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00년 존버한 대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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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8.02.16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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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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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2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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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으로 가즈아(6)

DUMMY

더스틴의 예측이 옳았다. 이 유적이 돌연히 발견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도시의 인공정령은 가장 먼저 그것을 밝히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며칠 전, 저는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낯선 대마법사의 마력파장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그때는 그것이 당신의 것인지 몰랐죠."


가라앉은 도시의 관리자로서 긴 세월을 살아가던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시의 모습을 드러냈다. 유적의 괴물들은 그녀의 통제를 어느정도 따르는지라, 그녀는 머지않아 그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더스틴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딴지를 건다.


"잠깐. 넌 내가 잠든지 200년 뒤에나 태어났다며?"


"당신은 여러모로 유명했거든요."


더스틴이 옛 시대에서 저질렀던 천인공노할 만행들... 특히 시간여행용 마법진을 완성하기 위하여 벌였던 짓들은 가히 전설적이었다. 200년 정도면 그리 길지도 않았던게, 그에게 얻어맞은 용들이 아직까지 이를 갈고 있었을만한 시간이다.


"... 무슨 이야긴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도 유명하셨던 것 같네요."


헬무스가 질린 듯한 표정으로 한 마디 했지만 더스틴은 그것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인공정령은 살짝 불편한 표정으로 본론에 들어갔다.


"더스틴 맥클라우드. 지금 이 세계의 상황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계시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8서클을 노리십니까?"


"그야 당연하지. 내가 뭘 위해서 잠들었는데?"


더스틴은 살짝 퉁명스러울 정도로 쉽게 대답했다. 그에게 있어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질문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인공정령의 표정은 서서히 썩어들어갔다. 헬무스는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 이토록 무섭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됐다.


"지금 세계가 이렇게 된 것은 당신과 같은 마법사들이 자초한 일입니다. 부디 8서클을 포기해주실 수 없을까요? 당신쪽도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볼 수는..."


"나 유명했다며? 그런데 그 대답을 몰라? 네 주인들이 잘못한걸 가지고 왜 나한테 그래?"


그녀의 앞에서 콧방귀를 뀌는 더스틴은 영락없는 악당이었다. 인공정령은 있지도 않은 이를 악 물고 쥐어짜내듯 소리쳤다.


"당신이 제 창조주들과 동족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군요! 아아, 역시 자매들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이제 됐어요. 당신께서 그렇게 행동하신다면, 저도 제 마음대로 하겠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하실의 정중앙에 막대한 마력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더스틴은 끝도 없이 늘어나는 마력이 주문으로 변하는 과정을 구경하며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나도 처음보는건데?"


"당신을 이곳에서 산 채로 내보냈다간 머지않아 똑같은 비극이 되풀이되겠지요. 그러니 저와 함께 죽어주십시오. 아무리 7서클의 대마법사라도 이런 곳에서, 이만한 폭발에 휘말리면 죽을 수 밖에 없을겁니다."


"아하. 이거 폭발 주문이었냐? 어쩐지..."


더스틴은 때 아닌 탐구심으로 불타오르며 허공의 구체를 요리조리 돌려봤다. 보다못한 헬무스가 겁도 없이 그에게 외쳤다.


"스승님, 이대로 가다간 여기서 다 죽겠어요!"


"기다려봐라. 뭘 알아야 디스펠을 하든 말든 할게 아니냐."


헬무스에게 되레 핀잔을 준 더스틴이 오래지 않아 견적을 냈다.


"야, 이거 보기보다 단단하네? 디스펠 못하겠는데?"


"으아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린 헬무스가 등 뒤의 계단을 바라봤다. 항상 믿음직하던 스승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구체를 보고 실실 웃는 중이다.


결국 보다못한 중년 마법사가 허리춤의 유리병을 집어들곤 구체를 향해서 던졌다. 구체와 부딪힌 유리병은 즉시 산산조각나며 시퍼런 분말을 사방에 흩뿌린다.


인공정령은 그의 시도에 비웃음을 머금었으나, 이내 자신의 주문이 멈춰버린 것을 보고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 더스틴은 거의 황홀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봤다.


"잠깐... 말하지 말아봐. 내가 맞춰볼게. 설마 대기의 마력을 동결 상태로 만들어서 마력의 재배열을 막은건가?"


"자, 잘 아시는군요. 제가 만든 비약들 중에서도 가장 비싸고 좋은 녀석입니다."


중년 마법사의 마법약은 주문의 완성에 필요한 요소들 중 하나를 망쳐버리는 종류의 것이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아무리 더스틴이라도 주문을 사용하지 못한다. 모든 종류의 마법이 봉쇄되는 것은 물론, 섬세한 마력 조종이 필요한 기술이라면 무엇이든 무효화 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미 발동된 주문은 막지 못하는데... 늦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 자네. 이름은?"


더할나위 없이 감격한 기색의 더스틴이 그제서야 사내의 이름을 물었다. 그러자 황공하다는 듯 고개를 숙인 사내에게서 곧장 대답이 돌아왔다.


"해먼드라고 합니다."


"그래... 이걸 보니까 이 시대도 아주 나쁘지는 않구만. 정말 멋진 비약이다."


방 안에 가득찬 분말들 때문에 새로운 주문을 시전하는 것도 못하게된 인공정령은 하는 수 없이 다음 방법을 선택했다. 가라앉은 도시를 힘겹게 지탱하던 마력이 빠르게 지하실로 모여든다.


"이 정도로 포기할 수는 없죠. 마법을 쓰지 못한다 해도, 이 도시와 함께 통째로 묻어버리면..."


"그렇게 자폭하고 싶냐."


더스틴이 피식 웃자, 인공정령도 그에 질세라 실소를 머금는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듯 했다.


"아무리 7서클의 대마법사라도 이 상태에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죠. 어디 한 번 맨몸으로 수백미터 깊이에 파묻혀 살아남아보시죠."


인공정령의 속내를 알게된 해먼드가 재빨리 분말을 치우려고 했지만... 밀폐된 지하실에 가득찬 분말을 빼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스틴은 그의 눈물나는 시도를 못 본 체 하며,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나 별로 안 유명한거 맞다니까. 내가 진짜로 유명했으면 이 따위 수작질로 이겼다고 지껄이진 않았겠지."


"스, 스승님. 방법이 있으신거 맞죠?"


"호들갑 떨지마라 헬무스. 방법이 너무 많아서 고르고 있으니까..."


극한의 상황 속에서 더스틴의 사고가 가속했다. 아무리 지하실에 비약이 가득차 있다곤 해도, 그가 체내의 마력을 방출해서 분말을 밀어내면 주문을 사용할 수는 있다. 아무리 마력의 재배열을 방해한다 해도 그렇게 단순무식한 방법은 막지 못한다.


그러나 그렇게 저급하고 마법사 답지 않은 수법은 더스틴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제대로된 마법사라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조차 부끄럽게 여겨야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결국 더스틴이 생각한 것은 마법이 아니라 다른 방법이다. 그는 지팡이에 걸려있던 마법을 풀고, 본모습을 드러낸 장창을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억지로 주문을 쓰는것도 좀 아니지. 자네가 보여준 것에 비하면 하찮은 잔재주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나도 한 수 보여줌세."


"네에? 지금 여기서 창 한 자루로 어떻게..."


허망하게 중얼거리던 헬무스는 더스틴의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혀를 멈췄다. 단지 장창을 꽉 쥔 것 뿐이건만. 주변의 공기가 달라진 듯 했다.


"그, 그걸로 뭘 하려고요?"


난데없는 불길함을 느낀 인공정령이 더스틴을 방해하려 들었다. 하지만 더스틴의 행동은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창을 한 바퀴 돌린 그가 찌르기를 위해서 살짝 후진시키자 주변의 시간이 얼어붙었다. 그의 기행을 지켜보고 있던 헬무스와 해먼드는 주마등이라도 보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됐다.


모든게 멈춘 공간 속에서, 더스틴의 장창만이 오롯이 허공을 유영했다. 살짝 느릿한 정도의 속도로 내질러진 그것은 이내 자신의 형체를 잃더니 머리 위의 공간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더스틴의 창격에 직격당한 흙과 바위들은 이 세계에서 도려내지듯,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던 인공정령이 자신의 시각을 의심하며 경악했다.


"뭐, 뭐야. 수백미터 깊이의 공간이 어떻게? 분명 마법은 아예 못 썻을텐데..."


"하아. 이거 간만에 해도 잘 되네. 그럼 늦기전에 나가볼까?"


더스틴은 헬무스와 해먼드를 챙겨서 구멍 위로 몸을 날렸다. 이미 자살을 선택한 인공정령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무너져내리는 토사 아래에 갇혀버린다.


"유적 전체가 폭삭 내려앉는 것 같은데... 늦기 전에 나갈 수 있을까요?"


"왜 안돼?"


마침내 마법을 쓸 수 있게 된 더스틴이 자신의 전력을 발휘하여 주문을 사용했다. 어느새 지팡이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장창이 시동어와 함께 빛을 내뿜는다.


"대지의 기둥!"


주문의 발동이 완료되자마자 유적의 이곳저곳에서 거대한 돌기둥이 솟아올랐다. 인공정령의 명령에 따라 무너져내리던 유적은 갑작스레 끼어든 기둥들에 의해서 붕괴가 지연됐다.


상당한 시간을 들여서 구덩이 밖으로 나온 세 사람은 이변을 감지하고 부리나케 달아나는 모험가들의 행렬에 합류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떠밀리지 않기 위하여 열심히 달리던 헬무스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스승님, 방금 그건 순수한 창술인가요?"


"그런데?"


더스틴은 제자의 반응에 자존심이 상한 듯, 살짝 불편한 기색으로 대꾸한다. 이전에 자신이 불의 심판 주문을 보여줬을 때도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었다.


헬무스는 그의 불편을 눈치채곤 입를 오물거렸으나... 결국 한 마디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의문을 해결하지 않으면 오늘 밤에는 잠도 제대로 못 잘 것 같았다.


"그런 실력을 가지고 계신데 왜 굳이 마법사가 되셨어요?"


"손만 뻗으면 닿는 보물에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


조용히 내뱉은 더스틴은 그 뒤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헬무스도 목구멍까지 차오른 핀잔을 힘겹게 삼켰다.


작가의말

2.28 내용 일부 수정.


예전부터 이런 류의 주인공을 한 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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