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법사
체의 가죽 덕분에 충격이 많이 완화되었다. 비유의 고기를 과식하고 튼튼해진 몸이 버텨냈다. 그러나 추위에 강하다고 추위를 못 느끼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몸이 튼튼하다고 안 아픈 게 아니다. 신기는 가슴에서 몰려오는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신기를 날려버린 겸양은 다음 목표를 왕실 기사단의 단장으로 정했다. 양손 검을 든 기사단장은 겸양이 덮쳐오자 작은 동작으로 비켜서며 겸양의 목을 내리쳤다. 기사단장의 검도 겸양의 뿔처럼 밝은 빛이 났다.
신기의 눈에는 분명히 기사단장의 회피가 늦은 것 같았는데 정말 적절하게 겸양의 돌진을 피해냈다. 그리고 겸양의 목이 검에 잘릴 것 같았는데 겸양의 몸이 휙 돌며 뿔로 검을 막아냈다. 겸양의 뿔은 빛을 머금지 않았지만, 기사단장의 검을 가볍게 튕겨냈다.
비유의 고기 덕분에 신체 능력이 전면적으로 향상한 신기는 겸양의 목이 자유자재로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신기의 순수한 신체 능력은 기사단의 단련된 기사들보다 못지않지만 전문적인 수련을 거치지 않아서 그 능력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신기는 마법 주머니에서 심판의 검을 꺼내 들었다. 그사이에 벌써 두 명의 기사가 겸양의 뿔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기사단장을 포함해 세 명 정도만 겸양의 공격을 피해낼 수 있고 다른 기사들은 힘으로 맞서다가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
"눈사람 병정."
신기가 소환한 눈사람 병정은 크기가 3미터 정도다. 많은 수를 소환할 수도 있지만 신기는 마법에 필요한 마력을 하나의 눈사람에게 집중시켰다. 원래는 50센티 정도의 눈사람 수십이 소환되는 마법인데 신기는 단 하나의 눈사람을 소환했다.
원래 눈사람은 매우 민첩하다. 하지만 덩치가 커진 눈사람은 다소 굼떴다. 눈사람이 겸양을 향해 몇 발짝 움직이면 겸양의 위치가 바뀌어서 다시 방향을 바꿔야 했다. 신기는 고민하다가 마법 치환을 사용했다.
"눈사람 궁수."
신기가 만들어낸 마법이다. 눈사람은 근접전투가 가능한 병정 마법만 있다. 그러나 신기는 별 모양의 황금색 귀걸이와 잎사귀 모양의 푸른 반지를 믿고 과감히 마법을 창조했다. 귀걸이가 컨드롤을 향상해주어 마법이 성공할 확률이 높고, 실패하더라도 반지가 마법 실패의 반발력을 전부 면역시켜주기 때문이다.
눈사람의 모습이 조금은 날렵하게 변했다. 하지만 신기가 생각했던 것처럼 활을 쏘는 궁수가 아니었다. 차라리 투수라고 부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자신의 몸에서 눈 한 덩이를 떼어낸 눈사람은 겸양을 향해 눈덩이를 던졌다.
"눈사람 궁수."
아까는 눈사람 병정을 궁수로 바꾸었지만, 이번에는 새로 하나 만들어냈다. 눈사람이 눈덩이를 던질 때마다 신기의 마력을 뽑아갔지만 눈사람 열 까지는 마나의 회복력으로 충분히 버틸 수 있다.
마나를 회복하는 과정은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뼈에 바람이 부는 것처럼 시린 느낌이 든다. 사상자가 더는 생기지 않자 신기도 마법을 급하게 사용하지 않았다. 짧은 시간 안에 마나를 많이 소모할수록 회복할 때 통증이 심하다.
"눈사람 병정"
이번에는 50센티짜리 작은 눈사람 병정 수십을 소환했다. 그렇게 마나가 차는 대로 눈사람 궁수와 병정을 소환했다. 눈사람이 점점 많아지자 겸양이 슬슬 도망칠 기미를 보였다. 신기는 머리에서 김이 날 정도로 눈사람의 배치에 신경을 썼다. 드디어 기회가 오자 신기는 모든 마력을 쏟아부어 마법을 펼쳤다.
"얼음의 울타리, 천 층"
말이 천 층이지 실상은 수십 겹밖에 되지 않는다. 심판의 검을 통해 강도가 더욱 강해진 얼음의 울타리가 도망갈까 망설이느라 느려진 겸양을 겹겹이 포위했다. 곧바로 눈사람 병정들이 겸양을 향해 육탄돌격을 시작했다.
강도가 처음보다 강해진 얼음의 울타리가 겸양의 움직임을 제한했고 민첩한 눈사람 병정들이 겸양을 향해 돌진했다. 궁수들은 서로 협력하여 눈덩이를 던짐으로 화망이 아닌 설망을 조성했다. 돌진과 방향전환 및 회피에 특화된 겸양이지만 신기의 무식한 물량 공세에 결국 파탄을 드러냈다.
겸양의 오른쪽 뒷다리에 부딪힌 눈사람 병정이 작은 눈덩이로 변해서 겸양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작은 눈덩이지만 무게가 만만치 않았고 더군다나 냉기 속성으로 겸양의 육신을 공격했다. 단순한 냉기 속성이 아니라 강화된 뭉침 속성도 함께여서 겸양의 마법 저항력으로 제대로 저항해내지 못했다.
얼음의 상자와 같은 보존 속성이나 눈사람과 같은 뭉침 속성 등은 공격형 속성이 아니라서 마법 저항력의 영향을 덜 받는다. 체와 같이 저항력에 특화된 괴수가 아니라면 이 두 마법을 떨쳐내기 힘들다.
조금 느려진 겸양은 눈사람 병정의 육탄돌격을 더욱 유의하여 피했다. 그러다 보니 궁수들이 던진 눈덩이를 피하지 못했다. 눈사람 병정이 변한 것보다 훨씬 작은 눈덩이가 겸양의 몸에 매달렸다.
겸양의 몸에 눈덩이가 점점 많아지자 기회를 엿보던 기사 한 명이 돌진하여 겸양의 목을 내리쳤다. 4등급은 요해가 정해진 괴수도 있고 3등급까지의 괴수처럼 요해가 제멋대로인 경우가 있지만 5등급부터는 동물이나 인간과 비슷하다.
겸양은 급히 몸을 회전한 후 뿔로 기사의 가슴을 받아버렸다. 기사의 검이 겸양의 몸에 살짝 생채기를 냈으나 곧바로 회복됐다. 운 좋게 겸양의 목을 베었다면 큰 공을 세웠겠지만, 괴수의 반응 능력과 신체 능력은 잘 단련된 기사라고 해도 훨씬 못 미친다.
기사의 난입으로 포위망이 흔들린 틈을 타서 겸양이 도주를 시도했다. 괴수이니 눈덩이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것이지 기사가 눈사람과 부딪히면 즉사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기사 주변의 눈사람들을 치우는 바람에 포위망에 틈이 생겼다.
기신이라면 현장지휘 10의 위력으로 기사의 난입도 적절하게 이용했겠지만 신기는 재능이 부족하고 경험도 없다. 급하게 눈사람을 움직여서 포위망을 다시 구성했지만, 겸양은 빠르게 눈사람들이 급조한 포위망을 벗어났다.
"얼음의 상자."
겸양이 포위망을 벗어나자 신기는 급하게 마법 치환을 펼쳤다. 치환으로 겸양의 몸에 붙어있는 눈덩이들을 얼음으로 바꾸어 얼음의 상자 마법을 펼쳤다. 고속으로 움직이는 상대, 6등급 괴수의 기본 저항력, 미리 기회를 엿본 게 아니라 급조한 마법이기에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제대로 펼치지 못했지만, 겸양의 뒷다리 하나가 얼음의 상자에 갇히며 속도가 느려졌다. 몸 전체를 구속한 것이 아니라서 마나의 공급만 끊어지면 얼음의 상자는 사라진다. 그때 기사단장이 신기의 사정을 알기라도 하듯이 겸양의 정면을 가로막고 빛나는 검으로 겸양의 머리를 공격했다.
겸양도 기사단장의 공격은 무시하지 못하는지 발걸음을 멈추고 신중하게 상대했다. 뿔로 기사단장의 삼연격을 물리친 겸양이 다시 가속하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눈사람들이 겸양의 몸을 사정없이 덮쳤다.
신기는 다른 사람의 안위를 무시하고 눈사람을 돌진시켰다. 그 전까지는 머리 아프게 눈사람을 제어했지만, 안정적으로 잡아가고 있는데 잿가루를 뿌린 기사단원 때문에 화가 났다.
눈사람들의 기세가 흉흉하여지자 기사단장은 세 번의 공격을 끝으로 뒤로 훌쩍 물러났다. 기사단장을 도와주려고 달려오던 기사들도 발걸음을 멈췄다. 눈사람들의 기세가 그 전과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눈사람들이 겸양의 몸을 덮치면서 얼음이 점점 많아졌다. 눈덩이가 얼음으로 바뀌면서 얼음의 상자가 점점 커졌다. 눈사람이 전부 사라졌을 때 겸양의 몸 절반이 얼음에 갇혔다. 기사단장을 비롯한 세 명의 실력이 가장 좋은 기사가 번갈아 겸양을 공격하였다. 얼음의 상자를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다리 하나가 봉인되었을 때에도 겸양은 계속 위치를 바꾸면서 신기가 마법을 펼치는 데 애먹게 했다. 일부 마법은 상대의 위치에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지만, 얼음의 상자와 같은 마법은 반드시 범위를 정확히 정해야 한다.
눈덩이를 치환해서 펼친 얼음의 상자 마법과 기사들의 노력으로 겸양의 신형이 드디어 멈췄다. 신기는 남은 마나를 긁어모아 얼음의 상자 마법을 완성했다. 눈사람 마법을 얼음의 상자로 재배열하느라 마나의 소모가 무척 컸지만, 더 강해진 회복능력으로 마나를 빠르게 회복했다.
예전에는 모든 마나를 회복하는 데 한 시간이 좀 더 걸렸지만, 지금은 반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요즘은 메시지가 잠잠해서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모르고 있다. 육체가 스텟을 방해한다고 했는데 지금의 육체가 최선인지, 아니면 더 발전할 여지가 있는지 메시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신기는 염력으로 얼음덩이를 엔진마차 지붕 위에 올렸다. 신기와 앙드레 그리고 기사단장과 베르캄 후작이 얼음을 실은 엔진마차에 올랐다. 직위가 높은 자들은 엔진마차에 올라 빠르게 수도로 이동했고 직위가 낮은 자들은 도보로 돌아갔다. 엔진이 발동되지 않는 엔진마차에 밧줄을 매고 수도까지 끌고 가야 하기에 그저 걷는 것보다 훨씬 늦게 도착할 것이다.
수도에 도착하니 어떻게 소문이 퍼졌는지 수많은 백성이 구경을 나왔다. 일본 유민들이 닌자라고 이름 지어준 각성자가 기사단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신기는 몰랐다. 그래서 사냥에 성공하자 왕실에서는 곧바로 알게 되었고 6등급 괴수를 처단한 것을 백성들에게 널리 알렸다.
"아직 살아있으니 내가 처단하겠소."
마나를 전부 회복한 신기는 겸양을 가둔 얼음 일부를 '가시 고드름'으로 바꾸었다. 가시 고드름은 회전하면서 겸양의 목을 꿰뚫은 후 '얼음 가시 꽃'으로 변하여 겸양의 목을 절단했다. 겸양이 확실히 죽은 것을 확인한 신기는 마법을 취소했다.
곧 야장으로 보이는 거구의 사내가 마법 톱을 가지고 와서 겸양의 뿔을 잘랐다. 뿔 두 개를 자르는데 톱날을 무려 여덟 번이나 갈았다. 겸양의 뿔은 베르캄과 신기가 하나씩 가지게 되었다.
겸양의 사체는 피 한 방울이라도 흘릴세라 매우 신중하게 다뤄졌다. 화장품을 만드는 데 피와 살 그리고 가죽과 뼈까지 전부 사용된다.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게 겸양의 사체다. 겸양의 사체를 처리한 후 여왕은 신기와 기사단에 공치사를 늘어놓았다.
여왕의 체면을 봐서 꾹 참고 들어주던 신기는 말이 길어지자 끝내 참을 수 없어 입을 열었다.
"여왕 폐하, 우리 계약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왕은 기사단장을 바라보았다. 기사단장이 고개를 젓자 여왕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신용이고 뭐고 가능하면 신기를 처리해버릴 생각이었다. 그래서 기사단장의 의견을 물었는데 기사단장은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기사단장은 겸양이 덮칠 때 신기가 소리 없이 두 가지 마법을 사용한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겸양의 뿔에 받힌 후에도 멀쩡한 것도 확인했다. 겸양은 신기 혼자서 제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나다 왕실의 힘으로 제압할 수 없는 6등급 괴수를 홀로 제압하는 자를 기사단장이 어찌할 능력이 있을 리 없다.
여왕의 눈짓에 둘째 공주가 자신의 오른쪽 귀에서 은색 귀걸이를 떼어서 신기에게 건네주었다. 신기는 귀걸이를 받아든 후 우아한 동작으로 여왕과 공주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귀걸이를 자신의 오른쪽 귀에 착용했다.
"서리 거울."
귀걸이는 문신으로 변하지 않고 신기의 오른쪽 귀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신기의 입가에도 상큼한 미소가 걸렸다.
- 작가의말
오늘 2편으로 마칩니다. 요즘 연재 시간이 불규칙적일 것입니다. 다만 매일 한 편이라도 연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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