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미 이야기 1
지훈이 옥상으로 올라가고 얼마 후, 은영은 심심해졌다.
‘옥상으로 올라가볼까?’
은영이 옥상으로 올라가자 지훈이 보였다.
지훈에게 가까이 가려는데, 멀리 날아가는 귀신이 한명 눈에 띄었다.
‘선미’였다.
“선미씨~”
“오, 은영씨~”
선미는 은영에게로 날아왔다.
“저쪽에 있는 사람이 제 남편이에요.”
“와, 키도 크고 잘 생기셨네요.”
“그럼 모해요. 이제 곧 헤어질텐데.”
“그래도요. 저는 우리 아기 아빠 얼굴도 이젠 기억이 잘 안나요.”
“어디 가시던 중이셨어요?”
“네. 아기 보러 가려고요. 오늘 양부모님 되실 분이 오셔서 처음으로 아기랑 만나는 날이거든요.”
“와, 부럽네요. 저도 아기 구경하러 같이 갈까요?”
“그러실래요? 그럼 우리 함께 가요.”
“잠깐만요. 남편한테 얘기 좀 하고 올게요.”
“남편한테 얘기 한다고요? 산 사람과 어떻게 대화를 나눠요?”
“다 방법이 있어요. 이따 가면서 알려드릴게요. 훗~”
지훈에게 친구 만나러 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은영은 선미와 함께 선미의 아기를 맡아주고 계시는 목사님댁으로 갔다.
* * *
은영과 선미는 20분쯤 후에 목사님댁에 도착했다.
“까꿍, 우리 아기~”
목사님과 사모님은 한창 아기와 놀아주고 있었다. 60대로 보이는 목사님 부부는 아기들을 다루는 데 능숙해 보였다.
선미의 아기는 생후 18개월이었다. 한창 이쁘면서도 자기 고집이 점점 세어질 때였다.
“아유, 너무 귀엽다. 저 통통한 손이랑 손목 좀 봐. 호호~”
아이를 낳아 본 적이 없는 은영은 꼼지락거리며 돌아다니는 자그마한 사이즈의 아기가 너무나 귀엽고 깜찍하게 느껴졌다. 마치 너무 귀여운 곰인형과도 같다고 은영은 생각했다.
남의 눈에도 이렇게 귀여운데 자기 애라면 얼마나 귀여울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
어느새 아기를 바라보는 은영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맑은 생명체를 바라볼 때 느껴지는 경외로움의 결과였다.
‘나는 이제 저런 아기를 낳을 수 없다.’
이제 자신은 아기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하자 은영은 서글퍼졌다.
은영은 애써 눈물을 감추며 말했다.
“아기 이름이 뭐에요?”
“동원이에요.”
애정을 담뿍 담은 표정으로 아기를 바라보던 선미가 대답했다.
“아기가 통통하니 너무 귀여워요.”
“젖살이에요. 모유를 1년까지 먹였거든요.”
선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근데 원래는 까르르 잘 웃고 지금보다 더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는 앤데, 아직 여기가 낯선 모양이네요.”
“그래요? 아무래도 엄마가 없으니 그렇겠죠.”
선미도 어느새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이제 좋은 엄마, 아빠 만나면 다시 예전처럼 잘 자랄거에요.”
“그러길 바래야죠···, 정말 좋은 양부모님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요즘에는 입양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걱정 안하셔도 될거에요.”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기가 갑자기 까르르 웃더니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어이쿠, 우리 애기가 웬일이야. 이제 여기가 제집같은 가 보구만. 허허~”
“그러게요. 아이구 이렇게 잘 노는 걸··· 그동안 왜 그렇게 얌전했어···?”
목사님 내외는 밝아진 아기의 모습을 보고 좋아했다.
곧 이어서 교회에 손님이 오셨다.
나이는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부같아 보이는 남자와 여자였다.
“목사님, 저희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어서들 오세요.”
“이 아기인가요?”
“예. 건강하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아이예요.”
“어디 좀 볼까요?”
남자는 아기를 안고 무게도 가늠해 보고 이리저리 살펴보기도 했다.
“아마 입양기관에서 나온 사람들인가봐요.” 은영이 말했다.
“그런가 보네요. 엄마, 아빠들은 좀 더 있어야 오시려나···”
남자와 여자는 아기를 꼼꼼히 점검했다.
“자, 우리 애기 옷 좀 갈아입자.”
남자는 익숙하게 아기의 옷을 벗겨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괜찮군요···”
남자는 아기에게 다시 옷을 입혀 주었다.
여자와 사모님은 아기를 데리고 놀러 밖으로 나가고 목사님과 남자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때요? 깨끗하지요? 상태는 A급이라니까. 이렇게 통통한 것 좀 보세요.” 목사가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군요. 값은 잘 쳐서 드리겠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하하~ 그럼 얼마나···.?”
“흠···, 300 드리죠.”
“네? 어이구 그걸론 저희도 장사 못 해 먹죠. 애들 맡아 키우는 동안 드는 우유값이랑 기저귀값만 해도 얼만데요?”
“그럼 350 드릴게요.”
“400 주세요. 이 아이는 A급 아닙니까.”
“저희도 중간에서 넘기고 마진 먹는 장사에요. 남는 것도 별로 없다고요.”
“400 이하는 절대 안되요. 싫으시면 그냥 가시고···, 연락 할 곳은 많으니까···”
“아 씨~ 그럼 380.”
“아우, 400 이하로는 안 드리려고 했는데···, 할 수 없네. 그렇게 합시다.”
은영과 선미는 눈을 크게 뜨고 경악을 했다.
“이 사람들 입양기관 맞나요? 꼭 아기를 사고 파는 것 같아요.”
“원래 입양할 때 이렇게 돈 못 주게 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남자와 목사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럼 늘 그랬듯이 지금 절반 드리고, 이틀 후에 사람을 보낼테니 그때 아이를 내 주세요. 나머지 절반은 그 때 드리겠습니다.”
“아무렴요.”
남자는 가방을 열더니 5만원권을 세기 시작했다.
남자는 190만원을 봉투에 넣지도 않고 현금 그대로 목사에게 내밀었고 목사는 다시 한번 금액이 맞는지 지폐를 세어 보았다.
“정확히 맞습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아기는 데리러 오실 때까지 저희가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있겠습니다요.”
“지난번처럼 오늘, 내일까지는 잘 먹이시고 모레 당일에는 아무것도 먹이지 마세요. 지난번에 뭘 먹이셨는지 비행기 안에서 토하고 난리 났었잖아요.”
“알겠습니다. 허허~”
남자는 밖으로 나갔고 목사는 돈을 방 안에 있는 금고에 챙겨 넣었다.
은영은 재빨리 목사가 금고 문을 열 때 비밀번호를 봐 두었다.
“안되겠어요. 빨리 경찰에 신고해야지.” 은영은 아직도 놀라 말문이 막혀있는 선미를 다그쳤다.
“네? 네에···신고···, 해야겠죠···?”
“이틀 후에 데리러 온댔으니까 아직 시간 있어요. 우리 일단 저 남자랑 여자 사는 곳이 어딘지 따라가봐요. 그러고 나서 경찰에 신고하면 될거에요.”
“네에···”
은영과 선미는 남자와 여자를 따라갔다.
남자와 여자는 교회 앞에 댄 차를 타고 출발했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남자가 말했다.
“역시 저 목사네가 받아오는 애들이 실하고 좋아.”
“그러게, 자기야. 내가 애 기저귀 갈면서 다시 꼼꼼히 봤는데 발육도 좋고 훌륭하더라고. 저런 애들은 좀 높게 불러도 잘 팔릴거야.”
“역시 교회가 좋아. 교회에 맏겨지는 애들은 대개가 실하거든. 이상하게 기관 앞에다 버린 애들은 하나같이 삐쩍 말라가지고 상품성이 없어. 신기하지··· 거참. 오늘 본 애는 간 따로 콩팥 따로 심장 따로, 다 팔 수 있을 것 같구만. 우하하~”
“으아아악!!~~~~~”
남녀가 하는 말을 듣고 있던 선미가 갑자기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은영도 순간 식은땀이 흐르면서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저들은 입양기관이 아니라 소아장기 밀매업자였던 것이다.
“어라? 네비게이션이 꺼졌네? 그러게 당신 좋은 거 좀 사라고 했지?” 조수석에 타고 있던 여자가 말했다.
“네비게이션만 나간게 아니야. 계기판에도 불이 안 들어오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된거지? 제너레이터가 나갔나?”
“그럼 마트엔 담에 가고 일단 집으로 가요.”
남자는 어딘가로 운전해 가더니 아파트 입구에 여자를 내려주고 자기는 차를 수리하러 카센터로 갔다.
은영과 선미는 여자가 들어간 아파트의 동,호수를 확인했다.
은영은 여자가 아파트에 들어갈 때 공동현관과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눈여겨 봐 두었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아파트 내의 놀이터 벤치에 앉았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은영씨, 도와 주세요. 흑~”
“잠깐만요. 상황을 좀 정리해 보자구요. 지금 저 목사는 아기들이 맏겨지면 맡아 뒀다가 이 남자한테 돈을 받고 파는 거고 이 남자는 아이를 사서는 장기밀매를 하러 이 아이를 어딘가 해외로 빼돌리는 역할을 하는 거잖아요?”
“그런 줄도 모르고 하필이면 그런 곳에 내 손으로 아이를 맏겼다니···흑흑~”
“지금은 울 때가 아니에요. 아직은 아기가 목사 집에 있으니 아기를 구할 기회가 있어요.”
“우리는 아무런 힘도 없는 걸요. 어떻게 아기를 구해요?”
“아까 차 안에서 선미씨가 비명을 질렀더니 차가 고장났죠?”
“비명을 지른 건 사실이지만···”
“제가 알아 낸 건데 우리가 큰 소리를 지르면 전등이 나가고 전자제품들이 오작동을 해요.”
“정말요?”
“네. 그리고, 전자파도 우리가 나타나면 간섭을 받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그걸 이용해서 저는 제 남편이랑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어요.”
“정말이요? 그게 가능해요?”
“그렇다니까요. 그러니 우리 빨리 남편한테 가요. 우리가 모두 힘을 합치면 동원이를 구할 수 있을 거에요.”
두 귀신은 서둘러 남편이 있는 곳을 향해 출발했다.
* * *
“뭐라구? 소아장기밀매?”
[그렇다니까요. 이틀 후에 아기를 데리러 온댔어요. 그러니 그 전에 어떻게 해서든 아기를 구출해 내야 해요.]
“흠···”
지훈은 아까 올라왔던 옥상에서 은영, 선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기를 거둔 목사 내외는 아기를 입양기관에 보내는 게 아니라 업자한테 돈을 받고 팔기로 했고, 업자는 아기를 해외의 장기밀매 업자한테 팔아 넘기려 한단 말이지?”
[그래요.]
“일단 인사부터 하자. 선미씨, 처음 뵙겠습니다.”
[선미씨도 인사 했어요. 우리가 이런 식으로 대화 나누는 게 너무 신기하대요.]
“경찰에 신고하는 게 가장 빠른 방법 아닐까?”
[하지만, 경찰도 뭔가 단서가 있어야 수사를 하죠. 아무런 단서도 없는데 저들을 잡아 가두거나 수색하거나 할 수는 없을 거 아니에요.]
“그럼 수사를 할 수 있게 단서를 주면 되지. 우리가 경찰한테 내 놓을 수 있는 단서가 뭐가 있을까?”
[만약 저들이 형식적으로라도 입양서류를 갖추고 움직인다면 심증 말고는 없어요.]
“흠···”
지훈은 겁이 났다.
장기밀매 업자들이라면 범죄자들 중에서도 잔인한 걸로 유명하지 않은가.
영화에서 보면 이런 사람들 잘못 건드렸다가 괜히 큰일 당하던데···
지훈 생각에는 그냥 깔끔하게 경찰에 신고해서 경찰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훈이 밑도 끝도 없이 경찰서에 가서 장기매매가 의심되니 가서 조사해 보라고 말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빠, 지금 겁나서 그러는 거에요?]
“겁···, 안 난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저런 거 하는 사람들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야. 잘못하다 걸리면 바로 죽는거야.”
[오빤 죽는 게 그렇게 두려워요?]
“그래. 난 죽는게 두려워. 넌 지금 귀신이 되었으니까 그렇게 여유로운 말투로 말하지만, 아직 살아 있었다면 오히려 나를 말렸을거야.”
[내가 귀신이라 이렇게 나서는 거 같아요? 오빤 여전히 바뀐 게 하나도 없네요.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저도 무섭긴 마찬가지라구요. 제가 이렇게 부탁하는 건 아이 때문이에요. 우리가 손을 써 주지 않으면 저 아인 곧 죽는다구요.]
“우리 아이도 아니잖아. 왜 그렇게 자기 일처럼 나서서 그래?”
[저한텐 내 아이 같이 느껴져요. 아이는 누구의 아이든 상관없이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해요!]
“···”
지훈은 말문이 막혔다.
갑자기 갈증이 나면서 커피라도 한모금 마셨으면 싶었다.
‘아이는 낳아 본 적도 없는 사람이 웬 모성애 오지랍은 저리도 넓은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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