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8층(4) - 궤변
그렇게 바이올렛과 소녀는 잠시 눈을 마주쳤는데, 그 짧은 동안의 시선 교환을 통해 서로가 적이 아니라는 생각에 공감한 모양이었다.
딱 봐도 소녀는 평범한 인간이고, 이 서큐버스 비치는 그 이름대로 남자들을 꼬드기는 사악한 악마에 불과하므로 바이올렛 역시 소녀의 편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자, 그럼 악마를 처치해볼까???”
“아니, 잠깐!!! 왜 갑자기 저한테 다가오는 거예요?!!!”
“왜긴 왜야, 악마를 처치할려고 그러는거지.”
“다음 층으로 가려면 보스 몬스터를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러니까 니가 그 보스 몬스터잖아.”
“아니, 어떻게 얘기가 그렇게 되는 거죠???”
“잘 봐. 이 아리따운 소녀.”
여기서 소녀는 손을 V자로 만들고 한쪽 눈에 갖다 대고 가볍게 윙크를 했다.
“그리고 너. 그중에 일반적으로 봤을 때 누가 더 사악한 악마인 것 같냐???”
“그야 당연히 저······가 아니라, 악마든 아니든 중요한 건 보스 몬스터를 해치우는 것 아닌가요!!! 저 소녀가 설령 인간이라고 해도 보스 몬스터가 아니라는 법이 어디 있죠???”
“아직까지 인간이 보스 몬스터로 나온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그것이 잘못된 판단 아닌가요??? 지금까지 대체 이 던전을 몇 층이나 내려오신 거죠??? 7층? 8층? 이 던전이 그 끝까지 몇 층이나 되는지도 모르는데 섣불리 그렇게 판단하는 것은 오류가 아닐까요??? 아직 이 던전의 법칙을 모르잖아요!!!”
“그렇다고 해도 지금까지 나타난 법칙, 그리고 그 법칙이 극히 일부의 사례에 불과하다는 네 주장. 어느 쪽이 더 현실성 있지??? 불과 8회에 불과한 사례, 그리고 그에 반해 지난 층부터 합류해 이 인간이 보스 몬스터라는 주장. 어느 쪽이 더 설득력 있을까???”
“크윽······.”
“어쩌면 한 층마다 한 마리씩 최소한 몬스터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이번 층에서는 네가 있기 때문에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았고. 그렇게 따지면 얘기가 되는데??? 이곳은 시공을 초월한 던전이다. 그 어떤 문명이나 종이 다른 몬스터가 나올 수도 있지. 이것은 서로 다른 통로를 통해왔지만 지금까지 이 던전을 경험해온 나나, 이크, 그리고 거기 벌거벗고 쓰러져 있는 변태자식에게도 해당될 텐데???”
움찔!!!
갑자기 자신을 언급하는 말에 루드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최대한 죽은 척하고 다른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서 회복을 하려고 했는데 바이올렛은 가만히 있던 자신을 얘기했던 것이다.
아마 처음부터 자신이 살아있고 정신을 차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역시 이단 심문관······.’
살아있는 거야 어차피 뭐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걸 보면 알 수가 있지만 정신을 차리고 있는지 어떤지는 동공을 뒤집어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가 힘들었는데, 그러한 의학적 지식이나 촉진 없이 바이올렛은 루드의 상태를 단번에 알아차렸던 것이다.
사실 이는 이단 심문관을 오래 하다보면 알게 되는 것이라서, 고문을 하다보면 이 자식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있었다.
오래 고문을 당하다보면 고문을 피하려고 연기를 하며 죽은 척하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그런 경험이 많은 바이올렛은 루드가 뻔히 누워서 사실은 일행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세우고 있으면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최소한 발기는 좀 가라앉혀라.”
‘아, 그렇구나!!!’
뜨끔!!!
이 바보 루드는 드디어 자신이 왜 들켰는지 알아차렸다.
자신도 몰랐는데 자신의 주니어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서있었던 것이다.
이 물건은 자극에 민감해서, 옷에 스치거나 맨몸으로 있다가 바람이 불기만 해도 묘한 생각이 들어서 그 크기가 커질 수도 있었다.
그러니 루드는 대화에 집중하느라 몰랐는데 자신의 분신은 그 의지가 상관없이 혼세마왕처럼 무럭무럭 커져있었던 것이다.
‘혼란하다, 혼란해!!!’
루드 자신은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이 마물의 위력에 경악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좀 전에 그 거사를 치렀으니 절륜한 정력이 있는 루드의 특성상 다시 부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로 경이로운 회복력이었다.
루드는 누운 채로 이것이 사후경직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다른 부분은 다 멀쩡한데 그 부분만 경직이 된다는 것이 말이 안 되었다.
게다가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그러한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당연히 살아있다는 것이므로 말을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순이었다.
그렇게 누워서 루드가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다가온 바이올렛이 루드를 발로 걷어찼다.
“일어나라, 이 자식아!!! 깨어있는 거 다 안다니까!!!”
퍽!
“으악!!!”
결국 루드는 벌거벗고 눈이 먼 채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데, 그로인해 앞이 보이지 않아 허우적거리다가 다시 바이올렛의 가슴을 만지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어, 어디로 가야하오???”
“이자식이 리X도 아니고 대사가 왜이래????”
그리고 바이올렛은 주먹을 휘둘렀는데, 이를 루드는 눈을 감은채로 가뿐히 피해버렸다.
“어쭈???”
그리고 계속해서 공격을 했는데 평상시에도 민첩성이 상당하지만 이 정도로 공격을 피하지 못했던 루드는, 마치 심안이라도 개안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바이올렛의 공격을 피해버렸던 것이다.
“이놈 봐라??????”
이에 당황한 바이올렛은 전력을 다해 공격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드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거기다가 루드는 여유가 생겼던지, “이쿠!!!” 이런 어처구니없는 대사를 하면서 마치 택견을 하듯 요상한 몸놀림으로 이리저리 피했던 것이다.
“야, 그만해라. 저작권에 걸릴라.”
“예이~”
이에 루드는 수긍했는데, 이 틈을 타 바이올렛은 이크를 시켜 루드의 눈을 치료했다.
“어, 보인다???”
“이때다!!!”
빠각!!!
“으아악!!!”
그리고 바이올렛은 그 순간을 노려 하단차기로 루드의 양 발목을 부숴버렸는데, 그리고 나서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던 것이다.
“후후, 이걸로 도망치지는 못하겠지.”
“아니, 고작 그것 때문에 동료의 발목을 부수다니 당신이 사람입니까??? 이런 철면피 같은 사람!!!”
“그럼 서큐버스하고 떡칠려고 자리를 비웠다가 도리어 저런 어린 소녀한테 당한 너는 제정신이냐??? 아무리 우리 세르마 교단이 성에 개방적이라고 하지만 정도가 있어야지!!! 내 법황이나 추기경을 제외하고 너 같은 색마는 처음 보았다!!!”
뜨끔!!!
그 말에 루드의 양심에 가책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바로 루드는 바이올렛에게 항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면 어떡합니까!!! 남자라는 이 저주 받은 생물로 태어난 것을!!! 게다가 감시자의 고기를 먹어서 성욕이 주체도 안 된다고요!!!”
“그러니 니가 안 되는 것이다!!! 너는 저 먼 나라의 간D라는 인물을 들어보지도 못했느냐??? 무저항 비폭력 운동을 하며 국가를 독립시키기 위해 그는 일생을 바쳤다!!! 평생 금욕을 강조한 인물이었는데 그 발끝이라도 따라갈 수도 없는 것이냐!!!”
“저기······ 간D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는데요???”
“응?”
“간D는 흑인차별주의자였던 데다가 광신도에 가까운 힌두교인이라 4대 카스트에 속하지 않는 불가촉천민은 그야말로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그런 불가촉천민들을 양자로 거두는 쇼를 할 뿐만 아니라, 카스트 제도의 철폐에도 관심이 없었고 부유층과 상위계급에게 호의적이었습니다. 겉으로는 금딸까지 맹세했다는데 60세 이후 실제로 딸을 치거나 성행위를 하지는 않았지만 친한 집안의 처녀나 색시, 그리고 조카며느리와 증손녀 뻘 되는 친척에게도 나체로 함께 잠자리에 들어 체온으로 몸을 덥혀줄 것을 부탁했다구요. 그러니 제대로 된 인간일 리가 있습니까??? 문명 시리즈에서 옥수수줄 테니 다이아몬드를 주지 않으면 핵을 날리겠다고 한 건 거짓이 아니었다구요!!! 다 제작사의 이런 실화에 기초한 블랙조크였던 거죠!!!”
“그, 그럴 리가 없다!!! 내가 본 위인전에서는!!!”
“저기, 루드는 싫지만 그건 사실이에요. 저도 똑똑히 배웠는걸요······.”
“저도······.”
“저도······.”
이크에 이어 비치, 그리고 오늘 처음보는 이 소녀까지 루드의 손을 들어주었다.
간D의 악명은 비치가 사는 그 마계까지 널리 퍼져있었던 것이다.
“크윽, 그럴 리가······.”
“후훗, 그게 바로 어른의 사정이란 겁니다. 남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요소를 제외하고 온갖 불편한 진실은 깊숙이 감추어두거나 왜곡하죠. 청백리로 알려진 황희와 맹사성이 비리를 저질렀듯이, 희대의 학살자였던 히틀러가 세계최초로 동물보호법을 만들었듯이, 6백만 명을 죽인 아돌프 아이히만이 자신의 가족에게는 한 사람의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그렇게 따뜻한 인물이었듯이, 이렇게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숨은 뒷모습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히틀러는 누구고 아이히만은 누구냐??? 나도 처음 듣는 인물인데.”
“그런 게 있습니다. 아무튼 당신이 예로 든 그 간D는 분명 비폭력, 무저항, 불복종의 운동으로 국가 독립에 기여한 사람이었지만 그 공에 맞먹게 숨겨진 잘못도 많습니다. 그러니 그런 간D를 예로 드는 건 부적절하겠지요. 간D의 그런 이중성에 걸맞게 이런 변태로 보이는 저에게도 다른 모습이 있다는 반증으로써는 가능할지 모르지만요.”
“음, 말은 그럴듯한데 일단 팬티라도 입고 말해주면 안되겠나?? 그럴싸한 말에 비해 네 거시기가 아까부터 너무 대놓고 말할 때마다 흔들리는군.”
“아.”
루드는 얼굴을 붉히며 옷을 입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아까 비치와 거사를 치르느라 온 몸을 홀딱 벗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발목이 부러진 채로 옷을 입으려니 잘되지 않아서 누워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다시 부X이 덜렁덜렁 거렸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보던 바이올렛은 다시 한숨을 쉬며 이크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이크, 좀 고쳐줘라.”
“네.”
이크 역시 한숨을 내쉬며 루드를 치료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변태새끼 따위 더 이상 고쳐주고 싶지 않았지만 계속 놔뒀다가는 하루 종일 덜렁덜렁 거릴 것이 분명하므로 어쩔 수 없이 치료해주었던 것이다.
“고마워.”
“별말씀을요.”
그렇게 다시 이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옷을 다 입고 당당해진 루드는 보무도 당당하게 힘찬 발걸음을 내디디며 말했던 것이다.
“어쨌든 저는!!! 비치가 이 층의 보스라는 의견에 반대합니다!!! 그럴 것이라면 진작에 전 층에서 쓰러트리지 않았으면 통로가 열리지 않았을 것이 분명해요!!!”
“주인님!!!”
그 말에 감동한 비치가 눈망울을 글썽였는데, 이를 보고 있던 바이올렛은 다시 한 마디 했던 것이다.
“그냥 넌 네 떡칠 대상이 없어질까 봐 걱정하는 거 아니냐???”
“윽!!!”
“그러니 사실 누구든 죽어도 상관없는거지??? 저 비치가 아니면???”
“큭,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그래? 그럼 너는 양심에 걸고 말할 수 있어???”
“······.”
루드는 입을 다물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