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서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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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fmels4309
작품등록일 :
2017.12.23 21:44
최근연재일 :
2020.10.1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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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0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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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세사람

DUMMY

돌투성이의 황량한 사막에 비가 내리던 날이였다.

저지대는 홍수라도 난듯이 가파른 물살이 강물을 이루어 모든걸 휩쓸어가고,

고지대에서는 천막을 치고서 혹시나 너무 물살이 불어나서 여기까지 위태로워지는건 아닌지 노심초사하는 대상들이 있었다.

제아무리 수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한들 대자연의 분노앞에서는 무력해진다는걸 그들은 뼈저리게 알고있었다.

그들의 호위를 맡고있는 병사들의 대장이자 사막의 제왕인 살라딘은 조용히 흘러가는 물살을 지켜보다가,

문득 무언가를 포착한듯이 안광을 번뜩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가리개에서 걸어나가 병사들에게는 제자리를 지킬것을 명령하고서 그는 거친 물살속으로 걸어들어갔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그는 흑갈색의 망토를 휘날리며 한발한발 신중히 걸어나갔다.

그리고는 물속에서 무언가를 잡아당겨 질질 끌고서는 다시 뭍으로 올라왔다.


"그게 뭡니까?"


옆에서 말을 거는건 살라딘의 오랜 친구이자 부하인 아제르경

명궁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사막의 명장이였던 그는 조국에게서 배신을 당한뒤 살라딘과 함께 다니고있었다.

신중하고 침착하기로 유명한 그조차 의문의 문양앞에서는 불길함을 느끼는듯이 표정이 썩 좋지않았다.


"나도 모른다. 하지만 문양을 보니 꽤나 오래된것 같더군."


그건 이제 그의 소유물이다.

감히 넘볼 사람도 없을뿐더러 그래서도 안된다.

살라딘은 조용히 관짝같이 생겼고 매끈한 표면을 지닌 그 금속덩어리를 매만졌다.

그리고는 열리지않도록 봉인하기위해 박아둔듯한 못들을 발견하고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이렇게 해둔거지?"


단순히 누가 함부로 열어보거나하는걸 방지하는 수준이 아니다.

마치 극비문서나 금괴같은걸 넣어두거나,

죄인을 처형하려고 넣어둘때나 사용할법한 봉인

이런걸 처음보는걸 아니지만 적어도 이 사막에서는 보기드문 물건이였다.

아주 머나먼 옛날에는 이곳에도 문명이 있었다고야 들었지만 세월속에서 고대유적들조차 대부분 빛을 바래고 모래가 되었다.

그나마 남아있는것들조차 멀쩡한게 별로 없는데 이 관은 유난히 깨끗하고 온전했다.

약간은 불길함을 느끼며 살라딘은 모두를 뒤로 물러서게했다.


"어쩌면 몬스터가 봉인되어있을수도 있소.

떨어져있으시오. 만약 이상한게 튀어나온다면 내가 직접 처단할테니"


현시대의 5대검성중 하나인 그라곤 해도 이럴때면 긴장되었다.

쇼텔을 양손에 하나씩 쥐고서 봉인을 내리그으면서 파괴하는 살라딘

그는 조심스럽게 능력으로 바람을 일으켜 문짝을 날려버리고서 내용물을 확인했다.

새하얗고 곱고 기다란 머리카락으로 감싸져있는 나신의 육체

알비노보다도 심각하게, 마치 광물질처럼 하얀 피부는 꺼림칙함까지 안겨주었다.

봉인이 풀린것을 감지한것인지 반쯤 졸린것처럼 감겨있는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호문쿨루스?"


전설속에서나 들어봤던 그것을 마주하게된 살라딘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신의 섭리에 어긋나는 괴기한 생물, 인류의 오만을 상징하는 불완전한 생명

당장에 죽여버려야겠다는 강렬한 살의가 살라딘의 머리속을 지배했고 그는 검을 치켜들어서 내리찍으려했다.

빗물이 스며들어가자 육체를 감싸고있던 용액의 따스함이 사라져가는걸 느꼈는지 그것의 동공은 흔들렸다.

그렇지않아도 창백하던 피부는 시체처럼 색부터가 빠르게 달라져갔다.


"..."


이대로 내버려두기만 해도 죽을 목숨이다.

굳이 살라딘이 칼을 내려칠 필요조차 없었다.

너무나도 연약해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대기중의 산소로 호흡하지못하는,

물밖에 내던져진 물고기보다도 못하는 미천한 존재였다.


"빌어먹을..."


살라딘은 자신의 가슴속에서 회오리치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동정에 가까운, 그러나 그보다는 더 깊숙히 내면에 존재하는 기억에 근거하는 감정

한때 아무런 힘도 재산도 없던 그가 지켜내지못한것들에 대한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시선

정신속을 헤집어놓는듯한 마법과도 같은 간섭을 느끼며 살라딘은 이를 악물었다.


"대체 넌 뭐냐?"


괴물은 대답하지않았다.

그저 바라만볼뿐이였다.

정작 살아남고자하는 의지는 미약한 주제에,

살라딘을 질책하듯이 살며시 가늘게 치켜떠진 눈동자에는 갈망이 담겨있었다.

마치 살라딘을 동정하는듯이 슬픔이 담긴 눈이였다.


"제기랄"


검을 옆구리의 검집에 다시 집어넣고 살라딘은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는 이미 차가워진 용액속에서 괴물을 건져내어 망토를 벗어서 감싼뒤 안아들었다.

주변의 대상들이 수군수군 자기들끼리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상관없었다.

살라딘은 그것을 살려내기로 마음먹었다.

일단은 비를 피해 피죽이라도 먹여볼까 생각하며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 괴물을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아제르는 왜 해치우지않았냐는듯이 따지는 말투였다.

그런 그에게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할까 고민하던 살라딘

그러나 그는 이내 품안의 괴물을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데려간다."


"예?"


"필시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겠지.

이런 사막 한가운데에서 그것도 비가 내리는 날의 인연이다.

비록 이 불경하고 천박한 생명체라한들 신께서라면 자비를 내려주시겠지."


아제르는 더이상 이의를 제기하진 않았다.

그러나 마음속 한켠에선 혹시 살라딘이 그 괴물에게 홀린것은 아닐까 의심하며,

차디찬 빗방울에 머리카락이 푹 젖어버린 살라딘이,

그의 아들들에게조차 지어준적 없던 따스한 눈빛으로 괴물을 살펴보는것을 예의주시했다.







"허억...! 허억...!"


숲속을 내달리는 그림자

두다리로 지면을 탁탁 내달리며 풀숲을 헤치고 나아가는 어린 인간의 그림자

그리고 그뒤를 바짝 뒤쫓는 늑대들의 무리가 만드는 어지러운 그림자

죽을힘을 다해 달리고있는 소년을 적당히 지치게만든뒤 잡을 생각인지 느슨하게 포위해가며 추격하는 늑대들

소년은 그렇게 자꾸만 신경쓰이는 늑대들을 뒤돌아보다가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다시 일어서려고 해봤지만 다리에 힘이 빠져 일어날수가 없다.

늑대들은 곧 그들의 입에 물릴 싱싱한 살점들을 상상하며 군침을 흘리며 한발한발 다가선다.


"히익!"


소년은 겁에 질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나뭇가지를 주워 두손에 쥔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반항한들 결말은 바뀌지 않겠지.

소년은 정육점의 고기처럼 갈갈이 찢겨져 늑대들의 먹이가 될것이다.

늑대들은 그런 당연한 사실을 알기에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인간의 아이?"


나뭇가지들이 흔들린다.

나무에서 뛰어내림과 동시에 활을 꺼내 활시위를 당겨 화살을 장전하는 궁수,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이 잠시 공중에 떠올랐다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다시 땅으로 가라앉는다.

검은색의 마스크뒤로 드러난 암녹색의 고양이눈

그 눈동자는 먹이를 바라보는 맹수처럼 희번들거리며 늑대들을 움츠리게 만드었다.

사슴과도 같이 머리에 솟아나있는 나뭇가지로 된 뿔,

푸르른 나뭇잎 머리카락과 나풀거리는 검은 망토,

보랏빛의 윗옷과 황색의 바지를 입은 여자를 올려다보며 소년은 그녀가 이 숲의 수호자임을 알아차렸다.

전설속에서나 전해져내려오는 엘프들의 숲을 지키는 수호신

과거, 이계와의 문이 열려버린 이래로 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감시하기위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전사

그녀의 이름은 사람들사이에서도 유명했다.


"사샤 옥타비아누스..."


그녀는 소년의 앞에 서서 다가오던 늑대들을 향해 활을 겨누며 알수없는 괴성을 질렀다.

몇번인가 그렇게 위협을 가하자, 늑대들고 개처럼 끼깅 소리를 내며 돌아서서 사라졌다.

소년은 살았다는 생각과 함께 화색을 띄우며 사샤에게 다가갔다.


"감사합니다."


고맙다는 말을 건네며 다가오는 소년,

그런 그에게 몸을 홱 돌려서 활을 겨누며 사샤는 싸늘하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살기마져 섞여있었다.


"가까이 오지마."


히익 하고 뒤로 물러서는 소년을 등지고 활을 어깨에 매고는 발소리도 없이 풀숲사이로 사라지는 사샤

소년은 잠시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곧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마구 뛰어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자, 잠깐만요!"


무작정 사샤를 뒤쫓으며 소년은 계속해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녀는 흔적조차 남기지않고 소년은 길을 잃고야 말았다.

가시덤불이 우거지고 빽빽하게 풀숲으로 들어차 한치앞도 분간하기 힘든 밀림

방금전의 숲과는 다른 세계처럼 치밀해진 구조에 소년은 공포를 느끼며 주저앉았다.

하지만 그 어린 나이에도 그는 질질 짜거나, 절망에 빠지지 않고 다시 일어섰다.


"아직이야... 아직 포기할순 없어."


비록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옷소매로 쓱 닦아내고 먼지를 턴뒤,

그는 계속 어딘지 모를 출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표식조차 남기지않고 사실은 같은곳은 맴돌고 있다는것조차 모른채 밀림속을 헤맸다.

그 모습을 나무위에서 한참동안 지켜보며 사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저 소년이 자신때문에 길을 못찾고 허둥대고 있는것이 즐거운게 아니다.

그런 상황에 빠져서도 끝내 체념하지 못하는 끈질김이 지겹지만, 그와 동시에 흥미로웠다.


"재밌는 녀석이로군."


사샤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같은건 눈꼽만큼도 눈치채지 못한채,

소년은 마침내 밀림을 탈출했다.

다시는 이런곳따위 절대 안와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샤를 못쫓아간것이 아쉬웠다.

한참동안 어두운 숲속을 들여다보던 소년은...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다.


"흐음?"


슬슬 집으로 돌아가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던 사샤는 소년의 행동에 적잖이 놀란다.

소년은 재빠른 몸놀림으로 나뭇가지위로 옮겨탄뒤,

나무 사이를 불안불안하지만 나름대로 민첩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방금전 늑대들과의 추격전으로 많이 지쳤을텐데도 소년은 불굴의 근성으로 아직도 사샤를 찾고있었다.

단순히 어린애의 호기심이라기엔 지나친 반응에 사샤는 인상을 찌푸렸다.


"겁 좀 줘볼까?"


위협만 할 생각으로 활을 들어 시위를 당긴다.

가느다란 소나무 가지를 화살대신 날려 소년이 막 옮겨타려는 나무를 향해 팍 박아넣는다.

소년은 나뭇가지에 안착함과 동시에 자신의 옆으로 날아와 나무둥치에 박히는 화살을 보고 기겁한다.

그바람에 앞으로 몰아야했던 몸의 균형이 뒤로 젖혀지며 나무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어차피 아래는 풀숲이니까, 괜찮겠지."


사실은 풀숲이라곤 해도 팔다리 하나정도는 부러져도 이상하지않을 높이다.

그러나 그런것까지 신경써줄만큼 그녀는 자비롭지는 못했다.

싸늘하게 냉소지으며 돌아서려던 사샤의 귓가에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당찬 목소리에 사샤는 인상을 한껏 찌푸렸다.


"포기안할거에요! 절대로!"


순간 멈춰서며 움찔움찔 핏줄을 세우는 사샤,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이제와서는 짜증이 난다.

수면제로 재워버리고, 숲밖의 아무데나 내던져둘까 하고 진심으로 생각이 들만큼 화가 난다.

숲의 수호자라는 정석의 임무대로라면 소년이 늑대들에게 잡아먹히게 내버려뒀어야 하기도 했다.


"끙..."


다시 나무를 기어오르는 소년을 보며 사샤는 붉그락푸르락 안색이 뒤바뀌었다.

피리로 모기나 벌같은 벌레들을 불러다가 물게만들까?

활로 팔다리를 맞춰서 못움직이게 만들어버릴까?

여러가지 흉칙한 상상까지 헌트리스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를 계속 자각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소년을 향해 소리쳐 경고하기로 했다.


"이만 집으로 돌아가는게 좋을거다! 더 가까이 오면 쏴버린다?!"


그녀의 목소리가 숲속을 메아리쳐 울린다.

소년은 그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버럭 화를 내며 맞받아쳤다.

나이에 걸맞지않게 악을 쓰듯이 내질러진 음성은 당당했다.


"죽어도 안돌아갈거에요!"


탁하고 자신의 이마를 치며 허, 하고 한숨을 내쉬는 사샤

이제는 짜증나다못해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그녀는 꼭 무언가 찐득찐득한것이 달라붙었는데 떼낼수가 없어서 절규하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소년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빠르게 다가가는 사샤

소년은 가까워지는 인기척에 놀라면서도 웃었다.

사샤는 소년의 앞에 탁 서며 이를 갈았다.


"그래, 이 빌어먹을 꼬맹아. 원하는게 뭐냐?"


"사샤님의 제자로 삼아주세요!"


사샤의 거친 말투에서 빈정거리는거라는걸 알아채지도 못했는지,

소년은 순수한 동경심을 담아 소원을 말했다.

그 뜨거운 시선을 차마 마주보지 못하고 사샤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완전히 너덜너덜해져서 더러워진 소년의 가여운 꼴을 보고는 눈매가 풀어져있었다.


"너, 이름은 뭐냐?"


"로빈, 로빈 에릭이에요!"


"따라와라. 할수있다면"


밤바람이 차디찼다.

소년은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도 용케 미끄러지지않고 그녀를 뒤쫓았다.

높은 나무들을 오가자 우거진 가지들에 달빛조차 가려졌다.

하지만 결코 숲속은 어두워지지 않았다.

달빛도, 별빛도 사라진 칠흑의 어둠을 밝히는건 생명의 불빛이었다.

반딧불이들은 영롱하게 연녹색으로 반짝이며 한꺼번에 무리지어 피어올랐다.

개화하는 꽃잎처럼 엉켜 기둥을 이루어 솟아오르는 빛의 알갱이들

아직도 소년은 그날밤의 절경을 잊지못했다.







"어째서냐..."



번개가 내리치며 새카만 하늘이 황금의 칼날로 갈라진다.

천둥이 울려퍼지고 사그라드는 불빛아래에서 남자는 비를 맞으면서 흘러가는 핏물을 가만히 내려다보고있었다.

그 끝자락에는 그가 가장 사랑하던 가족들이 누워있었다.

늘 미소로 그를 반기던 아내와 꼬옥 품안에 안겨오던 딸

그 무엇과도 바꿀수없던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들이였던 두사람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어째서 나에게는... 이런 운명만이 주어지는것이냐..."


털썩 무릎을 꿇으면서 남자는 고개를 떨궜다.

사실 그도 정답은 알고있었다.

업보다.

그가 이제까지 저질러온 짓거리들에 대한 정당한 댓가인것이다.


"신이시여... 당신을 저주합니다!

이러실거라면... 차라리 그녀를 저와 만나지않게 해주셨어야죠!

대체 그녀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꼴이 되게 만드시는겁니까!"


분노하면서 남자는 바닥을 내리쳤다.

마룻바닥이 부셔지면서 판자조각들이 튀어오른다.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꺽꺽하는 숨소리를 흘렸다.


"아... 빠?"


그때 그의 귓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고개를 들고서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딸쪽을 바라보았다.

살아있다. 어떤 기적이 일어난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숨을 쉬고있었다.


"메리! 메리!"


곧바로 달려나가 딸을 끌어안으며 그는 맥박을 살폈다.

그러나 그의 딸은 이미 죽음을 목전에 두고있었다.

손에서부터 불꽃을 일으켜 딸에게 불씨를 불어넣듯이 마력을 흘리며 그는 중얼거렸다.


"제발... 제발! 죽으면 안된다.

이제 나에겐 너밖에 없단다. 제발!

메리, 내딸..."


"아빠... 추... 워..."


딸의 호흡은 멈췄다.

온기는 결국 그녀에게 닿지못했다.

깨진 창문으로 비바람이 몰아닥치면서 집안에 습기를 흩뿌렸다.


"메리? 메... 리..."


남자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죽은 딸을 부둥켜안았다.

이것이 그가 처음으로 겪는 아픔은 결코 아니였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수없이 마모되고 꺽여나갔던 그의 마음은 이제 한계에 도달해있었다.

차라리 죽고싶었다.

지금 그는 복수심조차 들지않았다.

그리한다한들 죽은 딸이 살아돌아오지는 못하리란걸 알고있었다.


"랜서..."


누군가 집안으로 들어섰다.

고개를 돌리지조차않고 랜서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파악할수 있었다.

평소의 그였다면 때려죽여서라도 내쫓았을 흉물이였지만 지금은 그럴 기운조차 없었다.


"게르니카"


"미안해. 내가 좀더... 조금만 더 빨리 왔었어도..."


그녀가 공공의 적이기에 목에 현상금도 걸린 몸이란건 알고있다.

또한 진심으로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걱정해주는것도 알고있다.

그러나 괜한 역정이 난 랜서는 이를 갈면서 으르렁거렸다.


"꺼져!"


"랜서, 내말을 들어봐.

아직 늦지않았어.

내 아지트로 데려가자. 되살려낼수 있을지도 몰라."


되살려낸다는말에 랜서는 고개를 돌려 게르니카를 바라보았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비에 푹 젖은 그녀의 표정에서는 불안함이 느껴졌다.

그녀로서도 성공해본적은 없는 부활실험

그것이 최근에 어느정도는 성과를 냈기에 하는말임이 틀림없었다.


"너의 딸이잖아. 기적을 보여줄지도 몰라."


"내딸을... 너의 실험체로서 쓰겠단거냐?"


"시간이 없어. 물론 나도 꿍꿍이가 없단건 아냐.

하지만 알잖아. 이방법뿐이란걸"


랜서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죽은 딸의 얼굴을 내려다보고선 그는 마음을 바꾸었다.

그에게 남은 최후의 보루가 지금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였다.


"가자. 앞장서."


"잘따라와. 이주변에는 눈도 귀도 많으니까"


결과만을 말하자면,

실험은 성공했다.

비밀스럽게 산밑에 지어진 연구소에서 게르니카는 6번의 실패끝에 겨우겨우 4시간만에 로즈메리를 되살려냈다.


"살아났어... 살아났어! 되살아났다고! 내가... 살려냈어!"


광기로 가득한 웃음을 터뜨리면서 게르니카는 두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면서 로즈메리는 두눈을 깜박였다.

랜서는 믿기지않는다는 표정으로 벌겋게 충혈된 두눈을 치켜뜨면서 실험대로 다가섰다.


"메리... 메리!"


그러나 로즈메리는 고개를 돌리지않았다.

어쩌면 청력이 소실된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랜서는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그녀앞에 섰다.

그리고는 볼을 손으로 잡으면서 눈을 마주쳤다.


"메리, 아빠다. 응? 알아보겠니?"


하지만 그 눈동자는 너무나도 공허해서,

마치 속이 빈 인형과도 같이 흐릿하고 촛점조차 잡혀있지않았다.

그걸 보고선 랜서는 오싹하고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게르니카, 대체... 이게..."


"아무래도... 영혼은 되돌아오지못한것 같아."


"무슨 소리냐?"


"그러니까... 지금 이 육체에 깃든건 새로운 영혼인거야.

마치 갓 태어난 아기처럼... 미안해. 랜서, 이게 내 한계였던것 같아."


랜서는 숨조차 쉬지못했다.

그는 서있기도 힘든지 벽에 등을 기대더니 주르륵 미끄러졌다.

그리고는 광인처럼 실소를 흘리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런건... 이런건!"


"랜서! 안돼!"


주먹을 불끈쥐더니 달려나가는 랜서

그걸 정면으로 가로막으면서 게르니카는 두팔을 쫙 펼쳤다.

그가 지금 무슨짓을 하려는지 알고있기에 그녀로서는 반드시 막아야만 했다.


"랜서! 진정해! 다시 한번 봐봐.

비록... 껍데기뿐이긴해도 이건 당신딸의 육체를 가지고있어.

그, 그래! 새로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하고 육성하는거야. 어때?

당신과 나, 둘이서라면 얼마든지 훌륭하게..."


"죽여다오. 게르니카"


랜서는 넘어지듯이 몸의 균형을 앞으로 무너뜨리며 두팔로 상체를 겨우 지탱했다.

그는 오열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떨군채 절규했다.

게르니카는 완전히 무너져내려버린 랜서의 머리를 따스하게 감싸안으면서 울고말았다.


"가엾은 사람..."


"차라리 죽게해줘...

난... 난 더이상 감당할 자신이 없어..."


"당신도 알잖아. 우린 자살조차 할수없는 빌어먹을 운명을 지닌 존재들이라고"


랜서는 손을 뻗어 게르니카의 몸을 안았다.

뼈를 우그러뜨릴듯이, 게르니카로서는 아픔이 느껴지도록 거칠게,

그러면서도 고개를 천천히 들면서 결의가 담긴 눈으로 말을 이었다.


"다른 방법이 있잖아."


"래... 랜서! 그건..."


"상관없어. 어차피 100년이면 풀릴 주박에 불과하다해도,

마약이나 다름없는 진통제같은 임시방편일뿐일지라도 난 그걸 원해.

그것말곤 방법이 없다고!"


기억의 소거

자기존재의 부정

그것은 어찌보면 죽음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게르니카는 랜서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알고있었지만 그걸 그대로 들어줄 용기가 없었다.


"그, 그럼 당신 딸은?"


"저건 이미 내딸이 아냐.

그저... 인두겁을 뒤집어쓴 괴물일뿐이라고"


지독할 정도의 비인간성

하지만 현재의 랜서로서는 그것조차 부자연스럽지않았다.

그는 반쯤 깨져버린 달걀이나 다름없었다.

줄줄 액이 새어나오면서 머지않아 터져버릴것만 같았다.


"랜서, 딱 한가지만 약속해줘."


"...뭔데?


"이건 전부 당신이 원해서 한거란걸... 잊지말아줘.

나로 인해 모든걸 잊게되어도, 다시 기억이 되돌아와서 괴로워진다해도 그건 전부 당신의 선택이야.

난 분명히 말했어. 알겠지?"


"그래. 약속하지."


랜서가 기억을 잃고나면 어쩌면 게르니카는 늘 원하던대로 그를 수족처럼 다룰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그녀가 원하던 결말이 아닐것이다.

길어봐야 수백년밖에 가지못할 세뇌겠지만 그안에 다른 방법을 강구할수는 있을터였다.


"그럼... 잘자. 랜서

따님은 내가 잘 돌봐줄게. 약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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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 넬라-15 20.10.18 12 0 14쪽
307 넬라-14 20.10.18 10 0 13쪽
306 넬라-13 20.10.18 11 0 16쪽
305 넬라-12 20.10.18 9 0 12쪽
304 넬라-11 20.10.18 12 0 14쪽
303 넬라-10 20.10.16 14 0 13쪽
302 넬라-9 20.10.16 15 0 13쪽
301 넬라-8 20.10.16 15 0 13쪽
300 넬라-7 20.10.16 14 0 12쪽
299 넬라-6 20.10.16 46 0 12쪽
298 넬라-5 20.10.16 12 0 12쪽
297 넬라-4 20.10.16 15 0 14쪽
296 넬라-3 20.10.16 22 1 25쪽
295 넬라-2 20.10.16 12 1 15쪽
294 넬라-1 20.10.16 16 1 14쪽
293 볼칸-끝과 시작 (6부 끝) +2 18.07.12 214 2 5쪽
292 볼칸-기약 18.07.11 116 2 11쪽
291 볼칸-악마 18.07.10 98 3 11쪽
290 볼칸-지옥문 18.07.09 112 2 12쪽
289 볼칸-닿지않는 마음 18.07.07 126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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