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 괴생명체
남극은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눈과 얼음뿐이다. 가끔 하늘을 올려다봐도 뻥 뚫린 하늘이 아니라 얇은 얼음막이 한층 씌워진것 같은 착각이 든다. 남극에서 근무한지 삼년이 되는 피터는 하늘로 로켓 하나 발사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로켓이 하늘의 얼음막을 깨부수면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날까 잠깐 상상했다.
남극기지에서의 일상은 매우 무미건조하다. 매일 여러가지 데이터를 수집해서 입력하고 남은 시간은 기지안에서 때워야 한다. 정기적으로 물건을 떨궈주는 헬리콥터와 몇달에 한번씩 방문하는 대형 운송차량을 제외하고는 방문객도 없다. 날씨가 좋은 날에만 단장의 지휘하에 기지밖 먼곳으로 탐사를 나간다.
제비뽑기에서 진 피터는 입을 삐죽이고 기지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서른살 생일을 남극기지에서 보낸 피터는 별명이 소년이다. 항상 모험을 꿈꾸는 피터이고 그것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위성전화가 울리더니 피터를 우울한 기분에서 끄집어냈다.
"헤이, 피터, 우리의 꿈많은 불행한 소년. 수신기의 파워를 최대로 키워,"
피터는 기지국 수신기의 파워를 최대로 키웠다. 위성통신은 도청 및 위치추적의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중요한 일들은 기지국의 수신기를 통해 진행한다. 평소의 커버범위가 반경 20킬로미터 정도가 되는 수신기는 파워를 최대로 키우면 50킬로까지 가능하다.
썰매차는 최고시속이 20킬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에 네명과 적지 않은 물건들을 실었기 때문에 출발한지 4시간되는 지금 멀어봤자 30킬로 정도 떨어졌을 것이다. 기지에서 30킬로되는 곳은 전부 탐사를 완료했기에 단장이 괜히 호들갑을 떠는게 아닌지 의심되었다.
수신기의 파워를 키우면서 피터는 기지국과 모든 외부망과의 연결을 잠시 중단시켰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동력과 환경의 문제가 과학자들의 주관심사라고 알려졌다. 하지만 그것은 언론들의 생각뿐이다. 세계각국은 지금의 정체상태를 풀고 미국을 대신한 패권국으로 우뚝 설 수있는 열쇠가 남극대륙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피터가 남극기지에 지원한 것은 유명기업의 몇배나 되는 연봉이나 햇수가 늘어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는 연차수당 때문이 아니다.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과 미지의 세계에서의 모험심 때문이다. 사실 후자의 비중이 더 크다고 내심 인정하면서 피터는 수신기와 연결된 출력화면을 지켜보았다.
관측기지의 단장은 넉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전체적으로 찍은 사진 하나, 머리로 추정되는 부위를 확대촬영한 사진 하나, 몸통이라 생각되는 부위를 확대촬영한 사진 하나, 마지막 하나는 몸의 일부인지 그저 얼음이 금이 간 것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의 사진이었다. 아마 단장은 꼬리라고 생각되어 저 사진을 보냈을 것이다.
그때 공용전화기가 울렸다. 수신기와 연결된 이 전화기는 기상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위성통신이 단절되었을 때 외출인원들과 연락하는데 사용하는 전화기이다. 가장 먼 데이터 수집포인트가 기지에서 3킬로 정도 떨어져있는데 혹시모를 위험을 대비해서 휴대한다. 내부용이기에 도청의 위험이 전혀 없다.
"헤이, 피터. 사진을 봤지? 동양의 스네이크 드래곤으로 추정되는 괴생명체야. 보안등급 최고로 해서 윗선에 보고하도록 해."
"단장, 단장이 돌아와서 보고하면 안돼? 괜히 말 잘못했다가 인사고과에서 점수 깎이기 싫단 말이야."
피터의 투정에 단장은 작게 킥킥거렸다. 기지밖이라 크게 웃는것도 힘들기 때문이다.
"아까 우리가 위성전화로 한 통화가 이미 도청되었을 거야. 곧 다른 국가들의 남극기지국에서도 이쪽으로 기웃거리겠지. 반드시 우리가 발굴을 끝내고 발표해야 해. 발굴장비를 가장 먼저 준비해서 이곳에 오는 국가가 승리자야. 그게 우리 영국이었으면 하는게 내 생각이고. 소년, 이만 통화 끝내고 빨리 일을 해."
통화가 끝나자 피터는 수신기의 파워를 정상으로 줄였다. 그리고 3분여의 시간을 사용하여 외부와의 통신망을 회복했다. 심호흡으로 긴장을 푸는 시도를 하고 피터는 영국으로 전화 한통 걸었다.
"엘리사, 내 사랑. 좋은 소식이 있어. 이번 크리스마스에 휴가를 내서 영국으로 들어갈 것 같아. 이번에는 내 청혼 받아줄거지?"
"미안, 피터. 나 새남친 생겼어."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어지자 피터는 곧바로 최고보안등급의 VPN 연결을 신청했다. 일반 VPN은 연결시간이 3초도 걸리지 않지만 최고 보안등급의 연결은 5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VPN 연결이 된 후에도 피터는 기다렸다. 곧 영국에서 남극기지로 VPN 연결신청이 왔다. 피터가 수락하자 또 5분의 시간이 걸렸다. 간단한 테스트로 2개의 VPN이 정상적으로 연결되었음을 확인한 피터는 우선 넉장의 사진을 전송했다.
첫 VPN 통로로 암호화된 데이터가 전송되었고 두번째 VPN으로는 암호화방식과 암호화하는데 사용된 코드에 관한 정보가 암호화되어 전송되었다. 두곳의 데이터를 전부 절취해야 피터가 전송한 사진을 복원할 수 있다. 두개의 VPN이 사용하는 통신위성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거의 유출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송이 완료되고 십여분의 시간이 흘렀지만 피터는 다급해하지 않고 기다렸다. 윗대가리들이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일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 분석프로그램에 데이터를 입력해서 이번 일이 자신의 정적(政績 - 정치적 업적)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분석하고 있을 것이다. 윗대가리들의 대가리는 분석프로그램보다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니 말이다.
삼십여분의 시간이 흘러서야 화상전화가 걸려왔다. 여전히 2개의 VPN으로 암호화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말이 들리고 10초 뒤에야 상대의 입이 움직이는 걸 볼 수 있다. 웃음을 자제해야겠다고 다짐하며 피터는 최대한 엄숙한 얼굴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헤이, 피터군. 혹시 똥이 마려운 거면 먼저 일을 보게. 대화가 길어질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협회장이 엄숙한 얼굴로 입술도 미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을 전해왔다. 말이 끝난 뒤 몇초의 시간이 더 흘러서야 협회장의 얼굴이 익살스럽게 변하며 입이 움직였다. 싱크를 맞추는 작업을 하면 말과 화면이 일치해지나 그렇게 되면 대화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협회장 각하, 시급한 일이라 인사는 생략하겠습니다. 단장이 전해준 정보로는 동양의 스네이크 드래곤이라고 합니다. 당장 발굴장치를 준비해서 이곳으로 향해야 합니다."
"피터군, 이미 사진의 일차분석이 완료되었고 발굴장비들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샤워실에서 샴푸를 문지르고 있다네. 늦어도 이틀안에는 도착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 우선 당장 하드디스크에 있는 넉장의 사진을 삭제하도록 하게. 삭제한 뒤 하드디스크를 본체에서 제거하도록."
피터는 협회장이 지켜보는 곳에서 하드디스크의 사진 파일들을 삭제한 뒤 해당 하드디스크들을 메인보드에서 분리했다. 넉장의 사진은 세개의 하드디스크에 분산되어 저장되어 있었기에 세개만 폐기하면 된다. 피터의 손에 들린 세개의 하드디스크를 보며 협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려주게. 원격으로 시스템을 한번 점검해 보도록 하겠네."
원격으로 사진의 잔유(殘遺 - 자잘하게 남은) 데이터나 해킹 흔적이 없는지 체크해 보려는 것이다. 생각밖으로 일이 간단하자 피터는 긴장이 풀렸고 긴장 때문에 눌려있던 호기심이 슬금슬금 머리를 쳐들었다.
"협회장 각하, 대영제국의 자작이시자 여왕훈장의 보유자시여, 스네이크 드래곤은 동양의 드래곤인가요?"
협회장은 자신의 자작위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아까는 급하다는 생각에 칭호를 생략했는데 이제 여유가 생기자 생략한 인사를 보충했다. 아니면 속좁은 협회장이 기억해두고 있다가 자신에게 보복을 할지도 모른다.
"그래,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신령처럼 받드는 드래곤이지."
"각하,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라서 무신론자가 대부분이라 들었습니다. 그런 자들도 드래곤을 믿습니까?"
"수천년의 전통이 현실을 무시한 이념인 공산주의 따위에 무너질리가 없지. 중국이라는 국가가 신앙이 사라지면서 수많은 시민들이 정신적 기아에 얼마나 시달리는지 자네가 몰라서 그래."
피터는 자기도 중국 한번 가본적 없는 주제에 라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대로 놔두면 협회장이 자본주의 찬양론을 펼치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강의를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럼 북한은요? 거긴 공산주의에 독재에 종교가 아예 없다고 들었습니다. 거기도 스네이크 드래곤을 신령으로 모시나요?"
"북한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악이야. 그 자들은 신에게 향해야 할 신앙을 일개 인간에게 쏟고 있어. 예전에 중국인들의 신앙이 체어맨 모에게 향했던 것처럼 말이야. 21세기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문명의 퇴보가 지구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네. 내가 한국의 대통령이라면 당장 UN에 요청해서 군사를 동원해 북한을 정복했을 거야. 중국이 방해 한다면 중국도 한꺼번에 쓸어버려서 유일신의 품을 이탈한 지구 25%에 육박하는 인간들을 다시 신의 품에 안겨주고 싶다네."
침을 튕기며 연설하던 협회장은 문득 지금 이런 말을 할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했다. 이번 일을 성공하면 최소 백작위는 문제없다는 생각에 많이 흥분해서 자제하지 못한 것이다. '옛날' 사람인 협회장은 여왕이 수여한 자작위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성욕도 다 사라진 지금 죽기전에 백작위를 수여받는 것이 유일한 꿈이다.
"한국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100킬로 정도 되는 곳에 한국의 남극기지가 있다는데 그자들의 동정을 알아볼 방법이 없는가?"
"각하, 지난번에 해킹을 시도하다가 걸려서 우리 하드디스크 절반을 날렸습니다. 그쪽은 맨날 북한과 첩보전을 하기 때문에 해킹과 보안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의 수준입니다."
지난번 피터가 한국의 남극기지를 해킹하려고 시도하다가 역습을 당했다. 바이러스의 역침투에 급히 전원을 내리고 하드디스크를 하나하나 검사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절반의 하드디스크를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 체크가 끝났네. 아무 문제도 없구만. 그럼 이만 통신은 끝내고 단장이 돌아오면 다시 한번 보안연결을 요청하도록 하게."
### 나는야 상큼한 분계선 ###
한국 남극관측기지 안에서 세명의 남자가 이마를 찌푸리고 넉장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뱀처럼 긴 몸에 잉어비늘과 비슷한 형태의 비늘들이 나있고 다리가 여섯개이다. 뿔은 없지만 여러가닥의 수염이 나있어 전설속의 용과 매우 비슷했다.
"진짜 안 들키게 빼내온거 맞지?"
"단장님, 꼬추만 작은 줄 알았더니 간도 무지 작네. 형수님이 뭐라 안 하셔요?"
"임마, 여기 남극이라 추워서 그런거야. 가열하면 팽창하고 냉각하면 수축한다. 물리의 기본법칙도 몰라?"
"위성통화를 캐치한 뒤 연결 끊어짐. 다시 연결이 되자마자 사진 넉장 빼내고 모든 흔적 지움. 사진을 빼낸 하드디스크에 흔적이 남을수도 있는데 하드디스크를 먼저 제거하고 체크하면 아무 흔적도 없음이요."
"이 일은 우리 셋만 알아야 한다. 위에 보고하면 곧바로 일본이나 미국 혹은 중국으로 소식이 새게 되어있어. 영국이 발견한 물건을 가로챌 수는 없지만 그게 무엇인지만이라도 알아두면 국가에 보탬이 될 거다."
- 작가의말
오타 지적 환영합니다. 한편한편 정성들여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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