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차라리 청소하던 시절의 집사로 돌아가게 해주세요.
주인공이 먼치킨입니다만, 굉장히 구릅니다. 굴리는 작품을 비호하신다면 제 작품은 그렇게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이걸 인지하고 봐주셨으면 합니다.
“이것으로 세 번째입니다. 비키십시오, 당장.”
“하하하...”
그저 웃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앞이든 뒤든 살기로 무장한 채 대피소를 둘러싼 타천사들.
그리고 루시퍼와 나는 그 가운데에서 대피소 입구를 막으며 어정쩡하게 서있다.
아니, 입구를 막았다는 표현은 조금 적절하지 않은 듯하다. 흙더미 앞에 서 있다는 표현으로 고쳐 쓰도록 하자.
흙더미라는 게 참 뜬금없겠지만, 우리가 대피소 입구를 ‘그럴 듯하게’ 숨길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아마 이렇게 해 놓으면 마그마가 분출하는 모습이구나, 생각하고 넘어갈 줄 알았던 내 오산이라고나 할까.
“웃지만 말고 거기에서 나오란 말입니다!!”
타천사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소리쳤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이 ‘그럴듯한’ 위장이 걸렸다는 게 더 중요하니까.
“아니, 근데. 이거 진짜 용암 분출 직전처럼 보이지 않아요? 예술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걸렸다는 게 억울해 입을 삐죽 내밀며 말하니, 타천사는 더욱 더 얼굴을 찌푸렸다.
“흙더미에서 신성력이 역겨울 정도로 느껴지는데 뭔 용암 타령입니까!!”
“아.”
캬, 고건 몰랐네.
그래도 아마 대피소 속에 두 천사들은, 이 절망스런 소식을 듣지 못하고 지쳐 쓰러져 있겠지?
다행이야, 얘들아. 너흰 그렇게 평생 헛짓한 것도 모르고 살아가줬으면 좋겠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비키십시오. 천계의 편인 인간에, 이제는 천사까지 보호하고 있으십니다. 이는 변명할 여지도 없는 적대행위입니다. 저희와 적이 되고 싶으신 겁니까?”
타천사의 살기 어린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머리만 긁적이다가, 뭔가 멋있게 할 말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좀 평화롭게 삽시다, 예? 제 일상만으로도 충분히 전쟁이라고요.”
“당신이 그곳에서 나오면 됩니다.”
“아니, 그러면 더더욱 안 되죠.”
타천사들을 둘러보며 미소 짓고는, 목소리에 살기를 담았다.
“내가 힘쓰는 꼴 보고 싶지 않잖아요?”
타천사들이 일제히 한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그 중 한 타천사가 물어왔다.
“굳이 우리와 적이 되셔야 하겠습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이쯤 되면 슬슬 청소가 그리워진다고요.
타천사들이 어금니를 빠득 갈고는 전투자세를 취했다.
“하긴, 세상이 평화롭길 바란다고 평화로워지겠습니까.”
중얼거리고는, 마력으로 타천사들의 바로 앞에 대피소를 중심으로 한 둥근 원을 그렸다.
“결계.”
둥근 원 위에 반구 형태의 마력 결계가 생겨났다.
“음, 좋네요. 제가 생각한 모습 그대로에요.”
타천사들이 놀란 표정으로 결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영창도, 마법진도 없이...?!”
하하하, 이거 쑥스럽네.
머리를 긁적이고 있으니, 곧 한 타천사가 결계를 힘차게 내려쳤다.
“이까짓 거, 그냥 부숴주지!!”
“그, 그래! 부수자!!”
“와아아아!!!”
한 명의 목소리에 다 같이 힘을 합쳐 결계를 내려치기 시작하는 타천사들.
이런 모습은 당연히 제 3자의 시점으로 보면 아름다운 일이긴 하다만-
“이거, 루시퍼도 못 뚫은 결계인데 어떻게 뚫으시려고요?”
잠깐의 소란 후 타천사들이 결계를 내려치는 것을 멈추더니, 천천히 자신의 무기를 바라보았다.
당연하게도 칼날은 조각이 되어 지면에 떨어지고, 오로지 검의 손잡이만이 들려 있었다.
“아, 이런. 조금 더 일찍 말해줄 걸 그랬죠?”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이니, 타천사들 중 한 명이 나를 노려보았다.
“생각은 하고 결계를 펼친 겁니까? 이 마력 농도면 안에 있는 천사와 인간은 모두 죽을 겁니다!!”
“그건 걱정 마세요. 제 결계는 마력 잔향이 안 남거든요! 오죽하면 제가 교회 청소할 때 쓰겠어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어 보이자, 다른 타천사가 결계를 주먹으로 강하게 내려치며 중얼거렸다.
“우린 이것을 기억할 겁니다.”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인 순간, 갑자기 결계 밖의 한 쪽에서 다량의 신성력이 느껴지더니-
“잠깐만, 피해요!!”
내 외침이 끝나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마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증오스러운 검은 천사들을 죽여라!! 가브리엘님에게 그 날개를 바쳐라!!”
“와아아-!!”
수백 명의 함성과 함께 이윽고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화살 무더기가 타천사들을 덮쳤다.
타천사들은 뒤늦게 방어하려 했지만, 그들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결계에 부서지고 남은 검의 손잡이뿐.
결과는 당연히도 타천사의 대패. 수많은 타천사들 중 생존한 것은 해봐야 열 명 남짓이었다.
“흐으아아-!! 이 비겁한 인간 놈들!!”
살아남은 한 타천사가 땅에 무릎 꿇은 채로 피를 토하며 소리치자, 익숙한 목소리가 정체를 드러냈다.
“비겁? 전쟁에 비겁이 어디 있나. 역사는 승자가 기록하는 것인데. 아, 이거 소개가 늦었군. 검은 천사들, 루시퍼, 그리고 시엘 폰 아리아드. 반갑네.”
갑작스레 나타난, 이 꽉 끼는 금색으로 치장된 백색 철갑옷을 입은 근육남은-
“내 이름은 베델 루 크리틸트. 성기사단장일세.”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던 놈들 중 하나인 베델이었다.
.
.
.
“이게 대체 뭔 상황이야...?”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짜증에 혀를 차며 중얼거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를 둘러본다고 해봐야 눈앞에 보이는 것은 백색 철갑옷을 입은 성기사들 뿐이지만.
마을 수용인원보다 당연히 많은 수인지라, 성기사들이 내 결계를 빽빽이 에워싸고 있다. 물론, 명령에 따른 고의적인 면도 어느 정도 있는 듯 보인다.
“이걸로 벌써 세 번째 포위인가.”
첫 번째는 천사에게, 두 번째는 타천사에게, 세 번째는 인간에게.
참으로 각양각색의 포위를 당해보는구나. 이쯤 되면 도전과제 하나를 달성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은데.
“아니, 애당초에. 왜 제국에서 몸 사리고 있어야 할 놈들이 이런 변방까지 오는 거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밀려오는 짜증에 중얼거렸더니, 베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이곳 또한 이그니스 제국의 땅이다. 오히려 악마가 된 네놈이 이곳에 있어야 할 필요가 없지 않나?”
“허, 천사의 개 주제에 말은 잘해요.”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중얼거리지 마라...!”
“조용히 시키고 싶으면 일단 결계부터 뚫어보시든가.”
베델은 한참 동안 나를 노려보다가 곧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가브리엘 님의 전언이었다. 지금 테르미누스 마을로 타천사와 용암파도가 접근하고 있다고, 이를 막지 않으면 제국이 멸망할 수도 있다고 말이야.”
“호오, 누가 들으면 신탁인 줄 알겠네.”
“네놈, 신을 우롱하는 말을 그 이상 했다가는 그 입을 찢어버리겠다.”
어이쿠, 무서워라.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침묵했더니, 베델은 헛기침을 한 번 해 목을 가다듬었다.
“아무튼, 그것을 듣고 폐하가 당황하면서 온 국민을 다 동원해 막으려 하시더군. 그걸 대신해 성기사단이 왔을 뿐이다.”
“너희만?”
“곧 현자와 몇 명의 이름 알려진 성직자들도 올 것이다.”
“뭐, 그래. 그건 다 좋은데-”
하르마게돈 방향을 바라봤으나, 그곳엔 오직 푸른 하늘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 ‘신탁’과는 다르게 굉장히 평화로운데?”
베델이 혀를 한 번 차고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혹시나 쓸 일이 생길까 싶어 데려왔건만, 헛짓이 되었군.”
“누굴 데려왔는데?”
베델은 그 중얼거림이 들릴지 몰랐다는 양 당혹스럽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아, 아무 일도 아니다.”
“흠, 그러셔.”
그럼 말해주지 말던지.
솔직히 내가 빌빌 기면서 물어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은 안 들고.
입을 다물자 베델은 다시 한 번 하르마게돈 방향의 하늘을 쳐다보고는, 주위의 성기사단에게 외쳤다.
“오늘 일은 이것으로 끝이다, 성으로 귀환할 준비를 하-”
아니, 정확히는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하르마게돈의 방향에서 그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그 한 마디는 아무 일 없이 끝났을 터였다.
“시엘-!!”
“마왕님...?”
하르마게돈의 방향에서 마왕님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와 시선을 향했다. 예상대로 그곳에는 아바돈 님, 로네스 님과 함께 눈물범벅으로 날아오는 마왕님이 있었다.
이전에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속도, 대체 무슨 일이지?
“도망치거라, 용암이 역류했느니라!!”
“네...?”
“너무 깊게 뚫었느니라-!!”
외핵까지 뚫으셨군요. 대단하십니다.
잠시 감탄, 그러나 생각해보니 이럴 때가 아니었다.
“잠시만요, 마왕님?!! 그러면 차라리 그 구덩이를 메우셔야죠!!”
마왕님은 여전히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려 했는데 에클리나가 뒤에서 오고 있느니라!!”
“네...?”
헤르마게돈 방향의 하늘이 천천히 엄청난 수의 무언가에 갑작스레 검게 덮였다. 그 엄청난 수도 문제긴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지평선을 넘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마치 비구름마냥 천천히, 그러나 위압적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이건 또 뭔 상황이야?!!!!”
그 상황을 본 나는 그저 그 한 마디를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아, 차라리 청소하던 시절의 집사로 돌아가게 해주세요. 제발.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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