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못하고 죽은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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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
작품등록일 :
2018.01.2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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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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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2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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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홀로서기

DUMMY

지훈은 원룸에서 방을 빼고 다시 은영과 살던 아파트로 들어왔다.

원룸에서 정리해 온 지훈의 짐은 대부분 옷가지였다.

지훈은 별거를 시작하면서 가끔씩 일요일에 은영이 교회에 가는 시간에 맞춰 몰래 아파트에 와서 조금씩 자기 옷들을 꺼내갔었다.


아파트로 돌아와 침실의 붙박이장 문을 모두 열자 2/3는 은영의 옷들로 채워져 있었고, 나머지 1/3의 공간은 깔끔하게 비워져 있었다.

직사각형으로 깔끔하게 비워진 공간을 보니, 마치 은영의 마음 속에서는 죽기 전부터 지훈의 자리가 이렇게 비워져 있었던 것 같이 느껴졌다.


‘은영이는 죽는 순간까지도 무척 외로웠겠구나.’


‘그 영혼이 제대로 하늘에는 올라갔을까···’


지훈은 빈 공간을 자신의 옷으로 꽉꽉 채워 넣었다.

그새 옷가지가 늘어났는지 1/3의 공간으로 좀 부족했다. 그러나 은영의 옷들을 치우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억지로 빼곡히 빈 자리에만 채워 넣었다.

그밖에 개인 짐들을 정리하고 가져갔던 책들을 다시 책장에 꽂고 나니 대충 정리가 마무리 되었다.


지훈은 마트에 가서 장을 봐 왔다.

마트에서 사온 밑반찬들을 냉장고에 넣고 전기밥솥에 새로 밥을 앉혔다.

냉장고 안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유통기한이 지나면 곧 부패해 버릴 만 한 것들은 아예 들어있지 않았다.

은영은 본래 성격이 깔끔했다. 반찬통을 그대로 식탁에 꺼내 놓고 젓가락을 넣어 먹는 것을 절대로 못하게 했었다. 항상 김치든, 밑반찬이든 접시에 덜어서 먹도록 했다.



“그러면 접시에 먹다 남은 반찬은 어떡해?”


“그건 버려요.”


“버린다구? 아깝잖아. 그것도 다 사람들이 정성껏 만든건데 어떻게 함부로 버려?”


“그러니까 조금씩 먹을만큼만 덜어 먹어야죠.”


“귀찮아~~”


신혼 초에 지훈은 적응이 안되 힘들어 했었다.



결혼하고 나서 두 사람은 서로의 습관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 전에는 왜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지 지훈은 지금도 알 수가 없었다.


같이 살아보지 않아서 몰랐던 것일까?


그럼 먼저 동거를 했다면 알 수 있었을까? 만약, 서로의 습관이 너무나 다른 것을 발견했다면 결혼까지 하지 않고 헤어졌을까?


‘삐이~’ 하고 밥이 다 되었다는 신호가 울렸다.

지훈은 밥을 푸고 빝반찬들을 꺼냈다.

잠시동안 지훈은 반찬을 접시에 덜어 먹을까, 그냥 반찬통을 꺼내놓고 젓가락으로 집어 먹을까 고민했다.


‘에라, 모르겠다~’


지훈은 귀찮아서 그냥 반찬통 채로 식탁위에 올려 놓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그릇들은 일단 싱크대에 놓아 두었다. 설겆이는 저녁 먹고나서 한꺼번에 하기로 했다.

지훈은 아무도 없다 생각하고는 ‘꺼억~’하고 커다란 트림을 시원하게 한 다음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아직은 쇼 프로를 보면서 웃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아 지훈은 다큐멘터리 채널을 틀어놓고 동물의 왕국을 보았다.


TV를 보다가 어느새 지훈은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싸늘한 한기를 느끼며 지훈은 낮잠에서 깨어났다. 소파에 그대로 앉은 채 고개만 뒤로 젖히고 잠이 들어 있었다.

한시간은 잔 것 같았다.

지훈은 일어나 집안 전체에 진공청소기를 돌렸다. 집은 물론 깨끗했지만, 일주일에 한번씩은 진공청소기를 돌리기로 마음 먹었다. 지훈은 마치 유능한 집사처럼 주인이 없는 집을 주인이 있을 때와 똑같이 깨끗하게 관리해 두고 싶었다.


점심 때 먹었던 것과 똑같은 반찬으로 저녁을 먹고 설겆이를 했다.

그리고, 한시간 정도 TV를 보고 나서 샤워를 했다. 머리를 말리고 이도 닦았다.

책장에서 책을 하나 골라 30분 정도 읽었다.

그래도 아직 잘 시간까지는 많이 남아 있었다.

이 집안에서 뭘 더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직 자기에는 일렀지만, 지훈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 볼 생각이었다.

잠을 자야 그나마 시간이 잘 흘러가니까.

지금 지훈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어서 시간이 흘러야 모든 일들이 마음 속에서 정리가 될 것이다.

지훈은 눈을 꼭 감고 잠을 청했다.



* * *



은영은 지훈이 원룸에서 이사짐을 빼서 아파트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아파트는 정리하기로 했었잖아. 혼자 지내기에는 너무 넓을텐데···?’


지훈은 침실의 붙박이장을 열더니 빈 자리를 한동안 바라보고는 옷가지들을 빼곡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은영은 붙박이장의 그 빈 자리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던 기억을 떠올렸다.

신혼 초에 각자의 짐을 정리하면서 붙박이장은 서로 반반씩 쓰기로 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여자인 은영의 옷이 많다보니 점차 지훈의 공간을 점유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지훈의 자리는 1/4 정도로 줄어들어 버렸었다.


“은영아, 내 옷 걸어둘 공간도 좀 비워 줘야지. 옷 넣을 곳이 없잖아!”


그래도 지훈은 싱글벙글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이혼을 6개월 앞두고 지훈은 집을 나갔다.

지훈이 결국 간단히 짐을 싸서 나갈 때 은영은 오히려 통쾌한 심정이었다.

절대로 자신이 밀리지 않고 지훈을 쫒아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훈이 나가고 한달, 두달 시간이 흐르자 은영은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지훈이 자기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가끔씩 일요일에 교회에 간 틈을 타 집에 와서 자기 물건들을 챙겨가는 것을 은영은 알고 있었다.

매주 일요일 오후, 교회에서 돌아오면 은영은 지훈이 다녀간 흔적을 찾곤 했다. 붙박이장도 한번씩 열어보곤 했다.

지훈이 다녀갈 때마다 옷들은 조금씩 줄어들었고 빈 자리는 늘어갔다.

은영은 붙박이장의 빈 자리가 늘어갈 때마다 마치 지훈의 마음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이 그만큼씩 줄어드는 것 같았다.

은영은 우울해졌다.



마침내 지훈의 옷들이 모두 빠져 나갔을 때, 지훈이 연락해 왔고 이혼을 진행하자고 말했다.

물론 별거를 할 때 이미 서로 이혼을 하기로 합의는 한 상태였다. 하지만, 은영은 언젠가 지훈이 돌아오기를, 미안하다며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끝내 지훈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이혼은 기정 사실화 되었다.

이혼서류를 제출하고 두달간의 숙려기간이 시작되자 은영은 붙박이장에서 자신의 옷들을 일부 정리했다.

오랫동안 입지 않는 유행이 지난 옷들을 아파트 단지 안의 옷버리는 함에 갖다 넣었다.

그러자 빈자리가 좀 더 늘어났다.


‘이제는 지훈이 다시 오더라도 옷을 넣을 자리가 충분한데···’


은영은 붙박이장의 빈 공간을 볼 때마다, 새삼 지훈이 떠났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지금 지훈은 다시 돌아와 자신의 옷을 다시 붙박이장에 채워 넣고 있었다.


‘어라? 자리를 더 만들어 줬는데, 그 자리도 모자라네?’


지훈이 집을 나가기 전보다 옷이 더 많아진 것은 사실이었다.

빨래를 불규칙하게 했던 지훈은 입을 옷이 떨어질 때마다 빨래를 해서 챙겨 입기 보다는 회사 근처의 아울렛에서 새로 사 입곤 했던 것이다.

독신생활 6개월은 아직 혼자서 제대로 살아가는 습관을 들이기에는 부족했다.


‘혼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은영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내가 지금 누구 걱정을 하고 있는 거야? 남이야 잘 살던, 못 살던 내가 무슨 상관이야?’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훈은 과연 남일까?

아직 두 사람은 법적으로 이혼하지 못한 채 사별했다.


그렇다면 ‘사실이혼 관계’?


‘사실혼 관계’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사실이혼 관계’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몰라, 몰라~ 근데, 내가 왜 친정에 가 있지 않고, 이집 주변을 맴돌고 있지?’


귀신이 되었지만, 아직도 은영은 자신의 맘을 스스로도 잘 모를 노릇이었다.



지훈이 다시 밖으로 나가더니 한아름 장을 봐가지고 돌아왔다.


‘밥을 해 먹을 모양이군.’ 하고 은영은 생각했다.


지훈은 밥을 하고, 사온 밑반찬들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저 봐. 반찬통 그대로 내놓고 먹는 거. 내가 제일 싫어하는데···, 제발 좀 접시에 담아서 먹지.” 은영은 저절로 눈쌀이 찌푸려지며 입에서 잔소리가 나왔다.

은영의 말이 들릴 리 없는 지훈은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있었다.

지훈은 밥을 다 먹고 나서도 곧바로 설겆이를 하지 않고 식기들을 싱크대에 남겨 두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트림도 했다.

지훈이 트림을 하자 은영은 잔뜩 눈쌀을 찌푸렸다. 같이 살 때에도 가끔 지훈이 트림을 하면 은영은 눈을 부릅뜨고 눈쌀을 찌푸리곤 했다.

‘혼자 사니까, 뭐든 자기 맘대로 하네. 좋니? 좋아?’


치약을 중간에서부터 짜서 쓰고, 서서 소변을 본 후 변좌를 내려놓지 않고, 식사 후에 자기가 먹은 그릇을 그대로 식탁 위에 놓아두고, 현관에 신발들을 아무렇게나 벗어 놓고···

함께 살면서 크고 작은 여러가지 습관들에서 두 사람은 충돌해 왔다.

그 때마다 은영은 잔소리를 해 왔고 그것은 자기 남편을 좋은 남자로 만들기 위한 충고라고 생각했다.

지훈은 어느정도 변화했고 은영은 남편의 변화가 자신이 노력한 덕분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혼자 되자마자 지훈은 다시 옛날 습관으로 되돌아 가 있었다.

은영은 그동안 잔소리 했던 것들이 모두 소용이 없는 짓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남편은 자기에게 맞추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을까


‘결국 우리는 지난 3년 동안 서로를 힘들게 괴롭혀 왔던거야···’


당초 취지는 좋았지만 3년이 지난 후 그들의 관계는 더할 수 없이 악화되어 있었다.


‘이해’와 ‘사랑’···, 어떤 것이 먼저고 어떤 것이 나중일까?


우리는 결국 서로를 이해하는 데 실패했고 그래서 사랑도 식어갔던 것일까?


‘결국 내가 죽지 않았어도 우리는 이혼을 하는 것이 정답이었던가봐···’


TV를 보다 잠이 든 지훈의 옆에 앉아있던 은영은 쓸쓸해졌다.

은영은 소파 위에 두발을 올리고 두 손으로 두발을 감싼 채 몸을 웅크렸다.

우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몸이 점점 차갑게 얼어붙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저히 집 안에 계속 있을 수가 없는 심정이 되어 버렸다.


은영은 결국 잠이 든 지훈을 버려두고 밖으로 나왔다.


‘어딜 가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살던 익숙한 거리였지만, 지금 그는 이 거리에서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자기가 알던 그 누구와도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것이다.


불공평했다.

지훈은 그래도 살아 있으니 그동안의 삶을 시행착오 삼아 남은 생을 좀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은영은 더 이상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없게 되었다.

지금 그녀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니까.

이승에서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는지도, 그 후에는 자신이 어디로 가게 될 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다.


왜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던 나는 죽고 나를 고통받게 했던 남편은 살아있는 것인지?


“하나님! 날 지옥으로 데려가려면 어서 지금 데려가요. 더 이상 스트레스 받으면서 이승에서 귀신으로 지내고 싶지 않다고요, 어서 잡아가요!”


은영은 사거리 한복판에서 이렇게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안되겠어. 나도 어떻게 일이 돌아가고 있는 건지 좀 알아야겠어.’


은영은 장례식장에서 자기에게 다가왔던 귀신들을 떠올렸다.


“장례식장으로 가자!”


은영은 자신의 장례가 치러졌던 성모병원 장례식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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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못하고 죽은 귀신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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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완결] 하늘나라로 18.07.16 286 3 17쪽
28 큐피드의 화살 +2 18.07.14 251 3 13쪽
27 현우 이야기 4 +2 18.02.28 401 10 13쪽
26 현우 이야기 3 +4 18.02.27 325 9 12쪽
25 현우 이야기 2 +2 18.02.24 386 6 12쪽
24 현우 이야기 1 +2 18.02.23 368 6 12쪽
23 지은도 알게 되다 18.02.22 392 9 12쪽
22 수목장 18.02.21 357 9 11쪽
21 은영의 능력 +2 18.02.20 558 10 12쪽
20 은영의 비밀 18.02.18 402 8 12쪽
19 이혼식 +2 18.02.17 501 8 12쪽
18 대화가 필요해 18.02.15 451 8 12쪽
17 선미 이야기 3 18.02.14 462 8 13쪽
16 선미 이야기 2 18.02.13 431 8 12쪽
15 선미 이야기 1 18.02.12 459 8 12쪽
14 친구에서 경쟁자로 18.02.09 478 8 12쪽
13 귀신과의 조우 3 18.02.06 481 9 12쪽
12 귀신과의 조우 2 18.02.05 467 8 11쪽
11 귀신과의 조우 1 18.02.05 501 8 11쪽
10 지훈의 아르바이트 18.02.04 502 9 12쪽
9 산 사람은 살아야 18.02.03 527 8 13쪽
8 작은 복수 18.02.02 520 8 12쪽
7 회상 : 다툼 18.02.01 514 6 12쪽
6 친구들을 사귀다 18.01.31 538 9 11쪽
» 홀로서기 18.01.26 615 10 12쪽
4 회상 : 첫 만남 18.01.25 574 5 12쪽
3 귀신이 되다 18.01.25 598 7 12쪽
2 장례식 18.01.24 697 9 12쪽
1 이혼 하는 날 18.01.23 940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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