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못하고 죽은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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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
작품등록일 :
2018.01.23 11:44
최근연재일 :
2018.07.1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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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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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은영의 능력

DUMMY

“은영아.”

[네, 오빠.]

“나 1년간 휴직할래.”

[왜요?]

“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1년도 채 안 남았는데, 그 기간 중에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일하면서 보내고 싶지 않아. 좀 더 너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어.”

[그럼 생활은 어떻게 하려구요?]

“나 비상금 저축해 온 거 있잖아. 거기다 집에서 기획서 작성 아르바이트를 조금씩 하면 되고 모자라면 지난번에 목사네서 가져온 골드바에서 조금 꾸어다 쓰지 뭐. 나중에 다시 제대로 일을 시작해서 돈을 벌게 되면 갚아 놓으면 될테니까.”

[그럼 그렇게 해요.]


다음날, 지훈은 회사에 가서 박부장에게 1년간 휴직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했다.


“휴직? 그런 건 안돼. 그만 두면 모를까.”

“그럼 그만 두겠습니다.”

“정말? 한번 그만두면 요즘 다시 취업 힘들껄···”

“상관없습니다. 부장님 같은 분 밑에서는 다시 일하기 싫으니까요.”

“뭐, 뭐야? 자네 그걸 말이라고 해?”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동안 말씀을 안 드렸을 뿐이죠. 그동안 부장님이 밑에 직원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한번 돌아 보십시오. 어쨌든 오늘부로 그만 두겠습니다.”

“저, 저, 저런 버르장머리 하고는···”


황당해 하는 박부장을 뒤로 하고 지훈은 자리로 돌아와 곧바로 사표를 썼다.

정리는 의외로 간단했다.

5년을 근무한 회사였지만, 나올 때 짐은 고작 작은 박스 하나 분량 뿐이었다.

개인 서랍을 정리하고 있을 때 나미영대리가 조심스럽게 지훈의 자리로 찾아왔다.


“과장님, 회사 그만두세요?”

“어, 나대리. 그렇게 됬어.”

“섭섭하네요.”

“뭐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지. 나대리는 회사 열심히 다니고. 후후~”

“네. 나중에 전화 드릴게요. 저녁 때 맥주 한잔 해요. 제가 살게요.”

“그래. 나중에 연락 하자구. 친한 사람들끼리 맥주 한잔 하자.”

“제가 엘리베이터까지 들어다 드릴게요.”


그날 퇴근시간이 다가올 무렵 박부장에게 집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 우리집 전자제품들이 몽땅 고장이 났어요. 집에 전등도 하나도 안 들어오구.”

“뭐야, 그쪽에 벼락 쳤어? 아님 누전인가?”

“벼락은 친 적이 없고, 관리사무소에서 와서 점검해 줬는데 누전도 아니래요.”

“아이 씨, 왜 그러지···? 가만, 거기 전등이 안 들어온다구? 여기도 내 자리 주변에 전등이 다 나간 적이 있었는데···, 이거 요즘 한전에서 전기공급이 제대로 안되고 있는 모양이군. 일단 퇴근할게, 저녁은 나가서 사먹자구···”


박부장네 집의 전자제품을 모두 수리하는데는 일주일 이상이 걸렸다.


이렇게 해서 지훈은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재택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집에서 차분히 기획서를 쓰기 시작하니 업무효율이 높아져 어느새 기획서 작업 만으로도 과거에 회사에서 받던 월급에 육박하는 수입을 올리게 되었다.



* * *



[어휴, 힘들어.]

“모가?”

[모르스부호를 만들기 위해서 계속 손을 이리저리 흔들어야 하는게 너무 힘들고 귀찮아요.]

“귀신도 힘이 들어?”

[안 되 봐서 모르죠? 저도 되고 보니 귀신도 힘들고 지치고 화나고 슬프고 그러네요···]

“그럼 좀 더 편한 방법을 좀 찾아봐야겠다.”

[오빠가 좀 찾아줘요.]

“전기의 흐름이나 전자파의 흐름을 교란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단 말이지? 흠···”


지훈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은영아, 지금 여기 벽에 220V 콘센트에 손가락 한번 집어 넣어 봐.”

[뭐라구요? 오빠, 미쳤어요? 나 감전되라구요?]

“감전되어 봐야 죽기 밖에 더하겠어? 그리고 넌 이미 죽었고.”

[오빠! 한번 더 죽을 지 어떻게 알아요? 혹시 이번엔 곧바로 지옥행일지도.]

“음···그럼 잠시만.”


지훈은 소형 후레시를 꺼내와서는 분해해서 밧데리와 꼬마전구로 분리했다. 그리고, 밧데리에서 꼬마전구까지 전선을 연결하고 불이 들어오도록 해 두었다.


“자, 이건 전류가 훨씬 약한거니까 안심해. 여기 전선을 네 손으로 만져서 전류의 흐름이 느껴지나 봐.”

[해 볼게요···]

“느껴져?”

[네. 전류의 흐름이 느껴져요!]

“그럼 한번 전류의 흐름을 조절해봐. 막았다 풀었다. 네가 라디오 전파를 움직였던 것처럼.”

[어떻게요?]

“그건 나도 모르지. 넌 이미 전파를 교란시킨 경험이 있으니까 이것도 비슷한 느낌으로 한번 해 봐”

[해 볼게요.]


잠시 후 전구의 불빛이 살짝 약해졌다 다시 밝아졌다.


[오! 돼요!]

“좋았어! 그럼 이제 이 불빛으로 모르스 부호를 만들어봐.”


불빛은 처음에는 불규칙적으로 점멸을 거듭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꺼졌다 켜졌다 하는 것이 명확해지고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되.는.것.같.아.요.]


이번에 은영이 보낸 메시지는 불빛의 점멸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성공이야!”

[오빠, 정말 이걸로도 모르스부호를 만들어 낼 수 있네요? 기뻐요.]

“이젠 훨씬 편하게 얘기 할 수 있게 됬지?”

[네. 호호호]


처음으로 은영이 웃음 소리를 모르스신호로 보내왔다. 지훈도 기뻤다.


“자, 그럼 이제 조금만 더 나아가보자. 온,오프 스위치 역할을 해 낼 수 있다는 건 결국 트랜지스터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뜻이야.”

[그게 무슨 뜻이죠?]

“단순히 전구를 끄고 켜는 것 뿐 아니라 전기기구나 전자기기를 제어할 수 있다는 뜻이지!”

[정말요?}

“응. 생각보다 너의 능력은 훨씬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몰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니 기뻐요.]

“그래. 차근차근 시험해보자.”


지훈은 두 눈을 반짝이며 이런 저런 가능성들을 상상해 보기 시작했다.



이제 지훈은 더이상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꽂고 다닐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은영은 다양한 방법으로 지훈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지훈 주변의 조명을 이용하는 것이다.

지훈이 식탁에 앉아 있을 때 은영은 식탁등을 점멸하여 모르스부호를 만들어 냈다.

지훈이 화장실에 있을 때는 화장실의 전등을 점멸하면 되었다.


지훈은 프로그래밍을 하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모르스부호를 입력하면 그것을 글자로 변환하여 스마트폰으로 쏘아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손바닥 절반만 한 미니보드에 설치했다.

이제 지훈은 가방에 미니보드를 넣고 다니기만 하면 스마트폰으로 은영과 메신저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지훈은 미니보드를 집에도 하나 만들어 두어 은영은 집에 있고 지훈은 밖에 있을 때에도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했다.


[세상 참 좋아졌네요. 이렇게 편한 걸.]

“그러게. 정말 좋네.”


스마트폰의 텍스트를 읽어주는 기능을 활용하면 비록 기계음이지만 말로 들을 수 있어서, 실제로 은영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첨단 기술의 접목으로 이제 귀신과 말대 말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빠, 오늘은 우리 결혼 전에 데이트 하던 곳 한번 가보지 않을래요?]

“그래. 남산타워 한번 같이 가 볼까?”

[좋아요.]


지훈은 차를 몰고 남산타워로 갔다. 남산 입구쪽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팔각정까지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예전에 여기를 둘이서 천천히 걸어 올라가곤 했지. 꼭대기까지 가면 늘 넌 지쳐있었구.”

[맞아요. 올라가서 편의점에서 꼭 캔커피를 하나 마셔야 기운이 나곤 했죠.]


지훈은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예전처럼 편의점에 들러 캔커피 두개를 샀다.


“우리가 달아 놓은 자물쇠 아직도 있을까?”

[우리 한번 찾아봐요.]


지훈은 전망대 쪽으로 가서 수많은 자물쇠들 가운데에서 과거에 은영과 함께 달아놓았던 자물쇠를 찾아 보았다. 거기에는 수많은 연인들이 기념으로 달아놓은 자물쇠들이 매달려 있었다.


“찾았다!”

[어머, 그러네요. 아직 있었네. 훗~]


약간 녹이 슬긴 했지만 그들이 매달아 놓은 열쇠고리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었다.


[오빠, 옛날에 같이 본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생각나요?]

“생각나지···”

[거기에 보면 기억들이 구슬 형태로 높다란 벽에 저장되어 있잖아요?]

“맞아···”

[그 때는 아이들이 떠올릴 만 한 좋은 아이디어네, 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렇게 조각조각의 기억들이 우리 마음 속에 보관되어 있는 것 같아요. 잊고 있었는데 지금 이렇게 옛날 기억들이 떠오르는 걸 보면···]

“정말 그렇구나. 모든 즐거웠던 기억들은 잊혀지지 않고 우리 마음 속에 저장되어 있었나봐···”

[우리가 치열하게 싸우고 이혼을 결정할 때는 왜 이런 기억들이 생각나지 않았나 몰라요. 이렇게 아름답고 평온했던 기억을···, 이 기억들을 떠올리기만 했어도 우리는 아마 금방 화해했을 거에요.]

“그러게 말이야. 오늘의 이 기억도 또 다시 기억구슬이 되어 우리 마음 속에 저장되겠지···”


[하지만 오래 된 기억들은 쓰레기장에 버려져 영원히 지워지잖아요···]

“그래. 계속 기억을 떠올리면 그런 기억들은 계속 유지되고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면 그런 기억들은 쓰레기 소각장 같은데 버려졌었지.”

[1년 후에 내가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나면 오빠도 서서히 절 잊어버리겠죠···?]

“언제까지고 널 잊지 않을게.”

[약속 해 줄 수 있어요?]

“약속할게.”


지훈은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내 손가락에 새끼 손가락 걸어.”

[걸었어요.]


은영도 새끼손가락을 지훈의 손가락에 거는 시늉을 했다.

지훈은 새끼손가락을 구부렸다.


“약속!”

[약속!]


지훈과 은영은 부드러워진 저녁 햇살 속에서 산들바람을 느끼며 오랫동안 팔각정 전망대에서 도시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바람이 참 부드러워요.]

“자 그럼 타워에 올라가 볼까?”

[그래요.]


지훈은 티켓을 끊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타워 꼭대기 전망대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예전에 두 사람은 서울시내를 둘러보며 어디에 신혼집을 얻을지 이야기하곤 했다.

도넛형태로 된 전망대는 천천히 회전했다. 지훈은 전망대가 몇번을 회전하여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가만히 앉아 바깥 경치를 구경했다.


지훈과 은영은 연애 시절 이곳 전망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었고, 결혼1주년 기념일에도 이곳에서 식사를 했었다.

지훈은 이제 레스토랑으로 올라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은영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할 생각이었다.



바로 그 때,

핸드폰이 울렸다.

지은이었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오빠, 받아요. 지은이 기다리겠어요.” 라며 은영이 먼저 말했다.

지훈은 천천히 스마트폰의 초록색 아이콘을 눌렀다.


“지훈씨?”

“네. 지은씨 웬일이에요?”

“꼭 일이 있어야 전화 하나요? 전 지훈씨가 전화 주기 기다리고 있었는데···”

“미안해요. 그동안 좀 정신이 없었네요···”

“제가 지난번엔 실수를 했죠···?”

“아뇨. 좀 당황하긴 했지만, 뭐···”

“맞아요. 사실 실수 아니었어요. 저의 본 마음이었어요.”

“아하, 네에···”

“여자가 고백을 하는데 ‘아하, 네’가 뭐에요?”

“고, 고백이었나요···?”

“고백이었죠.”

“아, 네···.”


지훈은 이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을 은영이 자꾸만 신경 쓰여 진땀이 흘렀다.


“근데 연락이 없으시기에···”

“아. 제가 실은 그동안에 일이 좀 있었습니다. 실은 회사를 그만 뒀거든요.”

“네? 왜요?”

“그 전부터 그만두려고 하긴 했는데, 은영이 장례 치르고 하느라구 오히려 좀 늦어진 거에요.”

“아, 그러셨구나. 그럼 다른 직장 구하셨나요?”

“아뇨. 당분간 그냥 집에서 아르바이트 좀 하면서 지내려구요. 저, 지은씨 제가 지금 누굴 만나는 중이어서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만나서 하죠. 연락 드릴게요.”

“어머, 미팅 중이셨어요? 말씀하시지···, 그럼 나중에 연락 주세요.”

“네, 들어가세요.”


지훈은 겨우 전화를 끊는데 성공했다.

당황스러웠다.

지은이 이렇게 급하게 들이 댈 줄은 몰랐다.

지훈은 상황을 수습하는 기분으로 서둘러 은영에게 말했다.


“우리 위층 레스토랑으로 올라가서 저, 저녁 먹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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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못하고 죽은 귀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9 [완결] 하늘나라로 18.07.16 286 3 17쪽
28 큐피드의 화살 +2 18.07.14 251 3 13쪽
27 현우 이야기 4 +2 18.02.28 400 10 13쪽
26 현우 이야기 3 +4 18.02.27 325 9 12쪽
25 현우 이야기 2 +2 18.02.24 385 6 12쪽
24 현우 이야기 1 +2 18.02.23 367 6 12쪽
23 지은도 알게 되다 18.02.22 392 9 12쪽
22 수목장 18.02.21 356 9 11쪽
» 은영의 능력 +2 18.02.20 558 10 12쪽
20 은영의 비밀 18.02.18 402 8 12쪽
19 이혼식 +2 18.02.17 501 8 12쪽
18 대화가 필요해 18.02.15 450 8 12쪽
17 선미 이야기 3 18.02.14 461 8 13쪽
16 선미 이야기 2 18.02.13 430 8 12쪽
15 선미 이야기 1 18.02.12 459 8 12쪽
14 친구에서 경쟁자로 18.02.09 477 8 12쪽
13 귀신과의 조우 3 18.02.06 480 9 12쪽
12 귀신과의 조우 2 18.02.05 466 8 11쪽
11 귀신과의 조우 1 18.02.05 500 8 11쪽
10 지훈의 아르바이트 18.02.04 502 9 12쪽
9 산 사람은 살아야 18.02.03 526 8 13쪽
8 작은 복수 18.02.02 519 8 12쪽
7 회상 : 다툼 18.02.01 514 6 12쪽
6 친구들을 사귀다 18.01.31 537 9 11쪽
5 홀로서기 18.01.26 614 10 12쪽
4 회상 : 첫 만남 18.01.25 573 5 12쪽
3 귀신이 되다 18.01.25 598 7 12쪽
2 장례식 18.01.24 697 9 12쪽
1 이혼 하는 날 18.01.23 938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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