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을 품은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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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세
작품등록일 :
2017.12.11 10:44
최근연재일 :
2018.02.22 19:48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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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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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2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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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수련 - 2

DUMMY

해가 떠오르고,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문파의 사람들은 일어나 각자의 장소로 찾아가 해야할 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햇살 아래 새들이 유난히 지저귀는 건물에 한 남자가 들어섰다. 남자는 건물로 들어와 문주실의 문을 열고 뒤돌아 앉아있는 공율에게 포권하며 인사했다.


“문주님을 뵙습니다.”

“그래.. 왔구나. 일은 잘 처리 했느냐?”


공율은 자리에서 일어난뒤, 뒤돌아 남자를 마주보며 물었다.


“언제나처럼 잘 처리 되었습니다.”

“그래, 잘 처리한 모양이로구나. 너를 믿는다.”


공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흐레 뒤에 반 배정 시험이 있을 것이다. 잊었을리 없겠으나 노파심에 이야기를 하게 되는구나.”

“하하, 걱정하지 마십쇼. 문주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시나 봅니다.”

“그래.. 넌 언제나처럼 잘 처신할테니 더 이상 긴말하지 않으마. 고생했으니 오늘은 돌아가서 쉬거라.”

“예, 문주님.”


남자는 포권하고선 뒤로 돌아서 문주실을 나섰다. 문주실을 나서 문밖으로 나서자, 유란이 서있었다.


“잘 처리하고 온거야?”

“그럼~ 언제나 처럼 잘 처리했지.”

“···그래. 언제나 처럼 말이지..”

“어라? 어째 목소리가 축 처졌네. 옛날 생각이라도 나시나?”

“···이만 들어가서 쉬어. 난 문주님에게 처리한 일을 보고해야해.”

“네, 네~ 그러시죠. 독무(獨舞) 아가씨.”


남자를 마주보던 유란의 눈에 살기가 서렸다. 웬만한 경지의 무인도 숨이 막힐만큼 강한 살기였음에도, 남자는 눈하나 깜짝 않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아참! 이렇게 부르지 말라했던가? 미안, 미안~”

“······.”


남자는 매섭게 노려보는 유란의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다. 유란은 고개를 돌려 멀어져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노려보다 이내 표정을 바로하고 문주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사백회! 허리를 똑바로 틀어 쓰거라! 그렇게 팔만 휘두르니 속도가 안나질 않느냐! 오분간 휴식한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고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올 무렵, 귀영은 현필에게 돌려베기를 지시하고 있었다. 현필은 어제와 같이 십회마다 호통하는 귀영의 지시사항을 신경쓰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휴식이 지시되자 어제처럼 서로 마주보고 미동도 하지 않는 기묘한 휴식이 시작됐다. 그러나 이윽고 음식 냄새가 연무장에 퍼지고, 현필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배가 고픈게냐?”

“예, 스승님.”

“나도 먹지 못할텐데 잘도 지껄이는구나. 오늘도 천번을 다 채우고 먹을테냐?”

“···예, 스승님.”

“냄새를 맡아보니 오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두가 나오는 날이로구나. 배움이 느려 터진 네놈 때문에 나까지 덩달아 굶게 생겼잖느냐?”

“······.”


만두라는 이야기를 듣자 현필의 배에서 다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귀영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배우는건 느려 터져가지고 정신사납게 배에서 소리만 울려대느냐?”

“······.”

“오백회를 다 채우고 밥을 먹으러 갈 것이다. 만두가 나와 식어버리기 전에 끝낼 수 있도록 집중해서 베어라.”

“예, 스승님.”


맹하던 현필의 눈과 목소리에 사뭇 진지함이 묻어났다.


“자세를 잡아라.”


휴식 시간이 오분이 채워지지 않은데에 불만은 커녕, 현필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자세를 잡았다. 절도있는 자세로 열 세번째 검을 휘두르자, 귀영이 입을 열었다.


“십회! 먹여준다니 몸놀림이 달라지는게 똥개새끼를 훈련 시키는것 같구나! 허리가 안빠지도록 신경 쓰거라!”


만두 찌는 냄새가 무르익을때 즈음, 귀영의 입에서 오백회라는 신호가 울려퍼졌다. 귀영은 ‘쳐먹을 생각에 아주 신이 났구나! 따라오너라!’ 라고 핀잔을 주고선, 현필을 데리고 식당으로 향했다.


* * *


“천회! 마지막 벤 검의 감각을 잊지 말거라!”


달이 모습을 보일때 쯤, 귀영이 천회를 알리는 신호가 연무장에 울려퍼졌다. 현필은 스승의 말대로 마지막에 휘두른 검의 감각을 몸에 새기려 노력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한다. 밥시간에 늦지 않았을 터이니 내려가 식사를 하고 쉬도록 하라.”

“예, 스승님.”

“흠.. 가 보거라.”


현필은 검을 집어넣고 정중히 포권한 뒤 식당으로 걸어갔다. 귀영은 그런 현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허나 눈에서 자존심이나 반항심도 느껴지지도 않으니.. 그저 생각이 없는 천치일런지도 모르겠군.”


혼잣말을 마친 귀영은 돌아서서 자신의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처로 몸을 옮기던 중, 귀영은 인기척을 숨기고 자신을 바라보는 인영(人影)에 대고 말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게냐?”

“아이쿠, 나인지 눈치 챘어?”

“네놈이 실실 쪼개는 소리가 백보 앞부터 들렸다.”

“역시 귀가 밝네 귀영은~ 돌아왔다고 인사차 온건데 너무 쌀쌀맞은거 아냐?”

“네놈의 실없는 소리를 들을 시간은 없다. 인사가 끝났으면 돌아가라.”

“그래, 그래. 살펴가라구~”


어렴풋이 보이던 남자의 모습은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귀영은 다시 자신의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일주일이 지나고, 어둠이 깊어져가는 제 2 연무장에는 현필이 검을 휘두르는 소리와 지도하는 귀영의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삼백회! 제 2 초식은 그만 되었다! 5분간 휴식 후 제 3 초식을 시행한다!”

“예, 스승님!”


현필은 머리카락이 땀에 흠뻑 젖은채로 검을 집어넣고 숨을 고르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귀영은 내심 감탄하며 생각했다.


‘오늘로만 만번을 넘게 휘둘렀거늘, 이제서야 숨이 거칠어지는구나. 허나..’


5분의 휴식시간이 끝났지만 현필의 땀은 식지 않았고, 여전히 숨을 거칠게 내쉬고 있었다.


“그만! 제 3 초식을 다시 시연하겠다. 잘 보고 눈에 똑똑히 새겨두거라, 알겠느냐?”

“예, 스승님!”


귀영은 검을 바로 쥐었다. 이내 앞으로 미끌어지듯 몸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초식이 끝난 뒤 뒤로 돌아 동작을 반복하자 귀영은 처음 서 있던 그자리로 돌아왔고 검을 집어넣고 현필에게 말했다.


“눈에 새겨두었느냐?”

“예, 스승님.”


간신히 숨을 고른 현필이 대답했다.


“기본 초식 조차 시연하지 못하면 반을 배정받을 자격은 줄 수 없다. 낙방할 경우 최대 파문(破門)되는 경우까지 있으니 이 초식만은 반드시 오늘 중으로 몸에 익혀야 한다. 알겠느냐?”

“예, 스승님.”


대답하는 현필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지만, 마주서서 바라보던 귀영은 평소와 달리 현필의 눈이 사뭇 진중하다는 것을 느꼈다.


“초식의 오검중 한개라도 엇나는 경우는 횟수로 인정하지 않는다. 오회가 인정될 때 마다 신호할 것이니 백회를 신호할 때 까지 멈춤없이 시행하라.”

“예, 스승님.”


현필은 검을 바로잡고, 눈에 새겨진 대로 몸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기초 베기 동작을 모두 응용하여 물이 흐르는 듯 하던 귀영의 몸놀림과 달리, 현필의 움직임에선 뻣뻣함이 묻어났다. 제 3 초식의 오검을 스무번, 총 백번을 휘두르자 귀영이 입을 열고 큰 소리로 말했다.


“오회! 원숭이가 술을 먹고 작대기를 들고 노는듯 하구나! 이검과 삼검의 연결동작에 각별히 신경쓰거라!”


현필의 검이 비틀대는건 한계로 몰아부친 체력의 문제가 절대적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으나, 귀영은 사정없이 꾸짖었다. 이토록 몰아부치고 꾸짖는 이유는 귀영의 치기나 앙심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이 외의 방법이 없어서 일 뿐이었다.


‘강건한 체력에 비해 배움이 너무나 늦는구나. 일곱개의 기초 초식 중 첫 세개조차 소화해 내지 못하는 놈을 인정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


현필의 검이 이백번을 넘어 삼백번을 가를때가 되어서야 귀영의 입에서 십회라는 외침이 나왔다. 해는 완전히 저물고, 밤 하늘에 별빛이 완연해질 무렵에 귀영이 백회를 외쳤다.


“백회! 검을 멈추어라.”


온 몸이 땀에 적셔진 채 호흡이 거칠어진 현필은 검을 집어넣고 숨을 몰아쉬며 귀영을 바라봤다.


“검을 쥔 팔이 떨리더구나. 더 휘두를 수 있겠느냐?”

“···예, 스승님.”


현필은 숨을 한껏 들이쉬고 나서 귀영에게 대답했다.


“흥, 대답은 잘 하는구나. 이 속도로는 해시(亥時)를 넘어 자시(子時)나 되어서야 끝이 날 것이다.”

“······.”

“지금 못 하겠다 하여도 내 나무라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물으마, 마저 할 수 있겠느냐?”

“예, 스승님.”

“···좋다, 자세를 잡아라.”


잠시도 뜸을 들이지 않고 현필이 대답을 하자, 귀영이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다시 말해두지만 엇나간 검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준비가 되면 시작하거라.”

“예, 스승님.”


* * *


모든 별들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고, 동쪽에서 달이 모습을 드러낼때가 되어서도 현필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이백 칠십회! 힘이드느냐? 팔이 늘어지느냐? 아주 대놓고 땅을 내려치는구나!”


초식을 행하는 현필의 검은 이따금씩 흔들리며 땅을 긁었지만, 귀영이 호통치는 목소리와 검을 휘두르는 현필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검이 가르는 공기는 점점 스산해지고 멀리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귀영의 입에서 삼백이란 외침이 나온건 제 2 연무장을 제외한 바위산의 불빛이 모두 꺼져있을 때였다.


“삼백회! 그만!”


현필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을 쥔 채로 귀영을 바라보았다. 서늘해진 공기 속에서 덥혀진 현필의 몸과 머리로부터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검을 집어넣어라.”


귀영의 지시와 함께 현필은 검을 집어넣었다. 검을 집어넣은 현필의 시선은 땅을 향해 있었고, 숨은 거칠어져 대답이 없었다.


“···이만 되었다. 들어가거라. 초식은 아직도 불완전하나, 내일 집중하여 이대로만 행하면 충분히 합격점을 따낼 수 있을 것이다.”

“······.”

“난 먼저 돌아갈테니, 체력이 돌아오거든 숙소로 들어가 쉬어라.”

“예, 스승님.”


귀영은 잠시 현필을 쳐다보다가 이내 걸음을 옮겼다. 현필의 옆을 지나갈때, 귀영은 걸음을 멈추고 현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고생하였다.”


말을 마친 귀영은 어깨에 올린 손을 떼고 현필의 뒤로 마저 걸음을 옮겼다. 귀영의 걸음소리가 멀어지고, 현필의 숨소리와 늑대의 울음소리만이 연무장에 남았다.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그치고, 시간이 흘러 주변을 인식할 힘이 돌아온 현필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밤하늘을 올려다 보는 현필의 눈으로 반짝이는 별빛이 들어왔다. 잠시 후 현필의 눈은 하늘에 수놓아 있는 별들을 이어 자신을 어루만져주던 아버지의 손을 그렸고, 한참동안 별들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현필의 귓속으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잠시 후 늑대가 다시 울자 현필은 검을 뽑아들고, 눈을 감은채 검을 세로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수십번을 휘두르자, 현필의 귀에는 자신을 다그치는 귀영의 호통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리에서.. 허리로..”


세로로 휘두르던 현필의 검은, 귀영 사범의 백회라는 신호와 함께 검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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