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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8.02.02 15:01
최근연재일 :
2024.01.23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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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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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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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글자수 :
250,032

작성
18.04.17 19:05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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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5쪽

혼자서

DUMMY

시작은 언제나 하찮은 계기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간단한 이유로 싸우고 화해하던 나와 그녀였다.


그래도 그녀는 인내심이 깊어서 웬만하면 잘 참아주었다.


누가 잘못을 하든지 내가 먼저 사과를 하고 그 일에 관해서 잊으며 살아왔었다.


잊었다는 말은 나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었다.


아니, 돌아보면 다 생각이 난다.


난 그저 사랑이라는 막으로 갈등을 감싸서 잠재우고 있었다.


그렇게 지냈고 행복하게 잘살고 있는 줄 알았다.


웃음의 빈도가 말싸움보단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나보다.


예견되어있었던 시한폭탄의 타이머가 멈춘 날 그녀는 폭발하고 말았다.


쌓이고 쌓인 단어와 문장이 내게 쏟아져 내려왔다.


그동안에 있었던 싸움들이 열거되는 일을 지켜보는 일은 괴로웠다.


“넌 다 잊었잖아. 기억하지 못하잖아.”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지.


나는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분명 우리는 ‘우리’가 되어 더하기 아니, 곱하기로 행복하기 위해 사귀었었는데,


이런 결말을 원하지 않았다.


이 사태는 정말로 심각했다.


사랑이라는 명목 하에 심연 속에 있었던 분노, 슬픔, 억울함 같은 감정들이 하나하나 파편이 되어 박혀 들어갔다.


잘못과 실수 같은 부정적인 것들은 잊으면 그만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왔었는데 그게 결국 그녀의 사랑마저 잊게 만들었나 보다.


내가 생각해도 돌이킬 수 없다.


우리는 서로에게 득보단 실이 많아보였다.


이별에 나도 동의했다.


허나 이성과 감성은 달랐다.


상처는 컸다.


견디기 힘들었다.


한참동안 지속되었던 시간이 점점 느려지고 멈췄다.


난 그 현실을 수용할 수 있다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방안에 틀어박히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에 때가 되면 인터넷 통장으로 돈이 들어왔고 나갈 건 나갔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나갔었던 밖이었으므로 이제 나갈 필요가 없었다.


굳이 나갈 이유가 생겨도 몸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정과 가족은 소중하긴 했지만 내 가치관에 있어서는 사랑보다 덜했다.


모든 건 핸드폰으로 가능했다.


필요한 물품들은 핸드폰으로 주문하면 왔고 핸드폰으로 사회의 소식들을 접했다.


이렇게 혼자가 되어갔고 살아갔다.


그렇게 살아가게 되었다.


집에 있으면 시간감각이 무뎌진다고 하던가.


날짜도 안보며 살아가고 있던 나날이었다.


나의 잘못들이 하나하나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잘못을 얼마나 곱씹어야 사라질까.


사랑이라는 막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내가 이렇게나 나쁜 사람이었을까.


그녀를 만날 때의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날 때의 나는 너무나 달랐다.


이 둘은 어울리지 못했다.


나는 그녀를 만났을 때의 나로 넘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잘못을 했는지 복기해보니 나는 잘못 살아왔고 사회에 필요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이 점점 들기 시작했다.


내가 있는 위치는 무엇일까.


힘들기만 하는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희망도 보이지 않으니 답답했다.


선택을 해야 했다.


난 사라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전에 그녀에게 문자한통을 남기기로 했다.


그녀에게 이제 난 잊힌 인물일지도 모르지만 마지막으로 흔적하나를 남기고 싶었다.


날짜를 확인해보니 헤어진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러있었다.


잊고 있었던 잘못만큼 알 정도는 될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문자한통을 보내고 난 핸드폰 카메라를 켜 나를 보며 사진을 찍었다.


‘찰칵’ 소리에 플래시가 터졌다.


빛은 방 전체를 하얗게 만들었고 빛이 사라지고 난 뒤에는 어둠속에 그녀의 사진이 보이는 핸드폰의 액정만이 빛나고 있었다.


미리 풀어두었던 운동화 끈을 가져왔다.


줄을 매달려고 적당한 장소를 찾을 때에 핸드폰의 빛이 들어왔다.


내가 보냈던 메시지에 대한 답신이 있었다.


내가 써서 보냈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아 다시 보았다.


지금까지의 잘못에 대해 정리하여 사과하고, 행복하게 살라고, 사라지겠다고 보냈었다.


메시지에 대한 답은 이랬다.


자신도 잘못이 있으며 역시 미안했다고, 사랑했었다고, 너도 좋은 사람 만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끄지 않았다.


말없이 그녀의 사진들을 지웠다.


지워지는 사진들은 날 홀가분하게 만들었다.


굳게 닫았던 커튼을 치고 창문을 열었다.


마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운동화 끈을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사람은 한 문장만으로도 달라질 수 있었다.


상처의 틈은 벌어졌지만 모든 상처가 그렇듯이 오늘 딱지가 앉았다.


스마트폰으로 어머니와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내가 연락이 없어서 걱정하고 계셨다.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날 때의 나로 돌아와 있었다.


둘이었던 나는 조화롭게 하나의 나로 만들기로 했다.


그게 내가 앞으로 할 일이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오래간만에 친구를 보자.


나는 여기 살아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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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8.05.16 16:00
    No. 1

    소설 공부는 끝이 없네요. 이 단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헸습니다. 잘 배워갑니다..케케..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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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기억하기 19.03.22 55 0 5쪽
79 뫼비우스의 띠 19.01.07 64 0 7쪽
78 강철은 아니던 몸 19.01.03 46 0 5쪽
77 티 나지 않는 18.12.23 67 0 9쪽
76 깨끗하게 씻겨주던 18.12.14 113 0 6쪽
75 너머의 영웅 18.11.25 73 0 6쪽
74 점 쳐주던 그 18.11.16 80 0 12쪽
73 납치 거래 18.10.21 60 0 7쪽
72 e의 글쓰기 18.10.15 62 0 6쪽
71 마음에 들지 않는 목소리 18.10.11 74 0 9쪽
70 새벽 18.10.07 80 0 6쪽
69 귀신 헌터 18.10.01 89 0 7쪽
68 소년과 상상 18.10.01 78 0 8쪽
67 달리는 기차에서 18.09.25 83 1 6쪽
66 살을 빼다 18.09.15 75 1 6쪽
65 나를 가두다 18.09.08 73 2 6쪽
64 12.25 선물 상자 18.09.02 60 1 7쪽
63 극복 (2) 18.09.01 90 1 13쪽
62 극복 (1) 18.08.31 78 1 13쪽
61 바뀐 밤낮 18.08.15 92 1 12쪽
60 알람이 울리던 아침 18.08.09 71 1 8쪽
59 헤엄치는 구피 18.08.01 87 1 5쪽
58 집안의 보물 +1 18.07.28 94 1 10쪽
57 줄타기 18.07.15 93 1 4쪽
56 심호흡 18.07.09 83 1 10쪽
55 이슬 먹고 자란 꽃 18.07.04 464 1 11쪽
54 같이 밑으로 18.06.30 95 1 6쪽
53 미세먼지 18.06.28 59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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