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못하고 죽은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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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
작품등록일 :
2018.01.23 11:44
최근연재일 :
2018.07.1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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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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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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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2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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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장례식

DUMMY

은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차에 타서는 시동을 걸고 FM라디오를 틀어놓은 채 출발했다.

지금 가면 막히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혼하는 날인데 날씨는 안 어울리게도 맑고 화창했다.


‘괜찮아. 이혼하고 나오면 날씨에 어울리게 기분도 홀가분해 질거야.’


지난 2달의 숙려기간동안 은영은 기혼도 아니고 이혼도 아닌 것 같은 찝찝한 기분으로 지내 왔었다.

마치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봤는데 휴지가 없어 제대로 처리 못한 채 2달을 버티는 기분이랄까.



그 기간 동안 지훈과는 딱 한번 만났다.

만난 이유는 재산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를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잘 지내냐는 형식적인 인삿말도 없이 본론으로 들어갔었다.

다행이었던 것은 둘 다 거의 진이 빠진 상태라 웬만하면 대충 서로 합의를 하고 끝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은영 입장에서도 먼저 이혼 이야기를 꺼낸 마당에 위자료 같은 걸 받아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은영과 지훈은 그냥 지금 집의 전세금과 혼수를 처분하고 남은 돈을 4대6으로 나누어 갖기로 합의했다.

은영이 4였다.

하지만, 결혼할 때 전세금의 대부분을 지훈이 마련해 왔기 때문에 은영으로서도 그리 불리한 합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젯밤에 은영은 여행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혼 후에 어디로 여행을 떠날 지 검색해 보았다.

그래도 이혼 기념으로 떠나는 여행인데, 가까운 일본이나 동남아 정도로 다녀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비용이 좀 들더라도 유럽 정도는 한번 가보고 싶어.’


은영은 이태리나 그리이스 지역을 중심으로 검색을 해 보았다.



아침 출근 피크 타임대는 지나 있었지만 도심에 들어서니 길이 막혔다.


‘이러다 지각하는 건 아니겠지?’


은영은 조금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은영은 뭐든지 정확하게 딱딱 맞추는 것을 좋아했다. 너무 넘치는 것도 너무 모자라는 것도 싫었다.

약속시간도 마찬가지였다.

늦는 것은 실례지만 너무 일찍 가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늘 예상시간을 꼼꼼히 따져보고 움직였다.

하지만 오늘은 인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중요한 약속이다.

늦어서는 안된다. 차라리 시간이 좀 남는 편이 낫지.


은영은 속도를 내고 요리조리 줄이 짧은 차선으로 갈아타기 시작했다.

‘바쁨 모드’로 운전을 한 덕분에 신속하게 법원 사거리까지 올 수 있었다.

이제 주차와 걸어가는 시간을 계산하면 10분 정도 일찍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은영 바로 앞에서 신호가 바뀌어 한텀을 보내고 은영이 막 사거리에 진입한 순간이었다.


‘꽈아아앙!!!~~~~~~~~~~’


옆에서 오던 5톤 화물차가 빨간 신호인데도 멈추지 않고 오던 속도 그대로 은영의 차를 밀고 지나갔다.

순간,

은영은 정신을 잃었다.



==================



지훈은 자신이 어떻게 병원 응급실까지 왔는지도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았다.

택시 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지금은 응급실 밖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방금 전 지훈은 응급실에 들어가 만신창이가 된 아내의 모습을 보고 의사의 사망선고를 듣고 나온 참이었다.

아내는 이미 병원 도착 전에 사망을 한 상태라고 했다.

마지막까지 책임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소릴 듣기 위해, 그리고 의사의 사망선고를 받기 위해 경찰은 앰블런스에 아내의 시신을 실어 병원으로 보낸 것이었다.

지훈은 도저히 현실감이 나질 않았다. 흘리던 눈물도 이제는 말라버렸다.

눈물이 마른 이유가 현실을 받아들여서라기 보다는 반대로 도저히 현실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훈은 뉴스에 나올만 한 이런 큰 사건을 자신이 겪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내를 혐오했고, 증오했다.

그래서 이혼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아내가 이렇게 죽기를 바랬던 적은 없었다.


단지 우리는 서로 안 맞는 사람들끼리 만난거라 생각했다.

아내도 지훈 자신도 혼자가 되면, 그리고 좀 더 시간이 흘러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각자 사랑을 찾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는 지금 싸늘한 주검이 되어 이 병원 어딘가 시신보관소에 안치되어 있다.


‘내 탓일까?’


‘우리가 이혼에 합의하지 않았더라면 아내가 그 시간에 법원 사거리에 차를 몰고 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이런 사고를 당하지도 않았을까?’


지훈은 죄책감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마치 초보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낸 것처럼, 지훈은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고 이 순간 무얼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30분 정도 지훈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니 한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간호사가 지훈에게 와서 병원의 장례식장을 이용할 거냐고 묻는 바람에 지훈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장례식···, 해야 하나요?”


멍청한 질문이었지만, 지훈은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웬지 장례식은 나이가 많이 들어 죽은 분들이나 하는 것 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어른들께 아직 연락 안 해 보셨어요?”


‘아차! 가장 먼저 장인, 장모님께 연락을 드렸어야 하는건데···’


“아직이요···”


“그럼 연락드리고 상의해 보세요.”


“네···”



간호사가 총총걸음으로 가버리고 지훈은 핸드폰을 들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혼한다고 괘씸해 하시는 걸 뵌 것이 마지막이었는데, 어떻게 그분들한테 아내의 죽음을 알린단 말인가···


이제 지훈은 현실적인 고민으로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늦으면 늦을수록 고인과 그 부모님들께 예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훈은 결심을 하고 장인어른께 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내친 김에 계속해서 아버지, 어머니께도 전화를 드렸다. 아내의 오빠에게도, 지훈의 형과 여동생에게도 그리고 자신의 절친인 용범과 아내의 단짝인 지은에게도 계속해서 전화를 했다.


전화를 모두 마치자 지훈은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 않았다.

아내의 사망 소식을 지인들에게 전하는 것 만으로도 온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화를 건지 한시간 정도 지나서부터 사람들이 병원으로 속속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훈에게 와서 통곡을 하고, 지훈과 포옹하고, 그리고 아내의 죽음을 애도했다.


용범이 병원에 도착하고 나서야 일들이 착착 진행되기 시작했다.

망연자실 해 있는 지훈을 대신해서 용범은 병원 안에 있는 장례식장을 잡고, 경찰서에도 지훈을 데리고 다녀왔다.

CCTV와 블랙박스가 많은 지역이었고, 5톤트럭의 일방적인 과실, 아마도 졸음운전임이 확실해 시신을 보호자에게 인계해도 좋다는 허락이 나왔다.

가해자였던 5톤트럭 운전사도 현장에서 즉사했기 때문에 멱살을 붙잡고 하소연 할 상대도 없었다.


장인, 장모님은 은영이 이혼을 앞두고 자살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셨고, 경찰도 그 부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딸을 잃은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하지만 지훈은 곤혹스러웠다.

그렇지 않아도 스스로 아내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무척이나 견디기가 어려웠다.

슬픔과 분노와 애정과 연민과 원망이 뒤섞인 혼란스런 감정 속에서 지훈은 장례를 치르고 있었다.



지훈은 장례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은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사고가 거의 정지된 채, 그저 용범과 장례업체에서 지시하는대로 따라다니기만 할 뿐이었다.

그나마 고등학교 동창인 용범이 있어주어 다행이었다. 용범이 아니었으면 한번도 해 본 적 없는 ‘상주’ 노릇을 어떻게 치렀을 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3일째가 되자 지훈은 거의 가사상태가 되어 슬픔조차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머리가 멍해졌다.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 것은 납골당에서 A4용지만 한 작은 사각형의 칸 안에 새겨진 아내의 이름과 사진을 보고 나서부터였다.


그때가 되어서야 지훈은 아내가 죽은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무리 원한다 해도 절대로 볼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이혼을 결심하고 2달의 숙려기간 동안 완전히 증발해 버린 줄 알았던 아내에 대한 정이 남아있음을 지훈은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은 어리석은 존재다.

이렇게 모든 일이 지나가고 나서 눈물을 흘리고 후회를 하니 말이다.

그렇게 해서 모든 장례절차가 끝이 났다.



장례식이 끝나고 이틀 후, 지훈은 아파트를 찾아왔다.

이곳에 마지막으로 온 것은 6개월도 더 전의 일이었다.

집안은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마치 은영이 자기 죽음을 예감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어쩌면 은영은 이혼을 앞두고 이곳이 아닌 친정에서 지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집안은 깔끔했다.

지훈은 은영이 정리해 놓은 이 완벽한 정돈상태를 흐트러트리고 싶지 않았다.

마치 범죄현장을 방문한 형사가 가능하면 현장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듯, 지훈은 조심스럽게 식탁의자를 꺼내 앉았다.

한 때 이곳은 지훈과 은영이 즐겁게 수다를 떨던 자리였다.

늘 지훈은 지금 앉은 자리에, 은영은 맞은편 자리에 앉았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이틀동안 내리 잠만 잤지만, 여전히 몸은 허약해져 있었고 피로는 풀리지 않았다.

지훈은 침실로 갔다. 옷도 벗지 않고 그냥 그대로 침대에 기어들어가 누웠다.

침구에서 아내의 화장품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지훈은 옆으로 누워 마치 누에고치처럼 몸을 웅크린 채 눈물을 흘리며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보니 몸이 서늘했다.

오랫동안 잤는지 벌써 볕은 다소 기운을 잃고 오후의 햇살이 되어 있었다.

지훈은 천천히 일어나서 앉았다.


‘어차피 그날 이혼을 했어도 지금 쯤은 혼자였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지훈은 천천히 일어나 침실의 커튼을 열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그리고 거실로 나가서 베란다 창문들을 모두 열어 집안을 환기시켰다.


재산분할 협의를 하면서 아파트를 처분하는 일은 지훈이 맡기로 했었다.

여길 비우려면 집주인에게 이야기를 하고 새로 들어올 세입자를 구해야 한다. 어차피 전세니까 서두를 필요는 없다.

집주인에게는 천천히 전화하기로 하고 당분간은 원룸과 아파트를 오고 가면서 관리하기로 지훈은 마음 먹었다.


‘은영의 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집안을 둘러보던 지훈이 생각했다.

은영의 옷이랑 가방, 신발 등 악세서리, 결혼하면서 가져왔던 대학 전공 서적들을 지훈 마음대로 처분해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장인, 장모님께 말씀드리고 보내드려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지훈은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나 고민하다 은영의 절친이었던 지은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지훈씨?”


“아, 네. 안녕하세요?”


“네. 좀 쉬셨어요?”


“네. 물어볼 것이 있어서 전화 드렸는데요, 집에 은영이 옷이랑 개인 짐들은 어떻게 하는 게 나을까요? 괜히 장인, 장모님께 보내 드리면 마음만 더 상하게 해 드리는 것 같고, 그렇다고 태워버리거나 버릴 수도 없고, 고민이 되네요.”


“빨리 처분하고 싶으세요?”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집은 천천히 뺄 거라서요.”


“그럼 좀 더 시간 두고 생각해 보시죠. 장인, 장모님도 시간이 좀 지나면 생각이 달라지실 수도 있으니까요.”


“그럴까요, 그럼.”


“일단 다른 생각 마시고 지훈씨 몸부터 좀 추스리세요.”


“네, 그래야죠···쉬세요~”


“네~ 우리 언제 커피 한잔 해요.”


“네. 그러시죠. 나중에 연락 드릴게요.”


“꼭 연락 주세요!”


지은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당분간은 이 집안에 있는 것들은 그냥 있던대로 두어야겠다.


이제 해가 뉘엿뉘엿 지려 하고 있었다.

지훈은 열려진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치고, 집안의 모든 것들을 자신이 들어왔을 때와 똑같이 정리정돈 해 둔 후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휘 둘러보고는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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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못하고 죽은 귀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9 [완결] 하늘나라로 18.07.16 286 3 17쪽
28 큐피드의 화살 +2 18.07.14 251 3 13쪽
27 현우 이야기 4 +2 18.02.28 401 10 13쪽
26 현우 이야기 3 +4 18.02.27 325 9 12쪽
25 현우 이야기 2 +2 18.02.24 386 6 12쪽
24 현우 이야기 1 +2 18.02.23 368 6 12쪽
23 지은도 알게 되다 18.02.22 392 9 12쪽
22 수목장 18.02.21 357 9 11쪽
21 은영의 능력 +2 18.02.20 558 10 12쪽
20 은영의 비밀 18.02.18 402 8 12쪽
19 이혼식 +2 18.02.17 501 8 12쪽
18 대화가 필요해 18.02.15 451 8 12쪽
17 선미 이야기 3 18.02.14 462 8 13쪽
16 선미 이야기 2 18.02.13 431 8 12쪽
15 선미 이야기 1 18.02.12 459 8 12쪽
14 친구에서 경쟁자로 18.02.09 478 8 12쪽
13 귀신과의 조우 3 18.02.06 481 9 12쪽
12 귀신과의 조우 2 18.02.05 467 8 11쪽
11 귀신과의 조우 1 18.02.05 501 8 11쪽
10 지훈의 아르바이트 18.02.04 502 9 12쪽
9 산 사람은 살아야 18.02.03 527 8 13쪽
8 작은 복수 18.02.02 520 8 12쪽
7 회상 : 다툼 18.02.01 514 6 12쪽
6 친구들을 사귀다 18.01.31 538 9 11쪽
5 홀로서기 18.01.26 615 10 12쪽
4 회상 : 첫 만남 18.01.25 574 5 12쪽
3 귀신이 되다 18.01.25 598 7 12쪽
» 장례식 18.01.24 698 9 12쪽
1 이혼 하는 날 18.01.23 940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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