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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초감각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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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ess
작품등록일 :
2018.02.03 08:39
최근연재일 :
2018.03.17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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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06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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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15

DUMMY

<플레이어들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필자가 존경하는 선배이기도 한 블레도 라브로프는 자신의 저서 「힘의 이동」에서 “새로운 힘이 등장한다는 것은 그전의 시대가 불합리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플레이어의 등장은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대의 무기가 통하지 않는 ‘기묘한’ 괴물들의 등장과 그에 맞서는 플레이어들의 힘은 도리어 이후의 시대가 불합리하다는 증거였다.

인류가 쌓아올린(그것이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발전의 증거인 현대무기는 이들을 상대로는 귀신을 쫓기 위해 소변을 온몸에 바르는 일부 부족의 풍습보다 무의미했다.

하지만 누구도 플레이어의 근원에 대해 파헤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적어도 일부 사이비 종교를 제외하면 그렇다).

그들의 힘은 어디서 왔는가? 그것은 영구적인가?

만약 이것이 누군가의 계획이라면, 그(혹은 그녀)는 왜 이런 계획을 세운 것일까?>


안도는 조용히 책을 덮었다. 몸을 일으키자 각자의 일에 몰두하던 남녀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벌써 시간 다 됐어?”


자칭 신비학 전문가 서승휘가 말했다. 그녀는 안도의 것보다 훨씬 두꺼운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것에 적잖이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실은 안도가 보는 책도 그녀의 권유로 잡게 된 것이었다.


“어때요? 괜찮지?”

“···응. 재밌네.”


‘이 책의 저자인 윌 에코는 플레이어를 가장 진지하고 밀도 있게 탐구한 인물이다’라고 존경을 담아 말했던 그녀에게 진심을 말했다간 혼날지도 모른다.

안도의 말에 서승휘의 눈꼬리가 이쁘게 휘어졌다.


“빌려줄테니까. 너무 급하게 보지마.”


사양한다는 말이 턱 아래까지 차오르는 것을 겨우 밀어냈다. 도기원은 그런 안도의 마음을 아는지 키득거렸다.

오늘은 그들이 함께 구체에 들어가기로 한 날이었다. 서승휘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이뤄진 일이었지만 현실적으로 봐도 이 조합은 꽤 괜찮았다.

방어를 전담하는 도기원과 공격을 담당하는 안도, 거기에 후방에서 지원이 가능하고 여차하면 강력한 마법 공격을 퍼부을 수도 있는 서승휘. 게임으로 치면 탱, 딜, 유틸이 고루 갖춰진 파티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그들의 사냥은 생각보다 손쉬웠다.



“됐습니다!”


도기원이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그의 앞에 있던 괴물이 흥분해서 구르륵거렸다. 뜨거운 콧김이 방패 너머까지 전달되는 것 같았다. 도기원의 방패를 강하게 붙잡았다.


‘버티면 된다!’


그의 앞에 있는 괴물은 랭크 5의 ‘슈틸젠 하이노’. 그간 국내에는 발생하지 않았던 몬스터이기에 정식 명칭은 없었다. 플레이어들은 그냥 코뿔소라고 불렀다. 그 형태가 가장 유사했다.


슈틸젠 하이노의 공격은 한마디로 돌진, 오로지 돌진이었다 특이한 것은 뿔의 색깔에 따라 돌진의 방식이 바뀐다는 점이었다. 지금처럼 뿔이 붉은색일 때는 물리적인 돌진의 속도가 늘어난다. 정면으로 부딪힌다면 문자 그대로 몸이 바스러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일반적인 공략도 하이노의 돌진은 피하도록 되어있었다.

하지만 도기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세킥 브로제

보제 도독스(구릉 버티기)


약화되었다고는 하나 무려 7등급 몬스터인 석굴선생의 공격을 받아냈던 기술. 거기에 도기원이 든 방패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C+등급의 방패 ‘의지의 결집’. 순간적으로 저지력을 높일 수 있는 아이템이 그를 도왔다. 결과적으로 그는 붉은 뿔 하이노의 돌진을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의 상황이란 건 그저 방패를 붙들고 하이노와 마주하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게 도기원의 역할이었다.


‘어떻게든 버티면!’


도기원의 방패 너머, 하이노의 등 뒤로 안도가 뛰어내렸다. 미리 나무에 올라가있던 그는 내려오는 속도에 더해 등에 검을 찔렀다.


괴에엑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와 함께 하이노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그러나 신체 구조상 자신의 등위를 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이노의 시선이 끌리자 도기원이 분주해졌다.


세킥 브로제

아비라 모스(바위 치기)


하이노의 얼굴 옆쪽을 방패로 강하게 후려치자 놈의 시선이 다시 도기원에게로 돌아왔다. 놈은 앞에서 붙들고 위에서 공격하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발을 한 번 굴렀다.




동시에 변하는 뿔의 색. 이번에는 푸른색이었다.

푸른색의 뿔은 반전곰의 그것과 비슷한 영체화 돌진이다. 이른바 ‘안츠툼 데 질르(영혼 돌진)’.

반투명한 하이노의 형체가 도기원을 뚫고 지나치려는 순간.


“승휘야!”


그의 방패를 중심으로 그물의 형상이 나타났다. 하이노의 형체가 전력으로 달리다 벽에 부딪힌 것처럼 휘청거렸다. 안도는 섣불리 다가가지 않고 타이밍을 노렸다. 실체화 때에 물체가 겹치면 둘 중 하나는 튕겨나간다. 서로가 합쳐지는 그로테스크한 광경은 볼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그 규칙이 파악되지 않았다는 것. 놈이 튕겨나간다면 다행이지만 안도가 튕겨나가면 곤란하다. 이 싸움을 운에 맡길 필요는 없다.


하이노의 외피는 단단하다. 자세를 제대로 잡고 전력을 다해야 겨우 검이 피부를 뚫고 들어간다.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각도로 공격해야했고, 실체화 타이밍에 둔해진 지금이 기회였다.

그리고 안도에게는 그 기회를 잡아챌 능력이 있었다.


‘3, 2, 1, 지금.’


5등급 몬스터 슈틸즌 하이노는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최종 퀘스트 <평야의 폭군 처치(4/4)>가 완료됩니다.]

[보상을 산정하는 중···.]

[아이템 ‘에테르화에 관하여’를 획득하셨습니다.]


“후아. 재밌었다.”


서승휘가 땀을 훔치며 말했다. 사람들은 플레이어가 이런 말을 내뱉으면 목숨을 걸고 괴물과 싸우는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며 의아해했다. 하지만 공략법이 정확하게 먹혀 사냥에 성공했을 때 많은 플레이어들이 실제로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안도 파티의 슈틸젠 하이노 공략은 그만큼 깔끔하고 완벽했다.

쉽게 흥분하는, 다른 말로는 쉽게 어그로가 끌리는 놈의 특성을 고려하여 도기원을 전면에 내세웠고, 안도가 공격한다. 공격 대상이 되면 위험한 서승휘는 나서지 않다가 푸른 뿔로 변하는 마지막 순간에 나타난다.


“다들 고생했어.”

“형님도요.”


그날 이후로 안도와 서승휘는 서로 말을 놨지만 도기원은 끝까지 그러지 않았다. 둘이 도기원에게 편하게 말하는 건 상관없지만 자신이 그러는 건 조금 불편한 모양. 때가 되면 알아서 하겠거니 싶어 내버려뒀다.


“오빠는 정말 대단하네.”


구체의 입구로 이동하며 서승휘가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일행이 지나온 길을 훑고 있었다.


“뭐가?”

“그냥 뭔가 이것저것 많이 알고 있다 싶어서.”


구체에 들어온 때부터 슈틸젠 하이노를 잡는 순간까지 모든 것은 안도의 리드로 이뤄졌다. 구체 내부의 탐사 경로부터 나타나는 여러 몬스터들에 대한 분석까지. 특히 분석의 경우는 나름 자신이 있었던 서승휘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세세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도를 바라보는 서승휘의 시선이 한층 깊어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신비학 전문가만 할까.”


정작 안도는 서승휘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초감각이라는, 일종의 치트키를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면 서승휘는 순전히 그녀 본인의 노력으로 수많은 몬스터들에 대한 정보와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승휘랑 기원이도 인터뷰를 했다고 했지.’


서안상 PD는 프로그램의 내용이 플레이어라는 직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고,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투하는 플레이어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것 치고는 중간부터 안도에게 조금 과하게 집착하긴 했지만 큰 틀을 바꿀 것 같지는 않았다.


‘승휘는 백퍼센트 그게 나오겠네.’




“햐. 얘 물건이네.”


화면 속에서 따박따박 자신을 홍보하는 여성을 본 중년인이 감탄을 터뜨렸다. 그의 정체는 지상파 방송사인 HBS의 시사교양국 시사교양 2부 부장인 김광현으로, 다큐멘터리의 제작을 맡은 서안상 PD의 오랜 친구이기도 했다.


“괜찮지?”

“어. 확실히 주목받을 수 있겠다.”


제법 괜찮은 애들을 찍어왔다고 생각하며 화면에 집중하던 김광현의 얼굴에 점차 놀람이 번져나갔다. 방금 전의 여자는 확실히 생각보다 더 큰 물건이었다. 문제는 그보다 더 큰 물건들이 있다는 것.


“이, 이 친구 도대체 누구야?”


그의 손이 화면을 가리켰다. 화면은 영덕군의 한 야산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담고 있었다. 플레이어에 대해 자세히 아는 그가 아니었지만 저곳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지는 충분히 알 것 같았다. 황금의 거인과 불의 배, 전장을 가로지르는 마법과 소환수들. 그리고 그 아슬아슬한 광경 속에서 곡예를 하듯 싸우는 청년.


“현월대사의 싸움을 도운 거야?”


얼마나 흥분했는지 화면을 가리키는 손이 살짝 떨렸다.


“어. 근데 등급도 별로 안 높아. 대단하지?”

“싸우는 장면은 대단한데? 아.”


안타까운 탄식이 새어나왔다. 막 안도가 튕겨나가는 장면이 나온 것이다. 서안상이 그런 그를 보며 웃었다. 부장에게서 저런 반응이 나올 정도면 말 다한 거다.


“살았지?”

“당연하지.”

“드라마를 아는 친구네.”


부장은 손 비비기로 다는 게 아니다. 김광현도 이 바닥 짬밥만 십수년. 위기로 보이지만 결국 살았다면 저런 장면이 더 느낌이 산다.


“좋다. 이대로 가자. 역시 네가 최고다. 안상아.”

“알면 제작비 좀 올려주던가.”

“야. 그게 내 선에서 되냐? 위에서 쥐어짜는데. 그리고 너 정도면 특급대우야. 다른 PD들 보면 나도 진짜 너무 미안하다.”


독립 PD에 대한 처우는 열악하다. 제작비는 쥐어 짜이고, 그렇게 만든 영상의 저작권은 방송사에 빼앗긴다. 서안상과 김광현은 친구 사이지만 독립PD와 방송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을과 슈퍼갑의 관계였다.

어느새 넘어간 대화 주제는 일이 끝나고 술자리까지 가서도 한참이나 이어졌다.




비릿한 피냄새가 코를 찌른다. 토벌 2팀장 차기성은 참담한 얼굴로 눈앞의 참상을 바라봤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신체의 일부가 뜯겨 나간 시체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신대구 외곽. 한때는 왜관이라 불리던 이곳은 인세에 도래한 지옥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보고 드립니다. 현재 왜관의 황천악어는 모두 토벌완료. 바깥으로 새어나간 놈들은 토벌 3팀이 추적하여 처리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황천악어.

3등급의 몬스터로 이름에 비해 그리 강력한 놈은 아니었다. 유황불처럼 이글거리는 눈과 입에서 뿜어지는 초록색의 숨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이곳에 있던 구체에서 등장했는데, 한 번 익숙해지면 사냥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아 플레이어들에게 인기가 많은 놈이었다.


‘문제는 그게 밖으로 나왔다는 거지.’


구체는 특정 지점에 이르면 내부의 괴물을 바깥으로 쏟아낸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피해가 컸다. 언제 몬스터가 나타날지 모르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그러나 현재에 이르러서는 구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며 이 현상에 대한 대비가 완벽해졌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정 교수님은?”

“거의 다 오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일어난 적이 없는데 정 교수님이라고 도움이 될까요?”

“모르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차기성은 얼굴을 풀지 못했다. 그로써도 정 교수가 이 현상에 대해 답을 내놓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마침내 그들이 기다리던 남자가 등장했다.


정세민 교수.

하얗게 센 머리에 셔츠 차림인 그는 여느 동네 할아버지나 다름없어 보였지만 실은 구체 분야에서는 국내에서 따를 자가 없는 석학이었다.


“교수님.”

“차 팀장.”


가볍게 악수를 나눈 뒤 정세민 교수는 곧장 구체에 다가갔다. 바닥에 낭자한 피가 신발을 적시고 바지에 튀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빛을 잃은 듯 보이는 구체 옆에서 그는 몇 가지 장비를 꺼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굳게 닫혀있던 그의 입이 열렸다.


“흠.”


이마에 주름이 생긴 그를 보며 차기성은 다소 급한 어조로 물었다.


“무슨 일인지 아시겠습니까?”

“영석이는 어디 있나?”

“반 부팀장과 같이 3팀을 지원하러 갔습니다. 영석이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겠다더군요.”

“이런 건 한 명이라도 같이 의견을 나누는 게 중요해. 일단 내가 확인한 것까지 이야기해주겠네. 이건 임계구체가 되려면 시간이 한참 남은 녀석이었어. 게다가 일반적으로 임계점에 다다른 구체는 괴물들을 쏟아낸 뒤에 보이는 마력 패턴이 있어.”


‘하지만’하고 정 교수가 말을 이었다.


“마력의 급격한 흡수와 발산은 구체의 상태에도 영향을 미치지. 임계 이후 구체가 다시 작동하지 못하다 점차 소멸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야. 헌데 이 구체 주변의 마력은 그런 패턴을 보이고 있지 않네. 그보다는 오히려··· 작동 이전의 구체와 비슷해.”


이번에는 차기성이 놀랄 차례였다.


“몬스터를 쏟아낸 구체의 상태가 작동 이전과 비슷하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는 건···.”

“그래. 이 구체는 다시 기능할 가능성이 있네.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지만 말이야.”


그뿐만이 아니다. 차기성은 정세민이 굳이 말하지 않은 마지막 말을 끄집어냈다.


“다시 몬스터가 나올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으음.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


거기까지 말한 정세민이 다시 몸을 돌려 다른 장비들을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그의 말은 어디까지나 가설이었다. 실제로 그것이 일어나는 순간까지는 증명이 불가능한 가설.

하지만 만약 그것이 증명된다면?

구체가 언제 몬스터를 쏟아낼지 모르는, 심지어 그것이 여러번일 가능성이 있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대한민국, 아니 세계가 다시 공포의 시대로 돌아가게 될지 모른다. 최초의 구체가 나타났던 오리진 모먼트(Origin Moment) 이후 다시 오지 않았던 그 암울한 시기가.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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