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못하고 죽은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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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
작품등록일 :
2018.01.23 11:44
최근연재일 :
2018.07.1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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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05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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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귀신과의 조우 1

DUMMY

은영은 오랜만에 다시 장례식장을 찾았다.

세번째로 찾아온 장례식장은 올 때마다 조금씩 익숙해 지는 것 같았다.

이제 막 죽어 혼자서 열을 내거나 아니면 우울하게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귀신들을 보니 옛날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에 비하면 자신은 이제 어느정도 여유를 찾고 있는 것 같아 은영은 기분이 좋아졌다.


혹시 선미를 만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미 선미는 이곳을 떠나고 없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는 여기 남아 있을 이유가 없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주소라도 알아두는 건데 그랬어.’

‘아기는 교회에 맏겨졌다고 하니까 어딘가 좋은 가정을 만나서 입양을 갔을까?’

‘아기가 입양가는 모습을 봤다면 선미씨는 벌써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없을 지도 모르겠네···’


혹시나 오지랍 아저씨라도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은영은 밤새 병원 건물 옥상에 앉아 불빛이 아름답게 반짝이는 서울 시내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기다렸다.


살아 있을 때 무척 추위를 많이 타던 은영이었다. 가을이 시작되면 이듬해 봄이 될 때까지 은영은 밖에 외출할 때면 온몸을 꽁꽁 싸매고 다녀야 했다. 귀신이 된 지금은 그 때에 비해 훨씬 추위를 덜 타고 있었다.


‘귀신이 되어서 이런 건 좋네···’


새벽녘이 되어 기다리던 오지랍 아저씨를 드디어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은영은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지랍 아저씨.”

“어, 은영이라고 했던가? 오랜만이네.”

“그동안 어디서 뭐 하고 지내셨어요?”

“나야 전국 팔도강산을 다 돌아다녔지. 자넨 어떻게 지냈나?”

“저는 계속 집에 있었어요.”

“남편 혼자 남았다고 그랬던가?”

“네에···”

“자네도 이승에서의 인연에 연연해 하지 말고 올라가기 전에 나처럼 세상구경이나 해.”

“전 별로 관심 없어요. 전 그저 빨리 하늘로 올라가고 싶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이승에서 묶인 남편과의 매듭을 풀려면 어떡해야 할까요?”

“남편과는 어떤 매듭이 남아 있는데···?”

“이혼하려고 했었어요. 이혼하기로 되어 있던 날에 가정법원에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었죠.”

“아, 그렇다고 했었지. 그럼 그것이 이승에 묶여 있는 매듭임이 분명해 보이네 그려.”

“이 매듭을 풀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혼을 하면 되겠지···”

“이혼을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어떻게 이혼을 해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나도 귀신 말년이래 봐야 고작 1년 조금 못 살았을 뿐이니까.”

“아, 참. 지난번에 뵈었을 때 11개월차라고 하셨죠?그럼 곧 하늘로 올라가시는거에요?”

“그렇지. 아마 자네와 만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거야.”

“만나자 마자 이별이네요.”

“뭐 인생이 그런거지. 영겁의 우주 속에서 한달이나 백년이나 뭐 그리 큰 차이가 있겠나. 모두 그저 찰나일 뿐이지.”

“참, 그거 아세요? 라디오 근처에 제 손을 왔다 갔다 하니까 라디오에서 나는 잡음소리가 달라지더라구요.”

“그래. 나도 얼핏 경험하긴 했지. 전자파가 귀신의 존재를 얼추 감지하는 거 같더라구.”

“알고 계셨군요? 저 여기 병원 응급실에 있을 때 크게 소리를 질렀더니 천장에 달린 전등 불이 나가더라구요.”

“그래? 허허~ 거 목청도 좋은 귀신이로군.”

“이 능력을 이용하면 귀신도 이승에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요?”

“굳이 이승에서 일은 해 뭣하게? 일은 살았을 때 질리게 해서 난 더 이상 일 같은 건 만들고 싶지도 않아.”

“그래도요. 아저씨는 이승에서 미련 남은 일도 없으세요?”

“미련이야 많지···, 하지만, 이젠 시간도 다 됬는걸. 그냥 하늘로 올라가면 되는데 뭐. 허허~”

“아저씨가 부러워요. 저도 빨리 하늘나라에 올라가고 싶어요.”

“큰 차이 없대두. 그저 기다리면 때가 온다니까···”

“귀신도 술을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럴 때 아저씨랑 한잔 할 수 있게.”

“마신 셈 치자구. 자, 그럼 난 이만 다른 친구들에게 작별인사하러 가네.”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조심해서 하늘나라에 올라가시구요.”

“그래. 먼저 올라가 있을게. 천천히 와.”


오지랍 아저씨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가버렸다.

귀신이 되고서 사귄 몇 안되는 친구 중 하나와 벌써 이별을 하게 되니 은영은 무척 아쉬웠다.


은영은 다시 지훈이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지훈은 이미 침대에 누워 쿨쿨 자고 있었다.


‘이혼이라···’


은영은 지훈과 어떻게든 이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산 사람과 귀신이 이혼을 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은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날,

은영은 지훈이 퇴근해서 들어와 저녁을 먹고 TV를 보고 있는 옆에 앉아 혼자서 이혼식을 진행해 보았다.


“음음···, 자 신랑 입장. 짠짠짜잔~”

“자 신부 입장. 짠짠짜잔~”

“신랑 신부 서로 맞절.”


은영은 TV를 보고 있는 지훈에게 혼자서 꾸벅 절을 했다.


“이제부터 신랑 김지훈과 신부 최은영의 이혼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먼저 신랑 김지훈은 신부 최은영과 이혼하겠습니까?”


지훈은 아무 말이 없이 TV를 보고 있었다.


“대답 한 걸로 하고. 신부 최은영은 신랑 김지훈과 이혼하겠습니까?”

“네!~”


은영은 스스로 묻고 스스로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두 사람의 이혼이 성사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나누어 버린 인연을 사람이 다시 짝짓지 못할지니라. 쾅,쾅,쾅!”


은영이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치는 시늉을 하며 입으로 소리를 냈다.


‘이제 이혼이 된건가?’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감지되지 않았다.


‘하룻밤 자고 나서 내일 효력이 발휘될지도 몰라. 일단 기다려 보자.’


하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은영의 신변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은영은 자리에서 펄쩍 펄쩍 뛰어보기도 했지만, 하늘로 올라가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훈은 이혼식을 한 것도 모를 뿐더러 자기가 동의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이건 하나님이라고 해도 효력을 인정해 줄 수 없을 거라고 은영은 생각했다.


“도대체 산 사람이랑 귀신이 이혼 할 수 있는 방법은 뭐야?”


은영은 짜증이 나서 큰 소리로 외쳐 보았지만 은영의 말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은영의 다급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훈은 주말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후라이팬에 뭔가를 잔뜩 때려 넣고 볶고 있는 것 같은데 냄새는 무척이나 맛있어 보였다.

‘지이이잉~~’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어, 용범아 무슨 일이야?”


지훈은 용범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환기팬을 켜 시끄러운 가스레인지 곁을 떠나 침실로 들어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은영은 맛있는 냄새를 맡으며 음식을 먹을 수는 없는 신세가 약간 짜증이 나서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지훈의 통화는 길어지고 있었다.

가스레인지에 올려 놓은 후라이팬에서는 맛난 냄새에 이어 고소하게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어? 이러다 타는 거 아니야?’


은영은 용범과 수다를 떨고 있는 지훈에게로 갔다.


“야, 김지훈. 빨리 나가 봐. 지금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거 타고 있단 말이야!”


그러나 그 말을 들을 리 없는 지훈은 여전히 후라이팬은 까맣게 잊은 채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어떡하지? 이러다 후라이팬이 타는 건 물론이고, 집에 불이 날 지도 몰라.’


은영은 지훈 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지훈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다.

은영이 다시 지훈 앞에서 손을 흔들자, 지훈이 핸드폰을 귀에 댄 채로 상하좌우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갑자기 왜 잡음이 들리지?”


지훈의 혼잣말에 은영의 귀가 솔깃해졌다.

은영은 지훈의 핸드폰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손의 위치를 핸드폰 이쪽 저쪽으로 대 보았다.

그러자, 라디오에서와 마찬가지로 핸드폰에서도 잡음을 만들어 낼 수가 있었다!


은영은 알고 있는 유일한 모르스부호인 ‘SOS’를 잡음으로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치치치, 치이치이치이, 치치치’


은영은 이 소리를 계속해서 반복해댔다. 지훈이 이 소리를 알아듣기를 기도하면서.


“용범아 너도 들리니? 갑자기 잡음이 난다.”

“잡음? 안들리는데?”

“이 소리 안들려? ‘치치치, 치이치이치이, 치치치’ 하는 소리.”

“그래? 너 핸드폰 바꿀 때 됬나보다.”

“그런가? 근데 계속 들리네. ‘치치치, 치이치이치이, 치치치’ 이 소리 뭐지?”

“그거 무슨 모르스부호 같다?”

“그렇지? 근데 이게 무슨 뜻이지?”

“치치치, 치이치이치이, 치치치? 잠깐만. 찾아볼게···., 오호, 그거 SOS라는 뜻인데?”

“SOS···?”


SOS라는 글자와 함께 코로 느껴지는 뭔가 타는 냄새가 합쳐지자 그제서야 지훈은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놓은 후라이팬이 떠올랐다.


“끊어!”


지훈은 후다닥 밖으로 달려 나갔다.

후라이팬에서는 연기가 살포시 나고 있었다. 안에 있던 야채와 고기는 모두 까매졌다.

지훈은 얼른 불을 끄고 후라이팬을 싱크대 안에 넣은 다음 물을 틀었다.

‘촤아악~~~’

지훈은 집안의 모든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그제서야 은영도 안도하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집에 불이 날 뻔 했어. 김지훈씨가 이렇다니까. 오빤 항상 내가 옆에서 챙겨줘야 했었지.’


불이 나서 지훈이 죽게 된다면 지훈이 먼저 하늘나라로 올라가 버리고 은영 혼자 이승에 남아 1년동안 더 살아야 할 수도 있었다. 지훈이 있는 이승도 싫었지만, 지훈이 없는 이승은 더욱 지겨울 것 같았다.

제대로 된 이혼을 하기 전까지는 지훈이 반드시 살아있어야만 했다.


안에서 연기냄새가 가시고 서늘한 바람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지훈은 제정신이 들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네···’


안도감이 누그러지고 나자 다음 순간 지훈은 섬찟함을 느꼈다.


‘누가 나에게 ‘SOS’를 친거지?’


지훈은 PC 모니터 화면에 모르스부호를 띄우고 있었다.

이때다 싶어 은영도 모니터화면을 보며 모르스부호를 외웠다.

지훈은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100번에다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KT고객센터입니다···.” 하고 자동안내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지훈은 안내원의 목소리는 무시하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았다. 또 잡음이 들리는지.


잠시 후, 잡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잡음은 곧이어 규칙적인 모르스부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지훈은 모니터화면을 들여다보며 귀로 들리는 모르스부호를 한글 자모로 전환하여 볼펜으로 종이에 받아쓰기 해 보았다.


‘치,치이,치치~~~~’


‘ㄴ ㅏ ㅊ ㅗ ㅣ ㅇ ㅡ ㄴ ㅇ ㅕ ㅇ’


지훈은 흩어진 자모를 모아서 다시 써 보았다.


‘나 최은영’


“으악!!!”


순간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지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뒷골이 서늘해 지면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지훈은 누굴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앞, 뒤, 좌, 우를 살펴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지훈은 현관으로 달려가 집밖으로 나가려고 문을 활짝 열었다.


지훈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고 온몸에 공포감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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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못하고 죽은 귀신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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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완결] 하늘나라로 18.07.16 286 3 17쪽
28 큐피드의 화살 +2 18.07.14 251 3 13쪽
27 현우 이야기 4 +2 18.02.28 401 10 13쪽
26 현우 이야기 3 +4 18.02.27 325 9 12쪽
25 현우 이야기 2 +2 18.02.24 386 6 12쪽
24 현우 이야기 1 +2 18.02.23 368 6 12쪽
23 지은도 알게 되다 18.02.22 392 9 12쪽
22 수목장 18.02.21 357 9 11쪽
21 은영의 능력 +2 18.02.20 558 10 12쪽
20 은영의 비밀 18.02.18 402 8 12쪽
19 이혼식 +2 18.02.17 501 8 12쪽
18 대화가 필요해 18.02.15 451 8 12쪽
17 선미 이야기 3 18.02.14 462 8 13쪽
16 선미 이야기 2 18.02.13 431 8 12쪽
15 선미 이야기 1 18.02.12 459 8 12쪽
14 친구에서 경쟁자로 18.02.09 478 8 12쪽
13 귀신과의 조우 3 18.02.06 481 9 12쪽
12 귀신과의 조우 2 18.02.05 467 8 11쪽
» 귀신과의 조우 1 18.02.05 501 8 11쪽
10 지훈의 아르바이트 18.02.04 502 9 12쪽
9 산 사람은 살아야 18.02.03 527 8 13쪽
8 작은 복수 18.02.02 520 8 12쪽
7 회상 : 다툼 18.02.01 514 6 12쪽
6 친구들을 사귀다 18.01.31 538 9 11쪽
5 홀로서기 18.01.26 614 10 12쪽
4 회상 : 첫 만남 18.01.25 574 5 12쪽
3 귀신이 되다 18.01.25 598 7 12쪽
2 장례식 18.01.24 697 9 12쪽
1 이혼 하는 날 18.01.23 940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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