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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逆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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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향
작품등록일 :
2017.12.19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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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3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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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엉터리 사부 (一)

DUMMY

세자 대광현의 이름을 빌어 만들어진 밀지(密旨)들이 발해의 열다섯 부(府)와 예순 두 주(州)를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복명(復命)인 듯, 발해의 강역. 곳곳을 차지하고 있는 크고 작은 벼슬아치들의 전령들이 줄을 지어 홀한성으로 되돌아왔다.

홀한성을 나섰던 그 전령들이 되가져온 것. 그 예전 해동성국(海東盛國)의 이름 아래 그리하였던 것처럼... 또 다시 발해의 깃발을 성루 높이 올리고 도성의 명(命)을 기다리겠다는... 충성의 맹서(盟誓)이었다.


대광현의 일행에 묻혀 그리 도망치듯 서둘러 떠나, 창칼을 앞세우고 이 홀한성으로 되돌아온 지난 두어 달.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으되... 하지만 너무나 길었다.

고휘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좌맹분위의 군영이었다.

별장은, 옛 기억을 찾으려는 듯 좌맹분위를 어슬렁거리는 고휘의 뒤를 마치 호위나 되는 듯 그리 따랐다.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연무장이건 막사이건 어느 하나 발길에 낯선 곳은 없었다.

좌맹분위의 군영을 빠져나온 고휘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별장.”

별장은 두어 발짝 걸음을 바삐 움직여 고휘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 예전. 좌맹분위에 머물던 그 시절에도 감히 범접치 못할 상관이었다.

헌데... 이 발주의 벌판을 그리 지나며... 하아. 어찌 세자의 지위를 내세워 새로운 발해의 지존위(至尊位)에 머무르려는 대광현이라고 어찌 고휘의 앞에 서겠는가. 별장 자신의 온전한 주인은... 대발해의 군사(軍師)라 불리워진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 예전 좌맹분위의 소장 그대로... 고휘뿐이었다.

“네. 장군.”

고휘가 별장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내, 자네에게 부탁을 하나 해도 될까?”

별장은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부탁이라니요, 장군. 받잡기 민망합니다. 그저 명을 내리십시오.”

“그렇게 생각해주다니... 고맙군.”

자못 굳어진 목소리. 고휘는 말을 이었다.

“좌맹분위에서 무공이 뛰어나고 믿을만한 수하들을 가려 뽑아 동모산으로 가라. 동모산의 남쪽 초입에서 골짜기를 따라 십여 리의 좁은 산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인적도 끊긴. 절벽 속에 겹겹이 감추어진 곳. 다 허물어진. 서너 채의 막사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예전 초적들이 머물던 곳이었을 터. 사나흘 바삐 움직이면 제법 근사한 산채가 될 것이다.”

별장은 고개를 들어 고휘의 얼굴을 그저 바라보았다.

고휘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별장에게 물었다.

“그리하라고 명을 하는 까닭. 묻지 않느냐?”

별장은 두 손을 마주하고 가슴 위로 모아 쥐고는 머리를 다시 조아렸다.

“주인의 명(命)이란... 그 까닭을 묻는 법이 아닙니다.”

“주인?”

“그렇습니다. 장군은 소장에게는... 그저 상관만이 아닙니다.”

“후후. 그래?”

고휘의 넉넉한 시선이 별장의 얼굴에 머물렀다.

“좋다. 나는 이제 갓 다시 세워진 발해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굳건히 하려고 한다. 그렇다. 살수를 기를 것이다. 그 동모산의 산채에서.”

별장은 굳게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십여 명의 아이들이 모여들 것이다. 내, 이 발해와 고려의 땅을 누비며 찾아낸... 비록 나이는 어리되 근골도 근성도... 누구보다 뛰어난 아이들이지. 그대는 그 산채에서 그 아이들을 가르치거라.”

“무엇을 가르치면 됩니까?”

“토납술(吐納術)을 가르치거라. 아. 그리고 무인의 몸을 만들어야겠지. 근력과 근성을 키우는 방법. 쉼없이 달리는 것만큼 좋은 것이 있더냐? 동모산의 거친 산줄기. 적당할게야. 나도 이 홀한성이 조금이나마 안돈이 되면 그곳으로 갈 것이다.”

“...”

고휘가 뱉어내는 살수 수련이라는 것. 처음인 듯하였다.

“아. 그렇지. 아마도 철삭(鐵索)도 준비해야 할게야.”

고휘는 별장을 마주보며 혼잣말인 듯 주절거렸다.

“스무 근(斤) 정도면 적당할까???”

별장의 눈은 여전히 고휘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고휘의 얼굴에 짐짓 미소가 어렸다.

“맨몸으로 달리기에는 너무 밋밋하지 않겠나? 스무 근 정도는 팔다리에 둘러야 제법 달리는 맛이 날게야.”

고휘의 말들을 세세히 풀어 들을 정도로 아둔한 별장은 아니었다.

“네. 알겠습니다.”

고휘가 좌맹분위의 군영을 등지고 발걸음을 다시 떼었다.

“준비가 되는대로. 당장 떠나도록 하라.”


별장은 절벽과 바위들 사이. 교묘히 감추어져 있는 허름한 막사들의 앞에 섰다.

인기척은 없었다.

막사를 안과 밖을 둘러보았다.

두텁게 내려앉은 흙먼지와 거미줄들. 이 산채에 머물던 무리들이 떠난 후. 적지 않은 세월이 지났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깊기는 하되 성겨진 몇몇 곳을 끌어내리고 새로이 베어진 나무들을 튼실하게 엮는 일.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듯하였다.

그렇다고 주인으로 여기는 상관의 명.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이십여 필의 말 등에 나누어 실려 있던 꽤나 많은 짐들이 서둘러 내려졌다.


홀한성을 차지한 지 이미 한 달이 지났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로되 바쁜 와중 그 하루하루는 그리 조용히 흘러갔다.

고휘는 참으로 오랜만에 성루에 올랐다.

북방의 시린 겨울이 밀려나려하고 있었다.

성 밖 광야의 너른 벌판도 그 새하얀 옷을 조금씩 벗어버리고 성루 앞 남쪽을 돌던 홀한하도 새로 몰려오는 봄에 꿈틀거리고 있었다.

휘이익.

펄럭.

성루에 높이 올라 거친 바람을 타고 있는 깃발을 올려다보았다.

‘대발해(大渤海)’

두터운 비단천에 장하게도 박힌 글자들. 하늘을 가르는 용의 기다란 몸뚱이와 같았다.

발해(渤海)라는 이름. 그 이름이 어디 그저 바다이던가. 가없이 드넓은 땅. 그리고 그 기상. 그것이 바로 바다와 같이 너른 ‘발해’가 아니던가.

고개는 절로 주작대로를 따라 궁성에 이르렀다.


다시 세워진 그 발해의 이름 위에... 그 치욕의 세월을 지냈음에도... 이 홀한성의 높은 자리에 앉은 자들. 그리 바뀐 것은 없었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무리들이 가장 서두른 일. 홀한성 위로 올려진 발해의 깃발을 따라 제 이름들을 한껏 올리려는 것이었다.

논공행상(論功行賞)!

대사가 치루고 그 일이 꾀하는 뜻이 이루어지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는 하되... 하아. 저리 서두르고 저리 무리를 지을 일은 없었다.

온전한 무장이 되고자 그리 살아왔던 고휘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마뜩치 않은 일이었다.


그래. 구태여 이곳 홀한성에 머물고 있을 까닭은 없었다.

이 발해를 위해... 고휘 자신이 해야 할 일. 공을 논하고 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적잖이 조용해진 홀한성과 발해의 강역.

군사(軍師)라는 자리.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있을 법한 임시의 벼슬이지... 굳이 필요하기나 한 일이던가.

한때의 흔들림이 멈춘 발해를 위해 그리고 지난 영욕의 시간보다도 더욱 세차케 이어갈 발해를 위해... 고휘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따로이 있었다.


고휘는 너른 벌과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부심에 눈이 절로 가늘어졌다.

저 멀리. 아련하게 남녘의 벌판을 가로막고 우뚝하니 서 있는 산들... 저 산을 거듭 넘으면... 그래. 이미 수족과 같이 머물던 별장을 한 달여 전 그리 먼저 보내기는 하였으되... 동모산에 모여들 그 녀석들에게 필요한 것은 고휘 자신이었다.

시선을 지긋이 움직여 허리에 길게 매어 있는 외날검을 바라보았다.

고휘는 군사(軍師)라고 불리우기는 하되... 오직 무장이기를 원했다.

이 외날검. 그저 멋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일국의 무장이라 자부할 극강의 무장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외날검은 고휘 자신의 온전한 자존심이었다.

입가에 희미하니 웃음을 얹은 채 외날검의 검집을 투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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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흔적을 맴돌다 (六) +1 18.06.11 877 31 9쪽
100 흔적을 맴돌다 (五) 18.06.08 1,094 30 8쪽
99 흔적을 맴돌다 (四) 18.06.06 1,049 30 8쪽
98 흔적을 맴돌다 (三) 18.06.03 1,032 30 9쪽
97 흔적을 맴돌다 (二) 18.06.01 1,090 28 9쪽
96 흔적을 맴돌다 (一) +1 18.05.30 1,052 31 8쪽
95 낭부의 파란(波瀾) (六) +1 18.05.28 1,136 32 14쪽
94 낭부의 파란(波瀾) (五) 18.05.25 1,169 33 7쪽
93 낭부의 파란(波瀾) (四) 18.05.22 1,182 28 8쪽
92 낭부의 파란(波瀾) (三) 18.05.20 1,257 31 9쪽
91 낭부의 파란(波瀾) (二) 18.05.17 1,289 28 8쪽
90 낭부의 파란(波瀾) (一) 18.05.15 1,246 31 8쪽
89 부정(父情) (八) +1 18.05.07 1,470 33 9쪽
88 부정(父情) (七) 18.05.04 1,342 31 7쪽
87 부정(父情) (六) 18.05.02 1,346 30 8쪽
86 부정(父情) (五) 18.04.30 1,339 28 8쪽
85 부정(父情) (四) 18.04.27 1,510 27 9쪽
84 부정(父情) (三) 18.04.25 1,493 25 10쪽
83 부정(父情) (二) 18.04.23 1,559 35 7쪽
82 부정(父情) (一) 18.04.20 1,845 35 10쪽
81 혁린, 새로운 시작 (六) +1 18.04.18 1,726 38 7쪽
80 혁린, 새로운 시작 (五) 18.04.16 1,675 37 7쪽
79 혁린, 새로운 시작 (四) 18.04.13 1,775 35 9쪽
78 혁린, 새로운 시작 (三) 18.04.11 1,763 34 8쪽
77 혁린, 새로운 시작 (二) +1 18.04.09 1,805 35 8쪽
76 혁린, 새로운 시작 (一) +1 18.04.06 1,964 3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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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십년지회(十年之會) (四) 18.03.29 1,891 37 8쪽
71 십년지회(十年之會) (三) 18.03.27 1,880 3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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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길은 여전히 어둠 속에 (二) 18.03.15 1,959 39 9쪽
64 길은 여전히 어둠 속에 (一) 18.03.13 2,059 3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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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청유, 새로운 시작 (四) 18.03.03 2,207 39 9쪽
58 청유, 새로운 시작 (三) 18.02.28 2,282 36 10쪽
57 청유, 새로운 시작 (二) 18.02.25 2,642 35 8쪽
56 청유, 새로운 시작 (一) 18.02.24 2,717 44 7쪽
55 절벽의 끝에서 (七) 18.02.22 2,398 46 9쪽
54 절벽의 끝에서 (六) 18.02.20 2,185 40 7쪽
53 절벽의 끝에서 (五) 18.02.18 2,136 39 9쪽
52 절벽의 끝에서 (四) 18.02.14 2,299 46 9쪽
51 절벽의 끝에서 (三) +1 18.02.12 2,285 44 7쪽
50 절벽의 끝에서 (二) +1 18.02.10 2,302 43 8쪽
49 절벽의 끝에서 (一) +1 18.02.08 2,322 40 7쪽
48 고휘의 최후 (六) 18.02.06 2,266 40 12쪽
47 고휘의 최후 (五) 18.02.04 2,201 38 10쪽
46 고휘의 최후 (四) 18.02.02 2,107 42 8쪽
45 고휘의 최후 (三) 18.01.31 2,121 42 8쪽
44 고휘의 최후 (二) 18.01.29 2,215 45 8쪽
43 고휘의 최후 (一) 18.01.27 2,368 45 11쪽
42 살행 (十一) 18.01.25 2,294 46 7쪽
41 살행 (十) 18.01.23 2,219 48 8쪽
40 살행 (九) 18.01.21 2,363 41 8쪽
39 살행 (八) 18.01.19 2,317 48 8쪽
38 살행 (七) 18.01.17 2,396 45 9쪽
37 살행 (六) 18.01.15 2,361 43 8쪽
36 살행 (五) 18.01.10 2,517 39 6쪽
35 살행 (四) 18.01.09 2,452 46 8쪽
34 살행 (三) 18.01.07 2,621 49 8쪽
33 살행 (二) 18.01.05 2,603 45 9쪽
32 살행 (一) 18.01.03 2,639 48 8쪽
31 발해는 다시 갈라지고 (五) +1 17.12.31 2,572 48 14쪽
30 발해는 다시 갈라지고 (四) +1 17.12.31 2,443 47 12쪽
29 발해는 다시 갈라지고 (三) 17.12.31 2,381 45 10쪽
28 발해는 다시 갈라지고 (二) +1 17.12.31 2,443 49 7쪽
27 발해는 다시 갈라지고 (一) 17.12.31 2,673 50 10쪽
26 엉터리 사부 (四) 17.12.31 2,753 49 19쪽
25 엉터리 사부 (三) 17.12.31 2,623 50 11쪽
24 엉터리 사부 (二) 17.12.31 2,695 48 12쪽
» 엉터리 사부 (一) 17.12.31 2,839 53 8쪽
22 발해의 깃발은 다시 오르고 (四) 17.12.30 2,719 56 14쪽
21 발해의 깃발은 다시 오르고 (三) 17.12.30 2,710 51 11쪽
20 발해의 깃발은 다시 오르고 (二) 17.12.30 2,757 52 11쪽
19 발해의 깃발은 다시 오르고 (一) 17.12.30 2,878 58 9쪽
18 발주(渤州)의 싸움 (五) 17.12.28 2,961 59 8쪽
17 발주(渤州)의 싸움 (四) 17.12.28 3,028 50 10쪽
16 발주(渤州)의 싸움 (三) 17.12.28 3,174 59 12쪽
15 발주(渤州)의 싸움 (二) 17.12.28 3,460 55 12쪽
14 발주(渤州)의 싸움 (一) +1 17.12.28 3,712 57 11쪽
13 아, 홀한성(忽汗城) (四) +2 17.12.28 3,608 59 15쪽
12 아, 홀한성(忽汗城) (三) +3 17.12.27 3,792 63 9쪽
11 아, 홀한성(忽汗城) (二) +2 17.12.27 4,066 60 9쪽
10 아, 홀한성(忽汗城) (一) +2 17.12.26 4,359 71 13쪽
9 주검 사이를 달리는 아이들 (五) +3 17.12.25 4,211 70 15쪽
8 주검 사이를 달리는 아이들 (四) +4 17.12.24 4,165 69 8쪽
7 주검 사이를 달리는 아이들 (三) +3 17.12.23 4,262 77 9쪽
6 주검 사이를 달리는 아이들 (二) +3 17.12.22 4,486 79 9쪽
5 주검 사이를 달리는 아이들 (一) +3 17.12.21 5,042 71 10쪽
4 탈주(脫走) (四) +3 17.12.20 5,162 79 16쪽
3 탈주(脫走) (三) +2 17.12.20 5,211 73 7쪽
2 탈주(脫走) (二) +3 17.12.19 6,267 81 10쪽
1 탈주(脫走) (一) +5 17.12.19 10,166 8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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