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되다
은영이 정신을 차린 것은 앰블란스 안에서였다.
은영은 깨어난 순간 몸이 아주 가벼워 진 것을 깨달았다.
은영은 순간 자신이 죽어 영혼이 빠져나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육체가 눈앞에 보였고, 구급대원들이 막 심폐소생술을 포기하고 있었다.
‘이런 것이 죽는 것이로구나.’
이제 곧 은영의 영혼은 하늘나라로 올라갈 것이다.
은영의 몸은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응급실에서 보니 자기와 같은 많은 영혼들이 육체로부터 떨어져 나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대부분의 영혼들은 육체에서 떨어져나오는 것과 동시에 마치 헬륨가스를 넣은 풍선처럼 저절로 스르르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왜 아직 여기 있는거지?’
은영은 하늘을 향해 점프해 보았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은 가능했으나 하늘 높이로 올라갈 수는 없었다.
죽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보았다.
심한 교통사고로 인해 자신의 육체는 처참하게 찢겨져 있었다.
슬펐다. 그리고, 화가 났다.
이 모든 것이 남편인 지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로서 이혼도 서글픈 일인데, 죽음을, 그것도 곱게 죽은 것도 아니고 저렇게 처참하게 찢겨져 죽음을 당하다니, 게다가 하늘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남편과 신에게 동시에 버림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지훈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나기 시작했다.
지금 자신은 이지경인데 남편이란 작자는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는 것이다.
바로 그 때, 넋이 나간 채 응급실로 들어오는 남편 김지훈의 모습이 보였다.
정상적으로라면 오늘 이혼할 사이였지만, 그래도 옛정이 남았었던지 남편의 얼굴을 보자 은영은 괜히 눈물이 나면서 반가웠다.
남편은 자신의 시신을 보고 넋이 나가 줄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슬프겠지. 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 죽고 나서 운들 무슨 소용이람?’
눈물 흘리는 지훈을 보고 은영은 오히려 부아가 났다.
은영은 지훈이 저렇게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 ‘어차피 죽을 거 였으면 지훈이 더 괴롭도록 차라리 자살을 할 껄 그랬나?’하고 생각했다.
찢겨진 자신의 육체를 보고 은영은 다시금 불쌍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은 지난 3년간 지훈으로부터 아내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해 정신적으로 만신창이가 된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당신은 나를 이 꼴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이야! 아까 법원으로 향하던 나의 마음은 지금 내 육체의 모습보다 훨씬 더 처참하게 찢겨져 있었어!”
지훈의 바로 앞에서 큰소리로 외쳐 봤지만, 지훈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은영은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지훈의 뺨을 두 손으로 때려도 보았지만, 휙~ 휙~ 그냥 허공을 스치기만 할 뿐 소용이 없었다.
지훈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봤지만, 이번에도 역시 두 손은 허공을 지나갈 뿐이었다.
은영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내가 집에서 홀로 외로움에 고통받고 있을 때 당신은 어디 있었어? 바람이라도 피우고 있었던 거 아냐?”
은영은 울부짖으면서 지훈을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억눌러 온 감정이 일순간 폭발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차피 지훈도 그리고 응급실에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도 은영이 무슨 짓을 하든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자 은영은 더욱 크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날 이렇게 죽여 놓고 너는 눈물만 흘리고 있으면 다야? 너도 죽어봐. 죽어, 죽어~~”
지훈과 부부싸움을 하면서 꼭 한번 이렇게 소리를 질러보고 싶었다. 행여 옆집이나 위 아랫집에 들릴까 걱정하지 않고 감정이 이끄는 대로 고래 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지훈에게 대들고 싶었다.
“죽어어어어어!!!~~~~~~”
은영이 마침내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고함을 질렀다.
그 순간,
‘파파팍!~~’
은영의 시신이 누워있는 침대 위의 형광등이 꺼져 버렸다.
그리고, 옆에 놓여있던 심박세동기와 각종 측정기기들이 ‘삐이, 삐이~’ 소리를 내며 오작동하기 시작했다.
“엄마야, 놀래라~”
은영은 스스로도 놀래서 일순간 몸을 숨기듯 움추렸다.
‘혹시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본 건 아닐까? 가끔씩 사람들 눈에 유령이 보이기도 하잖아.’
은영은 방금 전 자신이 혼자 원맨쇼하듯 했던 분풀이의 모습을 혹시 사람들이 본 것은 아닌가 싶어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간호사들과 의사들은 오작동해서 ‘삐, 삐~’ 소리를 내고 있는 기기들에 혼쭐이 나서 우왕좌왕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지훈은 넋이 나간 듯, 침대 옆에 서서 멍하니 은영의 시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지훈은 더이상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기운이 빠져버린 듯 한 모습이었다.
“사망 선고를 하겠습니다. 환자 최은영, 20xx년 3월 5일 오전 11시 30분···”
의사가 사망선고를 하고 지훈에게 부검을 할 것인지를 물었다. 지훈은 고개를 저었다.
“자, 보호자 분은 이제 밖에 나가서 기다리세요.”
‘보호자’···
아직 지훈은 은영의 보호자였다.
지훈은 마치 좀비가 걸어가듯 터벅터벅 응급실 밖으로 나가 복도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은영도 오작동하고 있는 기기들로 의료진들이 정신없어 하는 응급실을 나와 지훈 옆에 나란히 앉았다.
가까이에 앉아 있으니 은영은 지훈의 땀냄새도 맡을 수가 있었다.
이렇게 오감이 멀쩡하고 생생한데 내가 죽은 거라니, 지금 내가 귀신이라니···
은영은 아직도 믿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현실감이 없어 하는 것은 지훈도 마찬가진 것 같았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어두운 응급실 복도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한참 후, 간호사가 나오더니 지훈에게 병원 장례식장을 이용할 것인지 물었다.
그제서야 지훈은 은영의 부모님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진작에 우리 엄마, 아빠한테 연락 드렸어야 하는거 아냐? 무슨 남자가 이렇게 정신머리가 없어? 꼭 누가 챙겨줘야 하고.’
은영은 우왕좌왕하는 지훈의 모습이 한심했다.
좋은 대학 나왔다고 모두 똑똑한 것은 아니듯, 지훈도 헛똑똑이였다.
특히 낯선 상황에서는 늘 어쩔 줄 몰라해서 은영이 먼저 챙기곤 했었다.
‘당신은 그러면서도 늘 남편대접은 받으려고 했었지···’
한시간 정도 더 지나자 은영의 부모님이 달려 오셔서는 오열을 했다.
보고싶던 엄마, 아빠의 얼굴이었다.
그동안 이혼 한다고 야단 맞은 이후로 뵙기가 거북스러워서 몇번 찾아가지도 못했었다.
엄마, 아빠를 보자 은영은 또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어서 은영의 오빠네 식구들과 친한 친구인 지은도 속속 병원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한꺼번에 지인들의 얼굴을 보자 은영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슬펐다.
이제는 이들 사이에 끼어 대화를 나누고 함께 어울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은영의 부모님은 오열을 하면서 지훈에게 마구 험한 말을 했다.
그러면서 자기 딸이 자살을 한 것 아니냐고 지훈을 다그쳤다.
“이혼까지 해 주겠다고 한 애를 얼마나 모질게 대했으면···”
“자네 이제 속이 시원한가? 우리 은영이 얼굴 안 보게 되서 시원해? 이사람아. 흑흑~”
지훈은 장인장모님의 그런 다그침에도 고개를 숙인 채 “죄송합니다.”만 반복할 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 아버지 그냥 교통사고라잖아요. 제발 진정하세요. 이 사람인들 지금 마음이 편하겠어요?”
옆에서 오빠와 다른 식구들이 엄마, 아빠를 말리고 있었다.
그런 지훈을 보니 은영은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빠. 지훈씨와 내가 서로를 힘들게 한 건 사실이지만, 이번 교통사고는 정말 100% 사고에요. 너무 김서방 나무라지 마세요.”
은영이 이렇게 말 해 보았으나 부모님이 들을 리 없었다.
은영은 이후 자신의 장례식 절차를 모두 지켜 보았다.
지훈은 장례식이 모두 끝나고 납골당에 안치하여 마지막 인사를 마치는 시간까지 몇일간 거의 한숨도 자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그런 지훈의 모습을 보며 은영은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저러다 쓰러지는 거 아니야?’
하지만, 다음 순간 은영은 생각했다.
‘그러게 있을 때 잘 하지···, 내가 죽고 난 지금 무슨 소용이 있어?’
‘그래, 당신도 고통 좀 당해 봐. 당신은 좀 당해도 싸.’
‘나는 당신 기다리면서 잠 못든 밤이 얼만 줄 알기나 해? 당신은 항상 나랑 싸우고 나면 밤늦게 들어오곤 했지. 나 홀로 텅 빈 집안에 남겨진 시간들이 얼마나 외롭고 우울하고 무서웠는지 알아? 당신은 고작 2,3일 그러고 있지만 나는 몇달이고 그 생활을 계속했었다고.’
장례식장에는 수많은 다른 귀신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부분은 귀신이 된 지 얼마 안되는 듯, 은영처럼 낯설어 하며 혼자서 조용히 있었지만,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오래 묵은 귀신들도 있었다.
은영에게도 몇번인가 귀신들이 찾아와 말을 걸었지만, 은영은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이 친구는 아직 적응이 덜 된 모양이군. 시간이 더 필요하겠어. 우리 다른 친구한테로 가자구.”
은영에게 왔던 귀신들은 멀리 가버렸다.
‘도대체 나는 얼마나 더 이승에 머물러야 하는거야?’
은영은 생각하면 할수록 짜증이 났다.
‘아까 저 친구들 왔을 때 물어볼껄 그랬나?’
‘혹시···, 천당이 아니라 지옥으로 가게 되는 건···, 아니겠지···? 설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은영은 갑자기 소름이 끼치기 시작했다.
‘하느님, 부처님, 하나님, 예수님, 천지신명님···, 어느 신이든 다 믿을테니 제발 저를 지옥에 가지만 않게 해 주세요~~’
은영은 두손으로 싹싹 빌기 시작했다.
“내가 지옥 가기만 해 봐라. 당신은 꼭 데려가고 말거야!~ 혼자서는 절대 지옥 안가!”
은영은 자신의 영정사진 앞에서 멍하니 넋이 나가 서 있는 지훈을 보며 말했다.
그러나 지훈은 은영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고 은영은 또 다시 그 사실이 갑갑해 견딜 수가 없었다.
은영은 이곳에 모인 지인들 사이에서 왕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서로 함께 슬픔을 나누고, 같이 이야기를 하고, 함께 식사하는데 자기만 그 틈에 끼일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알겠어. 귀신에겐 이승이 지옥이야. 여기가 나에겐 지옥이라구. 흑흑~’
살아 있을 때에도 지훈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해 외로워 견딜 수가 없었던 은영이었다.
귀신이 되어서도 외로움은 여전하니 이곳이 바로 지옥이고 자신은 ‘고독’이라는 벌을 받고 있는 셈인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뭔가 잘못한 것이 있어 벌을 받고 있는건가···?’
은영은 그동안 지훈과 다투고, 별거를 하고, 이혼을 진행하면서 자신이 잘못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지금 자신이 벌을 받고 있는 거라면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언제부터 우리 사이는 틀어지게 된 것일까?’
서로 죽고 못산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던 두 사람이었다.
데이트 후에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이 너무나도 아쉬웠기에, 잠시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기에 한 결혼이었다.
‘살아있던 날들 동안 왜 우리는 행복하지 못했을까?’
자신의 장례식이 조용히 진행되는 동안, 은영은 장례식장 한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곰곰히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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