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pia 3.5 미운 오리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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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797_naru8888
작품등록일 :
2017.12.31 04:33
최근연재일 :
2018.02.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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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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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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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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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틀어져버린 시간 (4)

DUMMY

“교무실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어떻게 하라고 했는지 기억하죠?”


혹시 모를 돌발 상황을 예방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딱딱한 말투를 사용하는 그녀이기에 더욱이 그 부분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미리 말해두는데 내 말투 때문에 걱정하는 거라면 붙들어 매도 좋다.”

“알겠어요.”


내게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를 보니 한시름 놓인다. 방금 이사장님 앞에서 ‘내’가 보여줬던 모습 때문인지는 몰라도 믿음이 가는 다짐이었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부분은 생각보다 교실과 복도에서 시간을 많이 소모한 덕택에 교무실에 늦게 내려오고 말았다는 점이다.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고서 문을 여니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담임선생님이 걸려있는 벽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표정은 굉장히 언짢아보였다. 분명 또 핀잔을 줄게 뻔했다.


“아, 왔니?”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녀를 만나러 여기에 온 것은 아니었다. 바로 담임 옆에서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주시는 황 선생님을 보기 위해서 교무실에 들어온 것이다. 역시나 몇몇 주변의 탐탁지 않은 눈빛이 조금 거슬렸지만 크게 문제 될 건 없어 보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사과 정도는 하는 게 도리다.


“아까 위에서 인파가 좀 몰려서 뚫고 나오느라 늦었는데..”

“아냐, 괜찮아.”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직감한 듯 황 선생님은 괜찮다는 제스처를 보이셨다.


“그런데 옆에 계시는 분은..”


차마 내 입에서 아빌의 소개를 하려던 참에 그녀는 먼저 선수를 쳐 인사를 했다.


“효진이 언니되는 사람입니다.”


안정된 톤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내’모습을 본 황 선생님은 미소로 반기셨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후, 그는 미리 준비해뒀던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붓고는 티백을 넣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직도 뒤에서 멀뚱멀뚱 그런 뒤에야 아직도 서있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호탕하게 웃으며 보다 정중하게 말씀을 하셨다.


“이쪽으로 와서 앉으시죠.”


선생님이 다시 한 번 권유를 하고 난 이후에야 우리는 테이블 앞에 앉을 수 있었다.


***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구나 싶었다.


“보통 다른 학생들도 그렇고, 저희 집 형제 녀석들도 서로 흉을 못 봐서 안달인데. 효진이가 참 좋은 언니를 두셨습니다.”


아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그런 그녀의 허리를 팔꿈치로 치며 반응을 보일 것을 요구했고, ‘나’는 곧 눈치를 챘다.


“아, 네. 효진이가 워낙 착하다 보니까..”


생각보다 서로 간의 인사치례가 길게 느껴졌다.


“담임선생님과는 상담실에서 한 번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그제야 저번 일이 기억났는지 대답을 했다. 어째 조금 불안한 모습이 걱정된다.


“효진이에게 신경을 써주시는 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마 지금 ‘나’는 즉흥적으로 대답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구사하는 어휘력은 생각 그 이상으로 자연스러웠다. 이렇게 잘하는데 그동안 왜 딱딱한 말투만 사용했던 거지?


“그동안 효진이가 언니분이 계셨다는 걸 한 마디도 안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힘들겠다.’고 걱정했는데 다행입니다.”


그때 황 선생님의 너머에 앉아있는 담임의 눈과 마주쳤다. 저 가식 섞인 미소는 누가 보더라도 금방 어장관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거다. 마치


‘너, 안효진! 선생님한테 언니가 있다는 걸 그렇게 숨기면 얼마나 무안한 줄 아니?’


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억지웃음으로 나름대로 감춰 보였겠지만 본심만은 숨길 정도의 내공은 아니었던 듯했다. 그게 자의였든 아니었든 간에 말이다. 징그럽다.


“그나저나 효진이가 저번에 써냈던 장래희망도 보셨나요?”

“장래.. 희망이요?”


아빌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그녀가 알 리가 없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저도 담임선생님에게 받은 종이를 보고 알았습니다. 효진이가 영화 속에서 나온 주인공들을 보고는 거기에 꽂혀서 검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품었다고 적혀있었습니다. 그거 효진이 안 보여줬었나요?”


황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 아빌은 나를 바라봤다. 뭔가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는 눈빛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16살 때쯤에 봤던 영화가 있었는데 거기 주인공 직업이 검사였거든요. 그런데 그 남자가 막 이것저것하는 게 멋있기도 했고.. 동경해서 그랬던 건데. 그래서.. 그래서 검사가 되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뿐이에요..”


난 검사를 꿈꿨다. 나쁜 사람들을 잡으러 다니고, 더 나아가 상당한 힘을 가지는 그 모습이 굉장히 멋있었다. 물론 나도 안다. 이 나라에서 그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걸 말이다. 그보다 먼저 좋은 성적이 밑바탕이 되어 좋은 대학교에 가야 한다는 것도 모르는 건 아니다. 맞다. 난 검사를 꿈꾸기만 했다.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어쩌면 저번에 담임선생님이 했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 시작했다. 꿈은 현실적으로 가져야 한다고. 이상만 바라보고 살아가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촉박하다는 것도. 그래서 바꾼 내 꿈이 뭐였더라.. 자영업자였나? 하여튼 그게 내 현실이며 받아들여야 할 나 자신이다.


“담임선생님도 참. 그냥 한 번 써본 건데..”

“저도 이 친구의 꿈을 응원하고는 있지만, 사실 지금 효진이 성적으로는 검사라는 직업을 꿈꾸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역시나 그 뒤에 앉은 담임의 눈빛이 겹쳐서 보였다. 그러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질 정도로 부끄러웠다. 담임의 눈에서는 마치 아빌에게 보라는 듯이 날 다그치고 있는 느낌이었다.


“대학교 진학도 지금 상황에선 그다지 좋은 곳에도..”


점점 절망적으로 흘러가는 분위기 속에서


“그럼 일단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라며 느닷없이 아빌이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뭐, 법학계열의 학과로 진학만 한다면 가능하기는 합니다만,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지금 효진이 성적으로는.”


아빌의 질문에 선생님은 허리를 돌려 뒤에 있던 파일을 하나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 보였다.


“열어보시면 알겠지만 지금 효진이 성적이 많이 처참합니다. 이래가지고 웬만한 대학교에는 지원이 힘든 게 사실입니다.”


왠지 모르게 내 인생의 관짝이 닫혀가는 모양새다.


“혹시 이 성적 말고도 대학교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왠지는 모르지만 아빌이 내 옆에서 계속 질문하는 모습이.. 그 옆모습이 멋있었다. 마치 날 신경 써주는 게 우리 엄마 같았다. 아니 차라리 엄마였으면 했다. 그 사람은 나보단 본인의 남자친구에 더 신경을 써왔다. 지금 아빌과 비교 대상의 가치조차 논할 수 없는 그런 여자다. 비록 내가 며칠 전에 납골당에서 다시 만나서 용서를 했어도 인식이 변하지는 않았다.


“물론 수능만 잘 본다면..”


말끝을 흐리는 선생님의 말을 끊은 아빌이었다.


“수능만 잘 보면 되지 않습니까?”


그녀의 말에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런데 아빌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난 그 시험에 대해 대비를 전혀 해오지 않았다. 당장 지금 성적도 최악인데 어떻게든 그것까지 대비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 효진이는..”

“선생님?”


다시 한 번 담임의 말을 끊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것 이상으로 효진이는 똑똑합니다.”


그녀는 날 두둔하고 있었다.


“잘 모르시는데 효진이가 아무 생각 없이 검사라는 꿈을 꾼 지 아십니까?”


아빌은 조금씩 담임을 코너에 몰아넣고 있었다.


“아니 그전에 선생님은 효진이가 살아온 배경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보신 적이라도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황 선생님은 ‘내’ 공격에 조금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다가도 나를 보는 것이 일부러 당해주는 것 같아 보였다.


“효진이는 그 힘든 배경 속에서도 악착같이 살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당신들이 그런 내 모습을 얼마나 아신다고 그러십니까? 아니 그 전에 과거엔 눈길조차 안 주던 분들이 이제 와서 그러시는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내’가 흥분하고 있다는 게 보였다. 황 선생님은 이해하지 못할 테지만 난 간접적으로 그녀가 ‘과거의 나’에 나를 투영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언니 그만..”

“기다려라!”


‘나’를 진정시키고자 말을 끊어보려 했지만 그럴 일은 없다. ‘나’... 아니 ‘아빌’은 짧은 순간에서도 철저하게 계산된 것 이내에서 움직이는 철두철미한 사람이며 내가 던지는 그런 얕은 수에 말려들 정도로 친절하지 않다. 할 말은 하는 성격이다.


“보나 마나 학생들 사이에서 퍼진 소문으로만 평가하셨겠죠. 내가 만약 당신 같은 선생님이었다면 안 그랬습니다. 효진이는 검사가 되고 싶어 혼자 열심히 공부해왔다는 걸 알고서 방치하지 않았을 거란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전개가 될 거라고는 나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황 선생님은 침착하고, 담담했다. 물론 수 십 년의 교사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부모님들과 면담을 해왔을 것이다. 나도 동의한다. 지금 아빌이 말하고 있는 말투는 흔히 ‘자식의 현실을 모르는 부모님이 그들을 변호하는’ 패턴이라는 것을. 하지만 아빌은 확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확신을 황 선생님도 조금씩 느끼고 있는 듯했다.


“한가득 싸여있는 문제집을 보신 적이라도 있을 리가 없겠죠. 당신이 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한 것 이상으로 얘는 열심히 살아왔단 말입니다.”


저번에 그녀를 보면서 느낀 것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 옆에서 나를 대변하는 ‘나’는 한 번 더 ‘그 사실’이 어쩌면 진짜일지 모른다는 확신 아닌 확신을 암암리에 내게 던져주고 있었다. 그녀는 ‘완성된 안효진’을 봤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 아빌은 거짓말을 했다. 집에 문제집 같은 건 없다.


하지만 그녀는 함부로 거짓말을 내뱉을 사람이 아니다. 설령 거짓일지라도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뱉어내는 가벼운 사람 또한 아니다. 무엇보다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면 미래의 나는 그런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그 시간대의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었을까? 그전에 지금 나와 같은 시간 속에서 숨을 쉬고 있는 ‘나’는 과연 어떤 시간 나라고 봐야 하는 걸까?


“혹시 제가 했던 말에 기분이 나쁘셨던 거라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내’ 성토가 끝이 난 타이밍을 찾았는지 황 선생님은 ‘나’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내가 보기에도 선생님의 말실수는 없었다. 오히려 현실을 잘 짚어주셨고, 우리는 그 주소를 받아들여 더 발전을 해야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나’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차분한 분위기를 기대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내 대변인이 되어주었어도 오히려 선생님께 더 죄송하고 실례된다는 마음만 늘었다. 내 삶을 봤기에 할 수 있었던 ‘나’만의 이야기를 담임에게 해주었으나 우리는 ‘나’처럼 능력자가 아니었음을 ‘나’도 알아줬으면 했다. 그저 현실에 안주하면서 살아가는 일개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저, 선생님. 그럼 일어나 봐도 될까요?”


두 사람의 눈치만 살피기만 하던 내가 숨통을 열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혹시 생길지 모를 ‘내’ 실언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내 의도를 파악한 것인지는 몰라도 황 선생님은 내 말에 공감해 보였다.


“일단 알겠다. 나중에 한 번 더 이야기하도록 하자.”

“언니, 먼저 나가 계세요.”


난 아빌을 먼저 내보내고 싶었다. 황 선생님은 내게 창피를 주려고 이런 자리를 만든 것이 아니었을 텐데 본의 아니게 실수를 범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녀는 곧 내 말을 들은 뒤에 교무실을 나섰다.


아빌이 먼저 자리를 비우는 걸 확인한 후에야 선생님께 사과드렸다.


“죄송합니다. 저희 언니가..”

“아니야, 오히려 좋은 경험이었다.”


예상과는 달리 선생님의 표정은 무겁지가 않았다.


“여타 다른 부모님들과는 조금 달랐어.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나 해야 할까..”


말끝을 흐리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새롭다는 것을 풍기고 있었다.


“오늘은 다른 건 다 필요 없이 진심어린 조언 한 마디만 하마.”


그렇게 주변을 몇 번 둘러보던 황 선생님이 내게 조용히 한 마디를 하셨다. 그리고 그건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교내에선 담임선생님도 함부로 네게 손을 못 쓰게 조치를 취해 놓을 생각이다. 또 네 언니께서 하시는 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결코 비도덕적인 일일지라도 믿고 맡겨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지금 내가 들은 말이 공교육 현장의 선생님 입에서 나올 발언일 리가 없다. 하지만 그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해주마. 언니 기다리실라 빨리 가봐라.”


그의 미소에서는 여유가 흐르고 있었다. 역시 연륜은 뭔가 다르다는 걸 의미하는 것인가..? 분명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담임선생님이었다면 나와 아빌을 앞에 앉혀놓고 양파껍질 벗기듯이 내 이야기를 하면서 따끔한 말을 꺼내려 했을 거다. 어떻게든 날 깎아내렸을 테고 무언가 이겨볼 생각을 가졌을 것이 뻔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가능한 한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


상담이 끝나고 교무실을 나오던 나는 문을 닫으면서 담임의 얼굴을 살짝 흘겨보았다. 황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 듯했던 그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들었기에 저러고 있는 걸까. 내일 되면 알 수 있으려나..


그렇게 문을 닫은 나는 아빌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정리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머릿속을 헤치고서 꺼낸 말은 지금 당장 눈앞에 당면한 암울한 미래에 대한 하소연이었다.


“왜 수능 이야기를 꺼냈어요? 아니 다른 건 제쳐두고, 그게 무슨 시험인지는 알고서 한 말이에요?”


가장 먼저 떠올랐던 말은 선생님에게 ‘내’가 언급했던 시험이었다. 본인이 봐줄 것도 아니면서 담임 앞에서 그렇게 일을 벌여버리면 막상 치우는 사람은 내가 된다.


“넌 역사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빌이 내게 물었다.


“난 그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설령 과거의 네가 아무것도 못하고 무너져 내렸을지 몰라도 지금의 너는 절대로 그렇게 두지 않을 거다.”


그제야 조금은 확신이 생겨났다. 그녀는 나에 대해 전부 알고 있음을 활용해서 일을 벌일 거였다는 것을 말이다. 아마 ‘과거의 나’는 수능을 망쳐 인생의 내리막길을 걸어간 모양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아빌과 이야기를 가져볼 필요성을 느꼈지만 지금은 그런 타이밍이 아니다.


“일단 다 제쳐두고, 내 수능은 어떡할 생각인데요. 무작정 그렇게 이야기해버리면 중간에 선 나는 어쩌라는 건지 원.”

“그렇기에 내가 도와주면 되는 거 아닌가?”


잠깐 내 귀를 의심했다.


“도와.. 줘요?”


그런 내 질문에 그녀는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비춰 보였다.


“난 너와 다르게 미래를 갔다 올 수가 있다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악마가 나를 유혹한다. 절대 걸리지 않을 커닝이자 딜러와 짜고 치는 포커를 하자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을 뿐이지, 잠깐 눈만 감았다 뜨면 이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되는 것이다. 이건 필히 기회임이 분명했다.


“어디까지.. 날 도와줄 건데요?”


기회를 한 번 잡았으면 끝까지 활용해야 알찬 시도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기에 앞서 과연 아빌이 말한 ‘그 힘’을 어디까지 써가며 나를 도와줄 것인지에 대한 확신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이 됐다.


“내가 언제까지 도와주면 되는 거지?”


아빌이 내게 반문했다. 아니 반문했다기보다는 내게 선택의 우선권을 넘겼다는 표현이 더 맞다. 그녀는 내 가족이자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분신이며 ‘또 다른 나’이다. 우리가 같이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기만 한다면 그건 ‘한 명’의 발걸음이지 절대 ‘두 사람의 힘’이 되지 않는다.


“그러는 언니는 언제까지 내 옆에 있을 거죠?”


내 질문에 아빌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방금 내가 던진 수는 외통수에 가까운 공격이었다.


“나야 뭐.. 당연히 널 떠날 일은 없다.”

“그럼 답은 나온 것 아니겠어요?”


내가 놓은 체스 말로 체크메이트를 당한 것을 느꼈는지 그녀는 별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고, 나는 내 부족한 부분을 채우겠다고 그녀에게 선언했다. 내가 꿈으로만 꿔왔던 이상. 그 유토피아를 향해 지금부터 한 걸음씩 내디뎌 보일 것이다. 그리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이 발자국은 ‘역사’가 되어 내게 영광을 가져다줄 것임이 분명하다. 아빌이 내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역사는 누구에 의해 쓰이는지. 그리고 나는 그 질문에 대해 제대로 된 대답일 지금에야 말할 수 있었다.


“어제 내게 했던 질문에 대한 답, 다시 바꿀게요.”


그 말을 남긴 나는 아빌의 옷깃을 스쳐내며 계단으로 향했다. 그 답은 지금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주체는 바로 나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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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내가 바로 고독 속의 욕쟁이 피아니스트 김서윤이다 (6) 18.02.11 25 0 17쪽
22 내가 바로 고독 속의 욕쟁이 피아니스트 김서윤이다 (5) 18.02.07 51 0 16쪽
21 내가 바로 고독 속의 욕쟁이 피아니스트 김서윤이다 (4) 18.02.04 75 0 15쪽
20 내가 바로 고독 속의 욕쟁이 피아니스트 김서윤이다 (3) 18.01.31 45 0 18쪽
19 내가 바로 고독 속의 욕쟁이 피아니스트 김서윤이다 (2) 18.01.28 58 0 20쪽
18 내가 바로 고독 속의 욕쟁이 피아니스트 김서윤이다 (1) 18.01.24 44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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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내가 그 사람들을 용서하게 되는 날 18.01.21 31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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