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뚱닭
작품등록일 :
2018.01.25 22:10
최근연재일 :
2022.10.23 19:57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9,187
추천수 :
73
글자수 :
423,472

작성
18.02.06 19:13
조회
203
추천
1
글자
17쪽

4장 - 10. 빛보라

DUMMY

덜컹~ 끼이이.. 덜컹~ 끼이이..


"와아.. 걸어 다니는 소형 얼음상자라니~ 이런 걸 가정용으로 만든다면 엄청난 인기를 끌겠어요."


"하하~ 공주님. 그거 제가 알기론, 생각보다 전력을 많이 소모한다고 하더군요. 보급되더라도 아마 애물단지가 될 겁니다."


담쟁이덩굴이 가득 감긴 작은 도서관에서 두 사람은 디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디니의 몸통 부분에 달린 작은 문을 반복해서 여닫아 보던 퀴노아는 일반인이 매우 보기 힘든 고대 생명체를 이리저리 훑어보며, 커다란 보라색 눈동자를 반짝이고 있었다.


"원래 골렘이라고 부르는 생물들은 주변의 환경에 맞도록 형체를 맞추기에, 지역에 따라서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고 합니다."


"으음.. 그럼, 만약에 거대한 숲속에서 발견됐다면 오래된 나뭇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었겠네요. 그러면 정말 내 맘에 쏙들었을텐데."


"다른 두 사람은 아마 데일하르에 여행를 갔다 와서, 그리 놀라지는 않을겁니다. 거긴 이런것보다 볼만한 게 아주 많으니까요."


"그나저나, 학습하는 생물이라.. '감정'이란 건 우리들도 딱 이거다! 하고 알려줄 수 있는 게 없는데.. 어떻게 하죠?"


"그래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고등생물이기에, 그 녀석도 우리들과 많이 어울리다 보면 뭔가 깨닫는 날이 있을 겁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디니는 도서관 안에서 어린아이들이 많이 볼만한 동화책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딱딱한 비문학만 읽게 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책을 보고, 복합적인 연산작용을 통해 전혀 다른 시선을 가질 수도 있다는 포디반의 권유 때문이었다.


"아참! 그 성자님이 유품을 남기셨다고 하셨는데요. 무언가 특별한 의미라도 숨어있을까요?"


"흐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가죽책은 하몬의 어디를 돌아다녀도 쉽게 볼 수 있는 경전이고, 할아버님이 특별히 표시한 부분은 없는 걸 보니 그냥 즐겨 읽으셨던 것 같습니다."


"오빠는 성자님과 살면서 뭔가, 특별히 철학적인 가르침을 얻으신 게 있나요?"


"하하.. 아뇨. 안타깝게도 저는 전혀 이어받은 뜻이 없습니다. 그저, 마을의 촌장님 집에서 낡은 전공서적이나 읽고, 여느 때와 같이 모래 먼지를 박차며 뛰어다닌 기억밖에 없죠. 아마 저보다 그의 곁에 더 오래 있었던 디니가 더 사람답게 살았을 겁니다."


"푸흡~ 너무 자책하진 말아요. 오빠도 충분히 사람다운 면이 있어 보여요. 그 고무줄같이 질긴 생명력이요!"


"흠흠.. 누가 들으면 제가 불사신이라도 되는 줄 알겠군요. 아무튼 저도 오랜만에 제대로 된 동화책을 읽어봐야겠습니다."


"어머, 그것참 낭만적인 폭탄발언 이시네요."


따스한 햇볕을 실은 쌀쌀한 봄바람은 모슬렉을 놀이터로 삼고 개구장이 처럼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돌쟁반에 고여서 아직 얼어있는 웅덩이에서는 개구리들이 미끈한 물갈퀴를 스케이트 삼고, 푸르스름한 달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신의 춤사위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포디반은 가끔 마을의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머리를 식히곤 했는데, 오늘은 특별한 일이라도 있었는지 새하얀 얼굴에 눈물이나 별 모양을 찍어서 누가 봐도 뚜렷한 광대의 모습이었다.


"젊은이, 꼭 어디서 크림파이라도 맞은 모습 같구먼. 꽤 유쾌한 하루를 보냈나 보이. 껄껄~"


"하하~ 위인도 가끔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길에 들어서서 광명을 찾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도 오랜만에 크게 웃고 싶어졌습니다."


"형, 성자님도 분명 즐겁게 여행을 떠나셨을 거예요! 마을의 큰 문제도 해결되고 손자들도 자랑스럽게 성장했잖아요."


"훗~ 루반, 너도 정말 대단한 녀석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그곳에 뛰어들다니. 우리는 정말 전생에 불나방이었을지도 모르겠어."


"껄껄~ 그나저나, 이 녀석은 어떻게 할 셈이냐? 골렘은 아무리 똑똑해지더라도 스스로 동기를 갖지 못하는 슬픈 생명체란다. 아마 내버려두면 녀석의 시간은 또다시 멈춰버릴 게야."


"저도 그것 때문에 계속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데리고 다니는 게 가장 낫다는 결론을 얻었죠. 더이상 돌봐줄 만한 사람도 없고.. 떠나라고 일러줘도 이 녀석은 어릴 적의 저같이 방황하다가 쓸쓸히 모래더미 속에 잠들어 버릴 겁니다."


디니는 그들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데굴데굴~ 창고 쪽으로 굴러 들어가서 다양한 원석들을 자기가 구성하던 돌멩이와 바꿔서 여기저기 맞춰보고 있었다. 마치 새 옷을 입어보고 들떠서 거울에 다양한 자세를 잡아보는 말괄량이처럼.


무덤덤하게 지내던 포디반은 남겨두었다가 읽기 시작한 신문과 친구들의 편지로 타문하르트에서 많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늦게나마 접하게 되었다. 그는 오랜만에 마음을 굳게 먹고 디니와 함께 '타문하르트'로 가는 마차에 올라탔다.


사고가 일어난 곳의 치료용 천막에서는 여기저기 찢어지고 그슬린 광부들을 지켜보는 가족들이 주저앉아있거나 흑요석같이 검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광산의 입구에서는 마지막으로 완전히 매몰된 인원을 구출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곳에선 데일하르에서 지원 나온 드워프의 중장비를 통한 파쇄작업과 연신 삽과 곡괭이가 힘차게 내리꽂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구조대들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탈진으로 쓰러지는 걸 참으려고 끊임없이 소방부의 기도문을 작게 읊조리고 있었다.


* * *


콰르릉~ 촤아아~ 우지끈!


"으아악~ 살려줘!"


"엘라하임이시여 저에게 부디 굳건한 의지를···"


"4층 '나'동 통로가 무너진다! 모두 대피해~ 치직.. 지휘부! 중상자 발생. 요정들의 동반구조를 요청한다! 치직.."


수정동굴은 혈관에 침입자가 들어오는 걸 불쾌하게 여긴 듯이, 일제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서릿발 같은 수정들이 천장에서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리고, 시뻘건 용암은 샐러맨더처럼 불타는 혀를 날름거리며 유독가스와 함께 탐사원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치지직.. 칙..


"비숍. 지금 시간부로 긴급상황체제로 전환합니다. 섬광조 인원의 1/3을 신속하게 진원지로 파견해 주세요!"


"예~ 대장!"


파견조로 선택된 요정들은 피와 화산재로 얼룩진 원피스와 앞치마를 거리낌 없이 벗어던지고, 방열성 재질로 이루어진 구조용 슈트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소꿉놀이 할때 들고다닐 것 같은 작은 구급가방과 방독면을 얼굴에 뒤집어쓴 그들은 선두에 서는 비숍을 따라서 푸른색 궤적을 남기며 수정동굴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상에 있던 천막들도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부상자가 간이침대에서 떨어지는걸 막기 위해 남은 요정들은 짝을 지어서 침대의 난간을 붙들었다.


지휘부에 있던 엘프들은 지질 활동 탐지기의 곡선이 크게 요동치는 걸 확인하고 바닥에 쓰러지면서도 무전기를 붙잡고 각 위치에 있는 조장들에게 현재 상황을 전파하고 있었다.


"후욱.. 후욱.. 공기가 뜨겁고 무거워지는 걸 보니, 슬슬 시작되나 보군. 통신반! 위쪽의 특별한 연락이 있나?"


"예! 방금 지휘부에서 긴급체제로 돌입한다고 수신을 받았습니다. 저희보다 아래쪽에 있는 구역에서 사고가 생겼다고 합니다!"


"더 작업을 진행하는 건 무리겠어. 다들! 신속하게 철수한다. 모두 떨어지는 수정을 맞지 않도록 배낭을 앞으로 들어!"


콰아아앙! 푸쉬이이~ 솨아악!


"으아악~ 피부가 뜨거워! 평범한 증기가 아닌가 봐. 엄마~ 엉엉~"


"사내자식이 울기는. 뚝 그쳐! 평범한 산성 가스야. 과도하게 들이마시지만 않으면 버틸만해. 이거라도 쓰자구."


고통스럽게 우는 어린 조사단원을 달래던 조장은 알칼리성 용액이 담긴 팩을 뜯어서 그의 팔에 가볍게 뿌렸다.


시커먼 땀이 흘러내리던 조장은 자신의 배낭을 구석에 던져버리고 팔과 다리가 살짝 녹아내린 그를 등에 업었다. 그리고 선두에 서서 조원들의 흐트러진 사기를 가다듬으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크윽.. 이봐! 슬슬 다른 조들도 철수하기로 한 모양이야. 아쉽지만 우리의 일대기도 여기서 마침표를 찍어야 할 것 같네."


"후훗.. 차딘. 여긴 누가 와도 의지가 가득 차올라서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 것 같아. 무엇을 그리 꼭꼭 숨기고 싶은지, 아주 격하게도 몸을 흔들어 대는군."


"그러게 말이야. 이렇게만 되면 괜히 자연의 위대함을 되새기게 된다니.. 정말 크고 깊게 판 것 같지만 밖에서 가늠하면, 몇십 년 동안 겨우 이 녀석의 꼬리만 붙잡고 그렇게 야단법석을 떨었으니 말이네."


차딘과 조원들은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닦고 접이식 삽과 곡괭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쪽이 속한 조는 지질탐사에 중점을 두고 각 길드에서 최소 10년은 귀금속류 원석과 대량의 일반자원을 찾아다니던 백전노장들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가장 깊은 4층의 끝자락에 배정받고 서 있는 그들의 팔뚝에는 색도 다 빠지고 너덜너덜해진 베르딘 국가의 문장이 자랑스럽게 박혀있었다.


피이이잉~


청년은 동굴이 무너지는 와중에 한 사람이 겨우 들어 갈만한 틈에서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무언가를 보았다. 그것은 미처 다 빠져나오지 못한 용암 줄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섬광이나 평소에 그들이 아무 데서나 볼 수 있었던 잡스러운 광석의 회광반조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차딘, 조원들을 데리고 먼저 빠져나가. 아무래도.. 마지막으로 꼭 확인하고 싶은 일이 생겼어."


"뭐?! 어떻게 우리가 조장을 두고 떠날 수 있겠나! 그리고 어서 빠져나가야 하네. 10분도 안 돼서 여긴 완전히 무너질 거라구!"


"차딘!! 정말, 마지막 부탁이야.. 나의 지레짐작으로 우리 조 전체가 개죽음당하는걸 원치 않아. 물론, 확실해도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는 거고."


딸깍~ 바스락..


청년은 소도구 주머니에서 색이 누렇게 변하고 해진 자신의 길드증을 꺼내서 차딘의 손에 세게 움켜쥐어 주었다.


"자네.. 정말!"


"그동안의 여행, 꽤 즐거웠어. 가!"


타악! 털썩~


그는 붙잡으려는 차딘을 세게 밀쳐내고 구멍이 뚫린 동굴의 끝쪽으로 달렸다. 차딘은 그를 말리려고 재빨리 일어났지만, 청년이 뛰어간 방향은 거대한 수정들이 무너지고 천장부근에서 산성가스들이 엄청난 기세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 * *


틱.. 탁.. 틱.. 탁..


"드워프님, 폭발물로 낙석을 부숴버리면 안됩니까..? 현재의 진행속도라면 내부의 공기가 다 떨어져서 전부다 질식사할 위험이 있습니다!"


"자네, 큰일 날 소리를 하는군! 아무리 자네가 특수화학 전공자라 해도 그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네. 진원지가 어딘지도 모르는 준활화성 지대에서 폭탄을 터뜨린다는 건 내부에서 쏟아져 나오는 용암을 차단하거나, 내부의 안전을 포기하고 주사위를 던지는 거랑 다를바가 없다구."


포디반은 흔들리는 동굴의 입구 앞에서 인상을 쓰며 맨손으로 연신 벽을 갈겼다. 평생을 바쳐온 연구가 힘들 때 도와주던 주민들이 위험해 처했을 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접하자, 자신에게 크나큰 허탈감과 화가 밀려온 것이었다.


"크흑.. 정말.. 이렇게 무력하다니.. 남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신념 하나로 평생을 바쳤는데.."


"칙.. 치직.. 주인님.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당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사람입니까..? 치직.."


"흑.. 흐흑.. 내가 재료 산다고 돈이 없어서 굶고 있으면 그들은 내게 빵을 내밀었고.. 구하기 힘든 재료가 있으면 무작정 곡괭이를 들고 뭐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불구덩이로 뛰어들었어... 아주.. 바보 같은 사람들이었지..."


"치지직.. 연산해보니 저의 일반적인 가용범위를 벗어나는 상황입니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큰 주인님의 뜻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흐윽.. 뭐.. 뭐라구..?"


다각~ 다각~ 다각~


디니는 더이상 대답을 하지 않고 거대한 낙석이 막고 있는 동굴의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의 몸에 박혀있던 푸른 구슬은 서서히 붉은 빛으로 바뀌었고, 다양한 광석을 두른 온몸에서 오색찬란한 광채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디.. 디니! 뭘 하려는거야..?! 돌아와~!"


그는 뛰어가서 말리려고 했지만, 디니의 작은 손짓에 반투명한 장막이 그를 뒤로 밀쳐서 넘어트리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성자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끊임없이 눈물을 쏟아내며, 깨진 안경을 쓴 시선으로 연신 벽을 두드렸다.


틱.. 탁.. 티익.. 타악.. 티이익.. 타..


포디반이 바지 주머니에 들고다니던 낡은 은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던 속도는 서서히 느려졌다. 아주 천천히..


황금빛 종착지에 도착한 순례자는 그렇게 서서히 진리의 문을 열어젖히고, 안쪽에서는 서서히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문의 안쪽에서는 멀고 먼 또 다른 여정을 떠나기 위해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자가 주름진 팔을 부드럽게 내밀었고 디니는 그를 향해 조금씩 팔을 뻗었다.


"디니! 안돼~! 돌아와! 넌 아직 네가 원하는 걸 찾지 못했잖아!!!"


"치직... 이제서야.. 겨우.. 큰 주인님의 뜻을 알 것 같습니다. 칙... 전부는 아닐지라도.."


은시계는 마법이라도 부렸는지,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하~ 늦었네 늦었어. 루반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의욕만 앞섰구나!'


# # #


찾아주시기 전, 저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지어주시기 전, 저는 무엇이든 품었습니다.


알려주시기 전, 저는 달리 나타난 자를 보았습니다.


떠나시기 전, 저는 남겨두신 것을 찾았습니다.


멈춰서기 전, 저는 이제야 겨우 느꼈습니다.


# # #


청년은 수많은 황금빛 알갱이가 박혀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찬란한 광석을 들어 올렸고, 자신의 품에서 작은 사진을 꺼냈다.


그것은 갓 태어난 아기를 품고 잔잔한 미소와 함께 하염없이 울고 있던 자신이었다.


디니는 달아오르는 가슴에 짧은 돌멩이 팔을 얹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등지며 털썩 주저앉았고, 흐뭇한 마음으로 각자의 소중한 것을 품곤 고개를 떨궜다.


타아악.. 티익.. 타악.. 틱..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디니!!!!!!!"


결국 동굴 안쪽에서는 엄청난 섬광이 폭발하면서 지상을 엎을 것처럼 흔들었고, 포디반은 눈을 가리며 주저앉았다.


디니와 관련된 모든 것이 사라진 직후 동굴을 가로막던 낙석만 부드러운 흙이 되어서 부서져 내렸고, 가쁜 숨을 몰아쉬던 광부들이 서로를 들쳐메고 천천히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구조대와 실종자 가족들은 힘차게 달려갔지만 그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떨궜다.


그 사건 이후, 각지에서 수수께끼의 폭발을 조사하기 위해 새로운 조사단이 파견되었고, 타문하르트에 있는 지역신문사에는 구조의 비화를 듣고 싶어 하는 편지들이 쉴 새 없이 날아들었다.


그곳을 조사하던 사람들은 막대한 양의 흙더미를 파내다가 회색으로 변하고 깨져버린 작은 구슬을 발견했다. 조사단장은 무엇이라도 깨달았는지 굳게 입을 다물고, 천천히 황금빛으로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 * *


텁~


노인은 제목 없는 책을 다 읽었는지, 자그마한 소리가 나도록 덮으며 디니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디니. 왜 하몬이 사막의 황제라고 불리는지 아느냐?'


'치지직.. 치직..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치직'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그는 신에게 작은 소원을 빌었단다. 영겁의 세월 속에서 덧없는 부귀영화를 누리기보다 한순간이라도 좋으니 진심으로 그들이 자신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해맑게 웃으며 기억할만한 삶을 살게 해달라고 말이다.'


'치직.. 그.. 그렇군요..'


'하핫! 너도 언젠가 '감정'까지는 완전히 얻지 못하더라도, 이름에 걸맞도록 모두의 꿈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 * *


길고도 길었던 메데이아 수정동굴의 최종탐사가 끝난 후, 그들은 탐사단에 소속된 자들의 실종명단을 만들었다.


수인족 5명 / 요정족 2명 / 장인군 3명 / 인간족 1명


그들은 비록 시신을 남기지 못했지만, 국가유공자가 되어서 신의 정원 '트란실바움'의 명예의 전당에 박혀있는 거대한 비석에 이름이 새겨졌다.


휘이이... 휘이...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화환들이 바람에 격렬하게 휘날리는 와중에, 탐사단의 특별한 목격담을 들었던 메데이아는 안대를 벗고 비석을 향해서 깊게 고개를 숙이며 쓴 약을 먹은듯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그 아수라장 속에서 대체 무엇을 본 거죠..? 혹시..'


그리고 더 생각을 이어가려고 하자, 거센 봄바람이 불면서 다양한 꽃잎들이 폭풍처럼 밀려와 그녀의 입술을 연신 두드리며 가로막았다.


마치, 다 끝난 이야기니까 너무 연연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해맑은 어린아이의 위로처럼..


'루바니티 킹 벨바디온'


그들의 꿈을 봤을지도 모를 유일한 인간족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흙의 노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퇴고록 20.05.01 55 0 -
공지 *기본 설정 20.05.01 70 0 -
공지 *표지 모음집 +2 18.01.29 317 0 -
공지 *안녕하세요~! 뚱닭입니다. 18.01.26 191 0 -
52 11장 - 52. 작은 날갯짓, 큰 손으로 22.10.23 20 0 22쪽
51 11장 - 51. 낡은 봇짐 21.01.05 19 0 18쪽
50 10장 - 50. 떡잎의 시대 +2 20.10.24 38 1 19쪽
49 10장 - 49. 어스름한 항해 20.10.23 25 0 15쪽
48 10장 - 48. 높은 바다가 보이는 자리 20.10.21 25 0 19쪽
47 10장 - 47. 뭉뚝한 뿔과 부리 20.05.01 25 0 15쪽
46 10장 - 46. 금가루 잔향 19.09.30 36 0 18쪽
45 10장 - 45. 묵은 말 19.09.26 31 0 13쪽
44 9장 - 44. 볕 속에서 18.11.07 83 0 18쪽
43 9장 - 43. 하얀 뜰 18.11.05 72 0 26쪽
42 9장 - 42. 소금꼬리밟기 18.11.03 93 0 15쪽
41 9장 - 41. 거푸집 벗 18.11.01 80 0 15쪽
40 9장 - 40. 길잡이의 취향 +2 18.08.05 111 1 20쪽
39 9장 - 39. 차갑게 마시는 독 18.07.19 83 1 14쪽
38 9장 - 38. 밤비단 열매 18.06.21 96 1 24쪽
37 9장 - 37. 갈퀴와 숲밥 18.06.15 100 1 16쪽
36 9장 - 36. 뿌리둥지 나들이 +2 18.06.09 119 1 20쪽
35 9장 - 35. 풀잎향 풍경 +6 18.05.28 138 2 13쪽
34 9장 - 34. 우는 뱀 18.05.21 160 1 13쪽
33 9장 - 33. 거미와 손난로 18.05.18 101 1 22쪽
32 9장 - 32. 숨고르기 18.05.16 83 1 14쪽
31 9장 - 31. 솜송이 18.05.05 99 1 14쪽
30 9장 - 30. 시큼한 쇠수레 18.04.30 123 1 18쪽
29 9장 - 29. 푸른 등불 18.04.28 143 1 15쪽
28 9장 - 28. 허름한 자루 18.04.26 102 1 18쪽
27 8장 - 27. 안개를 걷는 손길 18.04.22 107 1 25쪽
26 8장 - 26. 별 헤는 밤 18.04.16 112 1 16쪽
25 8장 - 25. 변덕스러운 전야제 18.04.13 138 1 14쪽
24 8장 - 24. 콩과 여우 18.04.08 127 1 15쪽
23 8장 - 23. 마녀의 요람 18.04.03 109 1 25쪽
22 7장 - 22. 꿈꾸는 일기장 18.03.28 120 1 17쪽
21 7장 - 21. 말괄량이의 부탁 18.03.23 118 1 15쪽
20 7장 - 20. 불나방패 18.03.07 165 1 26쪽
19 7장 - 19. 돌풍선 18.03.04 123 1 14쪽
18 6장 - 18. 기다림의 끝 18.03.01 143 1 17쪽
17 6장 - 17. 울지 않는 두꺼비 18.02.25 150 1 16쪽
16 6장 - 16. 테라바시아 18.02.23 153 1 15쪽
15 6장 - 15. 찻잔 너머 그 무언가 18.02.21 139 1 14쪽
14 6장 - 14. 가득 담긴 사탕과 버섯 18.02.19 168 1 15쪽
13 6장 - 13. 붉은 장막 18.02.16 154 1 14쪽
12 5장 - 12. 무지개 정원 18.02.14 142 1 20쪽
11 5장 - 11. 구름바다 18.02.10 167 1 22쪽
» 4장 - 10. 빛보라 18.02.06 204 1 17쪽
9 4장 - 9. 안짱걸음 18.02.01 160 3 14쪽
8 4장 - 8. 모래집 왕자 18.01.28 225 3 22쪽
7 3장 - 7. 얼음치레 18.01.27 249 3 15쪽
6 3장 - 6. 뜨거운 길 +2 18.01.26 261 5 14쪽
5 3장 - 5. 보라색 날개 18.01.26 329 4 26쪽
4 3장 - 4. 추운 날 18.01.26 397 4 26쪽
3 2장 - 3. 밤비단꽃 18.01.25 527 3 20쪽
2 2장 - 2. 의뢰 방식 18.01.25 751 5 17쪽
1 1장 - 1. 나그네 +8 18.01.25 1,697 10 2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