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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8.02.0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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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25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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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쪽

마음의 안식(2)

DUMMY

****


“군대에서 제대하기 두 달 전부터 문득 불안함이 생겼어. 내가 가는 길이 맞는가. 난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전부터 생각해오던 명확하다고 생각한 길이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렸어.”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야?”


“나는 살아오면서 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 그러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더라. 나는 그저 사회의 톱니바퀴의 한 부분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고.”


친구는 흥미롭다는 듯 턱을 괴고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계속 말해봐.”


“우린 그렇잖아? 취업을 준비했던 기준들을 떠올렸더니 생각이 확고해졌어. 개성보단 틀을 강조하잖아. 자기소개서는 기업이 자기를 사달라는 판매용지가 되었고, 일정한 스펙이 요구되지. 취업을 해서는 비슷한 출근 시간에 비슷한 퇴근 시간을 가져.”


“너무 비약하는 거 아냐?”


“나 취직했던 거 알지?”


“당연히 알지. 조기졸업하고 대기업 갔잖아.”


“제대하고 회사에 복귀하여 야근을 하는 어느 날이었어. 밖을 문득 보는데 건물들의 불이 켜져 있는 곳이 제법 많더라. 나를 보았어. 컴퓨터를 앞에 앉아있는 나는 달라 보이지 않았어.”


친구는 묵묵히 듣고는 소주를 들이켜더니 말했다.


“너 그거 알아? 네가 내가 알고 있는 친구 중에서는 제일 똑똑하고 잘난 놈이야.”


“어?”


“제일 좋은 대학에 가서 조기졸업하고 취업했었지. 아버지는 대기업 임원에 어머니는 교사잖아. 중학교 때 몰라서 친해진 애가 그런 신분일 줄이야.”


“다른 세계사람 취급하지 마.”


“진짜인데? 어찌나 부잣집 티를 안내는지 알았을 땐 농담인 줄 알았다니까.”


“난 명품 같은 거 안 좋아해. 그리고 그건 부모님 돈이잖아.”


“그래 넌 너만의 가치관이 있네. 똑똑한 머리는 네 거고. 나는 네 생각이 좋다고 생각해. 너무 불안해하지 마. 세상에는 자기가 톱니바퀴의 한 부분인 걸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고, 톱니바퀴인 걸 알면서도 체념하는 사람이 있어. 아예 개척해나가는 사람도 있지.”


나는 발끈해버렸다.


“그럼 나는 이렇게 고민만 하라는 거야?”


“아니 너는 분명 너만의 결론을 내릴 거야. 질문 하나 할게. 톱니바퀴는 가치가 없어?”


“어?”“톱니바퀴는 맞물려 작동하잖아. 하나만 잘못되어도 기계 자체가 고장이 나버려. 그렇지?”


“그건 그렇지.”


“사람은 톱니바퀴라는 비유는 안 맞기도 하고.”


“왜 그렇게 생각해?”


“넌 감정이 있고, 사생활이 있고, 가치관이 있잖아.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겠지. 누가 그러더라. 남들 같아 보이는 평범한 게 가장 어려운 거라고. 사람은 각자 비슷해 보이나 다를 수밖에 없어.”


친구의 가르치는 태도에 동갑인 녀석이 뭘 안다고 말하는지 어이가 없었다.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음 한 칸에 동감한 부분이 없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나는 소주를 들이켰다.


“넌 기회가 남들보단 많잖아. 결론을 내리는 일을 기대할게! 고민 있으면 나나 친구들에게 털어놓고 친구잖아. 오늘 재밌었어.”


친구는 목소리 톤이 밝아졌다.


그런데 마지막에 덧붙인 말이 의문이 들었다.


아직 저녁이 되기도 전이었다.



“가게?”


“집에 가서 부모님하고 저녁 같이 먹기로 했던 게 떠올랐어. 다음에 또 보자.”


“하지만 뭘 한 것도 없잖아.”


“너 얼굴 봤잖아. 이야기도 들었고, 그거면 충분히 가치 있었어. 고마우니 선물을 줄게.”


그는 나에게 다가왔다.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나에게 보였다.


얼떨결에 나도 동작을 따라했더니 그는 힘차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자 이걸로 나아질 거야.”


그는 집에 가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군인이면서, 제대하면 같이 취업준비생이 뭐 저리 긍정적일까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보다 오히려 해야 할 일도, 할 수 있는 찾기 힘든 취업난에 말이다.


나는 집으로 곧장 돌아왔다.


걸어오는 동안 쉬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갔다.


부모님은 결혼기념일이라서 아직 들어오시지 않으셨다.


나는 소파에 앉았다.


소파 앞에 있는 유리 책상에 종이 뭉치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종이를 집어 보았다.


예전에 내가 하고 싶은 계열이라고 했던 회사에 대한 서류가 있었다.


내가 가진 스펙과 회사의 기준, 나에 대해 생각하는 점과 내가 회사에서 어떤 파트를 담당하면 좋을지, 그래프와 활자 등으로 정리한 서류였다.


이건 아빠가 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 집에 안 들어온다니까 놔둔 것 같았다.


예전에 흘리듯이 한 말을 아빠는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의 회사 일을 하면서 이런 것도 준비하고 있었다.


씻고 싶어졌다.


화장실로 가서 간만에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뉘였다.


따뜻했다. 물이, 집이, 부모님이, 내가.


몸이 이완되어 갔다.


나는 몸이 붕 떠올랐다.


몸은 빙글빙글 돌더니 몸 안에서 시커먼 덩어리를 뽑아냈다.


덩어리를 처음 봤을 때가 떠올랐다.


군대에서 당직근무를 서던 중 보았던 까만 점이었다.


어느 틈에 있었던 걸까.


시커먼 덩어리는 다시 나에게 들어오려고 꾸물거렸다.


그때였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시커먼 덩어리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샤워기를 틀어 물에 흘려보냈다.


덩어리는 물에 녹아 점점 작아져가더니 배수구로 들어갔다.


나는 욕조에서 나와 김이 서린 거울을 닦았다.


나는 웃고 있었다.


다 씻고 부모님을 만나러 옷을 입었다.


그 어느 때보다 개운했다.


부모님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인사했다.


“다녀오셨어요?”


부모님의 표정에서 기쁨이 흘러나왔다.


내 삶의 오늘은 저물고 다음의 하루가 새롭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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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나갈 생각 24.01.23 4 0 5쪽
80 기억하기 19.03.22 55 0 5쪽
79 뫼비우스의 띠 19.01.07 64 0 7쪽
78 강철은 아니던 몸 19.01.03 46 0 5쪽
77 티 나지 않는 18.12.23 67 0 9쪽
76 깨끗하게 씻겨주던 18.12.14 113 0 6쪽
75 너머의 영웅 18.11.25 73 0 6쪽
74 점 쳐주던 그 18.11.16 80 0 12쪽
73 납치 거래 18.10.21 60 0 7쪽
72 e의 글쓰기 18.10.15 62 0 6쪽
71 마음에 들지 않는 목소리 18.10.11 74 0 9쪽
70 새벽 18.10.07 80 0 6쪽
69 귀신 헌터 18.10.01 89 0 7쪽
68 소년과 상상 18.10.01 78 0 8쪽
67 달리는 기차에서 18.09.25 83 1 6쪽
66 살을 빼다 18.09.15 75 1 6쪽
65 나를 가두다 18.09.08 73 2 6쪽
64 12.25 선물 상자 18.09.02 60 1 7쪽
63 극복 (2) 18.09.01 90 1 13쪽
62 극복 (1) 18.08.31 78 1 13쪽
61 바뀐 밤낮 18.08.15 92 1 12쪽
60 알람이 울리던 아침 18.08.09 71 1 8쪽
59 헤엄치는 구피 18.08.01 87 1 5쪽
58 집안의 보물 +1 18.07.28 94 1 10쪽
57 줄타기 18.07.15 93 1 4쪽
56 심호흡 18.07.09 83 1 10쪽
55 이슬 먹고 자란 꽃 18.07.04 464 1 11쪽
54 같이 밑으로 18.06.30 95 1 6쪽
53 미세먼지 18.06.28 59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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