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메이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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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kimk2
작품등록일 :
2018.01.19 21:46
최근연재일 :
2018.02.13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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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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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2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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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우리는 친구.2

DUMMY

“이번 주말에 친구네 집으로 갈 거야.”




그날 저녁, 태미는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던 중에 주말 계획을 털어놓았다. 데이트를 마치고 학습지까지 풀어주려면 집에 늦게 들어올 수밖에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왜?”




“같이 공부하기로 했었거든.”




“누구랑 공부하는데?”




“가람이.”




가람이란 이름을 들은 순간, 어머니가 눈을 크게 떴다.




“가람이?! 특별반에 다니는 강가람이 말하는 거지?”




태미가 젓가락질을 하던 손을 잠시 멈추어두었다. 저번처럼 이상한 평가를 듣게 될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알아?”




“그럼, 당연히 알지! 엄마들 사이에서 공부 잘한다고 유명하거든.”




······평가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엄마. 엄마는 내가 걔랑 사귀게 되면 어떨 거 같아?”




“그건 왜 물어봐? 혹시······ 진짜 사귀고 있는 거야?”




“아, 아니. 그냥 친구야.”




“사귀는 건 더 큰 다음에 해.”




“알았어······. 근데 만약에 더 큰 다음에 가람이랑 사귄다면 어떨 거 같아?”




“좋지.”




“왜?”




“공부를 잘 한다는 건 일단 성실하다는 거니까.”




이상한 평가를 받았던 미래의 가람이도 성실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웠다. 태미는 다시 밥을 먹으며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금세 가람이 직접 자신이 공부에 소홀했던 적이 있었다고 말했던 걸 떠올렸다.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였으니 소문이 안 좋게 퍼졌을 법도 했다.




그런데 가람이 그렇게 공부에 소홀했던 이유는 시아의 방송 때문이었다. 결국 시아가 문제였다. 이런 생각을 한 태미는 가람이와의 좋은 기억들을 잔뜩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람이 시아에게 줄 관심을 태미 자신에게 다 쏟게끔 말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금 내려진 평가를 계속 지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간 태미는 의자에 앉은 사야와 눈이 마주쳤다.




“뭘 할지 생각해뒀어요?”




“네. 버스를 타고 한 30분쯤 가면 시민광장이 있거든요? 거기서 같이 놀 거예요. 학교에서 얘기도 해놓고 왔고요.”




“······많이 소박하네요. 원하신다면 좀 더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드리도록 할 수도 있는데요.”




“괜찮아요. 너무 일이 커지면 피곤하니까, 그냥 평범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태미가 침대에 누웠다.




“평일이 빨리 다 가버렸으면 좋겠네요.”




“그럼, 평일들을 전부 스킵해드릴까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일단 지금은······ 잠을 좀 자고요. 저녁 밖에 안 되었는데 피곤하네요.”




태미가 이불을 끌어올리자 사야가 다가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번에 자고 일어나면 주말이 되어있을 거예요. 그때 다시 보도록 해요.”




태미는 사야의 따스한 손길 아래서 살포시 눈을 감았다. 가슴은 흥분으로 마구 두근거리고 있었지만 정작 태미 본인은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미래가 기다려지니? 몸이 얼마나 편하면 미래가 기다려질까?”




잠깐 속삭임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포근한 수면을 막지는 못했다.








***








눈을 뜬 태미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있었다. 눈을 뜨면 주말이 되어있을 거라고 하던데, 이렇게 누워만 있어선 딱히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자기 전에 입고 있었던 옷과 지금 입고 있는 옷이 달랐다는 것 정도랄까? 하지만 스마트폰을 켜보면서부터 주말이 되었음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며칠을 훌쩍 뛰어넘은 날짜가 찍혀있었기 때문이었다.




“잘 잤어요?”




그때, 의자를 끌어 옆에 앉아있던 사야가 말을 걸어왔다.




“놀라신 얼굴이네요?”




“아, 네. 진짜 주말이 되어있어서요.”




사야는 그런 태미를 보고 픽 웃더니 박수를 두어 번 쳤다. 그러자 바닥이 열리더니 많은 옷들이 걸려있는 걸쇠가 불쑥 솟아나왔다.




“저희 회사에서 옷들을 준비해봤어요. 첫 데이트니까 잘 입고 나가야겠죠.”




태미가 벌떡 일어나서 옷들을 뒤적여보았다. 정말 예쁘고 마음에 드는 옷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다지 입고 싶지는 않았다.




“예쁜 것보단 움직이기 편한 게 더 좋을 거 같아요.”




“그럼, 운동복들을 준비해드릴까요?”




“아뇨. 그냥 익숙한 옷을 입고 갈게요.”




태미는 이 말과 함께 자신의 옷장을 열었다.




이후 약속 시간이 되고도 10여 분쯤이 지났을 즈음 태미는 가람과 함께 2인용 좌석에 바짝 붙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분위기가 그다지 좋진 않았다. 가람이 학습지를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이유로 아까부터 계속 바닥만 보며 걱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같이 해준다니까? 왜 그렇게 걱정을 하고 그래?”




“그게······ 네가 풀 수 있을까 해서.”




“풀 수 있으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




고등학생의 머리를 달고 왔는데 초등학생이 푸는 학습지를 못 풀까! 가람이 정도라면 선행학습을 하고는 있겠지만 그래 봐야 고등학생의 머리면 쉽게 풀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태미는 이 사실을 이야기해줄 수 없었기에 화제라도 다르게 돌려보려고 했다.




“학습지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너희 엄마 진짜 너무하다. 어떻게 주말에도 학습지를 하라고 하냐? 엄마한테 주말에는 좀 쉬게 해달라고 해봐.”




“그건, 안 돼.”




“왜?”




“학원 진도를 제대로 따라가려면 이걸 꼭 해야 한단 말이야.”




태미는 이게 바로 선행학습의 폐해라고 생각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런 주말 같은 땐 몸을 움직여줘야지.”




태미가 답답함에 이야기해봤지만 가람은 “그래도······.”라며 말끝을 흐리기나 했다. 에휴, 됐다. 태미는 학습지라는 단어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분위기가 좀 살겠거니 했다.




잠시 후 시민광장에 도착한 두 사람은 많은 가족들이 그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저쪽 스케이트 트랙에선 느릿느릿 조심히 걷는 사람과 빠르게 타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 근처의 자전거 도로에선 다양한 크기와 색깔을 한 자전거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또한, 광장의 한가운데 마련된 원형도로에선 유아용 모터 자동차들이 저들끼리 부대끼며 굴러다녔다.




가람은 버스에 앉아있을 때와 비교해 조금이나마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아 보였다. 좋은 시간을 보내는 다른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학습지에 대한 걱정을 잊은 모양이었다.




“우리 어디서 놀래?”




태미가 그런 가람을 꽉 끌어안았다. 아직 ‘여자 친구’가 된 건 아니지만 과거에서의 첫 데이트인데 이왕이면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보고 싶었다.




“음······.”




가람도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생각을 하는 게 태미의 행동에 놀랐다거나 거부감을 느낀 건 아니었나 보다.




“저기 가보자.”




가람이 생각 끝에 스케이트 트랙을 가리켰다.




“나 스케이트 탈 줄 모르는데?”




“나도 몰라. 그냥, 같이 타보고 싶어서.”




둘 다 탈 줄 모르는데 스케이트라. 태미는 어디 한군데가 크게 깨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가람이 타고 싶다고 하니 그 말대로 하기로 했다.




“어어······ 이거 좀 타기 어렵다.”




“그러게.”




대여소를 거친 두 사람은 서로 손을 맞잡고 트랙에 올랐다. 둘 어치의 체중으로 균형을 그럭저럭 잘 맞추어놓으니 느릿느릿하게나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거 너무 느리다. 조금만 빠르게 가볼까?”




그러다 태미가 그 속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무리해서 발을 쭉 내밀었다.




“그러면 넘어질 거 같은······ 아악!!”




콰당. 덕분에 애꿎은 가람이까지 태미와 잘 포개진 모양새로 트랙에 너부러지고 말았다.




“아야야······ 미안해. 나 때문에 너까지······.”




“괜찮으니까, 내 위에서 내려가. 너 지금 팔꿈치로 내 옆구리 누르고 있어.”




앗. 미안! 태미가 먼저 벌떡 일어서서는 가람의 손을 잡고 쭉 일으켜 세워주었다.




“진짜 미안해. 그냥 자전거로 갈아탈까? 스케이트는 좀 아닌 같아.”




“아니야. 이왕 돈 들여서 하는 거 끝까지 해봐야지.”




가람은 옆구리를 찍히고도 다시 태미의 손을 잡았다. 태미는 살짝 놀란 얼굴로 그런 가람을 보았다가, 곧 미소를 지었다.




손을 놓아도 넘어지지 않을 정도의 발전이 있었을 즈음 두 사람은 휴식을 취할 겸 콜팝을 사 들고 트랙 바깥에 앉았다.




“이렇게 같이 나와서 노는 것도 정말 좋지 않아?”




“응. 좋아.”




가람에게선 더 이상 학습지의 망령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나······ 너랑 이렇게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




태미는 그런 가람에게 몸을 기댔다. 공부를 잠시 잊은 데에다가 시아의 손길도 닿지 않은 순수한 가람이와 이렇게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게 너무 좋았다.








야외에서의 데이트를 마친 후, 태미는 가람을 따라 그가 사는 아파트를 찾아갔다. 약속했던 대로 함께 학습지를 풀기 위함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거쳐 가람이 선택한 층에 이르고 나니 짤막한 복도와 거기 나란히 달린 두 개의 문을 볼 수 있었다.




가람이 문을 하나 골라 그 앞에 섰다. 그러자 태미도 여기가 가람이네 집이겠거니, 그의 곁에 섰다.




「띵동-」




그런데 웬걸, 가람은 문을 열지 않고 그 옆에 난 초인종을 눌렀다. 그를 본 태미는 아주 잠깐 쟤는 왜 자기 집에 들어가는데 초인종을 누르나 의아해했다.




“잠깐만 기다려!”




인터폰 너머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나더니, 곧 문이 열렸다. 뒤이어 얼굴을 드러낸 이는 이제 막 교복에서 벗어났음직한 여자였다.




“어어, 가람이 왔구나? 슬기롬이 데려가려고 온 거야?”




“네. 맞아요.”




“슬기롬이 우리 집에 있는데 마침 잘됐네. 잠깐 들어와.”




“아아, 괜찮아요. 풀어야 할 학습지가 있어서 바로 집으로 들어가야 하거든요.”




“그래? 그럼 슬기롬이 데리고 나올게.”




여자가 도어스토퍼를 걸어놓고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안에서 “슬기롬이! 가람이 오빠 왔어!”라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슬기롬이 여자의 손을 잡고서 나타났다.




태미는 지난 이야기에서 보았을 때에 비해서 많이 성장한 슬기롬을 보면서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땐 거의 아기였는데 말이다.




“넌 누구야?”




여자가 그런 태미를 보며 물었다.




“가람이랑 같은 학교 다니는 친구예요. 이름은 박태미라고 하고요.”




“으응, 그렇구나? 안녕?”




“안녕하세요.”




인사말이 오가고 나니 슬기롬이 여자의 곁을 떠나 가람에게 갔다. 아이는 뒤이어 가람의 손을 잡았는데 여자가 그걸 보며 “오빠 손 잘 잡고······.”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럼, 가볼게요.”




“응. 내일 보자.”




이 인사를 마지막으로 문이 닫혔다.




“저 언니랑 잘 아는 사이야?”




“응. 엄마아빠가 일 때문에 나가 있고 나까지 학원에 가 있을 때마다 슬기롬이를 돌봐주는 누나야.”




가람이 옆집 문을 열었다.




“어? 여기가 너희 집이었어?”




“응.”




가람은 짧게 대답을 해주고서 집으로 들어갔다. 태미가 그 뒤를 따라 들어가니 집의 전경이 보였다. 우선 복도가 길게 나 있었고 그 끝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두어 발자국 정도 물러선 위치의 양옆에 문이 하나씩 달려있었다. 거기서 더욱 물러서서, 왼편에는 거실이 있었고 오른편에는 부엌이 있었다.




“우와, 집 좋다.”




태미가 복도 한가운데 서서 집 안을 둘러보며 감탄을 하는 한편, 가람은 거실에 들어가 있었다. 거실엔 벽걸이 TV와 소파가 있었고 그 사이에 큼지막한 탁자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탁자 위에 필기구 세트와 학습지들이 있었다.




“그거야?”




가람이 탁자 앞에 앉아 학습지를 펼치자 태미가 그의 곁에 앉으며 물어보았다.




“한번 보자. 얼마나 어려운지 내가 평가를 해줄게.”




태미가 다른 학습지를 하나 펴 내용을 쓱 훑어보았다. 그리고······ 정색을 했다. 불과 1년 전에 배운 내용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짜 풀 수 있겠어?”




가람이 그런 태미에게 걱정스레 물었다. 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온 거, 물러설 순 없었다.




“그럼! 이런 거 그냥 풀지!”




태미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그래도 막상 풀어보니 생각보다 쉽게 풀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머리가 팽팽 잘 돌아갔다.




태미는 문제들을 풀면서 이걸 제대로 배울 나이쯤에 지금 공부를 한 걸 다 기억하고 있을 수 있을까 의문스러워했다. 솔직히, 다 까먹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걸 위해서 일주일 내내 공부에 시달리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는 게 너무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다.




“오빠······ 배고파.”




학습지를 슬슬 넘기던 중에 슬기롬이 칭얼거리며 다가오더니 가람에게 매달려 밥밥거렸다.




“그래. 밥 먹자.”




가람은 슬기롬을 가까운 데 떼어놓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가람아. 잠깐만.”




그때 태미가 먼저 벌떡 일어서더니 두 손으로 가람의 양어깨를 꾹 눌렀다.




“내가 밥해줄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그럴 필요 없는데.”




“꼭 해주고 싶어서 그래.”




태미는 이 말을 남기고서 부엌을 향했다. 가람은 그런 태미의 뒷모습에 “밥은 돼 있어!”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부엌으로 들어간 태미는 식탁 위에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냉장고 안에서 반찬을 꺼내 놓아두었고 식어버린 국을 다시 끓였다. 그리고 국이 끓을 때쯤 밥을 푸기 시작했다. 가람이와 슬기롬의 밥그릇을 놓고, 자기 몫의 밥그릇을 그 맞은편에 놓으면서 식사 준비가 끝이 났다.




“가람아! 슬기롬이! 밥 먹자!”




태미의 부름에 두 사람이 식탁을 찾아와 자신에게 맞는 밥그릇 앞에 앉았다. 그리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저녁은 항상 둘이서 먹는 거야?”




태미가 잠깐, 먹던 입을 멈춰두고 물었다.




“아니. 난 학원 비는 시간에 엄마네 식당에 가서 먹고 얘는 이레 누나네 집에서 먹고.”




“밥이 되어있던데?”




“엄마가 나가기 전에 밥을 해놓거든. 뭐······ 먹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한 5일 정도 묵혀뒀다가 버리곤 하지만.”




그럴 정도로 바쁘다니. 집에서도 학습지에 시달려야 하는데. 태미는 자신이 여기 이렇게 있는 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가람의 삶에 이런 특별한 일을 만들어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빈 그릇들이 모두 싱크대에 잠긴 한편, 두 사람은 학습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금세 목표치를 달성하고 학습지를 덮을 수 있었다. 심심해하는 슬기롬이와 자주 놀아주면서 문제를 푼 건데도 그랬다.




“가람아. 나 가야 될 거 같아.”




태미가 창밖을 보며 이야기했다. 때마침 바깥이 슬슬 어두컴컴해져 가던 차였다.




“응······ 그러네.”




가람은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태미는 그런 가람을 지긋이 보다가, 와락 안아주었다. 그리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내일 다시 보자.”




태미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남겨두고서, 밖으로 나와 까만 밤하늘 아래를 기분 좋게 걸었다.




“······?”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얗고 걸쭉한 액체가 태미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서서히 잠식해나가고 있었다. 액체에서 빛이라도 나는 건지 까만 하늘 아래서도 눈앞이 온통 새하얬다.




“······!!”




당혹스러움에 주위를 크게 둘러보던 태미는 저 먼 편에 산을 등받이 삼아 선 거대한 존재가 있음을 보았다. 그것을 굳이 동물에 비유하자면 하얗고 거센 털을 가진 설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머리가 없었다. 목이 있어야 할 부위에 평평하고 넓은 구릉이 져 있었고 거기에 사람의 입이, 얼굴에서 입만 똑 잘라 붙인 것만 같은 붉은 그것이 그 구릉의 반 정도를 차지하며 붙어있었다. 그 입은 이따금씩 헤 벌어지며 하얀 이빨과, 그 이빨 사이사이에 흘러내리는 침을 보여주었다.




“이리와. 내가 구해줄게.”




그 입이 이야기했다. 태미의 머릿속에 울렸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태미 양.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도록 하죠.”




때마침 사야가 나타나 태미의 곁을 지켰다.




“저게 뭐예요?”




“더러운 거예요. 잠깐 회사로 돌아가죠.”




허공에 문이 열렸고 두 사람은 그 문을 지나 방으로 되돌아왔다. 특히나 태미는 그 귀환의 순간에 다시 고등학생이 된 자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 창밖을 한번 보고 계셔보세요.”




사야의 말대로 창밖을 본 태미는 하얀 액체로 범벅이 된 동네의 모습과, 그 액체 위에서 가지 뻗듯 뻗어나가고 있는 황금빛 실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턴가 실들이 그물마냥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고 오래지 않아 온 동네가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엔 오직 공백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아까 봤던 하얀 거······ 대체 정체가 뭐에요?”




태미가 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마요네즈요. 우린 그렇게 불러요.”




“왜 그런 게 보이는 거예요?”




“태미 양이 새로 만든 과거가 원래 과거랑 너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죠. 시간 여행의 작은 부작용쯤으로 보면 될 거 같아요.”




“하얗고 입이 달린 괴물도 봤었는데요.”




“그 녀석은 마요네즈가 나타날 때마다 같이 나타나는 방해꾼이에요. 좋은 녀석은 아니니까 절대 가까이 가지 마세요.”




태미는 좋은 녀석은 아니란 말에 한 치의 의심도 가지지 않았다. 사람을 잡아먹기 딱 좋게 생긴 괴물이 제 말대로 남을 구하는 걸 목적으로 삼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적이라는 인식이 확실히 박히자 머릿속에서 울리던 소리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봐야겠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저기, 언니. 사실 첫 과거를 볼 때부터 누가 자꾸 저한테 말을 걸어왔었어요.”




“말을 걸어왔다고요?”




“네. 머릿속으로 들어와서 얘기를 하는 것 같았어요. 여러 명이 한꺼번에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런 목소리로요.”




사야가 태미의 이야기를 듣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아까 그 괴물이 그 목소리로 말을 하지 않았었나요?”




“맞아요!”




“그럼 우선은 그 녀석이 하는 어떠한 말에도 대꾸하지 마세요. 그렇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저희 측에서 녀석을 처리할 방법이 강구되면 바로 조치를 취해드릴게요.”




태미는 ‘조치’라는 믿음직한 단어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럼, 다시 과거로 돌아가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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