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못하고 죽은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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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
작품등록일 :
2018.01.2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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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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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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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필요해

DUMMY

선미가 하늘로 올라간 이후 지훈과 은영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지훈은 다시 꼬박꼬박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고 은영은 지훈을 졸졸 따라 다니기도 하고 그냥 집에 남아 지훈이 틀어놓고 간 TV를 하루종일 보고 있기도 했다.


[오빠, 목사네 집에서 가져온 골드바는 어떻게 할거에요?]

“글쎄···”

[남을 돕고 나서 얻은 거니까 그 돈으로 좀 넓고 좋은 집으로 옮기는 거 어때요?]

“범죄로 얻은 수익이니까 일단 가져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 개인적인 일에 사용하긴 좀 마음에 걸리고 뭔가 좋은 일에 쓰는 게 좋을 것 같아.”

[아, 맞다~ 그렇겠네.]

“일단 이번 일을 하면서 미리 썼던 비용은 다시 챙겨 놨으니까 손해 본 건 없어.”

[아, 맞다. 오빠 비상금 많이 챙겨 놨던데. 아무리 우리가 이혼할 사이이긴 했지만 나 몰래 그래도 되는거에요?]

“아~ 얘기하지 못한 건 미안해.”


지훈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언제부터 모으기 시작한 거에요?]

“2년 전부터.”

[어머, 그럼 우리 사이 나쁘지 않을 때부터 시작한 거잖아요?]

“그런 셈이지. 후후~”

[오빠, 혹시 그 때부터 혼자 독립 할 마음 먹고 있었던 거에요?]

“아니야···”

[섭섭해요. 난 오빠한테 숨기는 거 없었는데, 오빠는 나한테 숨기는 게 있었네. 그 기획서 아르바이트 하느라고 수시로 늦게 들어온거죠?]

“응. 일 하느라고 늦은 건 맞아.”

[우리 사이가 안 좋아지게 된 이유 중에 오빠가 늦게 들어오던 것도 포함되는 거 알죠?]

“응···”

[오빤, 돈 모으는 게 우리 사이보다도 더 중요했어요?]

“···”


점점 은영의 모르스부호 입력 속도가 빨라졌다.

은영은 화가 나기 시작했다.

뭘 하려고 돈을 모으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것을 보면 함께 쓰기 보다는 개인적으로 쓰려는 목적으로 모으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지훈은 지훈대로 은영이 마치 자신을 취조라도 하는 듯이 밀어붙이자 기분이 상했다.

지훈은 항상 은영의 이런 말투가 달갑지 않았다. 마치 어린애처럼 꽁해서는 지훈을 보채고 있는 듯한 태도였다. 자기를 봐 달라고, 자기에게 해명하라고, 자기를 설득해 달라고, 자기를 이해시키라고, 그래서 지훈의 은영에 대한 사랑을 증명해 보이라고.

자신은 가만히 있으면서 모든 것을 지훈에게 해결해 달라고 보채는 듯 한 아이같은 모습에 지훈은 늘 짜증이 났었다. 그러자, 지훈은 이 비상금을 만들기 시작한 애초의 목적을 은영에게 털어 놓기가 싫어졌다.


“사람 일이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거잖아? 그리고, 결국 그런 우려가 현실이 됬고···”

지훈은 이렇게 애매하게 말 해 버렸다.

듣기에 따라서는 언제 독립을 해야 할 지 몰라 돈을 몰래 모으고 있었던 것이고 또 실제로 두 사람이 이혼하게 되지 않았느냐는 걸로 이해될 수 있었다.


은영은 할 말이 없었다.

지훈의 말이 화가 났지만,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는 말에는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결과를 예상했기에 결국 그런 우려가 결과로 나타났던 것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애초에 그런 생각이 없었다면 두 사람은 갈라서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훈은 말을 내뱉자마자 그 순간부터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마치 은영이 살아 있을 때 부부싸움을 하는 것처럼 말 해 버렸잖아? 지금 은영이는 귀신이 되어 있어. 우리에겐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구!’


그냥 사실대로 말 하면 되는데, 왜 그런 말을 해서 은영의 마음을 상하게 한건지···


지훈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실은···, 그건···, 여행 갈 돈을 모으기 위해서였어. 너와 같이 해외여행을 가려고···.”


은영은 여전히 아무런 신호도 보내고 있지 않았다.

그러자 지훈은 말을 계속했다.


“우리 신혼여행 말고는 제대로 된 여행 가 본 적이 없었잖아. 미안하기도 하고, 이렇게 매달 대출이자 갚으면서 푼돈이나 저축해서는 5년 후에도 제대로 된 여행을 못 갈 것 같았어.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 목표는 천만원을 모아서 함께 유럽여행을 가는 것이었지···”


“언젠가 분위기를 봐서 얘기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 할 타이밍을 찾고 있었는데···, 그만 어느 틈엔지 우리 사이가 냉랭해져 있더라고···, 그래서 기회를 놓치고 말았어···”



그러나 더 이상 은영은 말이 없었다.

은영은 이미 지훈의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는 말을 듣자 마자 집을 나와 어디론가 떠돌고 있었다. 도저히 집에 지훈과 함께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날 밤새도록 지훈은 라디오를 틀어놓고 선잠을 잤지만 라디오에서는 아무런 잡음도 들리지 않았다.

다음날도 하루종일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많이 삐졌나···?’


은영이 있어야 물어라도 볼텐데 아무런 소리도 나질 않으니 곁에 있으면서도 말을 안 하는 건지 아니면 어딘가로 가버린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그동안 은영은 귀신이 된 이후로 늘 지훈의 곁에 있으면서 이런 저런 말을 계속 했었다.

아무래도 어디론가 가버린 모양이다.

지훈은 마음이 허전했다. 빈 자리가 더 외롭게 느껴졌다.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은영이 말을 걸어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 견딜 수 없었다.


돌아보면 지훈은 근 한달 동안 은영과 거의 잘 때만 빼고 계속해서 대화를 나눈 것 같았다.

물론 용범, 지은과도 가끔 만났지만 은영이 귀신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숨긴 채 나누는 대화는 무의미하고 형식적인 대화였다.


‘말해야겠다!’


지훈은 지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은영이 살아 있을 때도 은영과 싸우고 나면 두 사람을 다독거려 주던 사람이 지은이었다.

지훈에게 은영 귀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위로 받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지은씨?”

“지훈씨, 안녕하세요?”


지은은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사실 그동안 지은은 지훈에게 전화를 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있었다. 지난번 과음을 한 자신을 살펴주고 간 지훈에게 지은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쑥스러워 먼저 전화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감사하고 동시에 죄송했어요. 제가 너무 취해서 실수를 많이 했죠?” 지은이 먼저 말했다.

“아닙니다. 누구나 술 마시면 그럴 수 있는거죠, 뭐.”

“이해해 주시니 감사해요. 그날은 왜 그리 은영이 생각이 나면서 눈물이 나던지···”

“저도 아직 그래요. 후후~”

“···, 참 근데 그날 저희 집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고 들어오신거죠?”


지훈은 갑자기 진땀이 났다. 귀신이 된 은영이 알려줬다고 말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뭐라고 둘러대지?’


“지은씨 생일이 7월4일이시잖아요. 몇번 실패할 각오로 입력해 본 건데 처음 생일에서 바로 열리더라구요. 하하~”

“제 생일은 어떻게 아셨어요?”

“예전에 은영이가 지은씨 생일이라고 선물사고, 만나러 나간다고 하던 날짜가 기억 나더라구요.”

“기억력이 좋으신가봐요. 아무리 그래도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시다니···”

“은영이 친구라고 지은씨 밖에 더 있나요?”

“그렇군요···, 은영이는 정말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고 나니까 더 애틋한 마음이 드는 친구에요···”

“···”

“분위기가 숙연해졌네요. 훗~ 참, 무슨 일로 전화 주셨어요?”

“아~ 그냥요. 저녁이나 같이 하시자고···, 은영이도 그렇지만 저도 여러 사람 만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은영이 이야기를 같이 나눌 수 있는 친구는 지은씨 밖에 없네요. 지은씨는 은영이 친구니까 제 친구이기도 한 거 잖아요···”

“그럼요. 전 지훈씨라면 언제든 환영이에요. 그럼 이따 퇴근 후에 만나요. 평일이니까 저녁은 좀 힘들 것 같고 8시쯤에 만나서 맥주 한잔 해요.”

“좋습니다. 그럼 베네치아에서 저녁은 말고 맥주만 한잔 하시죠.”

“네. 이따 뵈요~”


지은은 기뻤다.

지난 번 자기 집에서 술에 취해 있었을 때 찾아와 침대에 눕혀주던 그의 손길이 자꾸만 생각났다.

지훈은 자기가 가장 좋아하던 친구의 남편이다.

그런 지훈에게 자기의 마음이 조금씩 끌리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은영이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은영이 친구라고 지은씨 밖에 더 있나요?’


방금 전 지훈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은영은 자기를 둘도 없는 친구로 생각해줬는데, 그 친구의 남자에게 마음을 둔다는 것은 어쩐지···


솔직한 지은의 심정은 친구의 남편인데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절반, 절친의 남편이기에 자신이 가장 잘 이해하고 보살필 수 있다는 마음이 절반이었다.



* * *



지훈과 지은은 베네치아에서 만났다.

간단한 이탈리아식 안주를 곁들여 두 사람은 맥주를 마셨다.

은영이 어딘가 바람 쏘이러 멀리 간 것으로 판단하고 지훈도 라디오를 끈 채 지은과 만났다.

은영과의 대화수단인 라디오를 끄자 마치 24시간 감시 당하던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것 같은 홀가분함을 느꼈다.


“예전에 은영이랑 싸우고 나면 지은씨가 달래고 화해시켜 주시고 하셨었는데···”

“호호~ 그랬죠···”

“오늘도 그래 주셨으면 싶은 심정이네요. 후후~”

“이제 고인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싸울 꺼리가 남았나요?”

“실은 어제도 싸웠어요.”

“네에···?”

“아~ 꿈···, 속에서요. 후후~”

“아~ 전 또.”

“아직도 은영이를 마음 속에서 정리하지 못하신 거 같아요.”

“네. 정리가 잘 안되네요. 고인도 마찬가지 일 거에요. 딱 부러지게 이혼이라도 하고 갔으면 귀신이 되어서 마음이라도 편할텐데···”

“귀신이라뇨··· 은영이는 착하니까 지금쯤 천당 가서 잘 지내고 있을 거에요. 천당에서 좋은 남자 만나서 새색시 되어 살고 있을지도 몰라요! 호호~”

“후후~ 그럴까요?···”

“그럼요. 그러니까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지훈씨도 빨리 새 사람 구하셔서 삶에 안정을 찾으세요. 자꾸 이상한 꿈만 꾸지 마시고요.”


“···, 지은씨는 혹시 귀신의 존재를 믿으시나요?”

“귀신이요···? 글쎄요··· 있는 것 같긴 해요. 가끔 아무도 없는데 기분이 오싹 하면서 뭔가 있는 것 같은 느낌 들 때 있잖아요. 영화나 드라마에도 자주 나오고··· 저야 교회나 성당 같은데는 안 다니니까 신앙적으로는 잘 모르겠구요···”

“네에···”

“근데 귀신은 갑자기 왜요? 은영이 귀신이라도 보셨어요?”

“아뇨. 보진 못했습니다···”

“그럼 만나긴 하셨단 소린가요?”

“만났죠···”

“네에? 아~ 꿈에서요? 호호~”

“하하~ 꿈··· 그렇죠··· 꿈에서···후후~”

“꿈에서 은영이가 뭐라던가요?”

“음···, 자기는 아직 하늘나라에 못 들어갔대요. 이승에서 매듭이 완전히 풀리지를 않아서 승천을 못했다는군요.”

“호호~ 재밌다. 끈이 안 풀려서 못 올라갔다···, 헬륨 풍선 생각이 나네요. 그럼 그 끈을 풀어줘야겠네요.”

“그렇죠. 저더러 계속 끈을 풀어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풀어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호호~ 은영이가 말도 해요? 꿈에 나타나서 자기 몸에 묶인 끈을 풀어 달라고? 지훈씨도 참··· 호호호호~”


지은은 지훈의 말이 우습다고 생각했는지 계속해서 까르르 웃었다.


바로 그 때,


‘파팟!~~~’


지훈과 지은이 앉아 있는 테이블 바로 위에서 아래를 비추고 있던 샹들리에가 꺼졌다.


“어머나! 깜짝이야.”

지은이 깜짝 놀라 외쳤다.


‘은영이가 돌아왔구나!’


지훈은 테이블 위에 있는 호출버튼을 눌러 종업원을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여기 전구가 갑자기 나간 것 같은데요···”

“아, 예. 대단히 죄송합니다. 이게 높이가 좀 있어서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작업을 해야 하거든요. 저희가 옆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러시죠···”

“대단히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죠.”


종업원 두명이 와서 신속하게 자리를 옆 테이블로 옮겨 주었다.

지훈과 지은은 세팅된 옆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이것 보세요, 지은씨. 방금 테이블에 샹들리에 꺼버린거 은영이가 한 거에요.”

“아직도 귀신 이야기세요? 지훈씨도 짖궂으시다··· 호호~”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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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못하고 죽은 귀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9 [완결] 하늘나라로 18.07.16 286 3 17쪽
28 큐피드의 화살 +2 18.07.14 251 3 13쪽
27 현우 이야기 4 +2 18.02.28 400 10 13쪽
26 현우 이야기 3 +4 18.02.27 325 9 12쪽
25 현우 이야기 2 +2 18.02.24 386 6 12쪽
24 현우 이야기 1 +2 18.02.23 367 6 12쪽
23 지은도 알게 되다 18.02.22 392 9 12쪽
22 수목장 18.02.21 357 9 11쪽
21 은영의 능력 +2 18.02.20 558 10 12쪽
20 은영의 비밀 18.02.18 402 8 12쪽
19 이혼식 +2 18.02.17 501 8 12쪽
» 대화가 필요해 18.02.15 451 8 12쪽
17 선미 이야기 3 18.02.14 461 8 13쪽
16 선미 이야기 2 18.02.13 430 8 12쪽
15 선미 이야기 1 18.02.12 459 8 12쪽
14 친구에서 경쟁자로 18.02.09 477 8 12쪽
13 귀신과의 조우 3 18.02.06 481 9 12쪽
12 귀신과의 조우 2 18.02.05 467 8 11쪽
11 귀신과의 조우 1 18.02.05 500 8 11쪽
10 지훈의 아르바이트 18.02.04 502 9 12쪽
9 산 사람은 살아야 18.02.03 527 8 13쪽
8 작은 복수 18.02.02 520 8 12쪽
7 회상 : 다툼 18.02.01 514 6 12쪽
6 친구들을 사귀다 18.01.31 538 9 11쪽
5 홀로서기 18.01.26 614 10 12쪽
4 회상 : 첫 만남 18.01.25 574 5 12쪽
3 귀신이 되다 18.01.25 598 7 12쪽
2 장례식 18.01.24 697 9 12쪽
1 이혼 하는 날 18.01.23 939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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