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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아이들의 등불(?) (1)

DUMMY

서준 일행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사멸당한 변이체의 등급은 고작 2종에 불과했다.

기척을 죽인 채 몇날 며칠이고 땅속에 은신하다 사냥감을 발견하면 촉수를 이용해 땅속으로 끌어당긴 뒤 먹어치우는 놈이다.

기척을 죽이고 은신을 제외하면 변변한 공격능력도 없는 놈이다.

그런 놈에게 일행을 잃어버렸다.

여러 가지 요인이 한 번에 맞물려서 벌어진 참극이었다.

성기와 병태는 이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병태의 심정도 참담했지만 그 보단 성기가 받은 마음의 상처가 더 컸다.


‘바보 같아! 멍청해! 조금만 더 냉정했다면... 그랬다면.’


변이체의 배를 갈라 소화되지 않은 수나의 하체를 되찾았다.

위액에 거의 녹아 있는, 죽은 여의사의 시신도 일부 수습할 수 있었다.

서준은 수나와 여의사를 화장했다.

유골은 빻아 가루로 만들었다.

평생 이런 일을 해 볼 것이라곤 꿈에도 상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 모든 일을 묵묵히 해낸 서준은 여의사의 뼛가루는 나무 위로 올라가 바람에 날려 보냈다.


‘더 이상 두려운 일은 없을 거예요.’


수나의 뼛가루는 아이가 마지막까지 찾던 변소정에게 전달하기 위해 가죽부대에 담아 보관했다.

변소정을 생각하면 모른 척 해 버리고 싶었지만 품속에서 죽어 가던 아이의 마지막 말이 가슴에 남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형, 그거 제가 수나 어머니께 전해 드리면 안 될까요?”


성기가 다가와서 말했다.

아이의 표정과 눈빛은 불과 반나절 만에 몰라볼 만큼 달라져 있었다.

서준은 수나의 뼛가루가 담긴 가죽부대를 성기에게 넘겼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옆에 있었는데 지켜 주지 못했어요. 형이, 형이 주변을 경계하라고 했는데.”


머리를 푹 숙인 성기의 어깨는 들썩이고 있었다.

서준은 성기의 어깨를 힘주어 잡았다.


“고개 들어. 들어!”


성기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서준을 보았다.


“못생겼다. 얼굴 펴.”

“......”

“잘 들어. 이건 네 잘못 아니고, 그래, 내 잘못도 아냐! 너나 나나 피해자일 뿐이야. 우릴 납치한 새끼가 잘못한 거지, 너나 내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질질 짜지 마. 우는 건 집에 돌아가서 해. 엄마아빠 붙잡고 해. 나, 나도 그럴 거니까. 그러니까 살아남아. 끝까지 살아남는 놈이 이기는 거니까.”


서준은 진심을 담았다.

한마디, 한마디에 온 마음을 담아 성기에게 이를 전했다.

위로가 되길 바랐다.


“형.”

“응.”

“나 욕 한번 시원하게 해도 돼요?”

“해.”


허락이 떨어지자 성기는 수나의 뼛가루가 든 가죽부대를 꼭 끌어안은 채 자신이 아는 모든 욕을 쏟아 냈다.


* * *


죽은 자에겐 아침이 없다.

아침은 산 자에게 허락된 시간이다.

고된 하루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일출과 함께 서준 일행은 억지로 음식을 삼킨 뒤 움직였다.

수나의 사건을 계기로 아이들의 경계심은 더욱 커졌다.

막내 이수는 서준에게 부탁해서 칼과 방패를 받았다.


「저도 엄마아빠를 만나고 싶어요. 그러려면 살아 있어야 하잖아요. 제 자신을 지켜야 하잖아요.」


이수의 울먹임이 아직까지 귓가에 맴돌았다.

서준에게서 무기를 받아든 이수는 병태와 함께 일행의 유일한 일반인이 되어 버린 성아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며 그들과 함께 지구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왜소하고 작은 아이의 마음은 그새 어른만큼 자라 있었다.

병태와 달리 이수는 변이체 사냥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레벨은 단 1도 올리지 못했다.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아이에게 독이 된 케이스였다.

동물형 변이체 한 마리가 풀숲에서 튀어나왔다.

2종에 불과한 놈이다.

놈의 입장에선 빠르고 완벽한 기습이었을지는 몰라도 놈이 넘어야 할, 서준이란 산은 그런 실력으로 넘기엔 부족했다.

그 결과.


푹푹푹-!


풀숲이 흔들리고 그 안에서 변이체가 튀어나오는 순간 서준은 인벤토리에서 검을 빼들었다.

빼든 검을 단단히 움켜쥔 그는 변이체의 뒷발이 땅에서 반쯤 떠오르기 전에 놈의 몸에 칼집을 냈다.

2종 변이체의 움직임으로 서준의 눈과 움직임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다.


“컹!”


고통에 찬 소리를 내며 놈은 바닥에 뻗었다.

놈의 두 눈은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에 난 칼집 탓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성기를 시작으로 뒤이어 아이들은 그제야 상황을 인지했다.

서준은 두 눈을 끔뻑이는 이수를 손짓으로 불렀다.

마음가짐이 달라지기 전이었다면 이수는 두려움에 성아의 뒤로 숨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을 달리 먹은 이수는 잠깐 주저하다 서준 앞에 섰다.


“죽여.”


성기, 병태, 성아가 움찔한다.

아이들의 눈에 이수는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약자였다.

서준은 손을 들어 아이들을 막아 세웠다.

단호한 표정으로.

이수는 자신을 걱정하는 세 아이를 돌아보며 다부진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이수는 죽어가는 변이체 앞에서 두어 차례 심호흡을 한 뒤 칼을 휘둘렀다.

변이체의 가죽은 이수의 칼을 비웃었다.


“상처 난 곳을 찔러.”

“예.”


그제야 이수는 변이체의 벌어진 상처를 향해 칼을 찔렀다.


푹푹푹.


칼이 변이체의 상처를 드나들 때마다 피가 튀어 아이의 몸과 얼굴에 묻었다.

잔인한 장면이었지만 이수의 마음을 헤아린 듯 성기, 성아, 병태는 그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시선을 돌린다면 그건 이수의 용기를 비웃는 것이 될 것 같아서였다.

변이체는 죽었다.

서준이 도움을 주긴 했지만 2종 변이체다, 거기다 아이가 직접 목숨을 거두었기에 경험치는 상당했다.


“레, 레벨이 올랐어요.”

“몇 개?”

“두 개요!”


강에서, 이끼 낀 바위 틈에서 그리고 수나의 죽음까지 지켜본 아이는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다.

그랬던 아이가 처음으로 미소라 불릴만한 걸 짓고 있었다.

피 범벅이 된 모습이 과히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근력, 체력, 민첩에 하나씩 주는 게 좋을 거야.”


일반 사용자의 한계 레벨은 5, 얻을 수 있는 포인트는 15다.

민첩 스탯에 모두 투자해도 빛은 보긴 힘들다.

특성 사용자와 달리 근력에 핸디캡이 없는 일반 사용자일지라도 근력 스탯에 집중하는 건 투자 대비 효과는 미미하다.

민첩과 체력이 근력의 수치만큼 뒷받침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전한 힘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1 : 1 : 1의 분배로 가야 한다.

병태는 이미 늦었기에 알려 줘 봐야 속만 쓰릴 일이라 말하지 않았지만, 이수는 이제 막 시작하였기에 제대로 알려 줄 필요성이 있었다.

균형 잡힌 신체능력에 경험과 기술까지 더해진다면 고 등급의 변이체가 아닌 이상 제 한 몸은 건사할 수 있게 된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완성된 최적의 방법이었다.


“감사합니다.”


아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근력, 체력, 민첩 스탯에 포인트를 분배했다.

태양이 달이라고 해도, 달이 태양이라고 해도 아이는 서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그에 대한 신뢰가 깊은 상태였다.

아니, 이수만이 아니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추종!

아이들에게 서준은 어둠을 밝히는 유일한 등불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 * *


몸이 힘들고, 마음이 고단하면 사람들은 현실에 집중한다.

그건 서준이나 아이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형, 11시 방향이에요!”


병태가 소리치며 서준의 신호를 기다렸다.


“6시 방향!”


성기도 이를 악물며 소리친다.

아이들은 서준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모였다.

성아를 제외한 아이들의 손엔 칼과 방패가 쥐어져 있었다.

방패를 내세우고, 칼을 휘두를 일은 없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는 그건 전멸이 목전에 와 닿은 경우다.

두려움과 긴장감은 있으나 누구 하나 이에 매몰되어 휘둘리지 않았다.

서준이란 든든한 기둥이 받치고 있어서였다.


“공격해.”


아이들의 절대적인 신뢰에 보답하듯 서준은 한 점의 흔들림도 없이 차분하게 성기에게 명령했다.

서준의 명령은 성기에겐 방아쇠였다.

몰려드는 변이체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던 성기는 불의 숨결을 활성화함과 동시에 불의 창을 날렸다.

불의 숨결은 늘 2차 피해를 동반한다.

화재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서준이 있었기에 성기는 2차 피해에 신경 쓰지 않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더욱이 이들이 서 있는 지형은 습지였기에 굳이 서준이 나서지 않더라도 화재가 발생할 소지는 적었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불의 창이 허공을 가르고 변이체를 향해 날아간다.

창에 맞는 놈도 있었고 이를 피한 놈들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명중률은 50퍼센트 수준이다.

저격이 아니라 난사였기에 명중률이 낮았다.


“형, 쿨타임이에요.”


성기의 잠재력 수치는 7성(★)으로 대단히 높은 수치다.

도시 향수에서도 몇 없는 능력자다.

레벨은 동급의 특성 사용자보다 낮을지 모르지만 서준이란 뒷배를 가진 성기의 성장속도는 가팔랐다.

12일전 서준과 처음 만났을 때 소년의 레벨은 불과 24였으나, 현재 소년의 레벨은 35다.

하루에 한 번 꼴로 레벨이 오른 셈이다.

남김없이 횟수를 사용하여 쿨타임에 접어들었지만 성기의 얼굴에선 두려움이 없었다.

병태, 성아, 이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준이란 등불이 비추는 곳에 서 있으면 안전하단 걸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서준은 아이들의 믿음과 신뢰에 보답하듯 변이체들이 살상반경에 접어들자 서리 파도를 발동했다.

불의 창이 남긴 불씨가 사라진다.

나무가 터지고 바위가 깨진다.

변이체 역시.

모든 것이 하얗게 얼어 버린 후 바스러지는 모습은 잔인하면서도 몹시 아름답다.


“클리어! 수고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병태와 성기가 활짝 핀 얼굴로 소리치며 칼과 방패를 위로 쳐들며 마치 야만의 전사처럼 하울링을 터트렸다.


“성기야 좀 올랐냐?”

“앗싸! 1 올랐어요!”


방금 레벨을 올린 성기는 드디어 1일 1렙을 달성했다.

상태창을 지운 성기가 서준을 돌아본다.


“형은요?”

“3종은 이젠 수백 마리... 아니, 천단위로 잡더라도 어려워.”

“그래도 좋으니까. 저도 형처럼 고렙이 되면 좋겠어요.”


자신을 향한 성기의 두 눈에 가득한 순수한 열망에 서준은 픽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서준의 스킨십에 성기는 활짝 웃었다.

병태, 성아, 이수는 그 모습이 부러운 지 쳐다보며 두 눈을 반짝거렸다.

주인의 사랑을 먹고 사는 강아지 같았다.


‘너무 내게 의존하는 것도 좋지 않은데.’


그런 생각이 슬쩍 들었지만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자신밖에 없다보니 서준은 이를 한시적인 현상으로 판단했다.


“형.”

“응?”

“부족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해요?”

“아마 열흘은 더 가야 할걸.”


혼자 왔다면 벌써 부족에 도착했을 테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짐작하고 있었다.


“성기는 주변경계하고 병태, 성아, 이수는 골석 챙겨.”


서리 파도에 당한 변이체는 일일이 대가리를 깨부숴야 하는 작업이 필요 없었다.

몸뚱이가 산산조각나 버린 놈들이다 보니 골석은 바닥에 굴러다닌다.

아이들이 골석을 줍는 동안 서준과 승기는 주변을 경계한다.

반경 90미터는 평지나 다름없다.

사주경계가 한결 수월하다.

그건 변이체가 저들을 발견하는 것도 수월하단 의미다.


“쿨타임 같은 거 무효화 할 방법은 없을까요?”


성기의 말에 서준은 픽 웃었다.


“나도 알고 싶다. 미치도록.”

“제 생각엔 분명 있을 것 같아요. 서리 파도 같은 무시무시한 사기 스킬도 있는데. 좀, 아니 많이 사기긴 하지만 쿨타임을 줄이거나 없애는 스킬 같은 게 없으리란 법도 없잖아요? 무한 서리 파도! 생각만 해도 짜릿하네.”


소년의 얼굴은 몽롱하게 변하였다.

대체 뭔 상상을 하기에.


“다 주웠어요. 오빠!”

“다 주웠어요.”

“다... 형, 성기 쟤 왜 저래요? 똥 마렵대요?”

“바지에 지렸대.”

“아씨, 더러운 새끼.”

“오, 오빠... 나이가 몇인데. 어디 가서 내 친오빠란 소리 말아 줘. 이수가 뭐라 생각하겠어? 이수 보기 부끄럽지 않아?”


성기는 억울했다.


“형이 구라 날린 거임. 보여 줘?”


누명을 벗기 위해 바지를 내리려던 성기는 여동생과 이수의 비명, 병태의 플라잉 킥에 맞아 나가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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