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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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7.12.26 22:56
최근연재일 :
2019.01.17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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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10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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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점

DUMMY

산적 소굴에서 탈출한 가란을 추적한 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앞장서던 아론이 갑자기 멈춰 서더니 레나를 돌아보았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레나는 그가 멈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곳은 숲이 끝나는 장소였다. 더 이상 아론에게 가란이 간 방향을 가르쳐 줄 나무와 풀이 없어진 것이다.

“미안해요, 레나. 여기서부터는 가란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미안할 필요는 없어요. 아론이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을 테니까. 이제는 그의 목적지가 명확해진 것 같아요.”

그들의 눈앞에 저 멀리 성대한 항구도시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로 가란의 출신지인 스톡이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도 추측할 수 있었다. 바로 허스크 산에서 노략질한 장물들을 팔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상하네....”

레나는 중얼거리면서 지도를 펼쳤다. 가란이 스톡으로 향했다는 건 거의 확실한 사실이니 그걸 확인하고자 하는 게 아니었다. 그녀가 의아했던 건 스톡의 두 진입로와 전혀 동떨어진 곳에서 가란의 흔적이 끊겼다는 점이었다. 지도에도 나와 있다. 여기는 스톡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왜 이 쪽으로 왔을까....?”

레나는 지도를 접으며 중얼거렸다. 다음 순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눈앞에서 아론이 커다란 판자를 들고 서 있었던 것이다. 그의 바로 앞바닥에는 산적 소굴에 있었던 것과 같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런 곳에 비밀 통로가 있었군요! 어떻게 찾았어요?”

“음....”

아론은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레나도 굳이 들으려 하지 않았다. 단지 그가 가진 능력 중 하나로 기억해둘 뿐이었다.

“빨리 가죠, 아론.”

레나는 서둘러 비밀 통로 안으로 뛰어들었다. 강철 같은 체력의 두 사람이었지만 아무래도 말을 타고 있는 가란보다는 느릴 수밖에 없었다. 하루? 이틀? 얼마나 뒤쳐졌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지금이 유일한 기회다. 놈이 스톡을 빠져나가기 전에 잡아야 한다. 레나는 반디표범의 투구를 만지작거리며 굳게 다짐했다.


그 시각 라몬은 스톡의 한 식당에서 레스릭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마법사의 성에서는 아론이 스톡에 발견되었다는 제보를 받고 31인의 마법사들을 파견하였는데, 이들은 그 일원이었다. 흩어져서 아론의 행방을 수색하는데 이 두 사람이 한 조가 된 것이다.

“여기 회맛은 페이른과 또 다르네요. 같은 물고기인데 수온이 달라서 그런가?”

레스릭이 요란스럽게 생선살을 우적우적 씹으며 말했다. 과묵한 라몬은 대답 없이 점잖게 식사만 할 뿐이었다. 사실 그는 이 식당에 오고 싶지 않았다. 회를 싫어하는 아론이 결코 찾지 않을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스릭이 스톡의 회도 먹어보고 싶다고 우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따라온 것이다.

“스톡 안을 샅샅이 수색해봤는데 흔적도 없군요. 혹시 착각한 거 아닐까요?”

“덩치 큰 남자가 갑자기 나타났다는 증언이 있었네. 그리고 그 남자는 쥬튼 갑옷을 입고 있었다던데.”

레스릭은 성실한 친구였지만 조금 산만한 구석이 있었다. 출발 전에 모두 모아놓고 설명한 내용인데 처음 듣는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쥬튼 갑옷을 입은 덩치 큰 남자라면 아론이네요?”

“그래, 아론이야. 오는 과정을 보이지도 않고 불쑥 그 자리에서 나타났다고 하네. 순간이동 마법을 쓴 거지.”

레스릭은 라몬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요리사가 생선을 손질하는 칼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라몬은 그것에는 별로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뭘 그렇게 보고 있나?”

그런데도 참지 못하고 이렇게 물은 건 레스릭의 눈빛이 이상할 정도로 그 칼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저 칼 굉장히 좋은 거예요. 정성들여서 만든 것 같아요.”

같은 일을 하는 입장이라 그런지 레스릭은 회를 뜨고 있는 칼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 칼을 유심히 보면서 라몬에게 불쑥 질문을 던졌다.

“제 마법으로도 못 자르는 게 있어요. 그게 뭔지 알아요?”

“살아있는 생명은 못 자르겠지.”

라몬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생존본능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저항력이고 모든 종류의 마법을 무효화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존재에게는 그가 원하지 않는 마법을 직접적으로 걸 수가 없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 말고도 제가 못 자르는 게 또 있어요.”

레스릭은 고개를 가로저은 후 정답을 알려 주었다.

“굉장한 공들여 만든 물건, 정성이 듬뿍 들어간 물건도 못 잘라요.”

“그건 아마 자네의 마력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일 걸세.”

비록 마법사가 아니어도 사람은 누구나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 의지가 마법사들의 의도와 어긋날 때 그것은 곧 마법에 대한 저항력으로 작용한다. 장인이 혼을 담아 만든 물건에는 그 의지가 깃들고, 때때로 그 의지가 마법에 대한 저항력으로 작용하곤 했다. 이는 비단 레스릭 뿐만이 아닌 대다수의 마법사들이 경험하는 현상이었다. 그 저항력을 능가하는 마력을 갖추지 못했을 때 말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못 자르게 됐어요.”

레스릭은 또 다시 고개를 흔들며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예전에는 아무리 공들여 만든 물건도 자를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 마법이 약해졌어요. 저 칼.... 정성이 들어가긴 했지만 그렇게 대단한 물건까지는 아니에요. 그런데 지금은 저 칼도 자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러면 마력이 약해졌다는 말인가?”

라몬은 비로소 레스릭의 의도를 깨닫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레스릭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존심 상하지만 그래요. 아론이 떠난 후로 이상하게 약해진 것 같아요. 예전에 되던 게 지금은 안 되네요.”

“아론이 떠난 후라고?”

“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때와 시기가 맞아떨어져요.”

레스릭의 말을 듣고 라몬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아론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 자신을 제외한, 거의 모든 마법사들의 마력이 최근 4년 동안 부쩍 강해졌다. 하지만 라몬은 그것은 아론의 천부적인 재능에 자극받은 동료들이 정진한 결과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최근 그들의 마력이 약해진 건 아론이 행방불명된 후 위축된 심리가 반영된 결과라고 여겼다. 그런데 어쩌면 아론의 존재 자체가 주변 마법사들의 마력에 영향을 주는 것일 수도 있었다. 레스릭은 마법사가 된 지 얼마 안 되어 마력이 약하기에 그 원인이 더욱 극명히 드러난 것이다.

“빨리 아론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그는 꼭 돌아와야 해요.”

이제 라몬은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토비는 그를 따돌리고 몰래 쥬이 여사를 만나면서까지 아론을 성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생각을 바꾸어 아론을 다시 성으로 데려오려는 이유는 과연 순수한 책임감 때문일까? 레스릭의 목소리에 담긴 간절함과 애틋함을 마주하고 나니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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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아론 : 어? 당분간 저 중심으로 진행되는 거 아니었어요?

레나 : 지금도 아론 중심이잖아요? 저는 요만큼만 나왔는데, 그것도 불만이에요?

아론 : 네ㅠ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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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47 Brav
    작성일
    18.03.10 04:22
    No. 1

    레나는 아론과 대화하는 법을 날이 갈수록 더 잘 알게 되고 있군요. 이번엔 누구를 대면하게 될까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8.03.11 20:17
    No. 2

    새로운 도시에 왔으니 새로운 인물을 만나게 되겠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8 메틸아민
    작성일
    18.03.10 09:29
    No. 3

    근원에 다가갈수록 더 강해지지만 미칠 위험도 더 커지는 건가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8.03.11 20:18
    No. 4

    증언에 따르면 그렇다고 봐야겠죠.
    그런데 왜 아론의 마력은 다른 마법사들이 감지를 못하는 걸까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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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어긋난 예측 +4 18.12.06 156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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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전복 +4 18.12.01 150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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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선한 바르테인 인 +4 18.11.22 157 2 14쪽
133 배수진 +4 18.11.20 184 2 12쪽
132 노아와 태초의 거인 +4 18.11.17 184 2 10쪽
131 채굴권 +4 18.11.15 171 2 11쪽
130 번영과 멸망 +2 18.11.10 194 4 12쪽
129 창세의 비밀 +4 18.11.08 222 2 11쪽
128 금단의 진실 +4 18.11.06 190 4 13쪽
127 섬의 이름 +2 18.11.03 164 4 10쪽
126 입장 표명 +4 18.11.01 182 3 14쪽
125 정체 +4 18.10.27 167 3 10쪽
124 접근법 +4 18.10.25 160 3 12쪽
123 진료소 +4 18.10.23 181 3 11쪽
122 해방 +4 18.10.20 200 3 14쪽
121 고삐 +4 18.10.16 200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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