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못하고 죽은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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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
작품등록일 :
2018.01.23 11:44
최근연재일 :
2018.07.1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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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0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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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산 사람은 살아야

DUMMY

금요일 저녁에 지훈은 용범과 만났다.

은영의 장례식 이후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두 사람은 연탄 삼겹살집에서 만났다.


“지훈아~ 오랜만이다.”


용범이 가게에 들어서서 먼저 와 있는 지훈에게 오며 말했다.


“어서 와. 오랜만은···, 아직 한달도 안됬다. 후후~”


은영의 장례식이 용범에겐 오래된 일인 모양이다.

하지만, 지훈에겐 아직도 은영의 죽음이 엊그제 일인 것만 같았다.

남의 일은 항상 금방 잊혀지는 법이다.


두 사람은 익숙하게 자리에 앉아 술자리를 세팅했다. 이곳은 이들의 10년 단골집이었다.

소주를 따서 잔을 채우고 두 사람은 원샷을 했다.


“고맙다. 그동안 장례식이랑···, 앞장서서 도와줘서.”

“고맙긴, 임마. 울 엄니 돌아가시면 니가 와서 다 해줄텐데···”

“그래, 물론이지. 근데, 넌 이런 거 잘 하지만, 난 잘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내 일이 아니니까 당사자보다 좀 마음에 여유가 있었던 거지 뭐. 이제 좀 정리가 됬냐?”

“차차 나아지겠지···”

“그래. 사람 잊는데는 술이랑 시간이 약이다. 자~ 약이다 생각하고 쭈욱 마셔.”


두 사람은 다시 건배를 하고는 술잔을 비웠다.


“근데, 왜 그 아파트로 다시 들어간거야? 맘 정리하는데 오히려 방해되지 않아? 거기는 추억들도 많이 남아 있을거고···”

“그렇긴 한데, 아직은 떠나고 싶지가 않더라구. 은영이 짐들도 아직 그대로 있는데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집을 창고처럼 비워두면 죽은 사람한테 너무 미안한 것 같아서...”

“억지로 지우려고 노력할 건 없지. 하지만,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면 시간 가도 정리 안된다. 정리하려는 노력은 해야지.”

“노력하고 있어...”

“그럼 다행이고. 난 네가 과거의 기억에 매여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댈까봐 그러는거지. 그건 하늘나라에 올라간 제수씨도 원치 않을거야.”

용범은 그렇게 말하며 지훈에게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쪽이 아니라, 저 여기 있는데요···”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은영이 끼어들었다.

은영은 둥그런 드럼통 화덕에 마주 앉은 지훈과 용범의 사이에 아까부터 앉아 있었다.

연애시절 종종 세사람은 함께 이곳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곤 했다.


“은영씨도 하늘나라에서 아마 네가 빨리 재혼하길 바라고 있을껄?”


용범이 말했다.


“어머! 용범씨~”


순간 은영은 놀라서 저도 모르게 외쳤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재혼’이라는 말이 튀어 나오자 갑자기 놀랐던 것이다.


‘용범씨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 하는 거 아니야? 나 죽은지 아직 한달도 안 됬다구욧.’


“과연 은영이도 그걸 바라고 있을까?” 지훈이 말했다.


‘아무리 이혼하려던 사이지만 죽자마자 재혼 이야기부터 꺼내다니, 남자들이란~’ 은영은 약이 올랐다.


“사실 어차피 너희 두 사람 이혼하려고 했었잖아. 은영씨가 죽지 않았어도 지금 이 무렵에는 넌 혼자였을테고 나랑 이렇게 여기서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을거야.”


하지만 지훈은 “아직은 그럴 기운도, 의욕도 없다···” 라고 쓸쓸하게 말했다.


은영은 약이 올라 이 삼겹살집 전등도 모두 다 꺼버릴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가 지훈의 말을 듣고 잠잠해졌다.


“이제는 결혼에 자신도 없고···”

“그런 약한 소리 하지 마. 두 사람은 그냥 인연이 아니었던 거라고 생각해. 너 혹시 은영씨 죽은 게 니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내 탓일 수도 있지. 우리가 그럭저럭 잘 살았더라면 은영이가 그 시간에 법원 앞에 있을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

“무슨 그런 바보같은 소릴···, 그날 그 시간에 사고가 난 건 그냥 우연일 뿐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는데···, 자꾸만 내가 벌 받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훈은 소주잔을 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벌 받긴···, 너 잘못한 거 없어. 요즘 너만한 남편이 어디있냐?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퍼마시길 하나, 가정폭력을 행사하길 하나, 낚시 한다고 주말마다 외박을 하길 하나, 그렇다고 바람을 피우길 하나···”


“이봐요, 상남자씨. 남편의 조건이 그것만 있는 건 아니라구요. 그러니까 아직 결혼을 못했지.”

은영은 용범을 바라보며 쏘아붙였다.


“참, 넌 결혼 안하냐? 안 하는 거야? 못하는 거야?” 지훈이 물었다.

“임마, 너네 커플 고생하는 거 옆에서 맨날 지켜본 난데, 결혼하란 소리가 나오냐? 그야 물론 안 하는거지 임마.” 용범이 대답했다.


“어머, 어머~ 우리 보고 맨날 부러워한 게 누군데?” 은영이 끼어들었다.


“난 운이 나빴던 거라며? 운 나쁜 우리 케이스를 보면서 결혼 안 한다고 하면 앞뒤가 안 맞는 거 아냐? 우리 핑계 대는 걸 보니 너 다른 이유 있는거지? 너 혹시 여성공포증 뭐 그런 거 있는거 아냐?”


“잘한다, 김지훈~” 은영이 지훈을 응원했다.


“여,여성공포증은 임마. 너야 말로 공처가였으면서···” 용범도 지지않고 받아쳤다.


‘지훈씨가 공처가 였다구? 말도 안되는 소리. 오빠가 날 얼마나 무시했었는데···’ 은영은 코웃음을 쳤다.


“···”


지훈은 은영의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침묵했다.


“술이나 마시자~” 용범이 술을 권했다.


두 사람은 어느새 채워진 잔을 다시 비웠다.

두 사람이 술 마시는 것을 보자 은영도 술이 마시고 싶어졌다.

소주 서너잔만 마시고 그대로 쭉 뻗어 한숨 푹 자고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날 두 사람은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지훈은 술에 취해 집에 왔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지훈은 PC를 켜려다 ‘아차~ 아직 고장이지.’하고는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열었다. 거기에서 일기장 앱을 열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아내가 죽은 지 이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거기까지 쓰고 나서 지훈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소파에 앉은 채로 스르르 잠이 들었다.

은영은 지훈이 쓰다만 스마트폰 일기장 화면을 엿보았다.


지훈은 소파에 고개를 뒤로 꺾은 채 자고 있었다.


‘저렇게 자면 감기들텐데···’


옛정을 생각해서 담요라도 덮어주고 싶었지만 귀신이라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깨워서 침대에 가서 자게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은영이 가진 능력으로는 지훈을 깨울 도리가 없었다.

은영은 지훈의 옆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예전에는 옆에 앉아있는 것 만으로도 체온으로 서로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은영은 밤새 지훈의 옆에 앉아 있었다.



다음주 월요일,

지훈이 아침에 출근해서 한창 분주하게 업무를 보고 있는데, 은영의 친구인 지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저에요, 지훈씨.”

“네. 안녕하세요?”

“연락 주신다더니 왜 안 주셨어요?”

“아, 정리 좀 되고나서 전화 드리려했죠.”

“아직 정리 덜 되셨어요?”

“뭐 이제 다 됬어요.”

“그럼 오늘 저녁에 만나요. 제가 저녁 사 드릴게요.”

“왜, 지은씨가 저녁을 사세요. 은영이 장례식 때 고생해 주셨는데, 제가 사야죠.”

“그건 친구니까 당연한 거고요. 아직은 지훈씨가 위로를 받으셔야죠.”

“뭐, 누가 사던 그럼 저녁 때 봅시다.”

“네. 삼성역 베네치아에서 뵈요. 예약은 제가 해 둘게요.”

“그러시죠.”


베네치아는 지훈, 은영, 지은 셋이서 몇번 같이 갔던 레스토랑이었다.

지은은 은영 절친이라 은영의 친구들 중에서는 가장 자주 만났었다. 성격도 좋고 무엇보다 은영을 잘 이해해주고 챙겨주는 친구였다.

이번 장례식 때에도 와서 식당 쪽에서 계속 손님 대접하는 일을 거들었다.

문상객들은 지은을 은영의 사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열심히 일을 도와주었다.

장인,장모님도 무척 고마워하셨고 지훈도 마찬가지였다.

가족을 대표해서라도 오늘 저녁은 지훈이 대접하고 싶었다.



저녁 7시에 두 사람은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어서 오세요.”

“제가 좀 늦었죠?”

“아닙니다. 저도 좀 전에 왔어요.”


지훈 옆에는 물론 은영도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지훈이 지은과 통화를 하는 것을 들었을 때부터 은영은 지은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지난 장례식 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처가쪽 식구들도 너무 고마워 하셨어요.”

“뭘요. 친군데 당연하죠. 그런 거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어쨌든, 오늘 저녁은 제가 살게요.”


은영이 없이 이렇게 둘만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둘만 만나는 건 처음인 것 같네요.” 잠시의 침묵 끝에 지훈이 말했다.

“그런가요?···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왜요, 불편하세요?”

“아뇨, 지은씨야 오래 봤으니까 불편할 건 없죠. 단지 그냥 이 상황이 익숙하지 않아서요.”

“이제 은영이 없는 삶에 익숙해 지셔야죠.”

“그래야죠.”



지훈의 친구 용범이나 은영의 친구 지은이나, 모두 은영을 빨리 잊고, 은영이 없는 삶에 익숙해지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은영은 서글펐다.

결국 자신은 이렇게 사람들로부터 잊혀지고 마는 존재인가, 하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어차피 이승에서 잊혀질 바에는 빨리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싶어.’


은영의 지인들이 은영을 잊은 채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갑갑했다.

특히, 지훈이 만약 새로운 여자를 사귄다면···? 그 모습을 지켜 보는 일은 정말 견디기 힘들 것만 같았다.


‘빨리 올라가려면 어떡하면 된다고 했더라? 이승 인연과의 매듭을 풀라고 했지? 그렇다면 지훈씨와의 매듭을 푸는 방법은 뭘까? 정식으로 이혼을 하는 것?’


은영은 빨리 하늘나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급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간단했다.

지훈과 정식으로 이혼을 하면 된다.

영혼 결혼식을 하는 사람들은 봤어도 영혼 이혼식을 하는 사람들은 본 적도 없고 그런 사례를 들은 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지훈과 어떻게 하면 이혼을 할 수 있을까?


은영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은영이 고민하는 사이에 지훈과 지은은 저녁식사를 거의 끝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어느새 레드와인까지 시켜서 한잔씩 마시고 있었다.


‘나 없이도 잘 들 노시는구만···쳇~’ 은영은 괜히 심술이 났다.


와인 덕분인지, 이제는 초반의 낯선 분위기는 사라졌고 두 사람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이 두 사람은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커플같이 보였다.


“실은 두 사람 너무 부러웠어요. 참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지은은 커다란 와인잔을 들어 아주 조금 와인을 목으로 넘긴 뒤 말했다.


“부럽긴요···, 서로에게 고통만 준걸요.”

“은영이가 부부싸움 한 얘기 하면서 지훈씨 욕하고 그럴 때도 웬지 두사람은 사랑싸움 하는 거 같아 보였구. 알콩달콩하면서 잘 살아가는 거 같았거든요.”

“멀리서 보면 전쟁터도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죠...”

“두 사람 천생연분 같았는데···, 정말 어쩌다 그렇게 사이가 안 좋아지셨던 거에요?”

“글쎄요···, 어쩌다 그렇게 됬는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근데 뭐 이젠 다 지나간 일인걸요. 돌이켜 생각해 봤자 더 우울해지기만 할 거에요.”

“맞아요. 제가 괜한 말을 꺼냈나봐요.”

“아니에요. 어쨌든, 마지막까지 우리 부부가 다시 화해하도록 은영이를 설득해 주셨다는 거 알고 있어요. 고맙게 생각합니다.”

“두 사람은 잘 됬으면 하고 바랬거든요. 사소한 오해로 틀어지기 시작했을 뿐이라고 생각했죠.”

“지은씨가 우리 커플을 그렇게 봐 주셔서 그나마 오래 갔던 거 같아요. 저도 지은씨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 부부 사이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걸까, 하고 오랫동안 고민했었거든요.”

“근데 그 특별함을 결국 못 찾으셨나요?”

“특별한 거 같은 건 원래부터 없었어요. 연애시절에 서로 콩깍지가 씌워져서 잘못 본 거였죠.”

“아니에요. 은영이는 제가 오래 봐서 잘 알고, 지훈씨도 뭔가 특별한 매력이 있는 분이에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하네요.”

“농담이나 거짓말 아니고 정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건배해요. 자, 특별한 매력을 가진 지훈씨를 위하여!”


두 사람은 건배를 했다.


은영은 묘하게 자신의 마음에 물결이 이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에 지은의 얼굴을 보았을 때 반가왔다.

지훈을 위로해 주는 것을 보고 고맙게도 생각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와인을 함께 마시며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건배까지 하는 모습을 보자 서서히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이상한 감정이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질투심이었다.


‘지훈씨에게는 뭔가 특별한 매력이 있는 분이에요···’


방금 전 지은이 지훈에게 한 말을 은영은 곱씹고 있었다.


‘지은이 쟤···, 지금 뭐하는 거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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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못하고 죽은 귀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9 [완결] 하늘나라로 18.07.16 286 3 17쪽
28 큐피드의 화살 +2 18.07.14 251 3 13쪽
27 현우 이야기 4 +2 18.02.28 400 10 13쪽
26 현우 이야기 3 +4 18.02.27 325 9 12쪽
25 현우 이야기 2 +2 18.02.24 385 6 12쪽
24 현우 이야기 1 +2 18.02.23 367 6 12쪽
23 지은도 알게 되다 18.02.22 392 9 12쪽
22 수목장 18.02.21 356 9 11쪽
21 은영의 능력 +2 18.02.20 558 10 12쪽
20 은영의 비밀 18.02.18 402 8 12쪽
19 이혼식 +2 18.02.17 501 8 12쪽
18 대화가 필요해 18.02.15 450 8 12쪽
17 선미 이야기 3 18.02.14 461 8 13쪽
16 선미 이야기 2 18.02.13 430 8 12쪽
15 선미 이야기 1 18.02.12 459 8 12쪽
14 친구에서 경쟁자로 18.02.09 477 8 12쪽
13 귀신과의 조우 3 18.02.06 480 9 12쪽
12 귀신과의 조우 2 18.02.05 466 8 11쪽
11 귀신과의 조우 1 18.02.05 500 8 11쪽
10 지훈의 아르바이트 18.02.04 502 9 12쪽
» 산 사람은 살아야 18.02.03 527 8 13쪽
8 작은 복수 18.02.02 519 8 12쪽
7 회상 : 다툼 18.02.01 514 6 12쪽
6 친구들을 사귀다 18.01.31 537 9 11쪽
5 홀로서기 18.01.26 614 10 12쪽
4 회상 : 첫 만남 18.01.25 573 5 12쪽
3 귀신이 되다 18.01.25 598 7 12쪽
2 장례식 18.01.24 697 9 12쪽
1 이혼 하는 날 18.01.23 938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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