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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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미성
작품등록일 :
2018.01.31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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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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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06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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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병원 - [2]

DUMMY

“연옥 씨, 간헐적 폭발 장애······ 소위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거 같은데. 그런 얘기 주변사람들한테 못 들어봤어요?”


정신과 의사의 질문에 연옥은 벌컥 성내려다 말았다. 겨우 화를 가라앉히고 대답했다.


“못 들어봤는데요.”

“주변사람들한텐 화 안 냅니까?”

“안 내죠, 가족이랑 친구 없으니까.”

“하나도?”

“예. 중학생 시절까진 있었는데, 고등학교 나온 뒤로 새로 사귀질 못해서. 아무튼 저 분노조절장애 아니에요. 불의를 좀 참지 못하고 욱하는 면이 있기는 해도······.”


의사는 연옥의 기록을 유심히 살피더니 중얼거렸다.


“고등학교 퇴학 계기가······ 폭력사건이네요. 그것도 학생이랑 교사에게 상해를 입혔다고?”


연옥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제가 정당했습니다. 웬 양아치가 여드름쟁이 찍어서는 못살게 굴더군요. 제가 몰래 담임한테 보고했죠. 그러자 담임 그놈은 조례시간에 약한 친구 괴롭히면 안 된다느니 어쩌느니 뻔한 훈계 좀 늘어놓고는 할 일 다 했노라 여겼는지 더 조치를 안 하잖아요.”

“교사들이 뭐 그렇죠. 그래서?”

“제가 담임한테 그 양아치 아직도 그런다고 추가로 보고했더니, 담임이 신고자 비밀보호는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곧바로 양아치가 저한테 달려와서 시비를 걸지 뭐예요. 뭔 미친 새끼가 담탱이한테 꼬지르고 지랄이냐면서.”

“그래서 담임이랑 양아치 모두 흠씬 패주었다?”

“예.”

“교사와 학생이 아니라 직장 동료와 상관이 비슷하게 행동할 경우, 그때랑 똑같이 굴 겁니까?”


연옥은 대답이 없었다. 의사는 흠 하고 신음하더니 중얼거렸다.


“내가 지금 이 소견서에 ‘부적격’이라고 적어 넣으면 나 역시 후려 팰 거고?”


연옥은 심호흡하고는 대답했다.


“아뇨. 하지만 전 분노조절장애가 아닙니다, 선생님.”

“제 보기엔 맞는 거 같습니다. 심각한 문제예요. 아까 검사에서 일 톤짜릴 들었죠? 그럼 눈앞에 계신 분은 온몸이 일 톤짜리 흉기인 셈인데요. 그 힘으로 화난다고 사람 후려갈기면 유족들 챙길 시체나 남겠습니까?”


연옥은 조금 뜸 들인 끝에 물었다.


“그럼······ 저보고 뭘 어쩌란 거죠?”

“최대한 직장 스트레스 받지 않을 환경에 의탁하는 거죠. 이미 영능력자가 된 것은 어쩔 수 없으니, 차라리 연구소에 몸을 맡기는 건 어떻습니까? 연구 협조비만으로도 평생 생계가 곤란하진 않을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연옥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사는 질겁하여 도망칠 준비를 했지만 연옥이 먼저 말했다.


“화가 나도 전 참을 수 있습니다. 맘만 먹으면 참을 수 있어요. 증명해 보일까요, 선생님?”

“뭔 증명을······”

“선생님이 방금 전화하신 내용 엿들었어요. 청력이 이상하게 좋아져서인지 벽 넘어서도 대화내용이 들리더라고요. 선생님이 염화능력자 하나 연구소에 보내볼 테니 잘 되면 박아무개 회장님하고 술자리 갖기로 한 거, 듣자마자 열불이 치솟던데······”


그 말을 증명하듯 연옥의 눈에서 염화(念火)가 피어올랐다. 심리에 반응하여 피어오르는 영적 불꽃.


“오해가······”

“그래서 제가 선생님 보자마자 달려들어 주먹을 휘두르던가요? 꿍꿍이가 뻔히 보인다고 해서 대화 도중에 갑자기 선생님을 습격했어요? 그러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고요! 알겠습니까, 선생님?”


연옥이 자리에 앉았다.

의사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더니 후 하고 한숨 쉬었다. 그러고는 겨우 말했다.


“부적격이라고만 적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연옥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의사는 부적격이라고 적지 않았다. 대신 ‘위험’이라고 적었을 뿐.

불길을 휘날리며 노려보는 연옥에게 의사는 변명하듯 말했다.


“때려죽여도 ‘양호’ ‘적합’이라고는 못 적어줍니다. 직업윤리에서건, 이후 소견서 허위로 작성했다며 문책 받을 거 두려워서건 간에. 제가 뭔 뒷거래를 했든, 당신이 지금 능력과 성격이 맞물려 극도로 위험하다는 건 사실이란 말입니다.”


그렇게 모든 검사가 끝나고 정식으로 등록되었다. 이제 연옥은 영능력자였다. 앞으로는 국가에 주기적으로 자기 수입과 행적을 보고해야 한다는 전별을 들은 뒤 연옥은 퇴원하여 집에 돌아왔다.


*******


퇴원한 지 며칠이 지났지만 연옥은 영능력자를 구하는 어딘가에 지원하지 못했다. 심지어 외출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당신이 지금 (······) 극도로 위험하다는 건 사실이란 말입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만지작거렸다.

연옥은 모니터 화면에 떠오른 홈페이지를 노려보았다.


‘통천제약 영능 연구소’


연옥 같은 특수 영능력자의 경우, 연구에 협조하는 대가만으로도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약 오 년만 연구소에 처박혀 있으면 노후가 두렵지 않을 듯했다.

하지만 연옥은 지하철에서의 그 일이 어른거렸다. 압도적인 영웅의 등장,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는 그 모습이. 잔인했지만 맘이 떨리는 장면이기도 했다.

자신은 그런 일을 할 수 없나? 이놈의 성격 때문에?

학생 시절에는, 심지어 퇴학당하여 학생이 아니게 된 시절에도 연옥은 자기 성격에 자부심을 가졌더랬다. 세상이 틀렸고 자신만은 옳다고, 콘크리트 정글 속 야만인들을 상대로 자신은 그저 당당할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그 결과 남은 것은 고교중퇴 사회 부적응자 아닌가.

연구소에 지원코자 전화기를 들던 그때였다.

전화기가 울렸다. 발신자를 언뜻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하기야 아는 전화번호도 없지마는.

그러나 전화를 받아보니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였다.


‘잘 지내요? 나 저번에 지하철역에서 오함마 들고 있던 군바린데.’


연옥은 바로 그 이름을 말했다.


“박성진 대위님?”

‘오, 나 아는구나. 하기야 나 유명하니까. 아무튼 영능력자 등록했다고 들어서 전화했어요. 축하해. 좀 기뻐요? 여기저기 카톡 날려서 기만질 했고? 그래서 이제 어디서 일할 거예요? 개인적으론 경찰 추천하는데. 거기가 전망이······’

“아뇨, 그게. 연구소에서 일해야 할 거 같은데요.”

‘연구소? 거기다 몸 제공하겠다고? 왜요?’

“의사가 그랬는데, 제가 분노조절장애로 의심된대요.”

‘돌팔이 새끼가 미쳤나? 그럼 지금 의사새끼 말 듣고 그러는 거예요?’


그 말에 연옥은 자기 학창 시절 이야기며, 아르바이트에서의 일화 등을 늘어놓았다. 스스로도 왜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개인사를 털어놓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다 듣고 난 박성진이 말했다.


‘욱하는 성질이 있긴 있나보네. 하지만 극복 못할 건 없다고 생각하거든. 연옥 씨 혹시 합동경비대라고 알아요?’

“매번 괴물 나타날 때마다 가장 먼저 뛰쳐나가는 데죠? 실전을 툭하면 겪으니까 의무복무기간도 짧다고······”

‘그래요. 내 알기로 거기는 상하관계 별로 없어. 신생조직인 데다 동료들끼리 서로 목숨 맡기고 싸우다 보니 서열 가지고 지랄할 여유가 없으니까······ 거기에서라면 좀 욱하는 사람이라도 지내기 어려울 것 같지 않은데? 원한다면 내가 거기에 추천서 써줄 수 있어요. 캡틴 코리아한테 추천 받은 10등급 유망주면 절하고 모셔갈걸?’


연옥은 조금 우물거린 끝에 물어보았다.


“정말 감사하지만······ 감사하지만, 저한테 왜 이렇게?”


박성진의 대답은 영능력자 후배를 챙겨주겠느니 어쩌느니 소리가 아니었다.


‘지하철역 CCTV 봤거든요. 연옥 씨가 어떤 사람인지 봤어요. 그러니까 이러는 거예요.’


연옥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눈을 훔치고는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위님.”

‘형이라 불러요.’


그리고 ‘형’은 약속을 지켰다.

며칠 뒤, 연옥의 원룸에 사람이 찾아왔다. 문을 열어보니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였다.

남자는 명함을 내밀고는 말했다.

“얼마 전에 등록하신 이연옥 씨 맞지요? 우경시 합동경비대 인사과장 전윤복입니다. 스카우트 건으로 이야기 나누고자 하여······.”

그날로 연옥은 계약을 체결했다. 그 계약에 따르면, 합동경비대의 지원을 받아 연옥은 영능력자 훈련을 이수할 것이었다. 그리하여 훈련을 마친다면 우경시에서 합동경비대의 일원으로 도시의 치안을 지킬 것이었다.

당장에는 모든 것이 맘에 들었다.


*******


작가의말

 며칠 아파서 제대로 연재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제부터는 일일연재 할 생각입니다.



 승강장 - [3]에서 군인을 쏜 것은 악마 솔방울핥기가 아닌 구울 경관인 것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당시 그리 플롯을 짜놓고서 병기운에 가물가물해 착오한지라...



 언제나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은 제게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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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훈련소 - [3] +16 18.02.11 2,699 125 10쪽
8 훈련소 - [2] +17 18.02.10 2,665 126 10쪽
7 훈련소 - [1] +17 18.02.09 2,689 126 10쪽
» 군병원 - [2] +11 18.02.06 2,805 139 9쪽
5 군병원 - [1] +10 18.02.06 2,819 128 7쪽
4 승강장 - [3] +16 18.02.04 3,104 125 15쪽
3 승강장 - [2] +15 18.02.01 3,380 122 9쪽
2 승강장 - [1] +14 18.02.01 4,316 13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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