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조선에 흩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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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나
작품등록일 :
2018.01.01 10:45
최근연재일 :
2018.03.01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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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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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28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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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0부 아버지의 어깨 위로 출렁이는 바다 ( 3 )

일제치하에서 소학교에서 만난 두 사람은...




DUMMY

후꾸꼬의 소식을 전해 듣고 병원으로 권 교감과 신 선생이 달려왔다.

“교장 선생님,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이 지경이 되도록 몰랐단 말씀입니까?”

신 선생이 얼굴을 붉히며 따지듯 물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주사를 맞고 나오는 후꾸꼬를 그가 얼른 가서 부축해 주었다.

“사모님, 어떠세요?”

“접니다, 사모님.”

그녀가 고개를 들어 권 교감과 신 선생을 보고는 웃어 보였다.

“오셨어요. 난 괜찮은데 소문만 내네요.”

“예. 어서 앉으세요.”

의자에 앉는 후꾸꼬의 모습에서 권 교감은 완연한 병색을 볼 수 있었다. 신 선생이 전화로 택시를 부르고 병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초록빛의 시발택시가 병원 앞에 서자 동혁과 후꾸꼬, 두 선생은 함께 타고 줄포로 향하고 있었다. 차 안에는 오랜 침묵만이 있을 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는 지나치는 차창 너머로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부드러운 봄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 위로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옷소매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닦아 내고 있

었다.

길가에서 명자는 명혜를 업고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는데, 시발택시가 와서 멈추었다. 아이들이 누가 내리나 하고 우르르 몰려가 보았는데, 그 속에 명자도 끼어 있었다.

신 선생이 먼저 앞자리에서 내렸고 권 교감과 두 사람이 차례로 내리고 있었다.

“어머니.”

“명자구나?”

권 교감이 명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권 교감에게 인사를 하며 명자는 후꾸꼬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명혜가 배가 고픈가 봐요. 마구 울었어요.”

명자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쏘아보는 후꾸꼬의 강한 눈길을 느끼고 순간 무서움에 뒷걸음 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명자에게 응시한 시선을 거두고 동혁에게 의지한 채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뒤를 두 선생이 따르고 명자는 멀찍이 따라갔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걸어오는 후꾸꼬에게 눈인사를 하고 비켜서자 고개를 숙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오래 못 사시것네이.”

“그러게나 말이시. 어제하고 또 영판 다르잖능가이.”

동네 아주머니들이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고, 명자는 그 말의 의미를 모른 채 명혜를 업고 후꾸꼬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방안에는 그녀가 누워 있었고, 동혁은 곁에 앉아 있었다. 명자가 명혜를 방에 내려놓자 후꾸꼬는 일어나 벽에 기대어 젖을 물렸다. 젖을 힘껏 빨아대는 명혜를 보며 그녀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말았다.

그녀의 눈물을 보며 명자는 아무 생각 없이 방문을 열었다. 마루에 서니 줄포 바다로 지는 붉은 해가 하늘 위 하얀 구름에 색칠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노을이 길게 뻗어 있을 때 할머니와 큰고모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할머니다.”

명수가 맨 먼저 보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자빠질라. 천천히 오랑께.”

할머니가 손자를 보며 그늘 진 얼굴로 말했다.

“ 많이 컷구만이.”

“그랑께.”

“참말로.”

“어떡허다 이 지경이 됐당가이.”

할머니는 명수의 손을 잡고 오르며 말끝을 흐렸다. 할머니와 큰고모가 마당으로 들어서자 동혁과 신 선생이 방에서 나와 맞았다.

“그려. 늬 처 지금 어떻냐이?”

할머니가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울먹이는 말로 물었다.

“정말로 살 가망은 없는 거여?”

“···”

“왜 이 지경이 되도록···이 자석들은 어떡헐거여?”

그 말을 하는 할머니도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나가 한번 만나 봐야제이. 이렇게 빨리 갈 줄 알았으면···다 나가 죄가 많은 탓이랑께.”

동혁과 할머니와 큰고모가 방으로 들어서자 누워 있던 후꾸꼬가 일어나려 했다.

“괜찮당께.”

“예, 오셨어요.”

권 교감과 신 선생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고 후꾸꼬 곁에 가서 앉는 할머니와 큰고모가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니가 미워 그란 게 아니랑께.”

“잘 알아요. 그 동안 죄송했어요.”

후꾸꼬의 손을 와락 잡으며 할머니가 그만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말았다.

“아이고, 동상. 이렇게 되드락 놔뒀당가이.”

큰고모도 후꾸꼬를 나무라는 투로 말을 하다가 목이 메었다.

“형님···.”

후꾸꼬의 목소리에 힘이 없어지자, 할머니와 큰고모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고 동혁만 후꾸꼬 곁에 남았다.

“여보!”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후꾸꼬의 목소리에 그가 바싹 다가앉았다.

“나, 여기 있소.”

“미안해요. 당신에게 짐만 지워 놓고···아이들 잘 키워 줘요.”

“용서하구료. 날 용서하구료.”

“아뇨. 전 언제나 당신이 자랑스러웠어요. 내 조국을 버린 것도 후회하지 않았어요. 제가 죽었다는 것 일본 어머니에게 알리지 마세요.”

눈물이 후꾸꼬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제가 당신의 장래를 가로막았다는 것 잘 알고 있어요. 이런 시골까지 올 당신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요. 다 저 때문이에요, 저요.”

“당신 때문이라니. 아니요, 아니야.”

“절 잊어도 좋아요. 하지만 아이들이 크면 이야기해줘요. 사랑했다고. 그리고 어머니 몫을 다 하지 못하고 가서 미안하다고 전해 줘요. 당신도 사랑했어요.”

권 교감과 신 선생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앉았다.

“선생님들도 고마웠어요.”

후꾸꼬가 힘들게 말하는 것을 보고 신 선생이 말했다.

“사모님, 일본 말로 해도 됩니다.”

“아뇨. 난 이미 조선인인 걸요.”

후꾸꼬가 감기는 눈을 힘겹게 뜨고 동혁을 바라보며 힘없이 웃어주었다.

“이젠 자고 싶어요. 피곤해요.”

“눈을 떠요. 눈을 뜨라구···자면 안 돼.”

“잘래요. 내일 이야기해요.”

동혁이 후꾸꼬의 얼굴을 두드리며 다급하게 말했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한번 보더니 그만 손이 미끄러져 스르르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안 돼! 안 돼!”

동혁이 그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채 큰소리로 울고 말았다. 신선생은 후꾸꼬의 얼굴에 이불을 올려 덮었다.

그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아이들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할머니와 큰고모가 벌

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이고, 아이고, 이렇게 죽을라고···이렇게 죽을라고···”

할머니가 그만 넋두리를 하며 통곡을 했고, 큰고모도 곁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하고 신나게 노는 명자와 명선을 보며 동네 아주머니들이 혀를 차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이고, 철딱서니 없는 것들. 지에미가 죽은 것도 모르고 놀고있구만이.”

“그러게 말여. 그러나 저러나 명혜는 젖 없이 워떻게 키울까이.”

“글씨. 젖 동냥을 혀야 쓰것네이.”

“할머니, 명혜가 오줌을 쌌나 봐요.”

명혜를 업고 놀던 명자가 할머니 앞에 와서 말을 했고 아이들은 모두 운동장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놀고는 잡고 심은 들고이. 명자가 꾀를 썼구마능.”

“고무줄 띠긴디 발이 올라가겄써?”

동네 아주머니들은 명자의 아이다운 행동에 그만 웃고 말았다.

입관을 마치고 네 아이들은 후꾸꼬를 보고 있었다. 아이들의 옷이 조금씩 잘라져 관 속으로 넣어졌다.

동혁과 네 아이는 상복을 갈아입고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중이었다. 관 뚜껑이 올려지고 이내 망치소리가 울려왔다.

문밖에서 바라보던 할머니가 털썩 주저앉으며 통곡을 했다.

“아이고, 내 새끼덜은 누가 키울까이.”

명혜를 안고 있던 큰고모도 눈시울을 붉히며 돌아서고 말았다.


방문 밖에서 지켜보던 동네 아주머니들도 속치마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오월 그 눈부신 날 아카시아 향기 날리던 날에 내 어머니는 우리 모두를 남기고 하늘나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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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10부 아버지의 어깨 위로 출렁이는 바다 ( 4 ) 마지막회 +1 18.03.01 269 0 8쪽
» 10부 아버지의 어깨 위로 출렁이는 바다 ( 3 ) 18.02.28 71 0 8쪽
42 10부 아버지의 어깨 위로 출렁이는 바다 ( 2 ) 18.02.27 95 0 8쪽
41 10부 아버지의 어깨 위로 출렁이는 바다 ( 1 ) 18.02.26 113 0 8쪽
40 9 부 사탕 두 개 ( 5 ) 18.02.23 72 0 4쪽
39 9 부 사탕 두 개 ( 4 ) 18.02.22 80 0 7쪽
38 9 부 사탕 두 개 ( 3 ) 18.02.21 541 1 8쪽
37 9 부 사탕 두 개 ( 2 ) 18.02.20 335 0 9쪽
36 9 부 사탕 두 개 ( 1 ) 18.02.19 88 0 8쪽
35 8 부 그리움, 그 처연한 아픔 ( 5 ) 18.02.16 99 0 6쪽
34 8 부 그리움, 그 처연한 아픔 ( 4 ) 18.02.15 85 0 9쪽
33 8 부 그리움, 그 처연한 아픔 ( 3 ) 18.02.14 112 0 9쪽
32 8 부 그리움, 그 처연한 아픔 ( 2 ) 18.02.13 89 0 9쪽
31 8 부 그리움, 그 처연한 아픔 ( 1 ) 18.02.12 101 0 9쪽
30 7부 움막을 짓고 ( 5 ) 18.02.09 98 0 7쪽
29 7부 움막을 짓고 ( 4 ) 18.02.08 90 0 9쪽
28 7부 움막을 짓고 ( 3 ) 18.02.07 80 0 8쪽
27 7부 움막을 짓고 ( 2 ) 18.02.06 95 0 7쪽
26 7부 움막을 짓고 ( 1 ) 18.02.05 89 0 8쪽
25 6 부 현해탄을 바라보며 ( 4 ) 18.02.02 97 0 6쪽
24 6 부 현해탄을 바라보며 ( 3 ) 18.02.01 92 0 7쪽
23 6부 현해탄을 바라보며 ( 2 ) 18.01.31 539 0 8쪽
22 6 부 현해탄을 바라보며 ( 1 ) 18.01.30 104 0 7쪽
21 5부 해방, 떠나는 사람들 ( 4 ) 18.01.29 247 0 4쪽
20 5부 해방, 떠나는 사람들 ( 3 ) 18.01.25 79 0 8쪽
19 5부 해방, 떠나는 사람들 ( 2 ) 18.01.25 95 0 9쪽
18 5부 해방, 떠나는 사람들 ( 1 ) 18.01.24 98 0 9쪽
17 4부 쫓겨나는 두 사람 ( 4 ) 18.01.23 99 0 6쪽
16 4부 쫓겨나는 두 사람 ( 3 ) +2 18.01.22 158 1 9쪽
15 4부 쫓겨나는 두 사람 ( 2 ) 18.01.19 101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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