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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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7.12.26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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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7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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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20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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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진

DUMMY

로든은 최근 자신이 재상의 방을 방문한 일을 치욕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목적이 군사적인 문제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며칠 뒤 렉트가 거꾸로 그의 방을 방문했을 때는 보상을 받는 것 같은 기분마저 느꼈다. 그러나 재상이 방문 목적을 밝히자 로든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는 이제 베사레딘 성으로 떠나려 합니다.”

로든은 놀란 눈으로 렉트를 바라보았다. 흔들림 없는 표정이 그가 진심이라는 걸 이야기해준다. 이에 로든은 더욱 경악하게 되었다.

“저희가 마지막으로 확인한 윈스턴 왕의 입장은 섬을 재차 공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제 상소를 그 분께서 받아 주실 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떠나셔도 괜찮겠습니까?”

에네버의 재상인 렉트가 알타메트의 작은 항구인 올루스에 몇 달째 머물고 있는 이유는 오로지 쥬튼 섬 때문이었다. 로든이 섬을 정복하는데 성공했을 경우 그 수확물을 관리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던 것이다. 때문에 갑자기 왕성으로 돌아가겠다는 재상의 발언은 쥬튼 섬을 재침공하는 일을 반드시 막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곳에는 제가 할 일이 없습니다. 제가 할 일은 수도에 있습니다. 바로 전하를 설득하는 것이죠. 저는 그것을 위해 떠나려는 것입니다.”

“굳이 떠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전하를 설득하고 싶으시다면, 서찰을 보내시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서찰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미 한 번 겪어보시지 않았습니까?”

렉트는 최근에 받은 윈스턴의 칙명을 눈으로 가리킨다. 로든이 싸움에 지고 돌아온 후 두 사람은 패전 보고서를 통해 섣불리 섬을 넘볼 수 없는 이유를 왕에게 상세히 설명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왕의 대답은 재침공이었다.

“제가 직접 얼굴을 맞대고 그 분을 설득하겠습니다. 만약 설득할 수 없다 해도, 제가 올루스를 떠난 이상 전하께서는 마음을 돌리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자칫 잘못하면 전하의 노여움이 경에게 향할 수 있습니다.”

로든은 필사적으로 렉트를 만류해 보았다. 렉트는 소탈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로든 경은 검은 강철 광산을 잃을 위험까지 감수하셨습니다. 그러니 저도 다소의 위험은 감수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재상의 눈은 단호한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로든은 그것을 보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윈스턴 왕이 렉트를 올루스에 일부러 파견한 이유 중에는 로든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분명 있었다. 최악의 경우 로든이 섬을 정복한 뒤 그곳에서 자신만의 세력을 양성하거나 쥬튼을 몰래 빼돌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렉트는 로든과 신경전을 벌이기는커녕 그의 결단을 지지해준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희생까지 감수하면서 말이다.

“또 다시 섬을 공격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됩니다, 로든 경. 그랬다간 에네버에게 무의미한 희생만 안겨줄 뿐입니다.”

물론 오직 로든만을 위한 결정은 아니었다. 재상은 국가적 손실을 방지하고 싶은 목적 또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인 점은, 굳이 쥬튼 섬 공격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패전으로 쥬튼 섬이 생각보다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입증되었습니다. 현 시점에서 감히 그 섬에 손을 뻗을 여유가 있는 세력은 전무합니다. 결국 그 섬은 언젠가는 우리 에네버의 차지가 된다는 이야기죠. 이를 말씀드리면 왕께서도 안심하실 겁니다.”

“제 의견도 경과 같습니다.”

로든이 감탄한 얼굴로 렉트의 말에 맞장구쳤다. 내정의 최고 권위자인 재상이 날카로운 군사적 식견 또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제가 수도로 돌아가는 대신 경은 반드시 레시안을 무너뜨려 주십시오. 이는 부탁이 아니라 요구입니다.”

렉트는 이렇게 말하며 로든에게 엄숙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검은 강철 공작은 결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반드시 그리 하겠습니다.”

재상은 그 동안 함락시키지 못했던 소샤이트의 요새를 어떻게 갑자기 일주일 내에 공략할 수 있는지 묻지 않는다. 로든이 반드시 성공하리라 확신하고 이후 정세를 분석한다.

“레시안을 쳐부순다면 소샤이트군의 사기가 단번에 꺾일 것입니다. 그 기세를 몰아 웨이진 성까지 어려움 없이 손에 넣을 수 있겠죠. 아덴트 대회전 이후 메다민 왕성을 점령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 뒤 쥬튼 섬을 다시 칩시다. 그 때는 병력이 나뉘는 일 없이 에네버의 전력을 그 섬에 집중할 수 있을 겁니다.”

로든은 내심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역시 렉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샤이트를 확실히 정복하고 나면 에네버는 틀림없이 쥬튼 섬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겁니다.”

“로든 경은 그 동안 기적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경은 수백 년 동안 레니칸 대륙의 패자로 군림해왔던 바르테인을 정복하고 말았죠. 이번에도 에네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실 거라 믿습니다.”

“제 명예를 걸고 약속드립니다.”

로든에게 굳은 다짐을 받아낸 렉트는 곧바로 짐을 꾸렸다. 그리고 올루스 영주인 넴로드의 성대한 환영을 받으며 에네버의 수도인 베사레딘으로 떠났다. 로든 또한 말을 타고 멀리까지 나가 배웅함으로써 나이 많은 재상에게 예의를 보였다.

-즉시 병력을 이끌고 레시안 전선에 복귀해야겠어.-

올루스로 돌아가는 길에 로든은 시저에게 자신의 계획을 밝힌다. 이를 듣고 놀란 정령검이 그에게 충고했다.

-섣불리 움직이는 건 좋지 않아, 로든. 왕이 섬을 포기하지 않을 수도 있잖나?-

-그럴 일은 없어.-

로든은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찰만 보냈다면 그 가능성이 3할 정도는 되었겠지. 하지만 렉트가 직접 왕을 만나서 설득하러 가지 않았나? 이제 가능성은 0이다. 재상은 틀림없이 성공할 거야.-

재상이 로든을 신뢰하는 만큼, 로든 또한 렉트를 신뢰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저는 그 과정을 모두 지켜봤는데도 로든과 렉트 사이에 별안간 신뢰와 유대감이 형성된 현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아론이라는 그 마법사는 포기해야하는 건가?-

시저가 아쉬운 마음을 담아 중얼거린다. 로든과 달리 그는 내심 윈스턴 왕이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어차피 이번에 다시 공격해도 놈을 생포하는 건 불가능했어. 어줍지 않은 병력으로 쳐들어가봐야 마법사들의 저항을 뚫을 수 없다는 건 너도 동의하지 않았나?-

일찍이 시저는 그에게 악마의 힘을 선물해 주었다. 덕분에 리처드에 버금가는 검술을 얻게 된 로든은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다. 해모수 섬을 처음 공격할 때도 로든은 회의적인 입장이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번에 처음으로 로든은 정령검의 뜻을 거스르기로 했다. 패배가 뻔한 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좋아. 대신 약속은 지키는 거지, 로든?-

그러나 사실 시저의 입장에서 손해는 없었다. 만약 섬을 재침공하지 않게 될 경우에는, 로든이 다른 방법으로 보상해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물론이다, 시저.-

로든은 렉트에게 한 약속을 되새겨 보았다. 이렇게 된 이상 무슨 일이 있어도 레시안 성을 함락해야만 한다. 그곳에서 승전보를 올리면 수도에서 왕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을 렉트의 입장이 한결 떳떳해질 것이다.

-네가 시키는 대로 하면 정말로 레시안 성을 점령할 수 있는 건가, 시저?-

-물론이다, 로든. 나를 믿어라.-

시저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사실 레시안 성을 점령하지 못해도 시저로서는 손해 보는 게 없었다. 그렇기에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며칠간의 항해 끝에 불사조의 날개 호는 올루스와 레시안 사이의 해안가에 도착했다. 사실 레나가 가고 싶었던 목적지는 올루스였다. 섬을 침략한 대륙군의 본거지인 만큼 얻을 정보도 많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루스에는 혹시 공격해올지 모를 소샤이트의 함대를 감시하기 위한 초병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조금 위쪽에 상륙하기로 한 것이다.

레나는 심호흡을 하며 해안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며칠 동안 지겹게 봐왔던 바닷물과 파도뿐이었다. 혹시 대륙인들의 눈에 띌 수도 있기에 불사조의 날개 호가 해안가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정박한 까닭이었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레나는 여전히 미지의 대상으로 남아있는 대륙에 대해 온갖 상상을 펼쳐 나갔다.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녀와 달리 망원경으로 육지의 동태를 살핀 척후가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낸다. 필요한 짐을 점검하고 있던 레나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대검과 방패를 꼭 쥐었다. 그녀의 무기들은 쥬튼이 아니었다. 그 특유의 검은 광택을 보고 쥬튼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아론의 갑옷도 평범한 철제였다. 대신 그들의 장비에는 마법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도 아론이 직접 불어넣은 마법이었기에 오히려 쥬튼보다 튼튼하고 유용했다.

“네 목적은 대륙의 정세를 파악하는 거야. 그러니 잊지 마, 레나.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걸. 부디 몸조심....”

칼린은 목이 메인 나머지 차마 말을 맺지 못했다. 레나는 그런 어머니를 꼭 안아주며 안심시켜 주었다.

“명심할게요, 엄마.”

두 모녀가 눈물의 작별을 나누는 동안 아론도 바루크와 짧고 굵직한 인사를 하고 있었다.

“남자가 되어 돌아 오거라. 레나 말 잘 듣고.”

“네. 레나 말 잘 들을 게요.”

이윽고 해모수를 포함한 모두와 작별인사를 마친 레나와 아론은 갑판 위에 섰다. 바야흐로 대륙으로 떠날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힘차게 손을 흔들어 준 뒤, 두 사람은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아론은 갑옷의 무게 때문에, 레나는 검과 방패의 무게 때문에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나 둘을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이 계획된 바였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도 발각되지 않기 위해 두 사람은 물속으로 잠입하기로 한 것이다.

곧 아론이 약속한 대로 바닷물 속에 터널을 만들어 주었다. 그곳에 이르자 두 사람은 뭍에서처럼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었다. 레나는 아론을 인도하면서 바닥에 굴러다니는 조개들과, 머리 위 수면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를 마음껏 구경하였다. 대륙의 바다생물들은 해모수 섬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신기해하면서 말이다.

“두 사람이 해안가에 도달했습니다.”

바루크와 칼린은 망원경을 통해 그들의 아들딸들이 무사히 대륙에 도달하는 광경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후에야 배를 돌려 해모수 섬으로 돌아갔다. 레나와 아론을 뒤쫓는 검은 그림자를 그들이 발견하지 못한 것은 실로 간발의 차이였다.

레나 또한 추격자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다. 대륙의 땅과 동식물들을 관찰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던 데다, 그 추격자가 워낙 감쪽같이 숨어서 쫓아왔기 때문이다.

“제프?”

해가 질 무렵 식사하기 위해 자리를 펼친 후에야 그녀는 마침내 추격자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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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섬의 이름 +2 18.11.03 164 4 10쪽
126 입장 표명 +4 18.11.01 182 3 14쪽
125 정체 +4 18.10.27 167 3 10쪽
124 접근법 +4 18.10.25 160 3 12쪽
123 진료소 +4 18.10.23 181 3 11쪽
122 해방 +4 18.10.20 200 3 14쪽
121 고삐 +4 18.10.16 200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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