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못하고 죽은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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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
작품등록일 :
2018.01.23 11:44
최근연재일 :
2018.07.1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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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0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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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작은 복수

DUMMY

지훈은 침대에서 쿨쿨 평화로운 얼굴을 하며 자고 있었다.

그리고, 은영은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자기는 귀신이 되어 잠도 못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서 잠만 잘 자고 있는 지훈을 보니 은영은 화가 치밀었다.

잠은 안오고, 생각을 하고 있자니 은영은 과거에 싸우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불끈불끈 분노가 샘솟았다.

자고 있는 지훈의 따귀를 때려 보기도 하고 일어나서 발로 걷어 차 보기도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만 혼자 힘들어하고 있어. 이건 불공평해. 결혼에 실패한 건 둘인데 왜 나만 힘든거야?’


은영은 자기만큼은 아니라도 지훈도 좀 힘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귀신인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은영은 무기력해져서 다시 지훈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 턱을 괴었다.

이렇게 은영은 하얗게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아침 지훈은 겉보기에는 멀쩡히 일어나 아침을 차려 먹고 평상시와 같이 출근을 해 버렸다.

밤에는 지훈이 자는 바람에 혼자였고, 지금은 지훈이 회사에 가버려서 혼자가 되었다.

이러다가 우울증에 걸릴 것만 같았다.


우울증에 걸린 귀신이라···


맘 같아서는 집안을 온통 뒤집어 놓고 싶은데 도대체 귀신은 산 사람에게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갑갑해 하던 은영은 갑자기 응급실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은영이 실려갔던 응급실에서 은영이 화가 나서 비명을 지르자 천정의 조명이 꺼지고 전자기기들이 오작동을 한 것이 떠오른 것이다.


‘그래, 맞아!’



그날 저녁 지훈은 퇴근하자마자 곧바로 집으로 왔다.

이제는 저녁식사도 집에 와서 하기로 마음 먹었다.

매 끼니를 밖에서 사먹는 것 보다 집밥을 먹어야 건강에도 좋고, 혼자서도 생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지훈은 이상함을 느꼈다.

자동으로 켜져야 할 현관등이 들어오지 않았다.

지훈은 안으로 들어와 거실등을 켜 보았다.

거실등도 켜지지 않았다!

식탁등도, 각 방의 등도, 화장실의 등도 켜지지 않았다.

모든 방의 전등이 들어오지 않았다.

지훈은 핸드폰의 플래시를 켜서 누전차단기를 살펴 보았다.

누전차단기는 멀쩡했다.

모든 방의 전등만 나가 있었다.


‘후우~~’



잠시 후,

지훈은 양초와 핸드폰 플래시를 켜 놓고 주방에서 식사를 하려 준비하고 있었다.

지훈은 햇반 뚜껑을 벗기고 전자렌지에 넣어 돌렸다. 그러나 전자렌지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지훈은 전원코드를 살펴봤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전자렌지가 고장이 난 모양이었다.


‘낮에 이집에 벼락이라도 친건가? 오늘은 날씨가 맑았는데··· 어떻게 전등도 나가고 전자렌지도 다 안되지?’


지훈은 후레시를 들고 일일이 가전제품들을 살펴보았다. 다른 것들은 괜찮은데, 전자렌지, PC, 셋탑박스, 인터넷 공유기가 망가져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지훈은 핸드폰을 집어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또다시 잠시 후,

지훈은 식탁에서 배달시킨 치킨을 열심히 먹고 있었고 그 맞은편 자리에는 은영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었다.


‘쌤통이다!~’


은영은 이렇게나마 자신이 지훈에게 작은 복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아까 햇반을 들고 전자렌지 앞에서 난감해 하던 지훈의 표정이라니···


은영은 신이 났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우울했는데,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낮에 은영은 혼자 집에서 방과 거실을 고루 돌아다니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던 것이다.

응급실에서 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방과 거실을 고루 돌아다니며 악을 쓰기도 하고, 조수미가 불렀던 모짜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의 ‘밤의여왕 아리아’를 불러보기도 했다.

조수미가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며 불러서 유명해 진 노래였다.


하지만, 막상 소리를 질러놓고도 전등이 꺼졌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은영에겐 없었다.

귀신은 사물을 움직일 힘이 없기 때문이다.

은영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지훈이 오기까지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훈이 왔고, 지훈이 아무리 스위치를 눌러도 방의 불은 모두 켜지지 않았다.


“야호!~”


은영은 쾌재를 불렀다.

전등 뿐 아니라 보너스로 전자기기 몇개가 더 망가진 것을 알고 은영은 더욱 신이 났다.

응급실에서도 전등 뿐만 아니라 각종 계측기들이 오작동했었던 기억이 났다.


셋탑박스가 고장나 TV를 볼 수 없게 되자 지훈은 정말 오랜만에 라디오를 틀어 놓고 치킨을 뜯고 있었다.

촛불에 라디오를 들으며 치킨을 뜯고 있으니 지훈은 한 20년은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밖에서 저녁을 먹고 올껄···


괜히 집에 정 붙이겠다고 집에서 저녁을 해 먹으려고 하다가 이 고생을 하고 있었다.



‘또 뭘 할 수 있을까···?’


은영은 치킨을 먹고 있는 지훈의 바로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곧바로 다음 번에는 어떻게 지훈을 곯려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제일 좋은 것은 귀신인 자신의 모습 그대로 지훈에게 나타나는 건데···’


아마 은영이 지훈 앞에 나타나면 지훈은 심장마비에 걸리거나 혼비백산 도망쳐서는 당장 방을 빼려고 할 지도 모른다.


‘영화나 드라마 또는 현실에서도 가끔씩 귀신을 봤다는 얘기가 들리던데, 그걸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은영은 고민했다.


“응? 라디오가 자꾸만 왜 이러지?”


지훈이 아까부터 라디오를 자꾸만 만지고 있었다.

가만 보니 은영이 듣기에도 라디오 주파수가 딱 맞지를 않고 잘 들렸다, 안 들렸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바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으니까 밧데리가 약해졌나보지.’ 라고 은영은 생각했다.


그러나 지훈은 그 후에도 치킨을 먹다 말고 라디오를 만지곤 했다.



그러다 은영은 뭔가를 발견했다!


‘나의 움직임에 전파가 영향을 받고 있어!’


은영이 생각을 하면서 지훈의 앞을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어느 순간 라디오는 주파수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작은 소리지만 ‘치지~’거렸던 것이다!

은영은 손을 라디오에 가까이 대고 이리 저리 움직여 보았다.

그러자 은영이 움직이는 데 따라서 라디오 주파수는 잘 들렸다, 잡음이 심해졌다가 했다.

은영은 잡음이 심해지는 위치와 없어지는 위치를 찾아 낼 수 있었다.

잡음이 발생하는 위치에 손을 넣었다 뺐다 움직여 보았다.

그러자 라디오에서 잡음이 ‘치이~~, 치이~~’ 하고 반복했다.

이번에는 손을 넣었다가 빼는 속도차를 내 보았다.

그러자 라디오 잡음은 ‘치이~~, 칙~, 치이~~, 칙~’하는 소리를 냈다.


‘이거 재미있는데···?’


오래 전에 본 재난영화에서 모르스부호로 SOS가 ‘삐,삐,삐, 삐이~,삐이~,삐이~,삐,삐,삐’라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은영은 라디오 근처에 손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라디오에서 나는 잡음이 SOS의 모르스부호 소리가 되도록 해 보았다.

‘삐삐삐’ 짧게 세번, ‘삐이,삐이,삐이’ 길게 세번, ‘삐삐삐’ 다시 짧게 세번.

은영은 계속해서 이렇게 잡음이 나도록 반복해서 손을 움직여 보았다.

혹시 이 소리를 지훈이 듣고 이 잡음이 의미하는 바가 SOS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지훈은 머리가 쭈뼛 하고 서지 않을까,하고 은영은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은영의 이런 기대감은 곧 끝이 나 버렸다.

지훈이 “라디오가 고장났나보구만.” 하고는 곧바로 라디오를 꺼버렸기 때문이다.


‘안돼! 다시 켜!~~ 으이그, 사람이 저렇게 둔감하다니까···’


은영은 실망했으나 오늘은 전등을 모두 끈 것 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지훈은 욕실에서 대충 씼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어차피 불도 켜지지 않고, TV도, PC도 안되니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던 것이다.

지훈은 침실에 들어가 잠을 청했고, 은영은 흐뭇한 마음을 가지고 거실 소파에 앉아 밤을 보냈다.



다음날 지훈은 퇴근할 때 짐을 한가득 싸들고 들어왔다.

각 방에 교체할 전등들이었다. 기왕 교체하는 김에 지훈은 LED 등으로 바꾸기로 하고 혼자서 작업을 시작했다.

안정기까지 함께 교체해야 했기 때문에 전등을 LED로 바꾸어 다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거의 두시간 정도를 땀을 뻘뻘 흘려가며 지훈은 전등을 교체했다.

저녁은 밖에서 먹고 들어온 것 같았다.


은영은 지훈이 전등 교체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 보았다.


‘지훈이 전등을 다 갈고 나면 다시 한번 소리를 질러서 방금 작업해 놓은 전등을 또 싹 나가게 만들어 볼까?


하지만 이틀 연속은 좀 심하다고 생각하고 오늘은 그냥 두기로 했다.

하루에 열두번도 더 지훈이 불쌍해 보였다가 미워 보였다가 하는 은영이었다.



지훈은 퇴근 후에 전등교체 작업이 힘들었는지 작업을 마치자 샤워를 하고 나와서는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 마셨다.

그리고는 소파에 앉아 TV 리모콘을 찾아 켰다가 ‘아차, 셋탑박스 아직 못 고쳤지?’ 하고는 TV를 다시 껐다.

셋탑박스 A/S는 주말에 받을 수 밖에 없다.

지훈은 ‘휴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훈은 뭘 할지 가만히 생각하다가 CD들을 모아둔 장식장에 가서 한동안 뒤지더니 DVD 타이틀을 하나 골라 플레이어에 넣었다.

TV에서 영상과 음성이 플레이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훈의 웨딩영상이었다.

자신이 씩씩하게 걸어들어가는 장면, 은영이 장인어른의 손에 이끌려서 천천히 입장하는 장면, 주례 장면, 하객인사, 축가 등이 이어졌다.

지훈은 물끄러미 영상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눈시울이 뜨끈해졌다.

결혼식 후반부에 신랑이 신부를 들어 올려야 한다고 사회자가 지시하는 대목이 나왔다.

느닷없는 사회자의 객기에 지훈은 당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어쩔 수 없이 은영이 슬며시 가로로 눕고 은영을 뒤에서 받치듯 하며 지훈이 안아서 들어 올렸다.


“풉~”


지훈은 눈에는 눈물이 가득 한 채로, 입으로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때 허리를 삐끗해서 지훈은 신혼여행에서 첫날밤에 고생을 했었고 이 일은 결혼 기간 내내 두 사람이 기분 좋을 때면 늘 떠올리던 일화였다.


은영 역시 지훈이 틀어놓은 DVD를 옆에서 함께 보고 있었다.

결혼 예식이 진행되는 것을 바라보며 은영도 눈이 빨개지고 있었다.

지훈이 은영을 안아 올리는 장면에서 은영도 역시 “풉~” 하고 지훈과 똑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은영도 지훈과 똑같이 신혼여행 첫날밤 일이 생각났던 것이다.



“오빠, 허리 아프죠?”

“응? 으응··· 괜찮아.”

“괜찮긴 계속 얼굴 찌푸리고 있는데···, 아까 결혼식 때 나 들어올리다가 허리 삐끗해서 그런 거에요?”

“응? 어···, 뭐···, 그냥···”

“무슨 남자가 그렇게 기운이 없어요? 풉~”

“무슨 소리. 너 생각보다 좀 무겁더라?”

“내탓 아님. 난 정상체중이라구욧!”

“나도 주례사 듣고 있느라 움직이지 않고 꼿꼿이 서 있어서 근육이 긴장되서 그랬던거야.”

“그건 그렇고, 오빠. 아무래도 안되겠어요. 우리 아직 문여는 약국 있는지 찾아서 파스 붙여요.”

“그럼 파스 붙이고 다시 와서 로맨틱. 성공적. 하는거지?”

“안돼요! 이제 우리 앞으로 평생 같이 살건데, 하루쯤은 참기로해요.”

“안돼~ 오늘은 신혼 첫날밤이란 말야.”

“쉿! 대신 내가 뽀뽀해 줄게요.”


사랑에 증거가 필요하다면 그건 바로 함께 공유하고 있는 행복했던 추억일 것이다.


귀신이 된 은영과 혼자 남은 지훈은 그렇게 밤 늦도록 나란히 소파에 앉아 DVD 영상을 보며 함께 울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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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못하고 죽은 귀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9 [완결] 하늘나라로 18.07.16 286 3 17쪽
28 큐피드의 화살 +2 18.07.14 251 3 13쪽
27 현우 이야기 4 +2 18.02.28 400 10 13쪽
26 현우 이야기 3 +4 18.02.27 325 9 12쪽
25 현우 이야기 2 +2 18.02.24 386 6 12쪽
24 현우 이야기 1 +2 18.02.23 367 6 12쪽
23 지은도 알게 되다 18.02.22 392 9 12쪽
22 수목장 18.02.21 357 9 11쪽
21 은영의 능력 +2 18.02.20 558 10 12쪽
20 은영의 비밀 18.02.18 402 8 12쪽
19 이혼식 +2 18.02.17 501 8 12쪽
18 대화가 필요해 18.02.15 450 8 12쪽
17 선미 이야기 3 18.02.14 461 8 13쪽
16 선미 이야기 2 18.02.13 430 8 12쪽
15 선미 이야기 1 18.02.12 459 8 12쪽
14 친구에서 경쟁자로 18.02.09 477 8 12쪽
13 귀신과의 조우 3 18.02.06 480 9 12쪽
12 귀신과의 조우 2 18.02.05 466 8 11쪽
11 귀신과의 조우 1 18.02.05 500 8 11쪽
10 지훈의 아르바이트 18.02.04 502 9 12쪽
9 산 사람은 살아야 18.02.03 527 8 13쪽
» 작은 복수 18.02.02 520 8 12쪽
7 회상 : 다툼 18.02.01 514 6 12쪽
6 친구들을 사귀다 18.01.31 537 9 11쪽
5 홀로서기 18.01.26 614 10 12쪽
4 회상 : 첫 만남 18.01.25 573 5 12쪽
3 귀신이 되다 18.01.25 598 7 12쪽
2 장례식 18.01.24 697 9 12쪽
1 이혼 하는 날 18.01.23 938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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