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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8.02.02 15:01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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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06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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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유성 (2)

DUMMY

********


오늘 공부해야할 목록은 아직 산더미 같았다.


시험 날짜가 곧 다가오고 있었다.


달력에 표시해둔 시험 날짜와 남은 기간을 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식사를 마치고 샤워를 한 뒤에 책상에 앉았다.


노트북을 켜서 바로 강의 홈페이지로 넘어갔다.


책을 깔아두고 심호흡을 했다.


마우스로 시작 버튼을 누르고 연결해둔 이어폰을 꼈다.


어머니께서 내 등을 두드렸다.


“밥은 먹어야 하지 않겠니. 점심 먹어야지.”


나는 그제야 노트북 하단에 있던 시간을 보았다. 오후 1시가 넘어 있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예, 금방 갈게요.”


노트북을 닫아두고 이어폰을 뺐다.


어머니께서 나가자 행동으로 파이팅 동작을 취했다.


평생 이렇게 공부가 잘 된 적은 처음이었다.


머릿속으로 정보가 그대로 저장되는 느낌이었다.


잘 되어서 강의 속도를 1.5속으로 돌려도 문제없었다.


나는 시험 삼아 책을 넘겨보았다.


‘어? 뭐야.’


책의 내용이 바로 이해되어 기억되었다.


나는 책을 유심히 읽어가며, 문제들을 풀었다.


채점할 필요도 없이 100점이었다.


뭔가가 이상했다.


평소라면 두 번, 세 번 보고 해야 100점을 맞았다.


헷갈리는 문제도 있어서 몇 문제 틀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완벽히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다.


한 번 훑어본 걸로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답안지로 채점해 보았지만, 100점이었다.


“안 나오니? 밥 다 식었다.”


“예! 지금 나가요.”


이상함은 기쁨에 묻혀 잠시 잊혀졌다.


유성을 본 기도가 이루어졌다 생각하기로 했다.


산더미 같이 쌓인 책을 며칠 만에 끝냈다.


자고 난 뒤에 다시 문제를 풀어보고, 기억을 되짚어 봐도 책의 내용은 그대로 머리 안에 있었다.


기적 같았다.


무슨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가 된 것 같았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기억으로 남진 않았고, 이건 기억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마치 스위치가 켜진 듯이 내용을 빨아들였다.


짜증나는 일이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은 금방 잊어버렸다.


그렇다고 컴퓨터처럼 기억을 삭제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비유하면 원하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컴퓨터 같았다.


공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어서, 나는 인터넷으로 웹서핑 하는 취미가 생겼다.


책을 읽는 속도가 빨라져 독서도 늘어났다.


도서관을 가는 일이 이렇게 즐거울 줄 몰랐다.


나는 시험 날이 어서 오기만을 기다렸다.



*********



막상 시험 날이 다가올수록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시험을 합격하는 일은 따 놓은 당상이었으나 합격을 해도 기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


두근거리지 않았다.


나는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학교를 다니면서 의예과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하던 시절에, 나는 의사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좋은 직장이라는 것 때문에 공부했다.


의욕이 생기지 않아서인지 모의고사 때의 성적을 유지하지 못하고 수능을 망치고 말아 성적에 맞춰 좋다고 할 수 있는 서울 상위권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서 하는 공부도 내 적성에는 맞지 않았다.


군대에 가고 많이 생각해보았지만, 꿈이 무엇인지 잘 모른 채로 돈을 벌어야겠다고만 정하고 제대했다.


그 뒤로 성적을 좋게 받고 토익을 따고 자격증을 모은 채 졸업을 했다.


허무했다.


대기업에 잘 입사했지만 1년이 한계였다.


그렇게 현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



시험 전 날이었다.


그 날 유난히 잠에 들기 어려웠다.


힘겹게 뒤척이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 잠에 들었다.


꿈을 꾸었다.


꿈 속의 나는 유성이 떨어지던 날의 팔각정에 서 있었다.


나는 하늘을 보았다.


유성이 천천히 나에게 날아오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충분한 시간도 있었다.


나는 가만히 있기만 했다.


두 팔을 벌려 유성을 기다렸다.


유성이 나에게 다가오자 자연스럽게 유성을 양손으로 받아 품에 안았다.


유성의 에메랄드빛이 심장으로 흘러들어와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나는 빛을 내뿜고 있었다.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고, 행복했다.


꿈에서 깨어나니 시험장에 가기 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상태에서 진정하느라 가만히 앉아있어야 했다.


시험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렬로 앉아있었다.


그들 중 누군가는 한 페이지라도 더 보려고 책을 뒤적거리고, 명상을 하고, 따로 정리해둔 노트를 보고, 음악을 듣는 등 각자 필사적이었다.


나는 그저 멍했다.


‘누군가의 꿈일 수도 있는 공무원의 한 자리를 내가 차지해도 될까.’


시험지를 받고 문제를 보니 답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였다.


이걸 합격하고 난 뒤의 삶을 상상했다.


머리로는 답을 적어야 했었다.


가슴이 그걸 말렸다.


나는 점점 더 차갑게 식어가는 마음을 거역할 수 없었다.


가장 먼저 0점 답안지를 내고 나오니 마음이 편했다.


이제 머리가 대응책을 찾을 시간이었다.


‘이제 어떡한다?’


아무래도 그날, 유성에 가슴을 맞았나보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뭐라고? 대체 왜 그러는 거니?”


예상했던 대로였다.


어머니는 황당해하며 화를 내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 길이 아니었어요.”


“우리가 너에게 뭘 강요하기라도 했니?”


“은근히 하셨죠. 남들과 비교하고, 돈 이야기를 하셨죠. 원하는 일이 아니면 못 들은 척도 하셨어요.”


“의예과에 떨어졌을 때, 재수하지 않기로 한 일도 이해하고 대기업을 퇴사한 것도 넘어갔어. 헌데 공무원까지? 차라리 못 본거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일부러? 네가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거지 우리 잘 되라고 그러는 거겠니?”


“이젠 정말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고 싶어요.”


“도대체 그게 뭐니?”


나는 말하기 전에 침을 한 번 삼켰다.


이젠 밖으로 꺼내야 할 때였다.


“여행 작가에요. 각지의 떨어진 운석을 보면서 글을 쓸 거에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렴.”


“진심이에요.”


“왜 하려는 건데?”


“행복할 것 같아서요,”


어머니는 순간 말문이 탁 막히셨다.


“손 안 벌릴게요. 제가 돈 모아서 갈 겁니다. 저도 성인이에요 제가 갈 길은 제가 알아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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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나갈 생각 24.01.23 4 0 5쪽
80 기억하기 19.03.22 55 0 5쪽
79 뫼비우스의 띠 19.01.07 64 0 7쪽
78 강철은 아니던 몸 19.01.03 46 0 5쪽
77 티 나지 않는 18.12.23 67 0 9쪽
76 깨끗하게 씻겨주던 18.12.14 113 0 6쪽
75 너머의 영웅 18.11.25 73 0 6쪽
74 점 쳐주던 그 18.11.16 80 0 12쪽
73 납치 거래 18.10.21 60 0 7쪽
72 e의 글쓰기 18.10.15 62 0 6쪽
71 마음에 들지 않는 목소리 18.10.11 74 0 9쪽
70 새벽 18.10.07 80 0 6쪽
69 귀신 헌터 18.10.01 89 0 7쪽
68 소년과 상상 18.10.01 78 0 8쪽
67 달리는 기차에서 18.09.25 83 1 6쪽
66 살을 빼다 18.09.15 75 1 6쪽
65 나를 가두다 18.09.08 73 2 6쪽
64 12.25 선물 상자 18.09.02 60 1 7쪽
63 극복 (2) 18.09.01 90 1 13쪽
62 극복 (1) 18.08.31 78 1 13쪽
61 바뀐 밤낮 18.08.15 92 1 12쪽
60 알람이 울리던 아침 18.08.09 71 1 8쪽
59 헤엄치는 구피 18.08.01 87 1 5쪽
58 집안의 보물 +1 18.07.28 94 1 10쪽
57 줄타기 18.07.15 93 1 4쪽
56 심호흡 18.07.09 83 1 10쪽
55 이슬 먹고 자란 꽃 18.07.04 464 1 11쪽
54 같이 밑으로 18.06.30 95 1 6쪽
53 미세먼지 18.06.28 59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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