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못하고 죽은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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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
작품등록일 :
2018.01.2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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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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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0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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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친구에서 경쟁자로

DUMMY

지훈은 지은의 오피스텔 주차장에 차를 대는 둥 마는 둥 세워놓고 엘리베이터 버튼부터 눌렀다.

은영이 먼저 스르륵 올라가려고 하는데 지훈이 외쳤다.


“지은씨 집 몇층 몇호고 비밀번호 뭐야?”


[8층 815호 비번은 지은이 생일 0704]


지훈은 ‘815호 0704’를 외우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지훈은 지은의 오피스텔에 도착하자 현관문을 열고 뛰쳐 들어갔다.


그러나, 오피스텔 안의 모습은 걱정했던 상황은 아니었다.

지은은 그냥 소파에 드러누운 채 잠이 들어 있었다.

아마도 소파에 앉아 있다가 옆으로 쓰러졌던 모양이다.


“지은씨, 지은씨~”


“음, 으음···.”


“일어나세요. 침대에 가서 누우세요.”


“지훈씨···.? 지훈씨가 어떻게 여길···”


“전화로 넘어지는 소리가 들려서 어떻게 되셨나 걱정되서 찾아왔어요.”


“···”


지은은 다시 몸이 축 늘어지려 하고 있었다.


“지은씨, 침대로 가서 자요. 제가 일으켜 드릴게요.”


“··· 지훈씨이···, 어우···.어지러워···.”


지훈은 지은을 부축하여 침대로 이동했다.

그러나 발걸음을 뗀 순간 지은은 인사불성이 되어 쓰러지려 했다.

어쩔 수 없이 지훈이 지은의 몸을 들어 올려 침대로 향했고 그러는 와중에 의도치 않게 지은과 스킨십이 생겼다.

아내 앞에서 다른 여자의 몸을 들어 올리려니 눈치가 보여 지훈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잖아도 낮에 여직원한테서 과자 하나 받은 걸 두고도 예민해지던 은영이었다.

지훈은 신속하게 지은을 침대에 눕히고는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 순간,


“지훈씨!” 하고 이름을 부르며 지은이 지훈의 손을 붙잡았다.


“네?”


지훈은 화들짝 놀랐다.


‘이거 뭐지? 이거 지금 은영이도 보고 있을텐데, 혹시라도 오해하면 안되는데···’


그러나 잠시 후, 지은은 ‘툭~’하고 팔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동시에 나즈막히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그제서야 안심하고 지은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는 일어나 오피스텔 내부를 한바퀴 둘러보고 나서 집안의 모든 불을 끄고 현관문을 닫고 나왔다.


“다행이네. 걱정했던 상황은 아니라서.”


[오빠가 수고했어요]


“수고는 뭘. 한 것도 없는데···”


지훈은 운전을 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 * *



집으로 돌아오면서 두 사람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지훈은 이어폰에 계속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런 신호도 들리지 않았다.


은영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지은은 은영의 오랜 친구였다.

성적도, 키도, 얼굴 생김생김 조차도 어느 쪽이 더 예쁘다고 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대학도 비슷한 레벨의 인서울 대학을 졸업했고, 취직도 비슷한 대기업에 했다.

두 사람은 친한 친구였지만, 서로 전혀 경쟁심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건 아마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은영은 3년 전 지훈을 만나 결혼을 했고 지은은 계속 회사를 다녔다.


일년여의 밀월기간 동안은 은영이 행복해 보였지만, 그 이후로는 힘든 나날이었다.

반면에 지은은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동기들보다 진급이 빨랐다.

가끔씩 둘이 만나 커피나 저녁식사를 할때면 은영은 전업주부가 되어 집안에서만 지내느라고 자신이 스스로 사회성이 퇴화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지은이의 정장은 세련되어 있었고, 커리어우먼이라는 타이틀에 잘 어울렸다. 반면에 은영은 자신이 아무리 꾸미고 다녀도 어딘가 촌스러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은이는 주식도 하고 환율과 세계경제가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잘 아는 것 같았지만, 은영은 시간이 나면 TV 드라마를 보거나 웹서핑으로 연예인 기사를 검색하거나 G마켓으로 쇼핑을 하거나 했다. 경제니 정치니 하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이었다.


은영은 마지막으로 지훈, 은영, 지은 세사람이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지훈과 지은은 대화가 참 잘 통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상황에 있었으면서도 소외되는 것 같은 느낌은 없었다. 그저 삶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관심사가 다르다고만 여겼었는데···


늘 서로에게 좋은 친구였지만, 오늘은 친구에서 경쟁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자끼리의 우정이란 지속되기 어려운 것일까?

경쟁자라고 이름붙였지만, 지금 상황은 은영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했다. 은영은 이제 겨우 지훈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지훈과 스킨십을 나눌 수도 없다.


무엇보다도 은영은 지훈과 이혼하기로 합의한 상황이다.

만약 사고가 없었더라면 두 사람은 이혼했을 것이고 지금쯤 남남이 되어 있을 것이다. 지훈에게는 은영의 지분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고, 따라서 지훈이 누구와 사귀든 지훈의 자유인 것이다.

이정도 되면 승부는 지은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게임이다.


하지만, 경쟁자라면 모르는 경쟁자 보다는 아는 경쟁자가 낫지 않을까?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지훈씨에게 여자가 생긴다면 그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지은이인 것이 나을지도 몰라···’


은영은 섭섭함과 질투심이 섞인 미묘한 감정 속에서도 지훈의 옆자리에 설 여자로 다른 사람보다는 차라리 지은이 인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훈은 집으로 돌아왔다.

술은 지은이 마셨는데, 밖에 나가 지훈이 술을 마시고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침묵했던 지훈이 은영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 낮에 사무실에서 고마웠어. 형광등 꺼준거 말이야.”


[그야 뭐. 나도 화가 났었으니까···]


“덕분에 부장의 잔소리가 일찍 끝났어.”


[30분이 일찍 끝난거에요? 도대체 평소에는 얼마나 오래 야단을 치길래?]


“직장생활이란 게 다 그런거지 뭐. 후후~”


은영은 다시금 지훈이 불쌍했다.


‘오빠는 집에 와서는 저런 이야기를 한번도 안 했었어···’


“이제 겨우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못난 모습부터 보여줘 버렸네···”


지훈은 자신의 직장생활의 본 모습을 은영에게 보여준 것이 한편으로 후련했다.

예전에는 웬만해선 아내에게 힘든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감기가 걸려도 독감으로 앓아 누워야 할 정도가 아니면 은영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게 멋진 모습이라고, 그게 좋은 남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회사생활을 들킨 지금, 지훈은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 부장이란 사람 나중에 혼내줘야지!]


은영의 말을 들으니 지훈은 기분이 좋아졌다.

은영과 지훈은 둘 다 서로 상대방에게 조금씩 더 친근감을 느꼈다.


결혼한 부부는 더 이상 친해질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서로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고, 상대방보다 내가 더 상대방을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제 더이상 상대방에 대해서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더’ 친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걸 보니 친해질 것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벼랑일 것만 같았던 우리 두 사람이었는데···


은영은 아까 지훈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네가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우리가 화해하는 것인지도 모르잖아···’


우리가 다시 화해 할 수 있을까, 하고 은영은 생각해 보았다.


‘이혼은 도장이라도 찍을 수 있지, 화해는 어떻게 하늘나라에 증명한담···?’



“오늘은 어디에 있을거야?” 지훈이 말했다.

[거실에 있을게요.]

“그럼 잘 쉬어. 난 이만 잘게···”

[잘자요.]


오늘밤도 지훈은 침실에서, 은영은 거실에서 각자 자리를 잡았다.



* * *




다음날 오후, 지훈은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PC 모니터에 [나 잠깐 나갔다 올게]라고 입력하고는 믹스커피 한잔을 타서 잠시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핸드폰으로 용범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너 지난 일요일에 그렇게 전화 끊어놓고 뭐야? 무슨 일 있었던거야?”

“어, 너랑 전화하다가 프라이팬에 올려놓은 요리 다 태우고 집에 불까지 날 뻔 했어, 임마.”

“야, 불은 끄고 전화를 받았어야지.”

“잠깐만 하고 말 줄 알았지. 그렇게 길어질 줄 누가 알았냐. 너야 말로 소개팅 같은 사소한 이야기는 나중에 만나서 하든가 하지 끊지도 못하게 하고 주저리 주저리 떠들었잖아?”

“야, 소개팅이 왜 사소한 이야기야? 나한테는 일생일대의 중대사라고.”

“암튼, 그래서 다음번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어?”

“약속했지. 우하하~”

“여자분이 인내심이 무지 좋으신 분이신가보네.”

“뭐, 뭐야, 임마?”

“후후~ 그건 그렇고···”

“··· 무슨 할 얘기 따로 있었어?”

“그건 아닌데···, 저어···”

“···? 무슨 말인데 이렇게 뜸을 들여?”

“···, 넌 혹시 귀신의 존재를 믿니?···, 아니···, 너, 참 교회 다니던가?”

“교회는 다니지만 귀신은 안 믿어.”

“이거 나이롱 신자구만. 귀신 있어, 임마. 성경책 보면 귀신에 대한 언급 많이 나와.”

“예수님이 귀신들린 사람들한테서 귀신을 쫒아내서 치료해 주신다는 그런 내용은 본 적 있는 거 같다.”

“···, 귀신이 꼭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야. 처, 천사도 사실 알고 보면 귀신이야.”

“에이, 그건 아니다. 어떻게 천사랑 귀신이랑 동급이냐? 천사는 하나님이 부리는 시종 같은 거고, 귀신은 사람이 죽어서 되는 건데.”

“뭐, 둘 다 영적인 존재라는 얘기지···”

“암튼 영화나 드라마 보면 귀신들 나오긴 하던데 난 안 믿어. 본 적도 없고.”

“그래···?”

“넌 귀신 본 적 있어?”

“나?··· 나야···, 나도 귀신을 눈으로 본 적은 없지···., 근데 귀신은 눈에 안 보이는 거 아니야?”

“안보이긴, 임마. TV도 안 봤냐. 하얀 소복 입고 머리 길게 늘어뜨리고 나타나잖아.”

“··· 귀신이 되면, 정말 하얀 소복을 입고 있을까?”

“왜, 은영씨도 하얀 소복 입고 나타날까봐 걱정되냐?”

“설마···”

“걱정마. 은영씨는 착한 사람이니까 벌써 천국 가 계실거야.”

“그럴까···”

“그렇지. 너랑 사이 안 좋았던 거 빼고는···,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

“그렇지···”

“건 그렇고 조만간 소주 한잔 하자. 지난번에 못 다 한 소개팅 얘기 좀 더 해야지. 크크~”

“그래···, 들어가.”


지훈은 용범과의 전화를 끊고 나서 차가워진 종이컵 속에 남은 믹스커피를 마셨다.


은영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용범이 말 한 대로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는 풀어서 얼굴이 가려질 정도로 내리고 있을까?

나는 왜 은영의 모습을 볼 수 없을까?

TV에서는 귀신들이 모습을 드러내던데···


그때까지 은영과 대화를 하면서 지훈이 상상한 은영의 모습은 두달 정도 전에 마지막 커피숍에서 봤던 옷차림과 얼굴이었다.

하지만 용범과 통화를 하다 보니, 지금 은영의 모습은 자신이 상상하던 것이 아닐 수 있겠다는, 아니 아닐 가능성이 높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귀신이 되면 하얀 소복차림이 될까?’


그건 아닐 것이다. 서양의 귀신도 있을테니까.


‘그렇다면 죽기 직전의 모습일까?’


그렇게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은영은 심한 교통사고로 몸이 제대로 성하지 못한 모습으로 죽었다.

은영이 팔 다리가 온전히 붙어있지 못한 그런 모습으로 지금 이승을 떠돌고 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은영은 옷을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지내는 걸까?’


귀신들끼리는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있을텐데···, 이것 역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능성이었다.

귀신들이 알몸으로 몰려 다니는 모습이라니···쩝~


소복 입은 귀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자니, 혹시 은영도 나에게 무슨 원한 같은 걸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마저 들었다.


[치익~ 치익~]


갑자기 낯익은 잡음이 들려왔다.


‘아이, 깜짝이야!~’


지훈은 놀라 이어폰으로 들리는 모르스부호에 귀를 기울였다.


[무슨 일이에요?]

“어, 아니야. 용범이랑 통화 좀 했어. 혹시, 방금 전에 내 옆에 있었어?”

[아뇨. 사무실에 있다가 지금 올라왔어요.]

“춥다. 내려가자···”

[저 친구네 집에 좀 다녀올게요.]

“지은씨?”

[아뇨, 귀신 친구]

“귀신도 친구를 사귀나?”

[그럼요. 귀신도 다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는데.]

“그래. 다녀와.”


지훈은 은영과 헤어져 사무실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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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못하고 죽은 귀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9 [완결] 하늘나라로 18.07.16 286 3 17쪽
28 큐피드의 화살 +2 18.07.14 251 3 13쪽
27 현우 이야기 4 +2 18.02.28 401 10 13쪽
26 현우 이야기 3 +4 18.02.27 325 9 12쪽
25 현우 이야기 2 +2 18.02.24 386 6 12쪽
24 현우 이야기 1 +2 18.02.23 367 6 12쪽
23 지은도 알게 되다 18.02.22 392 9 12쪽
22 수목장 18.02.21 357 9 11쪽
21 은영의 능력 +2 18.02.20 558 10 12쪽
20 은영의 비밀 18.02.18 402 8 12쪽
19 이혼식 +2 18.02.17 501 8 12쪽
18 대화가 필요해 18.02.15 451 8 12쪽
17 선미 이야기 3 18.02.14 462 8 13쪽
16 선미 이야기 2 18.02.13 431 8 12쪽
15 선미 이야기 1 18.02.12 459 8 12쪽
» 친구에서 경쟁자로 18.02.09 478 8 12쪽
13 귀신과의 조우 3 18.02.06 481 9 12쪽
12 귀신과의 조우 2 18.02.05 467 8 11쪽
11 귀신과의 조우 1 18.02.05 500 8 11쪽
10 지훈의 아르바이트 18.02.04 502 9 12쪽
9 산 사람은 살아야 18.02.03 527 8 13쪽
8 작은 복수 18.02.02 520 8 12쪽
7 회상 : 다툼 18.02.01 514 6 12쪽
6 친구들을 사귀다 18.01.31 538 9 11쪽
5 홀로서기 18.01.26 614 10 12쪽
4 회상 : 첫 만남 18.01.25 574 5 12쪽
3 귀신이 되다 18.01.25 598 7 12쪽
2 장례식 18.01.24 697 9 12쪽
1 이혼 하는 날 18.01.23 940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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