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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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도
작품등록일 :
2018.01.28 19:36
최근연재일 :
2018.07.1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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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13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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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화> 늙다리 기자의 첫출근

오랫동안 겪은 야구기자 시절의 경험을 풀어 쓴 자전소설




DUMMY

팔자에도 없는 야구기자라. 설레기도 두근거리기도 해 자꾸 혼잣말이 뇌까려졌다.

팔자에도 없는, 또는 없을 야구기자라니. 내게도 믿기지 않아 자꾸 혼잣말로 되물어졌다. 그것도 생계형 야구기자라니.

첫 출근이었다. 해서 아침 일찍 눈이 떠져 좀체 닦지 않는 캐주얼화부터 닦아 두었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구두 대신 캐주얼화를 신고 다니게 되었다. 내 살아온 삶 또한 그랬다.

거기에 더해 매기 싫어하는 넥타이도 골라 챙겨 두었다. 이리나 군산에서 교직생활 할 때나 여기 안산으로 올라와 동서네 회사 영업부 생활을 할 때도 좀체 매지 않던 넥타이였다.

사장님, 큰동서에게는 지난 주에 조심스레 말해 두었다.

그러니까 지난 1월, 추운 겨울이었다.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주간야구’ 홍 국장에게 걸려 온 전화였다.

처음엔 당연히 ‘창간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됐다는 전화인 줄 알았다. 으레껏 인사를 나눈 다음 들려준 내용은 심히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당신 작품은 좋으나 몇 가지 결점이 있어 당선시키지 않았다. 원고를 돌려주고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니 회사로 나오라는 거’였다.

해서 영동대교 앞에 있는 주택은행 빌딩 지하 다방으로 나갔다. 마침 집사람도 서울 바람을 쐬고 싶다길래 같이 나갔다. 그때는 세칭 신장, 곧 하남시 덕풍동에 살 때였다.

노란 점퍼를 걸친 홍순일 국장은 몸집이 자그맣고 눈매가 날카로운 사내였다. 기자라기보다는 형사가 어울릴 인상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집사람도 심심해서 같이 나왔다며 소개시켰다.

우선 누런 서류봉투에 담긴 원고를 돌려받았다.

“이거, 애써서 쓴 원고 같은데 받아 두쇼. 다른 사람들은 돌려주지 않지만 김 형 건 특별히 돌려 드리는 거요.”

“고맙습니다.”

집사람이 원고를 챙겨 핸드백에 넣었다.

“근데 김 형. 작품은 좋은데 야구현장을 더 알고 썼으면 좋았겠다 싶소. 이따 시즌이 오픈되면 자리가 생길지 모르니 같이 일해 보면 어떻겠소?”

느닷없는 제의에 당혹스러웠다.

“기자가 되어 현장을 더 알게 되면 앞으로 김 형 작품쓰기에도 더 좋을 것 같고.”

외려 내가 바라던 바였다. 야구 현장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일. 내 호기심이나 궁금증에 해보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해서 선듯 대답이 나왔다.

“불러만 주시면 열심히 뛰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얘기였다. 인사치레로 하는 얘기겠거니 잊고 있었다.

그 사이 나는 집도 하남시에서 안산시로 옮기고 3월부터 전혀 새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다름 아니라 동서가 새로 인수한 스티로폼 공장의 영업부 차장으로 취직, 술 상무 비슷한 일을 하게 되었다.

순전히 밥벌이를 위한 거였다. 몇 년 전 겨우 신춘문예에 당선, 소위 작가가 되었지만 밥벌이가 안됐다.

해서 덤벼 든 일이 ‘주간야구 창간기념 천만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였다. 처음 써본 장편이었다. 작년 연말이었다. 일손이 좀체 안 잡혀 얼마간 뜸을 들이다 마감날짜가 코앞에 닥치고서야 덤벼들게 되었다.

집사람과 얘기 끝에 성가시고 손이 많이 가는 애는 천호동 처형네다 맡기고 한번 해 보기로 했다. 내가 쓰면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집사람이 원고지에다 정서를 했다. 그렇게 보름만에 1천 2백 장짜리 장편을 끝냈다.

그리고 원고를 부치러 우체국에 나갔고 돌아오는 길에 천호동에 들러 애를 찾아왔다. 모처럼 덕풍시장에 들러 매운 닭발을 안주로 술까지 한 잔 걸치는 것으로 우리끼리 자축잔치까지 벌였다.

먼 과거의 기억처럼 당시의 기억이 아슴아슴 아프게 살아났다. 당선이 됐더라면 전혀 다른 길로 들어 서 1, 2년을 버티었을 것이다. 보다 좋은 작품 하나 쓴다는 핑계나 글만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전업작가의 꿈을 안고 그냥 개겼을 것이다.

어쨌거나 꿈에도 그리던 통일이 아니라 글만 써서 먹고 사는 전업작가의 꿈은 다시 한 번 요원해졌다. 해서 당장 밥벌이가 되는 동서네 회사에 취직할 수 밖에 없었다.

해도 나란 놈을 이쁘게 본 처형이나 동서덕분에 전업 작가의 꿈을 접고 생판 낯선 스치로폼 공장에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새 직장생활에 적응하느라 ‘주간야구’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지난주에 뜻밖의 전화가 왔다. ‘주간야구’ 홍 국장이었다. 한번 만나자는 얘기였다. 얼씨구나 싶어 서울로 나가 만났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빈자리가 생겼으니 함께 일해 보지 않겠느냐는 얘기. 얼마나 받고 있느냐는 물음에 영업부를 맡아 차장으로 얼마 정도를 받고 있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 정도면 수습과정 없이 몇 년 뛴 경력기자의 페이라며 맞춰 줄 수 있다고 했다.

가슴이 뛰었다. 속이 떨려 “예.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해 버렸다.

어쨌거나 글만 써서 먹고 사는 길이 뚫린 것 아닌가. 다만 내 작품 대신 기사를 써야 했지만 그만 해도 어딘가.

돌아와 집사람에게 얘기했더니 대찬성. 조심스레 그 다음날 창고에서 짐 싣는 일을 거들다 동서에게 얘기를 꺼냈다.

“사장님, 아니 형님.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무언데?”

이러구러 이런 얘기가 들어오게 됐다고 말했다. 곰곰 생각하는 눈치더니 내게 되물었다.

“그래서 자네 생각은 어쪄?”

“가고 싶습니다.”

“그려? 그럼 가야지.”

고마웠다. 늘 말썽을 일으키는 막내 동서의 삶에 장애물은 되지 않으리란 말이었을 터.

해서 송별회도 없이 그쪽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고 오늘이 되었다. 드디어 넥타이를 매고 캐주얼화를 신고 나섰다.

“갔다 올게.”

현관문을 열고 나서자 계단참으로 흘러 들어온 햇살에 눈이 부셨다. 5월의 햇살은 맑고 투명했다.

집사람과 애가 주차장까지 따라 내려 왔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내 생애 처음인 자가용. 지금은 대우자동차로 바뀐, 새한자동차에서 나온 고동색 ‘맵시’. 사실은 부모님네 첫 자가용이자 우리 집안의 첫 가가용이었다. 그 차를 매제네가 물려받아 끌고 다니다 안산에 취직이 되면서 내가 다시 물려받았다.

“탑아. 아빠 뽀뽀.”

놈의 촉촉한 입술이 닿았다. 나도 맞뽀뽀를 해주었다.

“집 잘 지켜.”

“차 조심하고 잘 다녀 와.”

“알았어. 탑이도 유치원 잘 가라.”

‘응’인지 ‘예’인지 놈의 분명치 않은 발음을 뒤로 하고 차를 뺐다. 백미러로 돌아보니 아파트 출입구를 나설 때까지 그네와 놈은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수원 인천간 산업도로를 달리다 과천 쪽으로 빠져 들어섰다. 이제 과천 양재간 도로로 갈아타고 올라가야 했다. 출근시간에 밀린다 해도 다른 길이 없었다.

해도 예상보다 빨리 대치동 홍 국장네 아파트에 닿았다. 차를 세우고 경비실에서 인터폰을 하고 기다리자 금세 홍 국장이 내려왔다.

“안녕하십니까?”

“으응 김 형. 차는 안 밀렸어? 빨리 왔네.”

내 차는 세워 둔 채 홍 국장의 하늘색 스텔라를 타고 가기로 했다. 오늘 편집국 전체 직원들이 야유회를 갔다고 했다.

“깡통차라도 잘 나가지?”

사실 스텔라는 배기량에 비해 차체가 커서 ‘깡통차’란 별명을 갖고 있었다. 경춘가도로 들어서자 홍 국장은 그렇게 물어보지도 않은 농담을 던졌다.




아무 댓가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글쟁이로서 내 글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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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야구 스포츠 자전 소설 연재 예정 [18. 03. 14(수)] 18.03.06 151 0 -
18 <18화> 그 때 그 시절의 꿈 18.07.12 285 0 13쪽
17 <17화> 야구기자의 자존심 18.07.06 202 0 11쪽
16 <16화> 뇌졸중의 후유증과 싸우기 18.06.28 245 1 11쪽
15 <15화> 재기의 몸부림 18.06.20 252 2 22쪽
14 <14화> 살아서 돌아오다 18.06.14 222 1 14쪽
13 <13화> 탈도 큰 탈, 뇌졸중으로 쓰러지다 18.06.07 170 1 11쪽
12 <12화> '오렌지블루' 이후 18.05.30 328 1 14쪽
11 <11화>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다 18.05.24 225 1 11쪽
10 <10화> 바다낚시로 사잇길 18.05.16 197 1 13쪽
9 <9화> '일간오늘'로 컴백 18.05.09 200 2 10쪽
8 <8화> '상처일기'에서 '비 비 비'로 18.05.02 246 1 13쪽
7 <7화> 어리보기 기자에게도 특종은 굴러 떨어진다 2 18.04.25 212 2 11쪽
6 <6화> 어리보기 기자에게도 특종은 굴러 떨어진다 18.04.17 270 2 18쪽
5 <5화> 잿빛 비둘기의 도시 18.04.10 265 1 10쪽
4 <4화> 호사다마의 신고식 18.04.04 258 1 14쪽
3 <3화> 알고 보니 야구기자 사관학교 18.03.28 247 3 14쪽
2 <2화> 첫출근이 야유회 18.03.20 269 3 9쪽
» <1화> 늙다리 기자의 첫출근 18.03.13 381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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