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못하고 죽은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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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
작품등록일 :
2018.01.23 11:44
최근연재일 :
2018.07.1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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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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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25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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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회상 : 첫 만남

DUMMY

“김지훈씨···?”


“예. 제가 김지훈입니다.”


지훈이 은영을 처음 만난 것은 친구 소개로 나간 소개팅 자리에서였다.

그러나, 막상 소개팅 당일 친구는 독감에 걸렸다며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만나라고 통보를 했다.

카페로 들어오는 여자들을 보며 ‘저 친구일까?’ ‘아니면, 저 친구?’ 하고 상상하던 지훈은 약속시간보다 10분이나 지나도 올 생각을 않는 상대방을 조바심을 내며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들어온 여자를 봤을 때, 저 여자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 여자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지훈의 전화기가 진동을 했다.


‘저 여자로구나!’


지훈은 저절로 입이 벌어졌지만, 다음 순간 표정관리를 하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은영은 완전 캐주얼해 보이는 카키색 아베크롬비 야상자켓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양복을 정성껏 차려입고 나간 지훈은 약간 당황했다. 대학생 소개팅도 아니고 사회인이 되어서 소개받는 자리에 나가서 정장차림이 아닌 여성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남친이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오늘 나오기 싫었던 건가? 그것도 아니면 원래 자유로운 영혼?’


어느 쪽도 지훈으로서는 그다지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은영을 보는 순간 지훈은 꼭 이 사람을 내 여자친구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은영은 은영대로 지훈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친구는 ‘이번에도 제대로 차려입고 나오지 않으면 다음번에는 절대 소개팅 없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래서 정장을 골라 놨었지만, 당일에 친구가 나오지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냉큼 도로 야상에 청바지를 입고 나온 것이다.


은영은 운명적인 만남에 대한 환상을 아직 갖고 있었다.

자신이 뽑아낼 수 있는 최대한도의 외모를 만들어 그걸로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은영이 생각하고 있는 ‘운명적인 만남’이 아니었다.


‘마음이 통한다면 복장이야 어떻든 상관없어.’


그러나, 카페에 와서 지훈의 앞자리에 앉고 나자 은영은 곧바로 후회를 했다.


‘아우~ 제대로 차려 입고 나오는건데.’


비쩍 마른 듯 큰 키에 서구적인 마스크를 하고 있으면서도 선하고 착해 보이는 지훈의 인상이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저, 잠시만요···”


은영은 자리에 앉아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기도 전에 잠시 다녀온다며 일어나서는 화장실로 갔다.

은영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화장을 점검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옷은 그렇다 치고 화장이라도 좀 제대로 하고 나오는건데···’


은영은 가방에서 화장품을 꺼내 최대한 티 안나게 하면서도 선명해 보이도록 덧바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이 마음에 든다는 것을 숨기려 애를 썼다.

하지만 대화는 즐거웠고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어느 새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낮에 만난 두 사람은 장소를 옮겨가며 그날 저녁까지 함께 있었고 바로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후에야 헤어졌다.



다음날 만남에서 은영은 정장을 하고 약속장소에 나와 있었다.

화장도 어제보다 짙게 한 상태였다. 립스틱도 보다 선명하게 발랐다.

은영은 오늘은 중무장을 한 상태에서 지훈을 완전히 KO시키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반면에 지훈은 어제 만났던 은영의 스타일에 맞춰야겠다고 생각하고 폴로 점퍼에 치노팬츠를 입고 나왔다.

비록 두사람의 패션은 엇갈렸지만, 그 덕분에 서로의 속마음을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저쪽도 나를 좋아하는 것이 분명해!’


덕분에, 지훈과 은영은 만남 초반에 밀당을 하며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곧바로 안정적인 관계에 돌입할 수 있었다.

이틀간 두사람의 언밸런스했던 의상코디는, 이후에도 두고두고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호감을 가진 상대방에 대해서 한가지씩 알아 나간다는 것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은영은 지훈 덕분에 야구장에 난생 처음 가보게 되었다.

수많은 인파들 틈에서 응원도구를 두들기고 고함을 질러가며 경기를 관람해보니 집에서 TV로 보던 야구와는 완전히 달랐다.

야구가 이렇게 신나고 재미있는 것인 줄 은영은 미처 몰랐었다.

배가 고플 때 쯤이면 치킨을 시켜주고, 바람이 불어 쌀쌀해지면 바로 잠바를 벗어주는 지훈을 보면서 은영은 참 따뜻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지훈은 덜렁대는 자신 곁에서 티켓이나 잔돈, 내려야 할 정거장 등을 꼼꼼히 챙겨주고, 종달새처럼 쉴새없이 이야기로 자기를 즐겁게 해 주는 은영이 무척이나 귀여운 여자라고 생각했다.

지훈이 물끄러미 은영을 바라볼 때면 은영은 부끄러운 든 두손을 주먹쥐고 볼을 감싸곤 했다.

지훈은 그럴 때마다 ‘저 뺨에 뽀뽀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은영은 지훈의 넓은 어깨를 볼 때마다 언젠가 한번쯤 저 넓은 가슴에 안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훈은 은영 덕분에 난생 처음 미술관에 가 보게 되었다.

미술관은 야구장 만큼 다이나믹하진 않았지만 나름 매력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술관에 있으면 정신없이 바쁜 일상에서 잠시 머리를 쉬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처음에는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을 보고 저게 어떤 의미일까 아무리 들여다 보고 있어도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은영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또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면서 조금씩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지훈은 은영과 만나 난생 처음 떡볶이를 먹어 보았다.


“떡볶이를 먹어 본 적이 없다고요?”


“응. 어머니가 포장마차에서 파는 건 모두 불량식품이라고 먹지 못하게 하셨거든.”


“세상에! 떡볶이는 분식집에서도 팔잖아요.”


“분식집도 거의 가 본 적이 없어.”


“우와~ 좀 심하다. 지훈씨 천연기념물이었네. 이렇게 맛있는 걸 지금까지 못 먹어봤단 말이에요?”


“응. 먹어보니 맛있네. 후후~”


“내 덕에 이렇게 맛난 것 먹어보죠?”


“그래, 은영이 덕이야.”


조물주는 왜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같이 살도록 하셨을까?


그것은 두 사람이 합쳐짐으로써 삶의 영역이 두배로 넓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지훈은 생각했다.



은영과 만난지 두달 만에 지훈은 중고 아반떼를 구입했다.

그리고, 매일 저녁 퇴근해서는 차를 몰고 은영의 회사로 갔다.

두 사람은 함께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지훈은 은영을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주말에는 둘이 함께 당일치기로 교외로 나가 바람을 쏘이다 들어오곤 했다.


두 사람은 거의 매일 만났다.

지훈은 매일 밤에 은영을 집까지 바래다주고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잠이 부족했지만, 불만은 없었다.

몸은 좀 힘들더라도 은영과 함께 있을 수 있어 좋았다.


자동차 조수석에 앉으면 은영은 늘 행복에 겨운 표정을 짓곤 했다.


“오빠, 오늘은 우리 어디 갈거에요?”


“검색해보니까 가평에 꽃 축제가 있다고 해서 오늘은 거기 가려고.”


“와~ 예쁘겠다!”


“자, 안전벨트 메시고~ 출발이오~”


“오빠, 달려!~~~~~”


비록 중고 아반떼지만, 은영은 왕자님의 꽃마차에라도 탄 것처럼 즐거워했다.

지훈은 문득 이 여자를 평생 지금의 저 모습처럼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주말에 피크닉을 갈 때에는 도시락은 항상 은영이 싸오곤 했다.

정성스럽게 싼 김밥이나 유부초밥을 지훈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은영은 행복했다. 때때로 은영은 생각했다.


‘오빠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


그 무렵 두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그저 둘이 함께 있는 것 만으로 즐겁고 행복했으니까.



두 사람이 만난지 3개월 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지훈은 뉴욕으로 일주일간 출장을 가게 되었다.

은영과 지훈이 만난 이후 처음으로 일주일이나 떨어져 지내게 된 것이다.

지훈이 출장가기 2주 전부터 은영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고작 1주일이야···”


“우리 사귀면서 가장 오래 떨어져 있게 된 거라고요.”


“비행기 사고라도 날까봐 그래? 왜 그렇게 걱정스런 얼굴이야?”


“맞아요. 사고날까 봐···”


“비행기사고는 교통사고나 벼락맞을 확률보다 훨씬 낮대.”


“그래두···”


은영이 진짜로 걱정하는 것은 사고에 대한 걱정 보다 두 사람의 관계에 무슨 영향이라도 있을까봐 하는 걱정이었다.


‘혹시 지훈씨가 미국에 다녀 오는 길에 우연히 여자를 사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미국 지사에 갔다가 세련된 여자 주재원과 눈이 맞는 것은 아닐까?’


‘해외에 나갔다 오고 나서 여자 보는 눈이 달라져서 나에 대한 애정이 식는 것은 아닐까?’


은영은 온갖 걱정이 다 들었다.


‘이건 기우야.’ 라고 생각하고 모든 염려들을 머릿 속에서 다 지워버렸다가도, 다시 아까 했던 걱정들을 다시 하고, 하루에 열두번도 더 생각이 바뀌었다.



결국 지훈의 출장 일주일 전 주말에 함께 저녁 겸 해서 맥주를 한잔씩 하는 자리에서 은영은 지훈에게 자신의 걱정을 털어놓고 말았다.


“오빠, 실은 나 오빠가 미국 출장 다녀오고 나서 나에 대한 마음이 식지 않을까 걱정이 되요.”


최근 은영의 얼굴에 드리운 근심의 이유를 알게 된 지훈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요즘 표정이 어두었던거야? 남자 마음은 일주일 정도 만에 쉽게 바뀌지 않아.”


“근데, 왜 내 마음이 이렇게 불안하지?”


“그만큼 나를 사랑한다는 뜻이겠지.”


“오빠는 날 사랑해요?”


“응. 널 사랑해.”


“나도 오빠 사랑하는 거 알죠?”


“물론이지.”


지훈의 말에 은영은 마음이 놓였다.



그날 헤어지기 전에 차 안에서 은영은 아껴둔 키스를 지훈에게 허락했다. 두 사람이 만난지 3개월 만이었다.


“고마워. 키스 허락해줘서.”


“고마워요. 그동안 기다려줘서.”


“참기 힘들었어.”


“알아요. 저도 참기 힘들었어요.”


“그럼 한번 더 해도 될까?”


“안돼요! 너무 자주하면 약발 떨어져요.”


“그래, 알았어. 천천히··· 후후~”


그러나 집에 들어가 방안에 혼자 남게 되자 다시 불안해 진 것은 은영이었다.



지훈이 출장을 떠나기 전날, 지훈은 다음날의 준비를 위해 팀장이 일찍 퇴근시켜 준 덕분에 은영과 일찌감치 만나 영화도 한편 보고 저녁을 먹고 맥주도 한잔씩 마셨다.


“내일이면 앞으로 일주일동안 오빠 얼굴 못보네?”


“못보긴... 핸드폰으로 화상통화 하면 되지. 지금이 조선시댄가?”


“그래두···, 웬지 화상통화보다는 그냥 음성으로 통화하는 게 나을 거 같아요.”


“그럼 전화만 하든가.”


“그래요. 우리 전화 자주 해요.”


“근데 일단 비행기타고 가서 공항에서 호텔까지 갈 동안은 정신 없어서 통화하기 힘들거야. 호텔에 도착해서 전화할게.”


“히잉~”


은영의 집 앞에서 두 사람은 늦게까지 헤어지지 못하고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잉~ 헤어진다고 생각하니깐 눈물 나올라 그래...”


“하하~ 우리 은영이 이제보니 애구나. 고작 일주일인데 뭐.”


“오빠, 안아줘요~”


지훈은 은영을 꼬옥 끌어안아 주었다.


“오빠~” 지훈의 품에 안긴 채 은영이 말했다.


“응?”


“···, 우리 오늘···, 같이···, 잘까···?”


“그러고 싶어?”


포옹을 풀고 지훈이 은영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음···, 모르겠어요. 아니야···, 그러고 싶어요.”


“난 우리가 정말로 사랑해서 함께 잔다면 좋겠어. 불안해서, 상대방을 붙들어 놓고 싶은 마음으로 자는게 아니라···, 내 마음 무슨 뜻인지 알겠니?”


“···”


은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 출장 다녀와서···, 갈까?”


“···”


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은 다시 한번 달래듯 은영을 안아주고 나서 은영을 집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차 안에 혼자 남겨지자 지훈은 ‘후우~’하고 한숨을 쉬었다.

지훈으로서도 참아내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훈의 말 그대로였다. 상대방을 붙잡아 놓기 위한 목적으로 동침하는 것은 싫었다.


‘하지만, 혹시 내가 책임지기 싫어하는 남자로 오해하는 것은 아닐까?’


일주일 후면 책임지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하고 지훈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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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못하고 죽은 귀신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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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완결] 하늘나라로 18.07.16 286 3 17쪽
28 큐피드의 화살 +2 18.07.14 251 3 13쪽
27 현우 이야기 4 +2 18.02.28 400 10 13쪽
26 현우 이야기 3 +4 18.02.27 325 9 12쪽
25 현우 이야기 2 +2 18.02.24 386 6 12쪽
24 현우 이야기 1 +2 18.02.23 367 6 12쪽
23 지은도 알게 되다 18.02.22 392 9 12쪽
22 수목장 18.02.21 357 9 11쪽
21 은영의 능력 +2 18.02.20 558 10 12쪽
20 은영의 비밀 18.02.18 402 8 12쪽
19 이혼식 +2 18.02.17 501 8 12쪽
18 대화가 필요해 18.02.15 450 8 12쪽
17 선미 이야기 3 18.02.14 461 8 13쪽
16 선미 이야기 2 18.02.13 430 8 12쪽
15 선미 이야기 1 18.02.12 459 8 12쪽
14 친구에서 경쟁자로 18.02.09 477 8 12쪽
13 귀신과의 조우 3 18.02.06 481 9 12쪽
12 귀신과의 조우 2 18.02.05 467 8 11쪽
11 귀신과의 조우 1 18.02.05 500 8 11쪽
10 지훈의 아르바이트 18.02.04 502 9 12쪽
9 산 사람은 살아야 18.02.03 527 8 13쪽
8 작은 복수 18.02.02 520 8 12쪽
7 회상 : 다툼 18.02.01 514 6 12쪽
6 친구들을 사귀다 18.01.31 538 9 11쪽
5 홀로서기 18.01.26 614 10 12쪽
» 회상 : 첫 만남 18.01.25 574 5 12쪽
3 귀신이 되다 18.01.25 598 7 12쪽
2 장례식 18.01.24 697 9 12쪽
1 이혼 하는 날 18.01.23 938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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