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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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미성
작품등록일 :
2018.01.31 18:39
최근연재일 :
2018.02.2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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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0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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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강장 - [2]

DUMMY

사 년의 속박을 대가로 영능력자가, 공무원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연옥으로서는 ‘공무원’이라는 단어만으로도 혹했지만 바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자신에게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집착을 쉽게 버리지는 못했다. 이후로도 한참동안 인터넷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자니 아르바이트 시간이 되었다. 가볍게 입고 문을 나섰다.

변두리 편의점에 들어섰다. 구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하기 위해서.

연옥은 판매대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점장이 지금 근무하고 있었다. 연옥이 왔으니 이제 근무 교대할 차례였다.

그러나 점장은 이쪽을 보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빨리 인수인계할 생각부터 했을 텐데, 지금은 어째 문가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누가 왔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기색이었다.


“점장님? 저 왔어요.”


연옥이 말하고서야 점장은 겨우 시선을 돌렸다. 점장은 옆에 서있던 여성을 손가락질하면서 말했다.


“연옥이? 앞으로 이 학생이 주간담당이니까 잘 해줘. 나 가고 나서 인수인계 똑바로 해주고.”


연옥은 점장 옆에 선 여학생을 바라보았다.

점장이 자신을 대신해서 근무할 아르바이트생을 구한 모양이었다.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점장은 툭하면 근무교대 지각하는 주제에 연옥에게는 오 분 일찍 올 것을 요구했다. 지금까지 점장이 지각할 때마다 연옥은 손이 떨리는 것을 힘겹게 참아왔더랬다. 원래 성격이면 바로 때려치우는 건데, 이번만은 겨우 참아낸 보람이 있었다······.

연옥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게요.”

“맡긴다. 그리고······ 혜연이? 오래 일해 봐. 수습딱지 떼면 월급 올려주니까.”


혜연이라 불린 여학생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얼마나 올려주는데요?”

“음······ 봐서. 잘하면 최저임금까지 올려줄 수 있어.”


그 말에 연옥은 어이가 없었다. 참지 못하고 대뜸 물어보았다.


“최저임금까지 올린다고요? 그럼 지금은 최저임금 안 주나?”


점장은 갈 채비를 하느라 연옥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주섬주섬 제 물건들을 챙기면서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수습이니까.”


연옥은 쏘아붙이듯 말했다.


“수습이라고 최저임금 덜 주는 건 1년 이상 근로계약 맺은 경우에만 가능한데요.”


점장은 계속해서 짐을 꾸리며 대답했다.


“넌 야간이니까 다 쳐준 거고. 얜 그냥 주간인데 뭐.”

“안 주면 불법이에요.”

”여기 하는 일 쥐뿔도 없는데 무슨 시작부터 최저임금을 챙겨줘?”

“불법이라니까요?”


그 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점장은 연옥을 바라보았다. 바로 표정을 구기더니 물어왔다.


“너 뭐냐? 왜 갑자기 법 가지고 오지랖이야, 새끼가?”


그리고 그 순간, 연옥은 시야가 암전되었다. 생각에 앞서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새끼한테 처맞고 싶냐?”


갑작스럽게 험악한 발언이 튀어나왔다. 점장은 일순 당황했지만 바로 표정을 수습하고는 말했다.


“슬슬 그만둘 때 됐다 이거냐? 좆대로 해라. 너 없으면 땜빵 안 될 것 같지? 지랄 마세요. 지금 방학 시작됐고 알바 하고픈 애들 널렸어, 인마.”


연옥은 주먹을 쥐고 판매대를 향해 다가갔다. 덩치가 큰 연옥은 꽤나 위협적이었지만, 점장은 굳이 겁먹었노라 드러내지 않았다. CCTV가 멀쩡하게 돌아가는 와중이므로.


“왜, 한 대 치시게? 쳐, 치라고 새꺄. 네 돈으로 치료 받으면서 몸 편히 병원밥 좀 먹어보게.”


으름장 놓는 점장 앞에서 연옥은 멈춰 섰다. 코가 닿을락말락한 바로 앞에서 연옥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인생 똑바로 살아.”


점장은 코웃음 치듯 대꾸했다.


“너나 잘하세요. 대학도 못 나온 놈이 누구한테 훈장질 하냐? 사회생활도 똑바로 못하는 놈이 미쳐가지고.”


연옥은 바로 후려갈기고픈 충동과 맞서 싸워야했다. 충동대로 점장을 때려눕힐 경우, 연옥은 합의금은커녕 치료비도 낼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연옥은 도저히 이 상황을 넘길 자신이 없었다. 애초에 참지 못했기 때문에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것 아니던가. 그래도 지금 폭발하면 끝장임을 알았으므로 어떻게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나는 분노조절장애가 아니다. 그저 성질이 더러울 뿐이다. 나는 분노조절장애가 아니다······.

한편 점장은 흘긋 여학생의 눈치를 살폈다. 겁먹은 얼굴, 하기야 난데없이 점장과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싸우기 시작했으니 무서울 만도 하다. 여학생이 지금 불안해하듯, 점장도 문득 불안해졌다. 생각해보니 이 일로 저 여학생이 일하기로 한 것을 그만두면 큰일이다. 여학생마저 그만둔다면 대신할 사람이 없다.

잠시간의 대치가 이어졌다. 연옥이 주먹을 날리기 일보직전이던 차, 결국 점장이 백기를 들었다.


“욕 한 거 미안하다. 일 계속할 거면 지금 근무교대하고, 그만둘 거면 그냥 집에 가라. 어제까지 일한 거 바로 입금할 테니까.”


그제야 연옥은 주먹에서 힘을 풀었다. 이후로도 점장을 노려보다가, 겨우 뒤돌아선 다음 편의점을 나섰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결국 아르바이트를 그만뒀지만, 혼자 사는 처지에 생활비가 크게 드는 것은 아니므로 당장 생계가 막막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예전에도 많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니 몹시 우울해졌다.

국가직 영능력자는 개뿔. 편의점 알바도 계속 못 하는 놈이 무슨 수로?

속으로 중얼거리며 지하철역을 내려갔다.

역내에 사람들은 많았지만 영업 중인 가게는 없었다. 삼 년 전과는 명백히 다른 모습.

괴물과 악마들은 지하에서 출몰하며, 지하철역 안에서도 종종 튀어나온다. 그런 상황이 터질 경우 대처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지하상가는 폐쇄되었으며, 지하철역에서의 영업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그처럼 위험한 공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하철 이용객은 여전히 존재했다. 돈이 없거나, 아니면 괴물이 나타나더라도 역내 경찰들이 알아서 잘해주겠거니 여기는 무신경한 사람들. 연옥은 둘 모두에 속했다.

모두와 마찬가지로 연옥은 긴장하지 않고 열차를 기다렸다.

흘긋 보니 총을 든 경찰들이 보였다. 어지간한 괴물들은 저 총탄 앞에 벌집이 되기 마련이다······.

마침내 열차가 왔다.

사람들이 줄을 선 가운데, 웬 중년 여성은 줄을 무시하고 성큼성큼 나아가더니 열차 문 앞에 섰다. 남들보다 먼저 들어가야 자리에 앉을 수 있다고 여기는 모양새였다.

그것을 보자마자 줄서있던 연옥은 열불이 솟구쳤다. 당장 저 아줌마의 머리채를 휙 끌어당기고 싶었다.

물론 그랬다가는 줄에서 밀려날 것이요 폭력을 이유로 무슨 뒷감당을 해야 할지 모른다.

나는 분노조절장애가 아니다······.

속으로 노여움을 삭이는 와중에도 연옥은 중년 여성의 뒷모습을 노려보고 있었다. 중년 여성은 다리에 힘을 주고 있었다. 내리는 사람보다 먼저 탑승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과연 열차가 멈추고, 문이 열린 순간 중년 여성은 앞뒤 살피지 않고 열차 내부를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막혔다.


“뭐야?”


누군가와 몸을 부딪친 중년 여성이 불평을 읊조렸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이내 비명으로 바뀌어 울려 퍼졌다.

열차에 있던 탑승객들이 중년 여성을 붙잡고는, 마구 물어뜯기 시작한 것이다.


“뭐야? 이 미친놈들 뭐야!”


찢어지는 비명소리. 승강장 전체에 울릴 정도였지만 사람들은 놀랐을 뿐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한 소년이 사지가 붙잡힌 채 귀를 물어뜯기는 중년 여성을 보며 웃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으로 남기려하는 여성도 있었다. 새치기 응징이니 뭐니 하면서.

사람들의 웃음이 멈춘 것은 양쪽에서 물어뜯긴 중년 여성의 양쪽 귀가 뜯겨나갔을 때였다. 피가 분출되기 시작한 상처 부위에 탑승객들이 각자의 이를 쑤셔 박았다. 그러고 흘러나오는 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탑승객들의 목울대가 출렁였다.

이제 중년 여성의 모습은 꿀꺽거리는 탑승객들에게 뒤덮여 보이지 않게 되었다. 새된 비명도 탑승객들의 야수적인 포효에 묻혀버렸다.


“저거······ 어······”


그제야 사람들은 지금 열차 내부에 있는 탑승객들이 산송장들임을, 그러니까 구울임을 알아차렸다. 산송장들치고는 너무 멀쩡한 모습들이라 괴물로 보이지 않았을 뿐.

상황을 파악한 경찰이 고함질렀다.


“비상! 실제상황입니다! 승객 여러분 모두 대피소로! 대피소로 피난하세요!”


그 외침에 반응한 것일까. 각 열차의 문에서 구울들이 뛰쳐나왔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뒤돌아서서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한편 연옥은 달아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열차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리하여 한곳에 쭈그려 꿀꺽거리던 구울들을 걷어차 밀쳐내고는, 놈들에게 깔려있던 중년 여성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녀의 몸을 등에 업었다. 끔찍하게 무거웠다. 씹할, 하고 읊조리며 연옥은 먼저 도주하던 사람들을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


작가의말

언제나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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