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못하고 죽은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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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
작품등록일 :
2018.01.23 11:44
최근연재일 :
2018.07.1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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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06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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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귀신과의 조우 3

DUMMY

다음날,

지훈은 스마트폰에 라디오앱을 열고 이어폰을 꽂은 채 집을 나섰다.

손에는 작게 인쇄한 모르스부호를 들고 있었다.

은영은 지훈 옆에 서서 졸졸 따라가며 남편이 매일 다녔던 출근길을 함께 경험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은 날씨가 참 맑고 화창하네] 은영이 말했다.


“그러네···” 지훈이 대답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내려서 다시 걷고···

지훈은 매일 상당한 거리를 몇가지 교통편을 갈아타며 다니고 있었다.

은영은 남편이 매일 이렇게 복잡한 경로를 거쳐 회사에 출퇴근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회사까지 걸어가는 길가에 과일을 파는 트럭이 있었다.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상대로 아침에만 오는 과일트럭이었다.


[어머 사과 맛있어 보인다. 하나 사요]


지훈은 은영이 말하는 대로 사과를 한봉지 구입했다.

거리는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은영은 결혼 전에 자신도 직장을 다니던 기억을 떠올렸다.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커피를 들고 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은영도 과거에 출근하면서 커피 전문점에 들러 사가지고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멋있어 보인다. 오빠도 아메리카노 한잔 사요]


지훈은 커피 전문점에 들러 아메리카노를 한잔 사서 들고 회사로 갔다.

귀신이 된 아내와 함께 출근하는 기분은 뭐라 말 할 수 없이 기묘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최소한 아내와 다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만으로도 지훈은 기뻤다.


회사에 도착해서 지훈은 팀원들에게 사과 한개씩을 돌렸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사과를 먹으면서 사 들고 온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회사 출근해서 오늘처럼 기분이 좋은 날은 오랜만이었다.

지훈은 즐거운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지겨우면 다른 데 갔다 와] 지훈은 모니터에 메모장을 띄워놓고 이렇게 타이핑했다.


[괜찮아요]


[커피를 나만 마셔서 미안하네]


[괜찮아요]


[그럼 이제 나 이어폰 빼고 업무 시작할게]


[그래요]


지훈은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11시쯤이 되어 지훈은 화장실이 가고싶어 졌다.

지훈은 라디오앱을 켜고 이어폰을 꽂았다.

그리고는 PC 화면에 이렇게 입력했다.


[나 이제 화장실 갈건데 거기도 따라올거야?]


[거긴 안 따라갈게요. 다녀와요.]


[진짜지? 믿는다.]


지훈은 화장실에 다녀왔다.


점심 때도 은영은 지훈을 따라다녔다.

오랜만에 밝은 얼굴을 하고 있는 지훈에게 팀장과 동료들은 한마디씩 했다.


“김과장, 오늘 얼굴 좀 폈네?”


“그래, 이제 산 사람은 살아야지···”


지훈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오후 3시가 좀 넘어서였다.


“김지훈 과장 이리 좀 와 봐.”


박부장이 지훈을 큰 소리로 불렀다.


‘불길하다!’


박부장이 저렇게 부를 때는 뭔가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지훈은 갑자기 긴장했다.

지훈은 수첩과 필기구를 들고 박부장 자리로 천천히 가면서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업무들을 점검해 보았다.

지훈이 박부장의 자리에 거의 다 왔을 때 쯤, 빵꾸난 업무가 하나 떠올랐다.


‘아차! K&J 디자인 사무소 건!’


그와 동시에 박부장이 지훈의 얼굴을 보고 소리쳤다.


“K&J 디자인 사무소 건! 어떻게 처리한거야?”


주변 직원들이 파티션 아래로 고개를 살짝 숙이기 시작했다.


“아, 그게, 저어···”


“#%$^(*&)(&)(*_(_*()&*^&%^%^$%$#%%&”


박부장의 입에서 총알같이 야단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야단은 30분 동안 이어졌다.

박부장은 마치 500원 동전을 넣으면 계속해서 공을 토해내는 야구 피칭 기계처럼 끊임없이 싫은 소리를 쏟아냈다.

박부장의 잔소리가 30분을 넘어서고 있을 때였다.


‘팟, 파팟~~~’


박부장의 자리를 동심원으로 해서 주변 반경 2, 3미터 이내의 형광등이 갑자기 꺼졌다.


“어, 이거 뭐야? 아씨~ 그니까 앞으로 똑바로 하란 말야. 알았어?”


“예.”


“총무팀에 전화해서 여기 형광등 좀 갈아 달라고 해.”


“예.”


형광등이 나간 덕분에 겨우 박부장의 질책은 끝이 났다.

분명 은영이 한 일일 것이다.

지훈은 터벅터벅 자리로 돌아왔다.

다른 것 보다도 아내가 있는 앞에서 박부장에게 야단을 맞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창피하고 우울했다.

물론 실수는 지훈에게 있었다.

은영의 장례식 전후로 진행되던 건이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지훈은 기분이 잡쳐 한동안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총무팀에 전화 했어?”


“아차~ 지금 합니다!”


“빨리 안하고 뭐해?”


지훈은 재빨리 총무팀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얼른 지적당했던 건을 처리했다.



* * *


은영은 바로 옆에서 지훈이 야단 맞는 모습을 지켜봤다. 은영은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 회사생활을 하면서 월급을 받아왔구나.’


은영은 지훈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면서 30분이 다 되도록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며 야단을 치고 있는 박부장에게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어른들끼리 말로 한번 했으면 충분히 알아들을텐데, 마치 어린애 야단치듯 이게 뭐야?’


“자, 이제 그만 하세요, 됬어요!”

은영은 소리쳐 보았다.


하지만 박부장은 계속해서 지훈을 몰아부치고 있었다.

은영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만 하라니까!!!!!~~~~~~~~~~~~~”


은영이 고함을 질렀다.

그 순간 은영이 서 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2,3미터 이내에 있는 형광등이 한순간에 나가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박부장의 뺨이라도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은영의 고함 덕분에 박부장의 야단은 끝이 났다.

하지만, 지훈은 여전히 풀이 죽어 있었다.

은영은 뭐라고 위로라도 하고 싶었지만 지훈은 이어폰을 끼려고도 하지 않았다.


‘모르는 척 하고 있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몰라···’


지훈은 아무 말도 없이 자리에 앉아 업무에 몰두했고 은영은 조용히 그 옆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예쁘장하게 생긴 여직원 한명이 지훈에게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녀는 손에 뭔가를 쥐고 있었다.

그녀는 지훈의 뒷자리를 지나치며 지훈의 책상 위에 과자 하나를 놓고 갔다.

과자에는 커다랗게 ‘기운내’라고 씌어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여러가지 멘트들이 인쇄되어 나오는 과자였다.

지훈은 놀라 뒤를 돌아봤고 여자는 살짝 미소를 짓더니 그냥 지나쳐갔다.

지훈은 얼굴이 벌개졌다.


‘이거, 이거 무슨 시츄에이션이야······..?’


은영은 방금 전까지 지훈에게 들었던 가여운 마음이 싹 사라졌다.


‘혹시 말로만 듣던 사무실 배우자(office spouse) 아냐?’



지훈은 지훈 나름대로 난처했다.

여직원은 옆팀에서 근무하는 나미영대리였다.

나대리는 회사 내에서 친한 축에 속하는 직원이긴 했지만, 이렇게 지훈에게 와서 뭘 전해 준 적은 처음이었다.

지훈은 곧바로 은영이 의식되어 난처해졌다.


‘전에도 자주 이랬던 거라고 은영이가 오해하면 어떡하지?’


지훈은 황급히 이어폰을 끼고는 PC화면에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옆팀 나대리라는 사람이야. 이런 거 준 거 처음이야.]


[누가 뭐래요?]


[오해하지 말라고.]


[오해 아닌 거 같은데,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거 같은데?]


지훈은 아무래도 은영이 제대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필이면 나대리는 이럴 때 안 하던 짓을 해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건지, 원···


‘역시 오빠는 나에게서 마음이 떠나 있었던 거야. 그리고 다른 여자를 찾고 있었던 거구.’


‘이럴 줄 알았으면 계속 혼나게 그냥 놔두는건데···’


은영의 꽁한 마음은 풀릴 줄을 몰랐다.



* * *


지훈은 퇴근을 해서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나 샤워할건데 여기도 안 들어올거지?”


[관심도 없네요.]


은영은 여전히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지훈은 뭐라고 좀 더 변명을 해 보려다 소용이 없을 것 같아 그냥 욕실로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나온 지훈에게 은영이 말했다.


[우리 어떻게 하면 이혼 할 수 있을 지 생각해 봐요]


“생각해 볼게. 근데 좀만 더 있다 하늘나라에 가면 안되?”


[오빠, 일년 안에 못가면 지옥으로 간다고 그랬죠? 날 지옥가게 만들 셈이에요?]


“그건 아니구. 아직 1년 남았으니까 천천히 진행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아직도 오빠는 태평이네요. 같이 살 때도 늘 그랬어. 나는 심각해서 안달인데도, 오빠는 늘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그게 아니라···, 어쩌면 네가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이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화해하는 것인지도 모르잖아?”


지훈은 이어폰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은영은 말이 없었다.


‘정말 오빠가 말 한 대로 우리가 화해하고 다시 합치는 것이 매듭을 푸는 방법일까···?’

은영으로서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선택지였다.


‘우리 사이는 이제 끝난 거 아니었나?’ 하고 은영은 생각했다.


지훈은 계속해서 말했다.

“한번 시도는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해 보고 안되면 그때 이혼하면 되지.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으니까.”


‘살아 있을 때도 못했던 걸 죽어서 할 수 있을까?’

은영은 여전히 확신할 수 없었다.


화해가 매듭을 푸는 방법인지도, 그게 맞다 해도 우리가 화해 할 수 있을지도.



바로 그 때, 지훈의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지은씨?”

“네. 저에요. 별일 없으시죠?”

“네.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를···?”

“그냥요. 저 술 좀 마셨거든요. 은영이 생각도 나고, 지훈씨도 생각나고 해서 전화해 봤어요...”

“아, 그러셨어요.”


지훈은 지은씨에게 은영의 이야기를 할까 하고 망설였다.


“지금 은영이는 지금 어디 있을까요···? 천당에 올라가서 여기를 내려다 보며 잘 살고 있겠죠···?”

“아, 그럴수도 있겠고···, 아닐 수도 있겠고···”

“그럼 천당이 아니라 지옥에 가 있을 수도 있단 말씀이세요?”

“아, 그런 뜻이 아니고···”

“설마 은영이가 지옥에 갔을 거라고 생각하고 계신 건 아니시겠죠?”

“그야 물론 아니죠. 은영이는 착한 아이였으니까요···”


지훈은 점점 난처함을 느끼고 있었다.

은영이도 옆에서 듣고 있는데, 다른 여자의 술주정을 들어주고 있다니.


“지은씨, 어디 밖에서 술 드시고 있는 건가요?”

“왜요, 이쪽으로 오시게요···?”

“아뇨. 밖이시면 더 늦기 전에 집에 들어가시라구요.”

“왜요, 저희 집으로 오시게요···? 호호~”

“아, 그런게 아니라. 좀 취하신 거 같아서요.”

“네, 저 좀 취했어요. 죽마고우가 죽은지 한달 밖에 안됬는데, 아직 좀 애도의 기간을 갖는 것도 괜찮잖아요?”

“···”

“지훈씨는 술 생각이 없으신 걸 보니까 마음 속에서 은영이를 잘 정리하셨나봐요···?”

“···”

“지훈씨한테는 이혼하려던 상대였지만, 저한테는 평생 같이 갈 좋은 친구였다구요··· 흑흑~”

“···”

“미안해요. 이런 말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아무렴 제 슬픔이 지훈씨 만 하겠어요···?”

“아니에요. 이제 그만 들어가세요.”

“저 지금···, 집에서 마시고 있어요···”

“그럼 이제 그만 드시고 주무세요.”

“그래야겠네요. 갑자기 급 취기가 몰려오네···, 우악!~”


수화기 너머로 ‘꽈당~’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지은씨!~”


수화기에서는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거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지훈은 당황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은영아, 어떡하지? 쓰러진 거 같은데 아무 소리도 안 들려. 뭔가 잘못된 건 아니겠지?”


[지은이 집으로 가봐요.]



지훈은 허겁지겁 옷을 차려입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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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못하고 죽은 귀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9 [완결] 하늘나라로 18.07.16 286 3 17쪽
28 큐피드의 화살 +2 18.07.14 251 3 13쪽
27 현우 이야기 4 +2 18.02.28 400 10 13쪽
26 현우 이야기 3 +4 18.02.27 325 9 12쪽
25 현우 이야기 2 +2 18.02.24 386 6 12쪽
24 현우 이야기 1 +2 18.02.23 367 6 12쪽
23 지은도 알게 되다 18.02.22 392 9 12쪽
22 수목장 18.02.21 357 9 11쪽
21 은영의 능력 +2 18.02.20 558 10 12쪽
20 은영의 비밀 18.02.18 402 8 12쪽
19 이혼식 +2 18.02.17 501 8 12쪽
18 대화가 필요해 18.02.15 450 8 12쪽
17 선미 이야기 3 18.02.14 461 8 13쪽
16 선미 이야기 2 18.02.13 430 8 12쪽
15 선미 이야기 1 18.02.12 459 8 12쪽
14 친구에서 경쟁자로 18.02.09 477 8 12쪽
» 귀신과의 조우 3 18.02.06 481 9 12쪽
12 귀신과의 조우 2 18.02.05 466 8 11쪽
11 귀신과의 조우 1 18.02.05 500 8 11쪽
10 지훈의 아르바이트 18.02.04 502 9 12쪽
9 산 사람은 살아야 18.02.03 527 8 13쪽
8 작은 복수 18.02.02 520 8 12쪽
7 회상 : 다툼 18.02.01 514 6 12쪽
6 친구들을 사귀다 18.01.31 537 9 11쪽
5 홀로서기 18.01.26 614 10 12쪽
4 회상 : 첫 만남 18.01.25 573 5 12쪽
3 귀신이 되다 18.01.25 598 7 12쪽
2 장례식 18.01.24 697 9 12쪽
1 이혼 하는 날 18.01.23 938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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