다할게요.”


간단한 사인을 마친 뒤 두 사람은 멀어져가는 팬들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확실히 많이 유명해지기는 했나 봐요.”


딩월이 말했다.


“러시아 길거리에서 우리를 응원해주는 팬들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아직 팬들에게 깊은 애정을 받아보는 게 익숙지 않아 보였다. 작년만 해도 격려보다는 비판과 비난, 그리고 외면을 더 많이 겪었으니. 특히 그 매정한 분위기 속 중심에 서 있던 딩월이었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그만큼 로스 카운티 축구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거겠지.”


브리튼이 대답했다.


“너의 그 넘치는 에너지에 매료된 사람들도 있을 테고.”


“······.”


“오늘, 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 되겠는데?”


딩월은 코를 한번 훌쩍거리더니 브리튼을 보며 웃었다.


“그래야겠어요.”


*******


디나모 모스크바의 라커룸.


“여기는 우리의 홈그라운드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먼저 입을 뗀 것은 디나모 모스크바의 감독, 스타니슬라프 체르체소프(Stanislav Cherchesov)였다.


“1차전에도 우리는 상대를 강하게 몰아붙였다. 페널티 킥이라는 불운 하나 때문에 살짝 골치가 아파졌을 뿐이야. 한 점의 리드 따위는 너희들이라면 손쉽게 뒤집어낼 수 있다.”


단순히 선수들에게 사기를 북돋워 주기 위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이번 경기에 자신이 있었다.


“마티외, 1차전은 부상 후유증 때문에 푹 쉬게 해줬으니까 이번엔 믿어도 되겠지?”


“열심히 뛸게요.”


모스크바는 주자크 벌라주(Dzsudzsak Balazs)와 알렉세이 이오노프(Aleksey Ionov) 등 핵심 공격진이 부상으로 빠져 있는 상태에서 스코틀랜드 원정길을 다녀와야 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방금 대답했던 저 왜소한 체구의 선수야말로 팀의 중심이자 체르체소프가 내뿜는 자신감의 원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8년간 리그 우승을 하지 못하던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를 2009/10 시즌 우승으로 이끄는 데 큰 공헌을 하면서 리버풀, 아스날 등 각종 명문 구단에서 관심을 보였던 선수.


결국 리그 앙에 잔류하여 꾸준한 활약을 한 끝에 8년간 열심히 뛴 공로를 인정받아 구단에서 영구결번까지 지정해주었던 선수.


점차 진행되는 노쇠화에 결국 프랑스를 떠나 모스크바로 이적해 왔지만, 여전히 팀에서 에이스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이 선수, 마티외 발뷔에나(Mathieu Valbuena)가 1차전에 뛰지 않았음에도 경기력이 나쁘지 않았다는 건 오늘 경기의 승산이 높다는 뜻일 테니까.


모든 주전 멤버가 돌아왔는데 설마 홈에서 그들에게 승리를 따내지 못할까?


‘러시아의 혹한이 얼마나 매서운지 보여줘야겠어.’


체르체소프는 로스 카운티가 스코티시라는 작은 연못에서 노닐 줄만 아는 가소로운 물고기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


로스 카운티의 라커룸.


“전략의 대가 나폴레옹도 끝내 실패를 겪었던 곳이 러시아, 여기 모스크바였었지.”


델 레오네가 말했다.


“우리가 홈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거야. 한 점을 내주면 원점이고, 두 점을 내주면 역전이니까. 여유를 부릴 처지가 아님을 명심하도록.”


감독의 말에 선수들은 긴장한 자세로 앉아 경청 중이었다.


“분명 상대는 승부를 뒤집기 위해 혈안이 되어서 달려들 거다. 누가 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가 이 싸움을 판가름 짓게 되겠지.”


늘 그렇듯 이탈리안은 말과 달리 평온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상대는 허점을 드러내기 마련. 기회는 어떻게든 올 거다. 반드시. 우리는 그 기회를 잡아서 모스크바를 잡고, 여기 눈더미 속에 묻어버린 뒤 올라가는 거다. 할 수 있겠지?”


“예!”


“좋아.”


우렁찬 대답이 돌아오자 감독은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럼 하일랜드의 숫사슴이 러시아의 불곰을 쓰러뜨리는 진귀한 장면을 모두에게 보여주러 가볼까?”


*******


< UEFA Europa League Round of 32, 2차전 >

디나모 모스크바 : 로스 카운티

2015년 2월 26일 (목) 19:45

아레나 힘키 (관중 수 : 8,894명)



[모스크바 / 4-2-3-1]

FW : 케빈 쿠라니

AM : 주자크 벌라주 / 마티외 발뷔에나 / 알렉세이 이오노프

CM : 윌리암 바인쿼우르 / 이고르 데니소프

DF : 알렉상드르 뷔트너 / 더글라스 / 크리스토페 삼바 / 알렉세이 코즐로프

GK : 블라디미르 가불로프


[로스 카운티 / 4-2-3-1]

FW : 에이든 딩월

AM : 제임스 블랜차드 / 에드빈 데 루어 / 소피앙 부팔

CM : 대런 케틀웰 / 리차드 브리튼

DF : 리 월리스 / 스콧 보이드 / 폰투스 얀손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경기장에는 눈이 내려앉아 있었다.


여전히 눈보라가 휘날리는 악조건 속에서 양 팀의 선수들은 승리를 얻어내기 위해 악착같이 뛰고 있었다.


“러시아 원정이 왜 까다롭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아.”


로이 베넷이 살짝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중얼거렸다. 그의 옆에 앉아 있는 대런 코너도 불안해하면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유로파 리그라는 거대한 바다를 계속 항해하며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결정짓는 시합이다. 이런 중대한 결전에 구단주와 단장이 빠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휴, 추워죽겠네. 꼭 이런 곳에서 축구를 해야 하는 건가. 나 원.”


그 둘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끌려오다시피 한 론 딕슨 이사도 포함해서.


“쉬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만······ 저 맹렬한 공세를 좀 잠재우려면 빨리 점수를 먼저 내야 할 텐데요.”


코너가 걱정스러운 투로 말했다.


전력상으로도 로스 카운티보다 우위에 서 있는 모스크바지만, 보통 러시아 원정을 다들 기피하려는 주된 이유는 끔찍한 이동 거리와 도착하고 나서도 좀처럼 익숙해지기 어려운 기후 환경에서부터 비롯될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상대가 퍼부어대는 화력은 용케 흔들림 없이 잘 막아내고 있는데, 정작 설원처럼 새하얗게 물든 필드에 도리어 애를 먹고 있는 모습이니 말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결정체가 잔디를 촉촉하게 적셔놓은 탓인지 볼을 경합하는 과정에서 계속 미끄러져 휘청이거나 넘어지는 장면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로스 카운티 쪽에서만 주로 그러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눈으로 뒤덮인 필드에서는 평소 하던 대로의 패스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고, 부팔은 득점까지 연결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았지만 미끄러짐과 동시에 발을 헛디디면서 허무하게 날려버리고 말았다.


환경에 적응되어 있는 팀과 그렇지 못한 팀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위험한 상황으로 직결되는 실수가 나오지는 않고 있다는 게 그나마 천만다행인 수준이었다.


케틀웰이 패스를 받는 도중 엎어지면서 빼앗긴 볼을 보이드가 빠르게 처리하지 못했다면 진작 동점을 허용했을지도 모른다.


“아까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후로 제대로 된 공격 하나 못 해보고 있으니 환장하겠군.”


베넷의 인상은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로스 카운티는 먼저 따낸 점수의 유리함을 내세워서 수비적인 운영을 펼치고 있었다.


선발 라인업에는 블랜차드가 레프트윙으로 표기되었으나, 막상 경기에 들어가니 데 루어와 위치를 바꾸고 아래로 내려가면서 중앙 미드필더처럼 수비에 적극 가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변칙적인 수비법 덕분인지 전반은 무사히 넘길 수 있었지만, 모스크바는 자신들에게 익숙한 환경을 이용해 점차 몰아붙여 오고 있었다.


이대로 버티기만 하면 웃는 팀은 분명 로스 카운티가 되겠지만, 반대로 실점을 하는 순간 분위기가 언제 뒤집혀도 이상할 게 없을 것이다.


1차전 당시 모스크바는 매섭긴 해도 치명적인 한방은 없어 보였는데, 홈의 이점을 등에 업고 있어서일까? 지금은 다른 팀이 공격하기라도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저거 막아야 하는데.”


베넷은 그 원인 중 하나가 계속 수비진 앞에서 알짱거리며 기회를 엿보고 있는 저 공격형 미드필더라고 생각했다.


170cm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선수가 기민한 움직임으로 계속 로스 카운티 진영을 휘젓고 있는 것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어쩌면 이탈리안 감독이 블랜차드를 수비적으로 내린 이유가 저 선수를 막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떠올려보면 확실히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던 상황이 몇 번 있었다. 블랜차드의 부지런한 수비 가담과 조직적으로 행해지는 압박 덕에 별 탈 없이 지나갔던 것이다.


와아아 -


하지만 90분 내내 완벽하게 막아낼 수 있는 경기는 흔치 않다.


베넷이 가장 우려하던 선수, 마티외 발뷔에나가 오른쪽으로 민첩하게 볼을 빼내면서 케틀웰을 뚫어내자 아레나 힘키의 홈팬들이 크게 들썩이기 시작했다.


“막아야 해!”


뜨거운 환호를 이끌어 낸 모스크바의 작은 돌격대장은 볼을 드리블하며 황급히 물러서는 로스 카운티의 수비진을 향해 돌격하고 있었다.


케틀웰이 뚫리는 걸 옆에서 목격했던 브리튼이 대각선으로 빠르게 달려가 막아섰지만, 받아주러 내려온 공격수 케빈 쿠라니(Kevin Kuranyi)의 움직임까지 파악하는 데에는 실패하였고, 끝내는 발뷔에나가 원투패스를 주고받는 것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1차 방어선이 완전히 허물어져 내리고 있었다.


볼을 다시 잡아낸 발뷔에나의 앞으로 보이드가 달려들었지만, 모스크바의 위협적인 에이스는 그 자리에서 과감한 선택을 내렸다.


오른발로 감아 찬 중거리 슛이 보이드의 옆을 스쳐 지나갔고, 우측 상단 구석으로 휘어져 날아가고 있었다. 브라운 키퍼가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완벽한 사각지대로.


철썩 -


“······.”


베넷은 결국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 그래도 아직은 동점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코너로서도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는 못하고 있었다. 동점이기는 하나 연장전에 돌입하여 체력을 소모한다는 건 현재 셀틱과 리그를 두고 치열하게 다퉈야 하는 로스 카운티에게 좋은 일이라 할 수만은 없다.


심지어 모스크바는 계속 거침없이 진격하고 있으며, 이러다가는 추가 실점을 내주고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어이없이 무너진다고? 선수들 상품 가치가 뚝 떨어져 버릴 수도 있겠는걸.”


딕슨 이사가 옆에서 속을 더 뒤집어놓는 발언을 내뱉었지만, 지금의 베넷에게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제발.”


어느 정도는 예견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걸출한 이탈리안 감독과 스코티시를 뒤흔들고 있는 선수단일지라도 유럽 대항전은 아예 차원이 다른 무대니까.


하지만 로스 카운티를 응원석에서 쭉 지켜보던 베넷에게는 한 가지 버릇이 생겨난 게 있었다. 바로 경기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다.


“제발, 좀 더 힘내자고. 로스 카운티!”


구단주가 절실한 기도를 올리듯 양손에 깍지를 끼는 모습을 바라보던 코너 역시 똑같이 그를 따라 하면서 외쳤다.


“제발!”


“아니, 이게 뭐라고 다들 그렇게까지······.”


딕슨 혼자서만 그들을 이해하지 못할 뿐이었다.



어느덧 후반전도 30분이 훌쩍 지나가고 80분에 다다르는 중이었다.


벤치에서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거로 보아 선발로 나온 선수들을 그대로 믿고 가려는 것 같았다.


지키려는 쪽과 쫓아가려는 쪽이 벌이던 추격전의 양상에서 다시 승부가 제자리로 돌아가자 경기 흐름도 서서히 달라져 갔다.


홈의 이점을 안고 있는 모스크바로서도 연장전으로 넘어가는 건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양 팀 모두 원치 않는 추가 시간을 피하기 위해 공격적인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단연 돋보이는 선수는 이러한 흐름을 직접 만들어냈던 장본인이었다.


“저놈은 안 돼! 막아!”


순간 발뷔에나가 노마크 상태로 놓여있는 걸 보며 베넷은 다급해졌지만, 로스 카운티 선수들이 알아챘을 때는 이미 그에게 패스가 들어간 후였다.


이어서 예리한 스루패스가 월리스의 눈을 벗어나 박스 외곽으로 들어가던 이오노프에게 도달했으며, 낮고 빠른 크로스가 골문으로 달려드는 쿠라니에게 정확히 들어갔다.


퍽 -


그물이 흔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둔탁하게 맞고 나오는 소리였다. 얀손이 슈팅 경로에 몸을 던지면서 허벅지로 막아낸 것이다.


“후······ 훌륭해!”


입을 벌린 채로 뻐끔거리기만 하던 베넷은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니었다. 얀손의 몸을 맞고 나온 볼은 다시 발뷔에나 쪽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브리튼!”


그러나 뒤에서 다리를 집어넣으며 볼을 빼낸 로스 카운티 주장의 플레이를 보고서 코너 또한 환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브리튼은 볼을 가져오자마자 주저 없이 우측으로 패스를 보냈고, 부팔은 받자마자 달려오는 수비의 발을 피하면서 길게 치고 나갔다.


와아아 -


이번에는 원정팬들이 함성을 터뜨릴 차례였다.


20m가량 드리블하면서 중앙선을 훌쩍 넘어선 부팔이 중앙으로 패스를 보냈고, 등을 진 상태로 볼을 받은 블랜차드는 원터치에 가까운 속도로 옆에 대기하던 데 루어에게 전달했다.


데 루어는 곧장 아래로 내려온 딩월에게 전진 패스를 주었지만, 거대한 몸집의 크리스토페 삼바(Christopher Samba)가 그에게 바짝 붙어오자 다시 볼을 돌려받을 수밖에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여의치 않다고 판단했는지 브리튼에게 돌리면서 템포를 일단 늦춰보려고 한 것 같았으나 주장의 생각은 그와 달랐다.


브리튼이 길게 좌측면으로 보낸 롱볼이 향한 곳은 모스크바 진영 깊숙한 곳까지 도달하고 있는 리 월리스였다.


“좋아!”


베넷이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우측에서 이루어지던 로스 카운티의 속공에 정신이 팔린 모스크바가 월리스를 자유롭게 놔둔 바람에 완전히 열린 찬스가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로스 카운티의 레프트백은 브리튼이 보내준 패스가 착지하는 시간에 맞추어 속력을 조절하는 여유까지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떨어지는 볼을 왼발로 정확히 맞추면서 반 박자 빠른 땅볼 크로스를 찔러 넣었다.


블랜차드가 어느새 박스 안으로 파고들어 슈팅을 노리고 있었고, 그 움직임을 눈치챈 골키퍼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아!”


베넷은 탄식하고 말았다.


두 선수의 충돌은 골키퍼의 승리였다. 발을 갖다 댄 위치에 양손을 뻗어 아예 슈팅할 시도조차 막아버린 것이다.


볼을 향해 다리를 내밀었던 블랜차드는 골키퍼의 손에 막히면서 중심을 잃고 앞으로 굴러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물론 끝난 건 아니었다. 시도한 슈팅은 비록 막혀버렸지만, 볼이 앞으로 튕겨 나가면서 키퍼 역시 바로 잡아낼 수 없게 만들었다.


여기서부터는 누가 더 집중력과 투쟁심을 발휘하느냐의 싸움이었다.


철썩 -


모스크바 측 스탠드가 일순간 침묵에 잠겼다.


“드······ 들어갔다!”


“동점 골입니다!”


“으하하! 다시 역전이야! 다시 역전이라고!”


베넷과 코너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서로를 얼싸안았고, 원정팀 스탠드에서는 뜨거운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전광판에 표기된 것은 동점이지만 총합 스코어는 2 : 1. 사실상 역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천금 같은 골을 그물에 꽂아 넣은 주인공, 에이든 딩월이 정열적으로 필드를 내달리며 기쁨을 마음껏 표출하고 있었다.


“바닥 조심해야 할 텐데.”


코너의 한마디가 끝나자마자 미끄러지면서 우스꽝스럽게 자빠지고 말았지만.


뒤이어 그를 쫓아온 팀원들이 누워있는 그를 덮치기 시작했다.


“이제 십 분 정도 남았어.”


베넷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16강······ 갈 수 있겠지?”


“갈 수 있을 겁니다.”


코너가 대답했다.


“우리 선수들이라면 충분히요.”


*******


후반 89분.


인저리 타임까지 포함해서 이제 5분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경기는 다시 조급해진 모스크바가 총공세를 퍼붓고, 로스 카운티가 버텨내는 국면으로 치닫고 있었다.


모스크바는 알렉산드르 코코린을 투입하며 화력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로스 카운티는 일 분의 텀을 두면서 부팔과 앤드류 톰슨, 블랜차드와 잭 마틴의 교체를 진행했다.


전술적 교체라기보다는 시간을 지연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더 강해 보였다.


홈팀으로서는 얄밉기 짝이 없는 수로 보이겠지만, 저지할 방도는 없었다. 불평을 제기할수록 유리해지는 건 점수를 앞서고 있는 쪽일 테니까.


델 레오네는 경기 종료 직전을 남겨두고 대니 패터슨까지 필드에 집어넣으면서 80분 내내 쓰지 않았던 교체 카드를 남김없이 비워냈다.


그리고 그 치밀하고도 지독한 수법은 일말의 변수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차단해낼 수 있었다.


삑 - 삐익 -


주심의 휘슬이 길게 두어 번 울리자마자 양 팀의 희비가 엇갈렸다.


끝까지 이를 악물고 뛰던 모스크바 선수들은 그대로 잔디에 주저앉았고, 로스 카운티 선수들은 환희에 찬 표정으로 포옹을 나누었다.


홈팀 스탠드는 침묵에 잠겼고, 원정팀 스탠드는 전율하며 요동쳤다.


로스 카운티가 32강을 통과하여 16강 대열에 합류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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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나모 모스크바 1 : 1 로스 카운티 >

마티외 발뷔에나(66‘)

+++++++++++++++++++++++++++++

에이든 딩월(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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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합 성적 >

1차전

로스 카운티 1 : 0 디나모 모스크바


2차전

디나모 모스크바 1 : 1 로스 카운티


총합 스코어

로스 카운티(W) 2 : 1 디나모 모스크바


=============================


작가의말

이번에는 빨리 올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네요.. 오히려 더 늦어버리다니
정말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속도를 어느 정도 내야 할 텐데..
이런 상황에서도 재밌게 읽어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모아두상 님
이풍 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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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202. 공간 싸움 (3) +5 24.03.18 399 31 25쪽
201 201. 공간 싸움 (2) +11 24.02.27 591 38 31쪽
200 200. 공간 싸움 +6 24.02.06 701 36 26쪽
199 199. 대립 +5 24.01.25 745 32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799 34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774 42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31 37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20 39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28 41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886 42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47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897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22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37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983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35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61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46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192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272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47 50 29쪽
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40 39 24쪽
180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52 50 24쪽
179 179. 지상 최고의 팀 +5 23.05.07 1,339 50 27쪽
178 178. 승부욕의 화신 +3 23.04.22 1,267 50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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