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못하고 죽은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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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
작품등록일 :
2018.01.23 11:44
최근연재일 :
2018.07.1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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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31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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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친구들을 사귀다

DUMMY

다시 찾은 장례식장은 여전히 슬픔과 피로에 지친 상주들과 바삐 오고 가는 문상객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오늘 은영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은영은 곧바로 다른 귀신들을 찾기 시작했다.

자기처럼 죽은 지 얼마 안되어 상주들 곁에서 슬퍼하는 신입 귀신들은 꽤 있었지만, 예전에 몇번 마주친 선배귀신들은 없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모처럼 맘 먹고 왔는데 없네···’


은영은 복도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한참을 기다렸으나 오늘따라 지나가는 선배귀신은 없었다.


“저어···, 실례지만 잠시 이야기 좀 나누실래요?”


그때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은영이 고개를 돌려 보니 자기보다 두세살 정도 더 나이를 먹어 보이는 여자였다.

나름 말쑥하고 단정한 외모를 하고 있기에 은영도 경계를 풀고 대답했다.


“네에···, 그러시죠.”


“죽은 지 얼마나 되셨어요?”


“저는 일주일 넘었어요. 이미 화장도 하고 유골도 납골당에 가 있어요.”


“아, 그러세요? 저는 어제 죽었어요.”


“그러셨구나···”


“이미 시신도 여기 없는데 왜 여기 계세요?”


“아, 친구를 좀 사귀려고요. 좀 오래 되신 귀신분들도 계시면 만나뵙고.”


“잘됬네요. 그럼 우리 친구해요!”


“네, 그러시죠. 어차피 오늘은 밤새 여기 머무르셔야 할테니까요.”


“우리 통성명부터 할까요? 전 선미에요. 진선미.”


“저는 최은영이요.”


“어떻게 돌아가시게 됬나요? 저는 자살했어요.”


“저런~ 사연이 있으셨나봐요. 저는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그러셨군요···, 원치 않는 죽음이라 많이 슬프셨겠네요.”


“근데, 병원 응급실에 갔을 때 돌아가시는 분들 보니까 어떤 분들은 죽자마자 곧바로 하늘로 올라가시더라구요. 그런데 우린 왜 아직도 여기 남아 있는거죠?”


“글쎄요···, 저도 그게 궁금해요. 또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하는건지···, 영원히 이승을 맴돌고 있는 건 아니겠죠?”


“실은 그래서 여기 다시 온 거에요. 여기에 있는 동안 경력이 좀 된 귀신들이 왔다 갔다 하는 걸 봤거든요. 저한테도 말을 거셨었고. 근데 그 땐 귀신 된 지 얼마 안 된 때라 경황이 없었어요.”


“저도 그런 귀신들 몇번 봤어요. 저한테는 안 오시던데···”


“우리 여기서 기다리다 이번에 오면 한번 같이 물어봐요.”


“그러시죠···”


두 사람, 아니 두 귀신은 장례식장 복도에 나란히 앉아 선배귀신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왜 자살했는지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먹고 살기 힘들어서요.”


“네?”


“미혼모였어요. 남편은 임신한 걸 알자마자 떠나 버렸죠. 혼자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아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직장을 다닐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도와줄 사람도 주위에 없었어요. 구청에서 받는 소액의 복지수당에 편의점 아르바이트 같은 걸로 푼돈을 모아 근근히 살아갔는데, 먹고 사는 건 허리띠를 졸라맨다고 해도 아기가 아프거나 시기마다 맞아야 할 백신 때문에 병원에 갈 때마다 뭉텅이씩 돈이 빠져나가니 도저히 살 수가 없었어요. 처음에는 마이너스 통장, 카드 돌려막기를 하다가 결국 제2금융이라는 곳에서 돈을 빌렸는데, 말이 금융이지 악덕 사채업자였어요. 잠깐 사이에 빚보다 이자가 더 커지더군요. 나중에는 아이까지 어떻게 하겠다고 위협을 하길래 이러다 애 죽이겠다 싶어서 며칠 전에 아기를 교회 앞에 갖다 놓고 저는 자살해 버렸죠.”


이제는 희망도 사라져버린 탓인지, 여자는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울지도 않고 덤덤히 말했다.

오히려 듣는 은영의 눈시울이 뜨끈해졌다.

은영이 살아 있을 때, 주위에 명품백 하나 정도 안 가진 여자는 대한민국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자기 또래인데도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다는 게 놀라웠고, 그런 이웃이 있다는 사실을 자신은 전혀 모르고 살았다는 게 더 놀라웠다.


“저도 자살이나 마찬가지에요. 교통사고가 날 무렵 아무런 삶에 희망도 없었으니까요. 사고가 난 날은 남편이랑 이혼을 하기로 한 날이었어요. 이혼을 하기 위해 가정법원에 가다가 교통사고가 난 거에요.”


“은영씨도 살아있을 때 힘드셨겠네요···”


“그렇게 생각했는데, 선미씨 얘기를 듣고 보니 저는 복에 겨워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든 당사자에게는 힘든 법이잖아요. 누군가 저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저더러 그 정도 가지고 뭘 자살까지 하냐고 비웃을 지도 모르죠.”


“네에···, 지금 아기는 잘 지내고 있나요?”


“귀신이 된 걸 알고 난 다음 가장 먼저 아기한테 가봤어요. 아기는 목사님 부부가 맡아서 잘 보호하고 계시더군요. 이제 어딘가로 입양되겠죠. 어딜 가더라도 제가 데리고 있을 때 보다는 나은 환경으로 가지 않겠어요?”


“환경이야 더 나아질 수 있겠지만, 양부모님들을 잘 만나야겠죠. 엄마 사랑만 하겠어요?”


“좋은 양부모님들을 만나길 바래야죠. 아기가 좋은 부모님 만나 잘 지내는 것까지만 보고 하늘나라로 가서 천당이든 지옥이든 갔으면 좋겠어요.”


“그걸 보고 가라고 이승에서 귀신으로 지낼 수 있는 시간을 주신 걸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은영씨는 뭣 때문에 이승에 남겨지신 거에요?”


“저요? 글쎄요··· 이혼을 못하고 죽었으니···, 이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 걸까요?”


“어떻게든 남편분과의 관계를 정리하라고 시간을 주신 것 같네요.”


“그런가···, 그럼 그 전에는 하늘나라에 못 올라가는 걸까요? 전 빨리 올라가고 싶어요. 이젠 이승에서 별로 미련도 없고···”


“그럼 정리를 빨리 하셔야겠네요.”


“뭘 어떻게 정리하면 될까요?”


“글쎄요···, 거기까진 저도 잘···”



“1년이야!”


그때 어느 틈에 은영과 선미 옆에 귀신이 하나 와 있다가 끼어 들었다.


“깜짝이야. 아저씬 누구세요?”


“본명은 됬고 이 바닥에서는 ‘오지랍’이라고 불리지. 귀신 11개월차다. 군대로 따지면 말년 병장이야.”


“저는 은영, 이쪽은 선미에요.”


“왜 누구는 귀신으로 남고 누구는 바로 하늘로 올라가는지는 대충 너희들이 짐작하는 대로야. 이승에서 못 다 푼 매듭이 남아 있게 되면 그 끈이 풀리지 않고 묶여 있기 때문에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이승에 머물게 되는거지. 하지만, 귀신으로 이승에 존재할 수 있는 기간은 딱 1년 뿐이야. 죽은 지 꼭 1년이 되는 기일에는 이승에서 매듭을 풀던 못 풀던 저승으로 넘어가게 되어 있어.”


결국 은영이 이승에 귀신으로 머물게 된 이유는 분명했다.

지훈과의 이혼을 마무리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앞으로 남은 기간은 1년.


1년동안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미 죽은 마당에 산 사람과 어떻게 이혼을 한단 말인가?


“매듭을 풀게 되면 1년 전에라도 하늘로 올라갈 수 있나요?”


“그렇지.”


“매듭을 풀지 못해 1년이 되어 강제로 올라가게 되면 지옥으로 가는 건가요?”


“그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 하늘나라에 올라가면 귀신으로 지낸 1년의 삶까지 포함해서 다시 평가받게 되니까.”


“그렇군요···”


“내가 지금 너희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이유도 내 선행을 쌓기 위해서야. 나의 매듭도 애초에 1년 안에 풀릴 성질의 것은 아니거든. 난 이제 한달 남았다···”


“부럽네요···”


“부러워할 거 없어. 나도 하늘나라에 올라가면 천국으로 갈 지, 지옥으로 갈 지 아직 모르니까.”


“저는 이승에서 별로 하고 싶은 일이 없거든요. 풀고 싶은 것도 없고···, 빨리 하늘나라에 올라가고 싶어요.” 은영이 말했다.


“다들 처음에는 그렇게 말하지만 이 생활도 적응하면 지낼 만 해. 나중에는 가고싶지 않게 될거야.”



오지랍 아저씨가 떠나고 나서 은영은 선미와 함께 장례식장 건물 옥상에 나란히 앉아 도시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제는 해가 져서 거리는 가로등과 건물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멀리서 떨어져 보면 사람들 사는 모습은 꽤 아름다와 보였다.


“선미씨는 남은 기간 동안 뭐 할거에요?”


“글쎄요···, 은영씨는요?”


남은 1년의 기간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둘 중에 하나였다.

열심히 지훈과의 사이에 묶인 매듭을 풀어 빨리 하늘나라로 올라가든가, 아니면 그냥 오지랍 아저씨처럼 다른 귀신들이나 도와주면서 선행을 쌓다가 1년 후 기일에 올라가든가.

솔직히 지금은 어느 쪽도 하고 싶은 의욕이 나질 않았다.

굳이 천당으로 가야겠다는 욕심도 없었다.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고, 설마하니 내가 지옥에 가랴 싶은 생각도 들었다.

살아생전에 크게 악한 일을 한 기억은 없었으니까.



일단은 이곳에 와서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는 귀신들을 만난 것이 다행스러웠다.

은영은 선미와 또 만나기로 하고 헤어져 아파트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보니 지훈은 이미 저녁을 먹고 TV를 보고 있었다.


‘그래도 설겆이는 해놨네. 최소한 하루 한번은 설겆이를 해야지.’


다음 순간 은영은 자신이 지훈의 일상생활에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우리는 남남을 넘어서, 한 쪽은 인간이고 한쪽은 귀신인걸···’


사람의 습관이란 참···, 지훈이 설겆이를 하든 말든, 집을 돼지우리처럼 해 놓고 살든, 말든 이제 은영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TV를 보던 지훈이 리모콘으로 TV를 끄더니 갑자기 일어났다.

지훈은 욕실로 향해 가면서 옷을 훌훌 벗기 시작했다.


“어머!~”


은영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렸다.


‘아무리 혼자라지만 옷은 욕실에 가서 벗고 샤워해야지. 사람이 예의가 없어!’


은영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는 사실상 이혼한 사이인 것이다. 남남인 것이다.

한참 후, 물 내려가는 소리가 그쳤다.

이제 지훈이 샤워를 마치고 나올 모양이다.

은영은 혹시나 지훈이 옷을 벗은 채 욕실문을 열고 나올까 싶어서 지레 다른 곳에 시선을 두었다.

하지만 곁눈질로 보니 다행히 지훈은 새 속옷을 입고 나왔고 곧 파자마를 입었다.


잘 준비를 모두 마친 뒤 지훈은 책을 조금 읽더니 불을 껐다.

아직 잠자리에 들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식사를 하는 것도, TV를 보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심지어 잠을 청하는 것도, 지훈이 하는 행동은 모두 부자연스러웠다.

억지로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훈은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여러번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아직은 그도 현실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고 은영은 생각했다.


‘나도 귀신생활이 아직 낯설다구.’


은영은 이렇게 혼잣말을 해 보았다.

앞으로 1년 동안 이렇게 관중석에서 경기를 관람하듯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은 고역일 것 같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밤시간에 지루하게 깨어있는 것도.


은영은 거실 소파에 앉아 두눈을 감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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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못하고 죽은 귀신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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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완결] 하늘나라로 18.07.16 286 3 17쪽
28 큐피드의 화살 +2 18.07.14 251 3 13쪽
27 현우 이야기 4 +2 18.02.28 400 10 13쪽
26 현우 이야기 3 +4 18.02.27 325 9 12쪽
25 현우 이야기 2 +2 18.02.24 386 6 12쪽
24 현우 이야기 1 +2 18.02.23 367 6 12쪽
23 지은도 알게 되다 18.02.22 392 9 12쪽
22 수목장 18.02.21 357 9 11쪽
21 은영의 능력 +2 18.02.20 558 10 12쪽
20 은영의 비밀 18.02.18 402 8 12쪽
19 이혼식 +2 18.02.17 501 8 12쪽
18 대화가 필요해 18.02.15 450 8 12쪽
17 선미 이야기 3 18.02.14 461 8 13쪽
16 선미 이야기 2 18.02.13 430 8 12쪽
15 선미 이야기 1 18.02.12 459 8 12쪽
14 친구에서 경쟁자로 18.02.09 477 8 12쪽
13 귀신과의 조우 3 18.02.06 481 9 12쪽
12 귀신과의 조우 2 18.02.05 466 8 11쪽
11 귀신과의 조우 1 18.02.05 500 8 11쪽
10 지훈의 아르바이트 18.02.04 502 9 12쪽
9 산 사람은 살아야 18.02.03 527 8 13쪽
8 작은 복수 18.02.02 520 8 12쪽
7 회상 : 다툼 18.02.01 514 6 12쪽
» 친구들을 사귀다 18.01.31 538 9 11쪽
5 홀로서기 18.01.26 614 10 12쪽
4 회상 : 첫 만남 18.01.25 573 5 12쪽
3 귀신이 되다 18.01.25 598 7 12쪽
2 장례식 18.01.24 697 9 12쪽
1 이혼 하는 날 18.01.23 938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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